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도 널리 친숙한 ‘붕어빵’. 틀에 찍혀 나오는 닮은 그 모습에서 연상하여, 꼭 닮은 부모자식을 빗대는 말로도 발전했다. 그리고 근자에는, 붕어 자체도 진화하여 황금잉어빵이 대세이다. 달러보다 비싼 황금에, 격조도 높은 잉어(鯉=こい)이니 대단한 출세이지만, 맛은 종전의 붕어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바로 그 붕어빵의 元祖는 일본(!)이다. 일본어로는 ‘タイヤキ’, 직역하면 ‘도미 구이’이다. 웬 구이, 하겠지만, 엄연히 구이(焼き)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눈에는 얼핏 붕어(鮒=ふな)로 보였겠지만, 그것은 마치 화투패 사월의 등꽃을 대충 흑싸리라 부르고, 오월의 붓꽃을 건성으로 난초로 본 것과 비슷한 감각의 소치이다. 일본인은 재수나 운수와 연관하여, 도미(タイ=鯛)를 썩 좋게 여긴다. ‘썩어도 도미’라는 관용구도 있고, 七福神을 비롯한 민간신앙에서 도미는 좌우간 기분좋은 물고기이다. 맛도 물론 높게 치지만 그러나, 회전초밥(かいてんずし) 집에서의 인기순위는 좀 밀리는 편이다.
그 タイヤキ가 일본에서 태어나 올해로 100년이란다. 세계최초로 タイヤキ를 세상에 내보낸 일본의 ‘오래된 가게’가 아직 영업중이다. 07년 봄, 다이야끼의 매출액 세계1위로 기네스북에 등록된 가게가 동경의 번화가인 麻布(あざぶ)에 있는 なにわや(浪花家)이다. 1909년에 창업했다. 길거리의 다이야끼도 한 차례에 수십 개씩 구워내는 요즘, 이 가게는 지금도 변함없이 한 마리씩 굽기를 고집하고 있다.
15살 때부터 73년 동안이나 다이야끼를 구워 온 이 가게의 3代 당주인 고오베氏(만 88세) 가로되, ‘난 사업가가 아닌 匠人(장인)일 뿐. 대량생산으로 큰 벌이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집 다이야끼의 맛은 한 마리씩 구워내니까 비로소 나오는 맛이고, 그래서 변함없이 단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그는,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およげ、タイヤキ君’이라는 노래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유명人士이다.
그가 굽는 ‘자연산 다이야끼’를 맛보려면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일본 정계나 재계 그리고 예능계 따위에도 이 가게의 팬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4代째가 가게를 맡고 있지만, 만 88살의 3대 당주가 직접 구운 것을 먹고 싶다는 요청이 끊이지 않아, 한 주에 이틀은 노인이 직접 굽는다고 한다. 다이야끼의 변종이 판치는 요즘이지만, 노인의 소신은 변함없다. ‘다이야끼의 핵심은 アンコ (요즘의 한국어로 앙금)이다. 엄선한 좋은 재료만을 써서 만든 앙꼬를 듬뿍 넣은 뜨끈뜨끈한 것을, 남자라면 대가리부터, 여자라면 꼬리부터 먹는 것이 기본이다’라고, 먹는 방법까지 道를 피력한다.
4대로 이어지는 タイヤキ 가게 100년, 이렇게 오래된 가게를 일본어로 しにせ(老舗)라고 부르는데, 일본에는 분야마다 이런 しにせ가 많다. 최근의 어느 조사에 따르면, 창업 100년 이상의 기업이 10만, 200년 이상이 3천 이상으로 추정된다. 창업 1천년 이상도 7개사가 있다 한다. しにせ가 많은 편인 유럽의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에 견주어도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이다.
업종으로는, 청주나 일본과자, 일본여관 등 전통산업 쪽에 많다. 衣服시니세는 백화점으로 변신한 케이스가 많은데 みつこし(三越, 1673년 창업)가 그 대표격이다. 상장기업들도 적지 않다. 스미토모 금속광산(1590년 창업), 양명酒(1602년), 간장의 キッコーマン (1630년), 다나베 미츠비시 제약 (1678년), 스미토모林業 (1691년), 오노 약품(1717년), 에스에스 제약(1765년), 다케다 약품(1781년), 시미즈 건설(1804년), 백화점의 高島屋(1831년), 가지마 건설 (1840년), 히사미츠제약(1847년), 新日本제철 (1857년) , 이토츄商事 (1858년) 등, 내노라 하는 기업들이 즐비하다.
기네스북에도 올랐던 세계 最古의 시니세는 건설회사로서 578년(?)에 창업했다는 ‘금강組’ (組는 오늘날에도 건설회사의 이름에 흔히 붙는 말)인데 안타깝게도 2006년에 파산했다. 제조업 가운데의 최고 시니세는 1560년에 鑄物(いもの、주물) 메이커로 창업한 ‘나베야’인데, 지금도 ‘나베야 바이테크’라는 이름으로, 주물을 베이스로 하는 傳導 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물론 비상장 기업들이 더 많다. 예컨대 ようかん (요즘 한국어로 ‘양갱’)이라면 지금도 단연 ‘도라야’ (15세기 창업)라는 메이커가 최고로 여겨진다. 심지어는 동경 시내의 ‘하나야시끼’라는 놀이공원도 1853년 창업이다.
19세기 후반의 명치(明治)유신 이후에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문물을 바탕으로 한 신흥 가게들도 다음 세대의 시니세 대열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문 연 커피 전문점이나 스테이크 전문점들 몇몇도 머지 않아 백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니세가 될 것이다.
外侵이 없는 地政學적 환경이 시니세 발달의 주요 요인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여전히 물리적 외침은 없지만, 예외적인 일부 내수 산업을 빼고는 대부분의 산업이 이제 글로벌 경쟁에 노출돼 있다. 이들 しにせ가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는 변신을 꾀해야 살아남을지, 아니면 완고하게 보수적 자세를 지킴으로써 그 가치를 유지 내지는 발전시킬지는 업종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보아도, 200년 이상 된 기업의 40%가 일본에 있다. 일본은, 사람 수명만 최장수인 게 아니다. 기업의 수명도 세계 최장수의 나라가 일본이다. 그 이웃은, 안 될 성 부르면 재빠르게 엎어치우려는 기민성, 보다 짧은 기간에 한 몫 챙기려 부지런히 움직이는 力動性, 글 잘 외워 벼슬 하려는 官지향성이 우세한 것 같다. ★
첫댓글 대단 하신 였사 이네요 무엇이든 꾸준하게 하여야 한다는 교훈으로 깊이 심겠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