2025년 2월 19일(수)
* 시작 기도
주님...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 아람으로 도망하던 야곱에게 나타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벧엘로 갔어야 했던 그가 세겜으로 빠졌을 때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자기 맘대로 할 때 주변에 있던 그의 가족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봅니다.
이 종 역시 주님과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내 맘대로 자행자지함으로 나의 가족이 너무 힘들어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과 징계를 통하여 심판의 무덤에서 말씀을 얻어먹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 역시 감사의 조건임을 믿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새 날을 주셨으니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새 생명으로 시작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되도록 나를 장악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나를 도와주소서.
간절히 바라기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세상 가운데서 바른 행실을 드러내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3:31-38
제목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나의 묵상
주님은 12명의 제자들을 모두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것은 12명 중 한 명의 제자가 배신 할 것을 아셨지만 마지막까지 그에게 떡 한 조각을 떼어 주셨다.
그것은 그의 죄를 드러내어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를 드러내시는 주님 앞에서 끝내 회개하지 않고 그 떡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그 때가 밤이었다.
이 밤은 시간적으로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이는 그의 어두운 영적상태인 밤을 상징한다.
유다가 주님이 주시는 떡 한 조각을 받고 조금 있다가 나가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셨다.
만일 하나님이 인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 당신을 통하여 인자에게 영광을 주실 것인데 곧 주실 것이다.
나의 아이들아, 내가 너희들과 아주 잠시 함께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인데 이는 내가 이미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한다.
이제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준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묻기를,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지만 후에는 따라올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한다.
주님, 내가 지금은 왜 따라갈 수 없나요? 주님을 위해서 내 목숨까지도 버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말하는데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 그는 12명 중에 한 명 곧 1/12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비율로 보면 그의 충성스런 나머지 11명의 제자들이 있기 때문에 1명 정도야 떨어져 나갈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주님은 그 1명을 위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으며 또한 끝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것이 그의 심령을 찌르는 떡 한 조각이었다.
이는 1/12이 아니라 12/12 곧 전부를 위한 주님의 사랑이시다.
그런데 결국 그 제자는 어두운 밤인 세상의 임금에게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머지 11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그 인자로 인하여 하나님도 영광을 받았다.
하나님이 인자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셨으면 또한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인자에게 영광을 주실 것인데 지금 곧 주실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과 아들이 받는 영광은 십자가 죽음을 통한 영광이다.
이는 인간적 육신적 감정적으로는 가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전략이기에 어느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받으실 그 십자가의 고통도 능히 참으신 것은 그 앞에 있는 영광으로 인함이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마 27:51-52)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물론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진 것이요 이는 예수님의 몸이 찢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늘지성소로 들어가는 닫혀진 그 문을 당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여신 것이다.
(히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지만 이는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극한 고통을 표현한다고도 볼 수 있다.
멜 깁슨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에서는 이 부분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늘로부터 물방울이 하나 떨어지는데 그것이 땅에 닿는 순간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위로부터 떨어진 물방울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죽음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으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심장이 터지고 찢어지는 그런 아픔이지만 창세전 약속 곧 사람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기에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면서까지 그 신실하심을 지켜야 하셨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아들 또한 십자가에 알몸으로 올라가셔서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것이다.
이는 그 순간 받으시는 영광으로 인함이다.
이 영광은 이 땅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받으시는 영원한 기쁨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하여 그 모진 십자가의 고통과 부끄러움도 참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가룟 유다가 되어 아버지와 아들을 배신하는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가?
또한 주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 그 앞에서 그가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을 넘어 산산이 가루가 되셨을 것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배신이나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버린 사건은 역사적으로 이미 지나간 사건이다.
이제 이를 통하여 가룟 유다인 나를 끝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시어 당신의 생명을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세 번 부인했지만, 나는 어디 세 번 뿐인가?
나는 세 번만 아니라 300번 아니 3천 번, 셀 수도 없이 많은 부인과 배신을 행했던 자이다.
베드로의 부인(否認)과 저주 그리고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다.
이는 지금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오지 못하지만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깨닫고 주님이 하신 말씀들이 생각나 그 때에는 주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 것을 아시기에 새 계명을 주시는 것이다.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한 것 같이 그들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다름 아닌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요, 영혼을 사랑하는 것의 최고봉은 곧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들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이를 위하여 하늘 영광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렇게 당신 스스로 복음이 되어 우리에게 그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주시고 다시 하늘 위로 오르셨기에 이제 우리,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내가 할 일은 땅의 것에 연연하지 않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이는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아들의 생명이요 아들과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임을 믿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그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골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나는 복음을 알지 못했고 아버지와 아들의 신실하심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아들을 통하여 독생자의 영광 곧 은혜와 진리(인자와 신실)을 알지 못하는 자였던 것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복음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로써의 복음과 메시야로서의 행위적인 복음(십자가의 죽음, 무덤에 장사됨, 그리고 부활과 현현복음)을 알지 못하였으니 내 마음대로 복음을 해석하고 전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는 툭하면 주님을 버리고 부인하고 마음속으로 저주까지 하는 극히 악한 자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철저하게 심판 받아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뼛속까지 죄인인 나, 철저하게 타락한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던 나인데 그런 나를 ‘그 사랑’으로 살리셨다.
그리고 그런 내 속에 아들의 생명을 주시고 나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셨다.
도대체 이게 웬 사랑이며 웬 은혜인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나 그 사랑이 내게 임하였다.
그것은 복음으로 임한 주님의 사랑이요, 결코 바꿀 수도 없고 변하지 않는 ‘그 사랑’이다.
가룟 유다로 인하여 받은 배신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님을 팽개쳐두고 다 도망간 그 상실감, 이들보다 더 악하고 추한 나로 인하여 몸이 둘로 찢어지신 우리 주님을 이제 사랑한다.
그 사랑은 내게 생명을 주신 그 사랑이다.
어제는 한국에서 오신 포항주향교회 성도들과 함께 베트남의 닌빈을 방문하였다.
닌빈의 짱안은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그곳에 자연동굴을 5-6명이 쪽배를 타고 한 여성분이 노를 젓는다.
마침 그 배에 가이드가 함께 탔다.
이 가이드는 한국어가 좀 서툴러서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향교회 권사님 한 분이 그 가이드에게 예수 복음을 줄기차게 전하였다.
그리고 그의 입술을 통하여 예수가 나의 주인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한 후에 나에게 그 가이드와 전화를 연결하여 계속 복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조치까지 하였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老권사님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다.
나 또한 지금 이 묵상을 하면서 눈물이 흘러 앞을 가린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내 속에서는 하늘의 기쁨이 넘쳐흐른다.
그 안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시는 영광이 있다.
날 구원하신 우리 주님과 창세전부터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가슴이 무너지나이다.
가룟 유다나 베드로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로 가룟 유다요 베드로이며 이들보다 더 악한 죄인 중에 괴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나로 인하여 가슴이 찢어지셨을까요?
나를 이곳 광야에 몰아 넣으시면서까지 주님의 그 사랑을 알게 하시고자 하셨던 나의 주님을 이제 사랑합니다.
나 비록 광야의 한 가운데 있지만 주님의 그 사랑을 알고 깨달았기에 이 자리가 나의 생명의 좌소이며 생명이 나오는 우리 주님의 무덤과 연합한 자리임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이제 그 사랑에 연합하여 사랑의 핵심인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주님의 ‘그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나의 사랑이요 나의 생명 되신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나는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나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옵소서.
오직 당신의 생명으로 날마다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는 복을 받았으니 그 이상 더 원할 것이 무에 있겠나이까?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임을 고백하나이다.
정말 몸만 죽이는 그런 것에 부화뇌동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주님의 그 사랑을 전하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