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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2일(토)
* 시작 기도
(출 5: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주님...
모세가 애굽으로 가서 아론과 함께 애굽 왕 바로에게 갔습니다.
우리 백성들이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를 거절하고 그들이 벽돌을 만드는데 짚을 공급해주지 않고 스스로 짚은 주워서 벽돌을 굽되 이전과 비교하여 그 숫자를 그대로 채우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모세와 아론이 한 말 곧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치부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세상의 왕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죄인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목사요 선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치부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는지요?
이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죽이지 않으시고 십자가와 무덤의 심판을 통하여 살리셨습니다.
이제 이 종도 주님과 함께 그 십자가에 무덤에 연합하여 살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로 살게 하소서.
파고 또 파도 죄밖에 나오지 않는 이 죄인이 주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음을 아오니 오늘도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4:25-31
제목 :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 나의 묵상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고별설교는 계속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이는 자신의 힘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께 부탁하여 보내시는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가능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오실 것인데 이는 진리의 영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진리의 영이 오시는 날, 아들은 아버지 안에, 제자들은 아들 안에 그리고 아들은 제자들 안에 계심을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지만,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계명을 지킬 것은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와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아직 십자가를 질 시간이 되지 않았고 잠시 제자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지금까지 하신 모든 말씀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평안을 그들 곧 우리에게 남기시고 또한 그 평안이 그들에게 가게 하신다.
평안을 끼친다(아피에미)는 말은 남긴다, 가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 평안은 세상의 권력을 가진 어떤 이가 주는 것이 아니라 평안의 창시자이신 주님께서 그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평안으로 인하여 너희들은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떠난다고 말한 것이나, 내가 가는 그 길을 너희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고 한 말로 인하여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는 내가 다시 올 것이며 이는 진리의 영으로 너희에게 와서 너희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막상 그 일이 일어날 때 너희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더 이상 너희들과 많은 말을 나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임금 곧 사탄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세상의 임금은 나를 마음대로 할 권세가 없다.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행한다는 사실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함이다.
자, 이제 일어나서 여기를 떠나자.
제자들은 당시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 곧 민속메시야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는 가룟人 아닌 유다(야고보의 아들인 다대오, 눅 6:16)의 질문, 왜 주님은 우리들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으려 하시느냐고 묻는 그 질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세상에 나타내야 예수님의 왕 되심을 더 잘 알릴 수 있는데, 왜 그러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까지 그리고 승천하셔서 성령이 오시기까지 영적인 소경에 지나지 않는 깜깜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그렇게 염려하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자기들의 우상이요 왕이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스승이었던 예수가 어느 날 갑자기 십자가에 죽어버리는 황당한 일을 당할 때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두고 도망하였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겠노라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이 미리 예고하셨던 것처럼 자기 인생을 위하여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결국 버리고 도망하였다.
그런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너희들을 가르치실 것이다.
그로 인하여 너희들이 비록 내가 한 말을 다 잊어버렸을지라도 그가 모두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6:63절 말씀의 성취를 예고하신 것이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 자체만으로는 생명을 살릴 수 없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해주셔야만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요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처음에는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지만 그 생명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인데, 여기서 물은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말씀 그 자체만으로는 무익, 곧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주님께서 당시에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당시는 아직 성령이 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육신의 지식과 지혜로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다 이해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다만 성령께서 오셔서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26절).
그 때 비로소 말씀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된다.
“도대체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뭐야?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이걸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라고 주시는 말씀이다.
지금 우리는 이미 성령이 오셨고 성령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성령께서 조명해 주셔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우리가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거나 끈기가 없이 잠시 말씀을 보다가 어렵다고 하면서 이내 성경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내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다.
따라서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실 수 있는 처소를 항상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말씀 앞에 앉아도 성령께서 온갖 부정성과 죄의 온상으로 더렵혀진 나의 심령에서 마음껏 활동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하심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깜깜한 밤, 어둠 속에서는 글을 읽을 수 없다.
그러나 형광등을 켜면 그 불빛이 조명하므로 글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성령의 빛이 말씀을 조명할 때 비로소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고 또한 성령에 조명된 말씀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은 영으로만 알 수 있다.
그래서 새 언약 백성인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주님의 계명은 다름 아니라 새 언약 백성에게 주신 새 계명이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주님의 피로 세우신 언약이 바로 ‘새 언약’이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처럼 새 언약 백성이 지켜야 하는 계명은 다름 아닌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여 그를 아는 것이다.
새 언약과 관련된 말씀은 구약성경 예레미야서에 나온다.
(렘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트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34절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주님을 아는 것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의 마땅한 본분이다.
그리고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알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주님과의 교제란 곧 주님의 말씀인 복음으로 날마다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가지는 것이며 이것이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이 주님을 아는 것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며 이를 가리켜 영생이라고 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일은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주님과 연애를 하고, 그 사랑으로 연애하는 결정체가 바로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얻는 것이다.
둘째는 평안을 주신다.
이 평안은 ‘나의 평안’ 곧 주님의 평안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도 늘 평안을 유지하셨다.
가룟 유다나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빌라도 앞에서 어떤 모욕과 수치를 당해도, 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평안을 잃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주님이 바로 평안의 창시자요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이 주는 평안도 있다.
그런데 그 평안은 한시적인 평안이요, 마치 폭풍 전야에 전운이 감도는 그런 불안한 평안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만사가 순조로울 때조차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심판을 통해서 의를 세우고 그 의의 결과가 바로 평안이다.
이 義의 결과로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며 안전하다.
(시 94:14-15)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주님이 떠나실 것을 염려하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그 평안을 주시면서 격려하시고 주님이 떠나는 진정한 의미를 알면 오히려 그들이 더 기뻐하였을 것임을 천명하신다.
공의는 심판을 통하여 세워진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심판하셨다.
이는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당신의 아들을 죄악 덩어리로 삼아 못 박으신 것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악 덩어리인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날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죄로 삼으셔서 못 박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믿는 그를 의인으로 삼으신다.
이는 우리 주님이 죽기까지 아버지의 계명을 복종하시는 아들의 사랑에 기인한다.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아버지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다름 아닌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위함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나는 영생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마저도 영생의 의미를 심히 곡해하여 잘못 가르쳤던 자이다.
그리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죄악 덩어리가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 또한 그 목적을 너무나 축소시켜 안다고 했던 자였다.
예수님이 이렇게 죽으신 것은 그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인데, 그저 나는 죄사함을 전부로 여기며 그렇게 가르쳐 왔던 장본인이다.
그러니 나도 주님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나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 역시 늘 무언가에 눌리며, 회개의 기도는 하지만 자유함이 없었다.
이런 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심판으로 인하여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심판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주님은 은혜도 함께 베푸셨다.
주님의 그 인자와 신실하심은 너무나 크고도 깊다.
그 사랑으로 나는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졌으며 그 결과 영원한 평안을 누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강과 기쁨 곧 희락이라고 로마서 14:17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나라 곧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결론지으면 안 된다.
이를 넘어 지금 현재로 누리는 아들의 생명 곧 영생(영생의 현재성)이며 그리고 내가 죽은 후에 갈 영생(영생의 미래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완전한 영생은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실 것이다.
영생의 현재성은,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또한 영생의 미래성은,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오늘도 이 영생이 지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구속사건에 연합하여 나도 주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며 무덤에 장사되어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자로 살아 그 영생을 현재로 누리는 자임을 믿는다.
오늘 말씀처럼 죄 없으신 주님이지만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서 아들보다 더 크신 아버지께로 가신 것으로 인하여 내 안에 기쁨이 차오른다.
아버지 품에 안기신 아들의 얼굴에 비치는 아버지의 영광의 빛이 나의 심령에 가득 채워 넘친다.
죄악 덩어리인 나를 의인으로 삼아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영생도 주님의 구속사건의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세상적인 욕심만 채우기 위하여 주님을 이용했던 자가 여기 있나이다.
죽기에만 합당하오나 그런 나를 아주 죽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를 살려 의인 삼으시기 위하여 죄가 되시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신 주님께 그저 죄송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나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개를 숙인 채로 코만 빠트리고 있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을 우리 주님께서 기쁨으로 감당하셨고 또한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셨음을 알기에 이제 나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새 언약 백성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날마다 그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갖고 있사오니 내 속에 주님의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 채워주소서.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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