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 술뫼 둔치로
지난 주 토요일부터 추석 연휴에서 이어진 여드레가 가을방학이나 마찬가지다. 여항산 미산령 임도를 따라 야생화를 탐방했고 이튿날 벗과 함께 구룡산 산등선을 따라 주남저수지 근처까지 갔더랬다. 추석 전날은 작대산 트레킹길을 걸으며 도토리를 가득 주워 초등 친구한테 보냈다. 추석날 새벽엔 창원천 생태 탐방을 나섰고 이튿날은 함안 화개지맥을 따라 유원으로 나갔다.
엊그제 주중 목요일은 재량휴업으로 지기와 을숙도와 다대포로 트레킹을 다녀왔다. 하루 연가를 낸 어제는 대암산을 올라 정상에 피어난 가을 야생화들을 완상하고 신정봉에서 용제봉을 거쳐 장유계곡으로 내려섰다. 다시 토요일이 돌아온 구월 하순이다. 달력에 메모를 남겨둔 나지막 방점은 한림 강둑으로 나가는 일정이었다. 창원 대산 유등에서 김해 한림 술뫼 강둑 트레킹이었다.
며칠 파랗게 드러난 하늘이었는데 여름 같은 먹구름이 몰려온 날이었다. 기온은 가을답게 선선했지만 간간이 소나기가 흩뿌려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섰다. 도계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대산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를 거쳐 주남저수지를 둘렀다. 대산 들녘 벼들은 고개를 숙여갔다. 가술을 지난 모산에서 북부동을 거쳐 종점으로 향했다.
차창 밖 강변 농지는 연을 가꾸어 캐는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연 경작지 진흙구덩이는 굴삭기로 바닥을 뒤집어 연근을 깨냈다. 서리 내린 이후 땅이 언 겨울에도 연근을 캐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가술을 지난 유청에서 유등 종점까지 승객은 혼자뿐이었다. 유등 배수장 수로에는 노랑어리연이 수면 가득 잎을 펼쳐 꽃을 피워 있었다. 강둑으로 오르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났다.
한림 술뫼 생태공원으로 가는 둔치로 내려서니 고삐에 묶인 싸움소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되새김질을 했다. 싸움소 주인이 일광욕을 시키는 듯했다. V자 쇠뿔은 거구에서 뿜어 나올 힘이 용맹스러울 듯했다. 노천명은 사슴을 보고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고 했는데 ‘뿔이 사나워 슬픈 짐승’이 싸움소였다. 코로나로 소싸움이 열리지 못해 남은 힘을 주체 못할 소지 싶다.
강둑으로 자전거길을 시원스레 뚫었지만 둔치에도 마찬가지였다. 길섶에는 꽃이 저문 금계국 잎들이 보였다. 여러해살이라 내년 봄에 다시 꽃을 피우지 싶었다. 꽃이 저물고 씨방을 단 달맞이꽃 줄기도 보였다. 야관문으로도 불리는 비수리는 아직 꽃을 달고 있기도 했다. 넓은 둔치에 가장 많은 개체는 물억새였다. 평원을 이루다시피 드넓은 둔치에 물억새 이삭이 패니 장관이었다.
강 건너는 명례 오토캠핑장에서 오산으로 내려가는 둑이 길게 이어졌다. 뒤돌아보니 수산을 거쳐 온 강물은 삼랑진을 향해 너울너울 흘러갔다. 밀양강 지류가 합수하는 뒷기미와 삼랑진으로 건너는 철길 교각이 아득했다. 무척산과 경운산에 뭉쳐진 비구름이 가까이 다가와 비를 뿌려 우산을 펼쳐 쓰고 걸었다. 파크골프장과 시산동산을 비켜 강변을 따라 걸어 술뫼로 향했다.
마을로 가는 생태보도교를 건너니 샛강은 부레옥잠과 마름이 수면을 가득 덮고 꽃을 피웠다. 둔치에서 술뫼마을 지인 농막을 찾아갔다.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인은 점심상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텃밭을 먼저 둘러보고 실내로 들었다. 강변을 조망하기 좋은 거실 바깥은 풍광 좋은 곳에 자리한 카페보다 더 황홀경이었다. 자연인과 진배없는 밥상 앞에 나도 수저를 들었다.
지인은 식후 아침나절 캤다는 햇고구마를 삶고 있었는데 나는 열차 시각이 바빠 자리에서 일어났다. 텃밭의 가지를 몇 개 따 챙겨주어 고마웠다. 다음에 또 들리기로 하고 삽짝을 나서 시호마을로 갔다. 한림까지 걸어 열차를 타려다가 맞은편에 진영으로 가는 버스가 와 그걸 탔다. 들녘을 둘러 진영에 닿아 창원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더니 무점과 자여를 둘러 시내로 들어왔다. 21.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