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운동장에서 버스를 타고
나는 20분 쯤 여유 있게 잠실운동장에 도착하였다. 잠실운동장 입구 공터에는 수 십대의 대절 버스가 도열해있었다. ‘신세계고속’이 눈에 띠여 버스 안쪽을 기웃거렸더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여기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당신은 우리 팀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신세계고속’이 한 대 더 있었다. 우리 버스의 앞 유리창에는 물론 ‘경희고 12회’라고 쓰여 있었다. 경희고 12회의 멤버라는 것은 벼슬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 멤버가 아닌 사람은, 이제 와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멤버가 될 수 없다. 설사 지금 경희고에 입학하여 졸업한다고 해도 12회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과거로 돌아가서 인생을 새로 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40년 전에 경희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저 버스에 탈 수 있는 것이다. 주말 아침 잠실운동장 앞에 도열해있는 버스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언제 저런 것을 한번 타보나 하고 생각하곤 하였다. 나는 저런 것을 타고 옛날 일을 회상하면서 정담도 나누고, 좋은 경치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특히 음식점에서 무식하게 크게 떠들고, 이쑤시개를 물고 거리를 몰려다니고, 음담패설로 낄낄거리고, 상소리를 하고, 우습지도 않은 농담으로 박장대소를 하고 싶었다. 어제 나는 실컷 그렇게 했다.
우리 버스는 경춘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내가 이 고속도로를 달려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다. 속초까지 두 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진홍이는 대학생 때 버스를 타고 열 몇 시간 걸려 속초에 갔던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청량리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갔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 때 나는 혼자 여행을 하였는데, 입대 직전의 일이었다. 민형이는 해마다 여름이면 아이들 태우고 속초를 찾았다고 한다. 가족 여행으로는 속초만한 데가 없지. 돈수도 맞장구를 치더니,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 어릴 때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사춘기가 지나고는 따라 다니지 않더라는 것이다. 역시 경치는 강원도가 최고야. 미시령을 넘어가는 중에 민형이가 알려주어서 창밖을 보았다. 울산바위였다. 대단하더구만. 설악산은 역시 명산이야. 낙산사도 옛 모습을 완전히 복원하였다. 해수관음상을 등지고 보는 바다 풍경이나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한 마디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어머니가 알려주셨다. “내일 아침은 먹지 말고 오랜다. 김밥을 나누어 준대.” 우리 어머니는 경희고 12회의 활동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계무 총무는 우리 어머니 핸드폰에 문자를 보내기 때문이다. 김밥만 준 것이 아니다. 포도, 체리, 오렌지, 토마토에, 생수, 커피, 그리고 수한이가 준비한 샌드위치 등등 아침부터 엄청나게 먹이더라. 우리 회장님의 리더쉽은 동막골식 리더쉽인가 보다. “촌장님의 위대한 영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네까?” 인민군 장교가 외경심이 우러나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묻자 촌장님이 대답하였다. “...... 뭘 자꾸 맥여.”
여행하는 내내 우리는 시끄럽게 떠들었고 자주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를 웃겨 준 사람은 여러 명이 있었지만, 그 중 최고는 단연코 종림이. 종림이가 친구들을 즐겁게 해 준다는 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제 나는 그의 진면목을 보았다. 창우가 사우디에 오래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창우를 부를 때 “어이, 사우디”라고 하였다. 우리가 배꼽을 잡자, 이 친구,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재국이가 대장 용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재국이를 부를 때 “어이, 대장암”이라고 하더라. 이 친구는 좌우간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는 것 같다. 낙산사 경내의 찻집에서도 나서서 주문을 받고 배달까지 해 주더니, 점심 식사를 한 속초의 횟집에서는 아예 앞치마를 두르고 주인 행세를 하였다.
그러나 횟집에서 쏘주가 한 순배, 두 순배 돌아가면서 판도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다크 호스가 있었던 것. 다크 호스라는 것은 새로 나타난 색깔이 짙은(dark) 말을 가리킨다. 어제 우리 동문 모임에 처음 나타난 자는 창우(昌雨)다. 갑자기 이 친구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원한이 있던 친구들을 자기 옆으로 소환했다. “영태야!” “수한아!” 안 가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안 갈 수가 없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좌중을 압도하기 시작하더니, 쏘주가 세 순배, 네 순배 돌아가자 완전히 독판을 쳤다. 그 입심 좋은 두현이도, 재한이도 슬슬 꼬리를 내렸다. 창우가 목소리 높여 독판을 치는 동안, 앞치마를 두른 종림이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오가면서 얌전하게 매운탕의 뼈를 발라내는가 하면, 거기다가 라면을 집어넣었다. 창우의 독판은 돌아오는 버스에서 극에 달했다. 나는 창우한테서 뒤통수를 두 대나 맞았다. 내가 얻어맞은 것은 제대한 뒤 처음이다. “재한아! 재한아!” 창우는 제일 뒷 자리에 앉았는데, 앞에 앉은 친구들을 또 불러재키기 시작했다. 버스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런 창우의 만행에 제동을 건 것은 태호 정도. 태호가 창우 흉내를 낸 것. “창우야! 창우야!”
자기 입으로 말했다시피, 창우가 이렇게 오바한 것은 처음으로 동창회에 나와 몇 십년 만에 동창들을 만나 너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우디 등 해외에서 생활한 기간이 길었다고 한다. 그래도 재한이, 계무와는 가끔씩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창우는 후선이, 인열이, 재일이, 철행이, 현준이 등과 모이고 있다. 이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모임이다. 창우는 내가 그 모임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창우는 2년 전 우리 집에 문상왔을 때의 일도 이야기하였다. 내 동생이 자기를 알아보더라는 것이다. 역시 과거의 것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나간 것에는 애틋한 것이 있다.
어제 하루 회장님과 총무님 덕분에 잘 놀았다. 노경이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시간에 대지 못해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와서 속초에서 합류하였다. 귀경한 후의 2차 자리에는 주원이가 참석해 주었다. 버스 한 대만 대절한 탓에 경비가 70여 만원 절약되었다고 한다. 학준이는, 아침 일찍 전화를 해서, 혹시 차량이 한 대 더 필요하게 되면 곧바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상의 모든 것은, 항상 그렇듯이, 내가 본 것, 내가 기억하는 것만 적은 것이다. 윤칠이가 내어 놓은 양주 등등 내가 깜빡한 것도 많을 테고, 내가 보지 못한 것도 많을 것이다. 다들 자기 몫을 하고, 다들 자기 방식으로 즐겼다. 제수씨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해수관음상 발밑에는 돌두꺼비가 한 마리 있는데, 이 놈을 문지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나는 그 놈을 슬슬 문질러보았다. 경내 연못에는 동전을 던지는 곳이 있는데, 제대로 던지면 역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나는 영희 부부와 같이 던져 보았다. 영희는 실패했다. 나도 실패했다. 잘 안 되더라. 의외로 영희 부인이 성공했다. 동전은 내가 제공한 것이다. 그것을 빌미로 나는 영희 부인이 얻은 행운 중 50%는 나에게 때어 달라고 떼를 썼고, 너그러운 부인은 그것을 허락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소원하건, 낙산사 해수관음의 법력에 힘입어, 그것을 성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소한 50%는 말이다. 나는 어떤 소원을 낼 것인가?
그런데, 절에 가서 비는 게 맞는 것인가? 즉 절에 가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허용되는 일인가? 절에서 허용되는 것은 서원(誓願), 즉 좋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만이 아닐까? 승일이는 낙산사에는 대웅전 대신에 원통보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낙산사는 부처님 대신에 관음보살님을 모신다고 말해주었다. 부처와 관음보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관음보살에게는 남성성만이 아니라 여성성도 주어져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관음보살은 혹시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포용해주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50%의 소원성취 지분을 우리들의 우정을 위해 쓰겠다. 이것이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고 비는 기복인지, 올바르게 살게 해 달라고 비는 서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잘 몰라서 서먹서먹하던 친구들이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기를 빕니다. 오해나 불운으로 격조하던 친구들이 자주 만나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경희고 12회가 대한민국 최고의 동창회가 되기를 빕니다.
첫댓글 조영태 기자의 생생 리포트 덕택에~ㅎㅎㅎㅎ^^
역시 조교수의 관찰력은 대단하셔. 마음쓰고 고생한 친구들에 대한 배려 글, 우리 모두를 위한 독려 글도 우러나오고...기분좋은 글이다.
아~ ! 그랬었구나 ! 모두들 즐거운 시간 보냈네 !!!
역시 영태교수님...덕분에 내가 그 자리에 있은 듯 합니다. 글 감사~
조영태는 기자는 못 돼. 명진이가 왔어야 하는데...... 나는 그저 내 눈에 띤 것을 편파적으로 말해 본 것에 불과해. 성오가 찍은 사진 보니 이 말이 더 실감난다. 양해 바라네. 그래도 정말 재미있었고 정말 즐거웠어.
영태거사, 기자라고 다 같은 기자가 아니지. 기자마다 다 자기 주특기가 있거든.. 난 자네기사도 좋구만. 앞으로 자주 부탁하네.
읽어줘서 고맙소.
오후에 잠깐 들어온 김에 한말씀 더....
기자보다 기자 아빠가 더 기사를 잘쓴 거같아서~ 칭찬해 드린 걸로 이해 바라네. ㅎㅎㅎ
고~뤠..ㅇ태 딸이 기자구나..조기자! ㅎㅎ
사진 없이도.... 글로써 생생하게 그 느낌과 감동을 전해주는.. 능력..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