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산뜻한 출발이다. 새로운 선수들이 여럿 등장했음에도 좋은 경기력으로 3;0이라는 여유 있는 점수 차로 만만치 않은 UAE를 눌렀다. 이용재의 득점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안목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또 한번 증명된 것처럼 보인다. 팬들도 즐거워 할 경기력이 아니었나 싶다.
1. 새로운 선수들의 시험
또 다시 새로운 선수들을 많이 시험했다. 이름값에 상관없이 K리그와 J리그에서 활약이 좋은 선수들을 두루 기용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나 대학리그까지 찾아다니면서 선수 자원을 발굴하고 있다. New Face들의 면면을 보면 슈틸리케 감독이 본인의 ‘철학’을 갖고 선수를 선발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뽑아서 시험해본다는 사실은 선수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선수들을 선발할 때마다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시안컵의 스타였던 이정협부터 오늘 A매치 데뷔전에서 득점에 성공한 이용재나 경기를 주도하는 데에 핵심이었던 이재성까지 언제나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정우영, 정동호 등도 어김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선수들의 활약이 좋다는 사실은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선수들을 뽑아 시험하면서 팀 스쿼드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 기성용처럼 부상으로 낙마하는 핵심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대체할 자원들은 미리 마련해 놔야 한다. 사실상 2차 예선에서 우리 대표팀이 탈락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지금 많은 선수들을 시험하고 실제로 본선까지 데려갈 수 있는 선수들을 많이 확보해놔야 한다. 많은 선수들을 소집하여 직접 점검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부임 이후 끊임없이 선수들을 시험해보고 있다는 사실에 다소 걱정이 되는 축구팬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수들을 시험하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시점은 없다. 월드컵 예선이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월드컵 본선이 다가올수록 경기는 중요성을 띠기 때문에 검증된 주전 선수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
(△ 기성용의 파트너가 아니라, 그의 대체자로서의 가능성도 보인 정우영.)
2. 에이스 없는 팀도 강할 수 있다.
이번 경기는 '에이스' 기성용 없이 치렀다. 핵심 선수였던 기성용이 빠진 경기에서는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열린 요르단과의 평가전이 그랬다. 그래서 어떤 선수가 기성용의 대체자가 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개인적으로 공 전개에 재능을 지니고 있는 구자철, 이명주 정도가 대체자가 될 수 있을지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슈틸리케는 새로운 대안을 내놨다. 비슷한 체격조건을 지닌 정우영이다. 각 연령 대표부터 꾸준히 활약했던 정우영은 이번 경기에서 본인의 진가를 입증했다.
준수한 공격전개는 기본이고, 후방에 한국영을 둔 채로 적극적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수비적으로도 크게 공헌했다. 특히 오마르 압둘라흐만을 꽁꽁 묶었는데, 압박을 들어가는 타이밍이 굉장히 좋았다. 오마르는 이동하면서 트래핑을 할 때 가장 무서운데, 일단 공을 발 앞에 잡아놓도록 여유를 주었다가 순간적으로 압박하면서 속도와 기술을 억제시킨 것이 주효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좋은 활약이었다.
정우영의 활약이 훌륭했지만 이번 경기를 잘 풀어낸 것이 오롯이 그의 공인 것은 아니다. 공격 2선에 위치했던 이재성의 움직임 역시 빛났다. 공을 받기 좋은 위치로 끊임 없이 움직이면서 후방에서 패스가 연결 될 수 있도록 움직였다. 공격의 흐름을 잘 살리는 트래핑과 원터치 패스가 있었기에 전방에서의 공격 전개가 부드럽게 이어졌다. 과감하게 시도하는 드리블은 보너스였다. 과연 K리그에서 현재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미드필더다웠다.
기존 국가대표팀 경기는 기성용이 팀의 중심을 꽉 잡은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공격은 기성용에서 시작되었고, 팀 전체가 기성용에게 의지하는 느낌도 있었다. 한편, 정우영과 이재성. 공격 기점이 된 이 두 선수의 조합은 상당히 신선했다. 정우영, 이재성의 활약 외에도 함께 2선에서 호흡을 맞춘 염기훈, 손흥민, 이청용, 남태희 모두 위협적이었다. 이번 경기는 다양한 공격 기점을 가져서 팀이 전체적으로 더 기민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공격 기점이 다변화되면 상대의 입장에서도 수비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경기는 대표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기성용의 복귀 이후에도 기성용을 포함해 다양한 선수들이 공격기점이 된다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3. 슈틸리케가 선호하는 공격수
이용재의 선발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는 딱 맞았던 것 같다. 아시안컵을 두고 발탁한 이정협은 전방 압박, 헤딩 경합 등 궂은일을 마다 않는 선수이고, 활동반경이 넓고 활동량이 많아 2선의 공격수에게 많은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선수이다. 이용재 역시 이정협과 비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날카로운 마무리나 드리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간 쪽을 끊임없이 노리고 들어간다. 결국 이렇게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게 되는데, 2선 공격수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현재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공격수인 양동현, 이동국의 경우 뛰는 양이 많다기보다는, 본인이 마무리하는 것에 강점을 가진 선수들이다. 이런 유형의 선수를 슈틸리케 감독이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현재 대표팀에 손흥민, 이청용, 남태희, 구자철 등 확실한 공격력을 가진 2선 공격수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활동반경이 넓고 많이 뛰는 공격수들의 발탁도 이해가 된다.
감독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선발해서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팀을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이 무척 긍정적이다. 잘하는 선수들을 전부 모은다고 최고의 팀이 될 순 없다. 팀이 가고자하는 방향이 확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응원하고 싶다. 게다가 이번 경기에서는 이용재와 이정협 모두 골을 기록하면서 감독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 뽑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다.
4. 실전에서는 극단적 수비를 뚫어내야 한다.
이번 경기에서 분명 대한민국 대표팀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2015 아시안컵 3위 UAE를 상대로 경기 내용도 좋았고, 3:0이라는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스코어에 취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우리를 상대로 정면승부에 나섰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수비라인을 내리지도 않았고, 우리와 주도권 다툼에 나섰다. 오히려 우리 입장에선 이렇게 정면 승부로 나서는 팀은 상대하기 좋다. 여유 있는 승리의 배경엔 평가전이었기에 정면승부를 한 UAE의 덕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
우리 대표팀은 언제나 수비라인을 깊이 내려 밀집 수비를 펼치는 팀을 상대로 고전했다. 대표적으로 이란이 그렇다. 수비라인을 굳히고 있다가 제한적 기회를 살린 강한 역습에 종종 무너져 내렸다. 세계적인 경향을 보아도 '두 줄 수비'는 하나의 대세이고, 열세에 놓인 팀이 우세인 팀을 괴롭힐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월드컵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이런 밀집 수비를 뚫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재성, 이청용처럼 공격진에서 동료들의 움직임을 빨리 파악하고 있다가 빠른 타이밍에 패스 연결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다. 남태희나 손흥민처럼 개인 기술이 좋아 돌파가 가능한 선수들도 있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이 부분 전술의 완성도를 높여간다면 밀집 수비도 뚫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다만, 적극적으로 나선 이번 평가전과는 달리 웅크린 상대를 상대하는 법도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 골맛을 보며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에 부응한 이용재. 공격수 주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출처:KFA홈페이지)
‘평가전’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한 경기였다. 많은 선수들과 전술을 시험했고 또 성공한 모습이었다. 유럽에 살면서 한국엔 경기 있을 때만 오겠다던 감독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축구와 늘 가까이 있으면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불어넣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감사할 뿐이다. 만족할만한 경기였지만 이것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란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비적 전술로 우리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2차 예선의 상대팀들에게도 대한민국의 매운 맛을 보여주길 바란다.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사실 2013 동아시안컵때도 오늘과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었죠. 하대성-이명주가 두경기에서 중원을 씹어먹었으니까요.
그래서 기성용이 복귀했을 때 어떤 조합이 나오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하대성이나 이명주가 기성용 파트너로 나오면 스타일이 겹치는 느낌이라. '볼 줄'인 선수들이 과하게 많아지는 느낌인데. 이재성은 좀 다른 느낌이 들어서 기대 중입니다. 워낙 2선에서 공을 받으러 부지런히 움직여주고, 또 패스 타이밍이 기가 막힌 것 같아요. 빨리 줘야할 때 바로 바로 주니까 팀 스피드가 올라가는 느낌. 기성용이랑 궁합이 괜찮지 않을까요?
@hyon_tai 기성용은 우즈벡전 우리홈에서 이명주와 파트너를, 어웨이에서 하대성과 파트너를 이룬적이 있죠. 솔직히 말해서 이 세 선수의 시너지 효과는 하대성-이명주일때가 최고조였습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