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불함산=완달산 : 현 백두산이 아니라 북만주 완달산
[환단고기/삼한관경 본기三韓管境 本紀]
태백산은 북쪽을 달리는 산으로 높게 비서갑(菲西岬)의 땅에 우뚝 서 있다. 물을 뒤로 업고 산을 끌어안고 있는데, 크게 둥그렇게 돌아 모이는 곳이 있으니 곧 대일왕(大日王)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라. 세상에 전하기를 “한웅천왕이 여기까지 순수하시사 사냥하시었기 때문에 그를 제사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풍백(風伯)은 천부(天符)를 거울에 새겨 앞서 가고, 우사(雨師)는 북을 치며 돌아가며 춤을 추고, 운사(雲師)는 백검(伯劍)으로 호위하였으니, 대저 천제가 산에 임하실 때의 의식은 이처럼 장중하였다.
산 이름은 불함이라 하더니 지금은 또 완달(完達)이라 하니 그 음이 비슷한 바 있다. 뒤에 웅녀의 군(君)이 천제의 신임을 받아 세습하여 비서갑의 왕검이 되었다. 왕검은 속어로 말하면 대감(大監)이니 땅을 관리하고 지키며, 포악함을 제거하여 백성을 돕는다.
천왕은 나라 사람들의 뜻을 살펴서 저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부모는 공경해야하며, 처자는 보호 양육해야 하며, 형제는 사랑하고 장로(長老)는 존경하고, 어리고 약한 자에겐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뭇 백성은 믿어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또 의약, 공장(工匠), 축산, 농사, 측후, 예절, 문자의 법을 제정하고 땅을 하나같이 평등하게 하여 이로써 잘 교화시키니 멀리 떨어진 백성들까지 모두 서로 의심치 않게 되었다.
웅녀군의 후손으로서 여(黎)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단허(檀墟)에 책봉 받아서 왕검이 되매, 덕을 심어 백성을 사랑하고 영토를 차츰 크게 넓히니 여러 곳의 왕검들이 나아와 특산물을 바치며 이로써 귀화하는 자가 천 여명을 헤아렸다. 뒤에 460년 지나 신인(神人) 왕검이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크게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비왕(椑王)이 되었다. 섭정하신지 24년에 웅씨의 왕은 전쟁하다가 붕어하시니 왕검은 마침내 그 왕위를 대신하여 구한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곧 나라의 인물들을 불러 약속을 세워 가로되,
「앞으로는 백성의 뜻을 물어 공법을 만들고 이를 천부(天符)라 할지니, 그 천부란 만세의 강전(綱典)이며 지극히 존중하여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삼한으로 나라를 나누어 통치하시니, 진한(辰韓)은 스스로 천왕께서 다스리시고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여시어 조선이라 했는데, 이를 일세 단군이라 한다. 아사달은 삼신을 제사지내는 곳인데, 후인들은 왕검의 옛집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왕검성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