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디지털 화폐의 가격 폭락으로 많은 이들에게 약 400억 달러(약 59조원)를 잃게 만든 암호화폐 사업가 권도형(34, 영어 이름 Do Kwon) 씨가 뉴욕 법원에서 사기 혐의가 인정돼 징역 15년형이 선고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방송은 징역형만 전했는데 재판부는 범죄 수익 1900만 달러(280억원)의 몰수도 함께 명령했다.
한국 국적의 권씨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테라폼 랩스의 공동 창립자로, 테라 USD와 루나 디지털 코인을 개발했다. 그는 미국 달러 대비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USD에 대해 투자자들을 오도했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2022년 디지털 토큰이 급락하면서 여러 기업의 파산을 촉발한 후 미국에서 기소된 여러 암호화폐 보스 중 한 명이었다.
판결을 내린 폴 A. 엥겔마이어 뉴욕 남부연방 지방법원 판사는 스탠퍼드 졸업생이 자신을 신뢰하는 투자자들에게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11일(현지시간) 판시했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세대를 아우르는 대규모 사기였다"면서 "연방 기소 역사상 피고인만큼 큰 피해를 입힌 사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권씨는 지난 8월에 사기 공모 및 전신 사기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며 판사에게 사과를 표했다. 그는 "지난 몇 년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순간을 내가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보냈다"고 말했다.
15년형 선고는 검찰이 요청한 12년형보다 늘어난 것이다. 당초 검찰의 구형량은 최대 130년형을 받을 수 있는 죄목들이었는데 검찰이 권씨의 유죄 인정을 참작 사유로 받아들여 형편 없이 적은 형량을 구형해 놀라움을 줬는데 선고 형량은 늘어났다. 권씨가 위조 여권을 활용해 도피 행각을 벌이다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뒤 한국으로 이송돼 재판 받길 원한 권씨의 변호인단은 5년을 넘지 않는 형을 요청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법정에서는 사기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평생 모아온 노후 자산을 날리고, 자선단체는 기금을 잃는 등 삶 자체가 무너졌다고 증언했다. 한 피해자는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 아버지가 사기 행각으로 퇴직금 전액을 날린 후 세상을 등질 생각까지 했다고 호소했다.
다른 피해자는 가족이 평생 모아온 돈을 잃고 아들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으며, 이혼한 뒤 부모가 살고 있는 크로아티아로 돌아갔다고 전화로 증언했다. 개인 재산을 날린 것은 물론, 자신이 설득해 투자를 결정한 몇몇 비영리단체들이 2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게 된 경우도 있었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당초 12년형 구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했고, 변호인단의 5년형 요청은 “상상할 수도 없고 터무니없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2021년 5월 테라 USD가 1달러 페그(feg) 아래로 떨어졌을 때 피고인이 투자자들에게 컴퓨터 알고리즘이 가치를 회복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권씨가 거래 회사에 비밀리에 수백만 달러 상당의 코인을 매입해 인위적으로 가치를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법원 문서에는 전해졌다.
권씨는 법정에서 “2021년 테라가 1달러 연동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에 관해 거짓이며 오해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고 인정한 뒤 “잘못된 제 행동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최후진술에서는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모두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편 맨해튼 검찰은 권씨가 미국 형기의 절반을 복역한 뒤 해외 이송을 신청할 경우 이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따라서 몬테네그로에서 송환되기 전까지 구금됐던 17개월을 복역한 것으로 인정할 방침이기 때문에 앞으로 6년만 복역하면 송환돼 국내 법정에 세울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