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9월 21일, 러시아의 통신사인 리아 노보스티(RIA Novosti)는 군사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 시킬만한 흥미로운 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그동안 답보 상태에 있던 해군력을 대대적으로 증강시키기로 결정한 러시아가, 그 계획의 일환으로 오래전에 퇴역하여 예비함으로 보관중이던 3척의 전투함을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재취역시키기로 하겠다는 소식이었다. 예정대로 진행될지 여부는 모르지만 이 소식은 경쟁국들을 긴장시켰다.
공포의 주먹이 돌아온다? 키로프급 3척 복귀 계획
그 주인공이 냉전 시대에 서방 세계를 위협하는 공포의 주먹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키로프급 순양전함(ex-Kirov Class Battlecruiser)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한 척이 현역에서 활동 중이므로 굳이 낯설다고 할 수는 없지만 키로프급은 항공모함을 제외하면,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현존 전투함 중 최강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 해군과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은, 특히 미국은 이들의 재등장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때 세계 2위 수준의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였던 옛 소련 해군은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극심한 혼란기를 거치는 동안 처절하게 붕괴되다시피 하였다. 경제 몰락으로 인하여 현역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수많은 전투함들이 조기에 퇴역하거나 고철로 팔려나갔고 신예함 도입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3척의 키로프급도 그렇게 현역에서 물러났는데 이들의 재등장은 그동안의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옛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러시아의 자신감을 의미한 것이다.
마지막 '순양전함(Battlecruiser)' 키로프급
제2차 대전은 항공모함이 바다의 주역으로 등장한 전환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바다의 주인 노릇을 하던 거대한 전함의 시대는 순식간 막을 내렸고 그 자리를 구축함 같은 날렵한 전투함들이 대신하였다. 더구나 원거리를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미사일의 등장은 더 이상 거함거포시대가 재현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 보니 전함, 순양전함처럼 거대한 수상 전투함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실 키로프급은 규모만 놓고 본다면 전함이나 순양전함으로써 그다지 크다고는 볼 수 없다. 만재배수량이 28,000톤인데, 이 정도는 제1차 대전 당시에 활약하던 전함 정도의 수준이다. 따라서 많은 자료에서는 순양함 혹은 미사일 순양함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항공모함이나 상륙함 정도를 제외한 전투함 중에서 현재 이보다 큰 것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키로프급은 마지막 순양전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현재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순양함을 운용하지만 실제로는 알레이버크(Arleigh Burke)급 구축함과 그다지 차이가 없으며, 키로프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함들이 컸던 이유는 강력한 주포를 장착하기 위해서였는데, 사실 이런 이유는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되는 법칙이다. 플랫폼이 크면 클수록 보다 강력한 무장을 용이하게 장착할 수 있어 덩치가 큰 키로프의 공격력은 강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을 상대하기 위한 거인
사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플랫폼의 크기를 크게 하는 것이 좋지는 않다. 운용에 많은 인력과 경비가 들어가서 평소 작전 효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덩치가 큰 만큼 적으로부터 공격 당하기 쉽다. 정밀유도무기로 공격하는 지금은 목표물의 덩치는 그다지 의미가 없지만, 크다는 것은 대부분 주력함을 의미하므로 교전 중 상대에 의해 가장 먼저 제거하여야 할 목표물이 될 수밖에 없다.
사상 최대 규모의 군함인 미 해군의 니미츠(Nimitz)급 항공모함도 수많은 호위함들의 보호를 받으며 활동한다. 항공모함은 전함이나 구축함처럼 무기를 탑재하여 직접 교전을 벌이는 전투함은 아니지만 원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항공력을 투사할 수 있으므로 상대에게는 엄청난 압박을 가하는 플랫폼이다. 따라서 적들에게는 제일 먼저 공격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 점이 키로프급이 현존하는 최강의 전투함으로 태어나도록 한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개발 당시 목표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키로프급은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을 상대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무시무시한 화력을 일거에 집중하여 호위 전력으로부터 엄중히 보호받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격침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단일 전투함으로는 사상 최대라고 평가되는 어마어마한 화력이 키로프급에 장착되었고 지구상에 등장한 그 어떠한 전투함도 이를 능가할 수 없을 정도다. 당연히 그 정도의 화력을 탑재하려면 함의 크기가 커져야 했던 것이다.
소련의 고민으로 탄생한 주먹
키로프급은 함마다 조금씩 차이가나지만 초도함 기준으로 본다면 20기나 장착된 초음속 SS-N-19 대함미사일이 제일 먼저 그 힘을 상징한다. 보통 8기 정도의 함대함미사일을 장착하는 서방 전투함과 비교하면 그 위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여담으로 서방에서 가장 많은 함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전투함이 한국 해군의 세종대왕 급 구축함이다. 여기에 더불어 SA-N-6 대공미사일 96기 등, 무려 300여기의 각종 미사일이 배치되었다.
이처럼 과하다할 정도로 강력한 무장을 갖추게 된 데는 소련 해군의 고민이 어우러진 결과다. 냉전 붕괴 전까지 소련은 명실공히 세계 2위의 해군을 보유하였고 이를 승계한 러시아 해군도 핵전력까지 고려하면 계속 이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국토의 크기에 비한다면 러시아의 연해는 그다지 크다고 볼 수 없다. 발트해, 흑해, 극동 같은 경우는 적대세력에게 출입구를 봉쇄당할 정도로 여건도 좋지 않다.
따라서 제정 러시아 당시부터 규모에 비해 그다지 강한 해군으로 평가되지 않았고 오히려 전사에 길이 남을 참패만 기록하였다. 냉전 시기에 소련은 자존심을 내세워 미국에 맞서는 전력을 구축하려 들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런 여건에서 엄청난 국력이 투입되는 해군력 증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련은 물량 경쟁을 포기하고 키로프급 순양전함처럼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정예 전력으로 미국을 상대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름이 바뀌어도 여전히 키로프
개발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의 공격 핵잠수함을 요격하기 위하여 1144계획으로 명명된 신형 순양함 개발이 그 시초였는데, 작전의 효율을 높이려 핵 추진으로 설계되었다. 이후 계획이 수차례 수정되면서 대잠임무 뿐 아니라 수상함대, 특히 미국 항모전단의 타격도 가능한 수준의 무시무시한 핵 추진 순양전함이 탄생하게 되었다. 초도함 키로프는 1973년 6월 건조를 시작하여 1980년 12월 30일 취역하였다.
하지만 절정기의 소련도 부담스러워 했을 만큼 건조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 후속함은 곧바로 제작되지 못하였다. 취역기준으로 2번 함 프룬제(ex-Frunze)가 1984년, 3번 함 칼리니(ex-Kalinin)이 1988년, 4번 함 유리 안드로포프(ex-Yury Andropov)가 1998년에나 겨우 바다로 나갔을 정도였고 5번 함은 건조가 취소되었다. 더불어 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 이들을 인수한 러시아 해군은 이름을 모두 바꾸었다.
키로프가 우샤코프 제독(Admiral Ushakov)으로 바뀐 것을 비롯하여 순서대로 라자레프 제독(Admiral Lazarev), 나기모프 제독(Admiral Nakhimov), 표트르 대제(Pyotr Velikiy) 등, 제정 러시아 당시의 인물들로 새롭게 함 명이 변경되었다. 새롭게 출발한 러시아 해군이 옛 소련 해군과의 단절을 위한 조치이기도 한데 이때부터 키로프급을 우샤코프 제독 급으로 부르지만 워낙 예전의 이미지가 강하여 많은 공식 자료에서 조차 키로프라고 표현한다.
퇴역 그리고 부활의 조짐
하지만 이들 중 북해함대의 기함으로 활동 중인 4번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역한 상태다. 1번 함 키로프는 1990년 작전 중 핵 추진기에 고장이 발생한 후, 타함의 부품 예비용으로 사용되기 위해 여기저기 뜯긴 상태로 보관 중이며, 2번 함과 3번 함은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어 퇴역 조치되거나 장기 수리 중이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붕괴된 소련의 피폐한 경제를 물려받은 러시아가 이들을 도저히 운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 세계 바다를 계속 지배하려는 미국에게 반가운 점이기도 했다. 아이오와(Iowa) 급 전함을 한때 재 취역시키기도 하였을 만큼 키로프는 미국에게 꽤나 신경이 쓰이던 존재였다. 치열하게 해군력 경쟁을 하였지만 미국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고 냉전의 종식은 이러한 부담을 덜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1개 항모전단을 해체하는 등 군비 축소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바로 이때 키로프급의 재등장 소식이 나온 것이다.
SS-N-26 대함미사일, S-400 대공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최신예 미사일과 어뢰를 배치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하여 이지스(Aegis)에 버금가는 최첨단 화력통제시스템을 장착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렇게 개수한 3척의 순양전함들은 세계 최강의 전투함의 명성을 계속 유지하며 2030~2040년까지 활약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강력한 키로프급들이 장기간 찬밥 신세가 될지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이런 야심만만한 계획이 예정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키로프급 순양전함 제원
승무원: 710명/ 전장: 252m/ 전폭: 28.5m/ 전고: 9.1m/ 함선배수량 : 24,300t/ 만재배수량: 28,000t/
무장 (초도함 기준)
P-700(SS-N-19) 대함미사일×20/ SS-N-14 대잠미사일×14/ S-300PMU(SA-N-6) 대공미사일×96/ 9K311 (SA-N-9) 대공미사일×192/ OSA-MA (SA-N-4) 대공미사일×44/ AK-130 130mm/L70 2연장 함포×1/ AK-630 30mm 6연장 근접방어 시스템×8/ RBU-1000 305mm 대잠로켓 발사관×1/ RBU-12000 254mm 대잠로켓 발사관×2/ 533mm 어뢰발사관×10/ Ka-25 Hormone, Ka-27 Helix 헬기×3
출처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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