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는 총 453명이 응모하였다. 예심을 맡은 심사위원들은 작품 선별의 기준으로 시의 완성도와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중요하게 보았다. 오랜 고심 끝에 모두 11명(김하나, 김해준, 박수지, 백은선, 안희연, 이광청, 이세희, 이현정, 임승유, 조혜경, 최단비)의 작품을 골랐다.
시편을 완성하는 솜씨가 모두 고른 편이어서, 최종심에 남길 후보작을 택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는 응모작의 수준이 평균 이상에 달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문제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낱낱의 시편이 무리 없이 완결되어 있는데 반해, 전반적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을 주는 시가 많다는 점이었다. 기존의 시 경향이 정형화된 유형을 낳고 있지 않은가라는 우려 또한 제기되었다.
요컨대 2000년대 이후 나타난 한국시의 혁신적인 실험과 시의 새로운 지평은 전례 없는 독창성을 구현함으로써 시사(詩史)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변화의 산물이 이제 막 시작(詩作)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의 원형적 본보기로, 따라야 할 전범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염려를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이 기존의 시인들을 연상시키는 예가 많고 이상하리만치 서로를 닮아 있었다.
어떠한 미학적 새로움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탈피해야 할 또 다른 관습이 되고 만다는 사실은 미적 현대성이 지닌 구조적 아이러니에 해당한다. 그 때문에 자기 갱신과 ‘혁신’의 사명은 모든 현대적 예술에 부과된 책무이기도 하다. 그만큼 미학적 새로움은 매혹되기 쉽고, 전염력이 강하며, 새로움 바로 그것을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반면, 그로 인해 정형화되기 쉽고, 모방을 낳기 마련이며,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그에 영향받은 예술적 후배들은 이러한 새로움을 본뜨는 일이 새로움의 직접 수행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어떤 새로움이 유행으로 고착되면, 이전 세대의 아류가 양산되는 쪽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셈이다. 이런 경우라면, 신예라는 호칭은 누구에게도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시에 김경주, 김행숙, 이제니, 조연호 등은 한 명으로 충분하다. 자극과 영향을 받는 것은 좋으나, 기존의 시를 추종하는 것은 신인으로선 반드시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기성의 것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제외하고 나니, 최종적으로 남은 후보작이 의외로 적었다.
안희연의 시는 시의 원천을 이루는 발상이 눈에 띄었다. 지배적 심상으로 택한 대상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할 때, 그것을 유추적으로 연관시킬지 아니면 전혀 이질적으로 충돌시킬지, 그에 따라 어떻게 다른 효과가 빚어질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이 비범해 보였다. 그러나 읽는 이의 예상을 빗겨가는 기발함과 참신한 상상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그에 반해 최단비의 시는 전체적으로 안정된 기량을 갖추고 있고, 낱낱의 시편이 미숙함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잘 정제되어 있었다. 특정의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시 쓰기에 모두 능하다는 인상을 주어 오랫동안 연마한 솜씨임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그만의 개성이라 꼽을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임승유의 시는 경쾌하고 발랄한 어조가 단연 돋보였다. 실존의 절박함이나 삶의 곤경, 외부 세계의 추악하고 어두운 면모에 직접 반향하기보다 가볍게 대상을 아우르는 품이 시 전체에 걸쳐 절묘한 아이러니를 형성하고 있고, 고통을 고통스럽지 않게, 슬픔을 슬프지 않게 그려내는 여유와 그 가운데 날카롭게 번뜩이는 이지(理智)가 과하지 않게 배면에 녹아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무엇보다 이러한 장점을 자기 시의 특장(特長)으로 살릴 줄 아는 직관을 생래적으로 갖고 있으면서, 이를 기술적으로 형태화하는 노력이 작품 곳곳에서 엿보인다는 것, 그것이 그만의 고유함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면서 임승유의 시를 흔쾌히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축하의 말과 더불어, 어느 누구와도 차별되는 시 세계를 일구어갈 것을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다.
〈심사위원〉
- 예심 : 강계숙, 강동호, 하재연
- 본심 : 강계숙,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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