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7~9 / 회개에 합당한 열매(1)
(눅 3:7)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눅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7절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을 참고하면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책망하셨습니다. 독사의 새끼는 사탄의 자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 아비가 사탄이요 너희는 사탄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사탄의 자식이라고 아주 심한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대인들은 자신을 사탄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당연히 천국에 갈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회개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사탄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회개치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요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다른 사람까지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이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왜 자신이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나고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들은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내면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속은 사탄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상주심과 심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하나님 대신에 탐욕과 거짓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교만하였습니다. 이런 죄가 있는 곳에 사탄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겉모습만 보지 말고 우리의 속을 보아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 가운데도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 오래 신앙생활을 한 신자들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이 되기 쉽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믿음이 있었으니, 자신들도 믿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전에 믿음으로 살았으니, 지금도 믿음으로 사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들은 행동으로 예배 나오고 있으니, 내면도 믿음이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은 나의 개인적인 것이요, 항상 오늘이요 현재입니다. 지금 믿음이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성령을 따라서 살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산다면 그는 독사의 자식이 된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사탄의 자손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진실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천국에 갈 줄로 생각하였는데 지옥에 가 있게 될 것입니다.
8절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 아니라 사탄이 그들의 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마음에 교만과 욕심을 회개하고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붙어 있으면 살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고 떨어지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지이므로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는 힘은 나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함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 안에 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마음에 살아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붙어 있는다고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저절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습관을 변화시키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는 연단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환경에 처해야 합니다. 반복하여 훈련해야 합니다. 적어도 습관이 되기까지는 4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대도 조세형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습니다. 여러 교회에 다니며 간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 12번이나 죄를 지어서 교도소에 다녀왔습니다. 최근에도 82세나 되어 또 도둑질을 하여 교도소에 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었어도 습관을 변화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으면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9절은 우리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긴박성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의 선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맺어야 하는 필수입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포도나무는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집을 짓는 목재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불에 태워 불쏘시개로 사용합니다.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아담의 범죄 후에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심판을 받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도끼로 찍어서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 불에 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절박성을 갖고 지금 당장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좋은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의 핵심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요한은 사랑과 공의의 열매를 맺도록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