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이동통신회사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있는
이혜영이라고 합니다.
2년이 훨씬 넘게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였어요.
그 날 따라 불만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업무의 특성 상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다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말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는 없거든요.
그날도 비까지 오는데다가 컨디션도
많이 안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제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 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여자였어요.
이혜영 :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텔레콤 이혜영입니다.
고객 : 비밀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목소리가 무척 맹랑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혜영 : 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고객 : 1234-5678 이요.
이혜영 : 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객 : 난 데요.. 빨리 불러주세요..
(어린 꼬마애가 엄청 건방지군..)
이혜영 : 가입자가 남자 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본인 아니시죠?
고객 : 제동생이예요. 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혜영 : 죄송한데 고객 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 소지 후에만 가능하십니다.
저희 밤 열시까지 근무하니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고객 : 제 동생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 :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
사망진단서와 전화주신 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동의서 팩스로 좀 넣어 주십시요.
고객 : 뭐가 그렇게 불편해요. 그냥 알려줘요.
너무 막무가네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애의
부모님을 좀 바꿔달라고 했죠.
고객: 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
그 꼬마 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가입자의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그래.. 빨리.."
아빠 : 여보세요.
이혜영 : 안녕하세요. **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 때문에 그런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빠 : 제 아들이요? 6개월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콰당!! 그럼 사실이란말야??)
그 때부터 미안해 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빠 : 얘야 비밀번호는 왜 알려고 전화했니?
딸 : (화난 목소리로) 엄마가 자꾸
혁이(그 가입자 이름이 김혁이였거든요)
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으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
그거 비밀번호 알아야만 지운단 말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빠 : 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혜영 : 아? 예.. 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변경하셔야 합니다
.
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주셔도 가능합니다.
아빠 : 알겠습니다.
(전 감사합니다로 멘트 종료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이혜영 : 죄송합니다. 확인후 전화주십시요.
아빠 : 고맙습니다.
이혜영 : 아..예....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아픔에 어쩔 줄 몰랐죠.
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번호를 눌러봤죠.
역시나..
"안녕하세요. 저 혁인데요.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 봤죠.
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애의 아빠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 아빠다..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니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니가 아빠 술마시는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안춥니? 혁아... 아빠 안보고 싶어??"
가슴이 메어 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날 하루을 어떻게 보낸 건지..
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 임에도 불가하고
앞에 녹음되어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럴 보다 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거구요.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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