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늘나라에 가고 육십팔 세에 혼자가 되신 아빠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껏 엄마와 마지막을 함께했던 집에서 홀로 살고 계시다. 매일 아침 기도를 마치고 마당 꽃밭 사이에 세워놓은 엄마의 작은 비석 앞에서 엄마에게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하신다. 우리 나이로 팔십칠 세, 건강하게 사시는 아빠가 감사하다.
아빠와 나는 회복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은 엄마로 가득했기에, 상대적으로 아빠에게 내어드릴 공간이 부족했다. 아빠도 외로우셨을 것이다. 나, 엄마, 오빠에게는 서로가 있었지만, 아빠는 혼자였으니까.
아빠는 나름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지만, 엄마의 사랑과 온도 차가 크게 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십 년 가까운 별거를 끝내고 다시 합치셨다.
셋이 살다가 갑자기 남자 어른과 함께 지내게 되니 왠지 낯설고 어색했다. 나는 지금도 아빠에게 다정하지 않은 딸이다. 전화도 자주 안 드리고, 경제적으로 아빠를 보살펴 드리는 것 외에는 해야 할 도리를 제대로 못 하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딸이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지려고 노력한다. 철이 들어서가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나와 가장 가깝고 그 누구보다 소중한 엄마를 일찍 데려가셨다. 그리고 내 곁에 아빠를 홀로 남기셨다. 왜 그러셨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엄마를 사랑한 만큼 아빠를 사랑하는 게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지 못했던 내게 돌이킬 시간과 기회를 주셨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빠를 보면, 참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아빠가 돌아가셨다면 아빠에 대해 잘 모른 채 어색한 사이로만 남았을 거다.
전화를 걸면, 아빠는 늘 단답식 질문만 하신다.
“잘 있어?”, “차 서방은?”, “애들은?”, “밥은?”, “녹화해?”
얼마 전 어버이날에 아빠를 만나 처음으로 팔짱을 꼈다. 아빠가 움찔하면서 말씀하셨다.
“아빠는 이런 게 그렇게 어색해….”
“아빠, 뭐가 어색해. 딸인데.”
“글쎄 말이야.”
“엄마와도 팔짱 끼지 않았잖아요. 아빠, 그냥 가만 있으면 돼.”
아빠는 어릴 때부터 이런 경험이 없었던 거다.
나는 그날 내내 팔짱을 끼고 다녔다.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해지는 하루였다.
‘아, 하나님은 아빠와 내가 이런 시간을 누리길 원하시는구나. 그래서 지금까지 아빠를 건강하게 지켜주신 거구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잘 따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아빠의 관계 개선을 통해 내가 변화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명령.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아빠를 통해 나에게 가르쳐주고 계신다.
아빠는 건강 체질이시다.
건강검진을 하면 정상 수치에서 벗어나는 게 한 가지도 없다. 맵고 짠 음식 그리고 과자 같은 걸 좋아해서 잠들기 직전까지 군것질하는 아빠, 잠이 안 온다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아빠, 그런데도 나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아빠의 체력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병원에서도 구십오 세까지는 건강하실 거라고 했단다. 아빠는 여전히 운전도 하고 다니신다.
얼마 전에는 무릎이 아프다고 해서 남편이 운동법을 알려드렸더니 매일 백 번 넘게 하신다고 했다.
“아빠, 정말 대단하다. 근데 혹시 태어나서 무릎이 처음으로 아프신 거예요?”
“응, 처음이야.”
매일 헬스장에서 한 시간 반씩 운동을 하시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왜 그렇게 매일 운동하세요? 안 힘드세요?”
“이래야 내가 민폐가 안 되지.”
한동안은 모세만큼 백이십 살까지 살겠다고 하셔서 내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빠가 나보다 오래 사시겠어요.”
그런데 대화하다 보니, 아빠는 죽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계셨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무 때나 갈 건데, 대신 너희가 힘들지 않게 가고 싶다. 살 때까지는 너희에게 폐 안 끼치고 건강하게 살려고 열심히 하는 거야.”
불과 이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매일 약주를 하셨다. 그러다 사순절 기간이 되면 술은 딱 끊고, 매일 새벽예배에 가셨다. 그런데 이 년 전 사순절 이후부터는 술을 완전히 끊으셨다. 전혀 마시고 싶지 않고 싫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아빠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그렇게 해주셨나 봐요.”
내 말에 아빠는 미소 지으셨다.
“그 분은 날 사랑하셔. 나는 진짜 그 분이 좋아.”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내가 그 분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잖아.”
그렇다. 아빠의 기도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축복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믿음이 있었던 외조부모님, 그리고 뒤늦게 회심한 친할머니. 할머니는 까막눈으로 성경을 읽지 못하셨지만 늘 “아이고, 하나님,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렇게 대를 이어 자녀를 위해 쌓은 기도의 열매를 우리가 누리고 있다.
나도 가족과 자녀, 다음세대 그리고 기도해 줄 사람 없는 시설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게 내 과업이다.
- 하나님, 그래서 그러셨군요!, 신애라
† 말씀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누가복음 23:28
† 기도
주님, 저도 제게 주신 가족과 자녀, 다음세대 그리고 기도해 줄 사람 없는 시설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의 씨앗을 뿌리기 원합니다. 자녀를 위해 쌓은 기도의 열매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믿기에 기도로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이들과 동행하여 주셔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길 간구합니다.
† 적용과 결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께 나의 가족, 자녀, 다음세대, 기도해 줄 사람 없는 아이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