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제외하면 24년만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뭔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러 투표장에 나왔습니다
사업을 해도 연애를 해도 발표조 모임을 해도 사람들은 자기가 지키고 싶은 가치의 실체를 솔직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게다가 그 가치는 하나가 아닙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키되 집값 상승도 바라고 동시에 내 고향 출신 후보가 뽑히기도 원하는
한 사람의 한 표가 담는 메시지는 너무 많아서 세상을 얕고 넓게 훑고 다니는 저같은 미디어쟁이들은 감히 그 숲을 탐험할 엄두조차 낼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은 정말로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고 그걸 지키고 싶은 열망이 대단했구나
승패의 결과는 크게 한쪽에 쏠린듯 보이지만 3% 이내 접전 지역구는 엄청나게 늘어난 이 상황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온도의 열망을 가지고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나왔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는 추측 말입니다
욕망이 실체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으려 하듯 위기의식에 따른 대응 메시지도 중구난방이긴 마찬가집니다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후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지역구도를 공고히 하는 표심
실제로 그렇게 나오긴 나왔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하라는 겁니까
개혁 연대 성장 평화의 가치가 모두다 싫다 하시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반대의 표심은 지난 6년간 무너져 내리던 지역주의라는 성을 다시 쌓아 올렸고
영남에서 되살아난 풍차를 향해 돌격하다 다시 쓰러진 라만차의 후보가 꾼 꿈의 이야기는 부산 유권자 평균 45%가 함께 꾸는 슬픈 꿈으로 2년 뒤를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가진 사람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기회가 닫혀가는 신자유주의시대 내 자식이 나락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는 마지막 철옹성으로서의 부동산을 지키고 싶지 않을 만큼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처럼 아무렇게나 막 살았으면 모를까 회사가 시키는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고 산 대가는 처절합니다 감각도 굳고 몸도 굳고 늙었고 가진 건 부동산
이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사람들은 열심히 투표했고 강남 벨트와 용산을 핑크색으로 지켜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50년 넘게 지속되어온 사회주의 혐오 레드 컴플렉스는 그저 나의 천박함을 가리기 위해 쓴 짙은 썬팅 자재 정도에 지나지 않는 무가치한 외침이었다는 사실을 본의 아니게 인정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었지만 서울 강남갑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깟 색깔론 신경써야 할 정도로 만만한 싸움은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신화는 지지난 대선에 보수여당이 빨간색 옷을 입으면서 이미 끝나 있었는지도 모르겠구요
예전에 빨간 옷을 입었던 지금의 진달래색 야당이 탄핵의 강 위에서 노를 여러 방향으로 저으며 입으로만 강을 건넜다고 말하는 엉성함을 과시하는 동안 지역주의가 나서서 대신 그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무엇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농어촌 지역이 극한의 투표율을 보이며 여당이 내건 모든 가치에 맞써 싸웠고
새 전당대회에서 복당 후 당권을 노릴 수 있게된 홍준표 김태호와 달리 여당의 도당별 플래그십으로 볼 수 있는 이광재 김부겸 김영춘은 지역주의의 벽을 뚫지 못한 멍에를 지고 다음 시즌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렸죠 세상 사람은 내게 자리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로 태도를 결정한다구요
사회의 갈등을 풀어 나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논의의 중요성이 축소된 전통적 좌파의 지식인들은 작년 여름부터 양비론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저 거대 양당 중 어디를 택하나 어차피 똑같고 나아질리 없다는 거죠
그들의 눈에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노동자만 보이고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노동자는 보이지 않으며
실패한 방역은 보이고 성공한 방역은 보이지 않으며 실패한 정책은 잘 기억나고 성공한 정책은 바로 잊혀지는 특성이 나타납니다
여당은 대승을 해버렸으니 이제부터 그들의 더 강력한 저항에 맞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중도 정권을 흔들 때는 좌와 우의 목소리가 같아 지지요
이번 선거에서는 좌우 모두 최악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게 됐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대여 투쟁을 그만두거나 느슨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겠죠
민주당의 앞날에 놓여질 위험요소들은 앞으로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딱히 신나 할 일도 없습니다
기업친화적인 액션이 전혀 없는 대쪽같은 여당이 있다면 어떨까요
조국 하나로 온 나라를 두 패로 만들 능력이 있는 언론이 임기나 다 채우게 두겠습니까
탄핵 운운으로 집권기를 다 채우게 하고 힘을 못쓰게 하면 차라리 다행이죠
정권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국민 개개인의 소득을 늘리는 정책이 기조지만 기업의 성질을 덜 건드리면서 콧털을 뽑아야 하는
평화 시대를 열어야 하지만 냉전이 좋은 사람들을 끌어 안고 가야하는
인권을 더 보장해야 하지만 경쟁 사회가 가장 익숙한 사람들의 나라에서 그 과업을 이루어야 하는
이런 문제들을 동시에 고민하면서 인선과 공천을 꾸리다 보면 집권당은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다른 생각을 가진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용 같은 모양새를 하게 됩니다
당 중진들이 인권변호사 출신들인데 싫어도 김앤장 변호사도 들여야 하고
노동운동가가 그리 많은 당인데 성공한 기업 ceo도 들여야 하지요
당이나 정부가 원치 않는 사람들도 국론 통합이라는 대의 하에 공천을 줘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부 최악의 노동 탄압의 주인공인 남원임실순창 이강래 후보의 호남 유일의 패배는 여유있는 승리 도중의 여당이 화장실에서 웃고 싶었던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습니다
미래통합당의 슬픔은 이명박근혜 되찾아온 9년의 대가입니다
ys와 상도동계의 정치 엘리트들이 군인과 부역자 위주의 하수인들을 어엿한 수권 정당으로 만들고 체계를 구축해왔던 것이 이명박의 커미션 만능 정치 박근혜 최순실의 신정 일치로 모두 헤집어졌습니다
욕망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스스로 걷어내 버리자 욕망만 남았고 진보가 싫어 죽겠는 젊은 꿈나무들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바른정당계 정당들은 청장년층 남성과 도시 중산층이 가지고 있었던 중도보수의 의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자기 뱃지를 구하러 통합당으로 돌아갔습니다
만약 새보수당이 정의당처럼 장렬히 완주를 외치고 독자 선거를 치뤘다면 당선권의 많은 현역들이 쓸어져 나갔겠지만 상당수 시민들이 두자릿수 득표로 그들을 안아주었을 겁니다
다만 실제 당선까지 몇십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의원님이 자기 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죠
2000년 중반부터 시작되었던 진보 보수 도시 농촌 의 1대1 구도가 완성된 총선 이었습니다
후자의 승자가 된 통합당은 이제부터 도시를 어떻게 되찾느냐 하는 반성 대신 대권 가도를 향한 격렬한 내부 갈등의 장으로 돌입할 것입니다
그 와중에 희망이 안보인다며 등돌리고 있는 보수 언론과 재벌들은 덤입니다
우물쭈물하던 중진들로 말할 거 같으면 이를 표현해주는 좋은 한 단어가 있습니다 민생당
시작부터 끝까지 호남 자민련의 유닛 특성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 정당의 짧은 역사는 새정치라는 실제 없는 단어로 출발한 안철수의 정치 커리어와 흐름이 거의 겹쳤습니다
다만 안철수의 역사는 다음을 보장 받았죠
정주영 이인제 정몽준 보여준 것 없이 돌풍을 일으켰던 대선 후보는 늘 있었습니다
기성 정치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언론이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이라는 단어는 잘만 갔다 쓰지요
언론이 필요 이상으로 띄워주지 않는다고 해도 검증안된 신제품은 언제나 궁금한 법입니다
안철수 대표는 검증이 안된 최고의 신제품이었던지 10년이 되었지만 이번에도 말없이 뛰면서 검증을 피하는 같은 전략을 썼고 이번에도 일정 부분 먹혔습니다
국민의 실제 삶의 측면에서 볼 때 안철수가 실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인 인지에 대한 답은 10년째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정치인들의 도움과 지역의 지지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한 이번 총선은 안철수에게 있어 살아 남는 능력으로써의 정치인의 재능은 다소나마 보여준 사례가 되겠습니다
의회 정치는 의석 수의 싸움이고 지겠다고 나오는 선거란 지려고 출마하는 후보란 없습니다
무슨 욕을 얼마나 먹었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고
정의당은 연대와 단일화 없이 단독으로 완주한 첫 총선에서 비례 전용 정당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유권자의 선택지에 존재감이 상존하는 제3정당이 되었습니다
새보수당도 용기만 냈다면 정의당처럼 당명이 안바뀌고 작은 자리나마 지지자들과 함께하는 당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없었던 건 용기입니다
정당 정치에 대한 효용감이 늘어나고 유권자의 선택 기준이 바뀌는 세상이 찾아올 때까지 피투성이 정의당은 버틸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진보 정당도 그냥 찍으면 당선된다는 흔치 않은 경험이 정의당에도 유권자에게도 남은 이번 총선의 유산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도합 국회 선진화법 돌파는 맞는 말이되 실제 상황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약속된 대로라면 5번 6번 당선자가 각자의 정당으로 돌아갈 것이고 나머지 1에서 10번까지의 후보들도 자신이 갈 정당을 선택하여 최소 2개의 원내 진보 야당이 더 들어온 상황인 것입니다
좌우 가리지 않고 환빠 데리고 왔다 범죄자 데리고 왔다며 놀리기 바쁠 때 더불어시민당은 빠르게 진용을 새로 갖추었고 공천장 기다리는 인생을 살거나 정치권을 기웃거리지 않던 해당업계 최고의 전문가들로 조용히 앞번호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얻게 된 것은 소상공인 시민단체 실무자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경영자 등의 당사자와 한국 여성운동사회 선구자 수요집회 가장 오래된 지킴이 등입니다
민주당 몫 배분의 11에서 17번 후보들이 열린민주당과 각을 세우며 으르렁 댔던 것은 자신들을 후순위로 배치한 민주당 공관위에 화를 낼 수 없어 고개를 튼 것입니다
정치하는 정치인이 아닌 시민 곁의 조용한 활동가들을 정치인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은 자기 당 후보들까지 속이는 정치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정대로라면 원대복귀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는 178석이 됩니다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겠구요
무수한 기성 언론인들이 무시하는 또하나의 당연한 사실은 한국 언론시장에는 김어준 유니버스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김어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없던 관심이 정치에 생긴 국민은 극히 많고 그와 그의 주변에서 탄생한 스타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김어준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고 저도 그 수혜잡니다
그 어떤 이유로 비난을 산다고 해도 그의 업적과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안언론 시장이 열리자 정치인 포함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진입했고 특히 김어준 혹은 4인방에게 중용된 바 있는 인재들이 방송가로 역수입 되었지요
정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인기를 얻으면 출마를 하고 싶어집니다 표와 인기라는게 대충 비슷해 보이거든요
이고가 부풀어 오르면 자신을 정당보다 중요한 존재로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김어준 유니버스 한복판에 있는 혹은 발을 걸치고 있는 대안언론 및 소셜 스타들이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었고 본 행성인 민주당은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튕겨져 나간 위성 정당은 부풀어 오른 이고를 짊어지고 민주당 의석 감소를 감수해가며 열린민주당으로 선거를 완주합니다
인기인 출마자들의 결과란 인기 테스트인데 양상이 좀 독특했습니다
김어준의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인기와 스타를 김어준이 막아선 것이지요
저처럼 인기없는 구석탱이는 이해하지 못할 김어준이 김어준이라 겪는 곤란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앞에 장사진을 치고 줄을 서서 인기를 내어 놓으라고 부탁하는 광경이 대표적입니다
그리하여 써주면 그들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낫다며 공천을 얻으러 떠나지요
기성 언론인들이 점잔 빼고 앉아 있느라 하지 못한 대중에게 친숙한 화법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정치적 경향성 이 두가지를 기반으로 김어준의 은하계는 놀라운 변화들을 많이 만들어 냈지만 동시에 쉽게 말할 줄 아는 자는 훌륭한 자 아니면 단순한 새끼 라는 원칙에 발이 걸려 함량 미달의 스타들도 더러 만들어 냈습니다
급한 성질은 정치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당의 공천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당을 만들어 원내 진입을 시도하고 당선 후 복당도 아닌 자체 운영을 약속하며 당의 운영권이라는 권력을 유지하겠다고 공언하는 정치인들이라면 앞으로의 스케줄을 보았을 때 행보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여당 대선 경선의 2위권 후보와 합심하여 재창당 및 대선후보 출마 정권교체의 디딤돌이 된 1997년의 이인제와 국민신당 파트 2 입니다
김어준은 이것을 미리 감지한 것이고 돌려서 다른 언어로 대중을 설득했지요
...
이번 선거 결과는 행정력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으로써의 정치 의제가 만들어낸 것이지 결코 진보적 보수적 의제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유권자에게 그토록 중요했다면 박근혜 만능주의 정당 3개가 원외가 되지도 노동당 녹색당이 신생 극우정당에 득표에서 밀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효용감 위주의 투표가 이루어지는 가장 좋은 사례는 국내에서는 교육감 선거일 겁니다
신문 정치면에 대한 견해가 어떻듯 아이들 다같이 잘 키워줄 것 같은 캠프가 더 많은 표를 가져가지요
정치는 일상의 삶이고 일상의 삶은 정치로 환원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지요
첫댓글 UMC가 계속 방송을 하고 있었군요 덕분에 알고 방송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덕분에 듣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알싫 오래전에 꼬박꼬박 챙겨 들었었는데 아직 있군요 들어봐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팟캐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그앓실은 의제를 던져줄 뿐 결론을 말하지 않으면서 진일보 했다고 생각합니다
급격히 아재화된 유엠씨의 개그 코드만 빼고요
잘 읽었습니다. 김어준 유니버스란 건 정말 공감가네요.
잘 듣겠습니다. 친절하게 정리까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