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꼬새 입양
임병식
어떤 새가 부리로 쪼지 않고 깨문다면 곧이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웬 뚱딴지 같은 말을 하느냐며 의아해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작은 앵무새가 앙증맞은 입으로 손가락을 깨물다니. 느닷없는 반격에 따끔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붙잡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지만 오히려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런 녀석을 위해, 지금 나는 베란다에 나와서 조심스럽게 절구질을 하는 중이다. 모이를 마련하기 위해서인데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소음이 아래층에 들리지 않도록 하려다보니 행동은 지극히 제한적이 된다. 모이는 귀리인데 이것이 생각보다 알갱이가 커서 작은 잉꼬새가 먹기에는 부담스러 잘게 으깨는 것이다.
앞서 며칠은 서숙粟을 먹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똑같은 것을 계속해서 먹이면 안될 것 같았다. 해서 섞여 먹이기로 했다. 조류용 사료는 제조해 파는 곳이 있다는데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고 마트에 가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수 없이 아쉬운대로 직접 배합하여 먹이기로 했다.
나는 이 작업을 하면서 추호도 귀찮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운 마음이다. 언제 내가 이렇게 즐겁고 흥겨운 마음으로 일에 매달린 적이 있었던가. 달리 떠오르는 기억이 없을 만큼 특별한 경험이기도 하다.
잉꼬새는 한 열흘 전쯤 들어놓았다. 당랑 한 마리로, 외톨이가 된 것은 따로 구입을 하지 않고 우연히 가출한 녀석을 잡아왔기 때문이다. 녀석의 이름은 보통 잉꼬라는 것으로 일명 사랑앵무라고도 부른다.
녀석은 미루어 짐작컨대 어느 집에서 키우던 것이 탈출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나를 보자 안전부절을 못했다. 오직 도망만 갈 생각으로 도로 후미진 곳에 쳐박고는 무엇에 걸리지도 않는데 허둥대었다.
그것을 외출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는 반사적으로 얼른 덮쳐서 잡았다. 털 색깔이 노랑과 파란색으로 배합이 된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대로두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움켜잡기는 했는데, 그때만 해도 키워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손에서 탈출을 하려고 손가락을 사정없이 깨물며 반항을 하는 걸 보고서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무서워서 그런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나쁜사람이 아니며, 너를 살려주려고 그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극렬한 반항이 오히려 보호본능을 자극했는지도 몰랐다.아무튼 그런 녀석이 사정없이 깨물었고, 그 자리는 마치 바늘로 쑤신 듯 따끔거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녀석은 갈고리가 진 발로 옷소매를 붙들고 늘어지지까지 했다.
모양은 깜찍하고 예쁜데 성격은 지극히 까치한 터프가이, 맹수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모양도 예사 사나워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독수리처럼 휘어져 있을뿐 아니라 발 모양도 사냥감을 움켜쥐기에 편리하게 생겼다.
아무튼 나는 보호해주겠다는 마음을 먹었음으로 조심스레 다루면서 집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오는 동안에 보니 그 작은 심장이 팔딱거리며 체온을 손 끝에 전해지는데 신기한 것이 아닌가. 그걸 느끼니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가 언제 생명체를 이렇게 끌어안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생명체을 두고 이토록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생명의 경외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직은 입춘 전으로 날씨가 차가운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체온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나는 처음 며칠은 보관할 곳이 여의치않아 빈박스에다 넣어서 망을 씌워 두었다. 그리고선 물부터 주었다. 그런데 허겁지겁 목을 축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배가 고프겠다 싶어서 마트에 달려가 조를 사다넣어 주었다. 예상대로 먹기 시작했다. 며칠을 굶었던 게 분명했다.
내가 허접한 박스를 버리고 새집을 사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다. 새로 사온 새장에 넣어두니 녀석의 맵시가 한결 나아보이고 활기차게 활동을 한다. 그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다른 모이를 먹여야지 하고 준비를 한 것이다.
집에 새 한마리가 들어오니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정적인 것들만 있는 거실에서 살아숨쉬는 것이 들어오니 활기가 넘치는 기분이다. 이것을 보면서 누구보다 장기 와병중인 아내가 좋아한다.
녀석의 움직임을 좇으며 표정이 한결 밝아보인다. 나는 이 잉꼬 를 생각하며 여러 것을 떠올린다. 길바닥에서 주워왔으니 업둥이가 분명한데, 그렇다면 이 또한 인연이 아닐까.
녀석을 들여다보며 잘 키우리라고 다짐을 해본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한 마리를 더 사다가 짝을 맞춰주라는 것이다. 한마리만 있으니 보기에 외로워 보였나 보다.
그 말을 들으니 생각하기는 싫지만 어떤 생각이 문득 스친다. 혹여 자기가 세상을 먼저 뜨고나면 혼자남을 내가 걱정되어서 감춘 심사를 내비친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아내의 모처럼 부탁이니 짝을 맞추기는 해야할 것같다. 그래서 숙제가 남았다. 하나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은 집에 있는 녀석이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모르겠고, 새를 파는 곳을 수소문하는 것도 문제이다.
그렇더라도 부탁은 들어 주어야 하리라. 깊은 뜻은 모르지만 여하간 짝을 맞춰놓으면 부탁한 뜻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나 그 뜻을 헤아리고 실감하게 될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