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 권수진
혁명은 멀고
술은 가까워
익숙한 자리에서 발목을 자주 접질렀다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은 지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은
내 일이 아니었으므로
아직 세상에 도래하지 않았다
여기서 딱 한 잔만 더 마시자며
술을 부추기는 친구 조언을 묵살하는 밤
방황이 이토록 긴 줄 알았다면
남들처럼 적당히 선에서
타협하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사랑은 여전히 어렵고
명멸하는 별빛 속에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를 자주 혼동하곤 했다
삶이란 술 취한 회전목마 같아서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아무런 줏대 없이
자꾸 2차를 권하는 무리에 휩쓸려
집은 점점 멀어지고
길은 점차 사라지고
막차 떠난 정거장을 한참 동안 서성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면
아무래도 이번 생의 모의는 실패,
인 것 같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문학의전당, 2022.
감상 – 『자본론』은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마르크스의 저작이다. 능력주의의 의한 분배를 내세워 이윤을 강탈해가는 자본가 계급을 무너뜨리고, 평등한 상태에서 필요에 따른 분배를 지향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마르크스는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서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고 했지만 자본가와 그 결탁 세력의 방해를 뚫고 나가는 길이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무엇보다 자국의 노동자 처지와 이해가 상충되고 그에 따른 생각과 행동 방향도 달라 힘의 결집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의 힘을 빼놓는다. 그럼에도 평등에 대한 꿈을 꾸고 그 외연을 확장시킴으로써 부의 세습을 문제 삼고 지나친 부의 독점을 견제하는 일들이 그나마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긴요한 선택이란 생각도 든다.
옛날 김수영 시인이 그러했듯이 권수진 시인도 혁명에 대한 기대로 가슴을 부풀게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토록 바라던 내일”은 도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그 방을 생각하며」)는 김수영의 자조가 권수진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수영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혁명은 안 되고 김수영은 기꺼이 술로 다가서서 술 마시지 않는 문청들을 공개적으로 탓했지만 권수진은 겉으로는 술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정도다.
천문학자도 아닌 시인이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자주 혼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주 밤하늘을 우러르며 자신의 길을 더듬었다는 뜻도 된다. 명멸하는 수많은 별빛 속에 그 중에서도 좌표가 될 만한 자리를 찾으면 그뿐 그게 북극성이든 아니든, 마르크스든 김수영이든 또 다른 누구든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자본론』이 자본의 횡포와 타락을 멈춰 세우지는 못했다고 해서 책의 운명이 끝난 것도 아니다.
때로 사람도 책도 길이 된다. 권수진 시인은 “길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표명하고 있지만 길을 고민하고 있는 이상, 그 ‘길’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쩜, 방황이 있는 한 실패는 없는 것이란 명제도 가능할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는 술자리 아니면 나누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시인의 귀가 시간이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 (이동훈)
첫댓글 혁명을 하는데 왜 술을 먹는가
깨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세상이 더러워도
칼 마르크스는
늘 깨어 있었다.
전위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새롭게
휘청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