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윤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공백 없이 국정운영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을 전후한 현재와 미래 권력 간의 충돌은 관례처럼 되풀이돼 왔다.
87년 직선제 선거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 청산’을 내세워 친구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보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을 발판으로 집권했지만, 집권과 함께 하나회 숙청 등으로 신군부를 해체했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도 YS때 이뤄졌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김대중(DJ) 정부는 집권 초반 외환위기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경제청문회에 YS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YS는 증인 출석을 거부했지만, 그의 측근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민주당 계열 정당 간의 유일한 정권 재창출 사례인 노무현 정부도 DJ 정부에 대한 대북송금 특검을 진행했다. 특검을 통해 DJ의 최대 업적이던 남북정상회담의 의미가 퇴색됐고, 박지원 현 국정원장 등 DJ의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특검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분열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사초(史草) 폐기’ 논란으로 번진 대통령기록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봉하마을로 대통령 기록물을 복제해 간 게 화근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기록물 반환 요구를 거부하며 대치했고, 양측의 갈등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수수 관련 수사로 이어졌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이 고향인 봉하마을을 떠나 서초동 대검찰청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 기자들의 질문에 짤막하게 답한뒤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에서 일부 정치적 딜이 시도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정치적 딜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고, 특히 정권 교체로 집권한 정부는 초반 개혁드라이브의 동력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 정부와 강한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집권한 文은 아예 ‘적폐청산’을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초대 조국에게는 첫 업무지시로 “국정농단 사건을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연말에서야 사면됐다. MB는 지금도 구속 상태다.
정치권에선 문재인ㆍ윤석열 정부 사이에서는 이번 정부 기간 논란을 빚었던 ‘권력형 비리’ 의혹이 충돌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야당은 그간 울산시장 선거개입, 원전의 경제성 판단 문제, 라임ㆍ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 등에 대한 청와대와 정권 실세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검찰 수사에서 文의 친구인 송철호가 출마했던 2018년 지방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 송 시장과 함께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이 기소됐다. 월성 1호기의 무리한 폐쇄 결정과 관련한 수사를 통해선 백운규 전 산업통상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6월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왼쪽부터), 송철호,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한병도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청와대의 최고 핵심 정보를 다루는 국정상황실장과 산업 전반을 책임지는 산업부 장관이 기소되자 야당은 의혹의 ‘몸통’으로 문 대통령을 겨냥하기도 했지만, 검찰은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
그런데 해당 사건들은 모두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수사가 이뤄졌다. 윤 당선인이 해당 수사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윤 당선인은 지난해 “총장직을 그만 두고 정치에 참여한 것은 월성원전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달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거기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도 했다.
2019년 7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은 뒤 文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옆은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조국
윤 당선인의 발언에 대해 문 대통령은 “강한 분노를 느낀다”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윤 당선인은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 당선인은 불과 0.73%포인트 차로 당선됐기 때문에 집권 초반 강력한 정국 주도권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며 “검사 출신인 윤 당선인이 가장 잘 하고, 가장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전정부에 대한 수사이기 때문에 집권 초기 울산선거 의혹 등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상수(常數)에 가깝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극심한 여소야대 정국에서 6월 지방선거를 승리하지 못하면 새정부는 집권 내내 거대 야당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며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 때문에 文과 선을 그을 수 있어서 文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