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로빈슨 크로우처럼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서도 인간은 누군가와, 혹은 무엇인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렇게 사람들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푸는 과정,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때때로 혼자 있고 싶어한다. 혼자 있다는 것이 고독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고독과 마주할 수도 있다. 고독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것이다. 인간이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것, 혹은 고독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 본질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말한 군중 속의 고독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더 무섭고, 더 본질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하십니까? 고독을 원하십니까? 고독이 몸부림치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문제작을 만든 이수인 감독의 데뷔작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주인공들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연령층이다. 영화의 주소비층이 20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는 넘쳐나지만, 그외의 연령층에 대해서는 한국영화는 그동안 무관심했다. 40대 초반의 중년부부를 핵심에 놓은 [베사메무쵸]나 60대가 중심이 된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 정도에 불과하다. 누구나 20대를 거치면서 성장하지만 언제나 인간이 20대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한국 영화 수용자층의 다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적 작품이다.
푸른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물건리 물건마을에서 펼쳐지는, 조용하지만 내면에서 격랑이 이는 삶의 이야기 [고독이 몸부림 칠 때]의 외형적 구조는, 노총각 배중범 장가보내기다. 이것을 축으로 그 주변의 다양한 인생들의 숨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젊은 배우는 40대 초반의 배중범(박영규 분)과 그를 짝사랑하는 회집 여자 30대 후반의 순아(진희경 분)다. 그외에는 배중범의 형 배중달(주현 분)을 중심으로 그의 오랜 친구들인 이필국(송재호 분), 홍찬경(양택조 분) 등인데 모두 60대들이다. 또 이필국의 손녀딸 영희와 친구인 철수의 10대 소녀 소년들의 사랑 이야기도 등장한다. 철저하게 20대만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벌써 우리는 이렇게 등장인물 연령층의 구성에서부터 이 영화가 야심차게 기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도 잘 낳지 않고, 밤이면 한 마리씩 알 수 없는 이유로 도망가는 타조농장을 경영하는 배중달은 동생 배중범이 나이 50이 다되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는 중매장이에게 신신당부를 해서 온갖 여자들과 맞선을 보게 해주지만 배중범은 [결혼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소리치며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맞선 상대를 돌려보내고 혼자 단란주점에서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다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올 뿐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배중범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는 남해회집 여주인 순아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배중달은 순아를 동생 배중범과 맺어지도록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상처하고 혼자 사는 배중달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이 몸부림 칠 때]의 이야기는 이렇게 배중달 형제를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그러나 감독은 그 주위 인물들을 하나 하나 섬세하게 살려 놓았다. 손녀에게 애정어린 구박을 받으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조용하고 말 없는 내성적 성격의 이필국, 세 친구 중 유일하게 아내도 살아 있지만 서울할매에 넋이 나간 주책바가지 수더분한 성격의 홍찬경, 그리고 이승복 동상을 닦으며 박정희 대통령을 신봉하는, 걸핏하면 총을 들고 상대를 위협하는 배중손의 오랜 라이벌 물건리 왕따 조진봉, 또 여기에 이혼하고 위자료로 받은 남해 물건리 앞바다의 섬, 조도의 땅문서를 들고 내려온 공주과 서울할매 송인주 등.
감독은 그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그러나 속내를 다 뒤집어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대사, 어떤 몸짓 하나를 통해 행간의 여백을 충분히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장치하고 있다. 이것은 영화적 전달력에 대한 상당한 내공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작품 곳곳에서 절제의 미덕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이야기를 펼쳐놓는다는 것, 그리고 과장하지 않고 진실된 시선으로 인물의 내면을 바라본다는 것, 이것이 늦깍이 신인 이수인 감독의 장점이다.
벌써 오토바이를 몰고 물건리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홍찬경의 옆으로 타조의 긴 목이 쑥 등장하는 첫씬부터 우리는 이야기를 솜씨있게 영상으로 드러내는 감독의 솜씨에 빨려 들어간다. 털도 별로 없고 긴 목으로 아스팔트를 뛰어 내려가는 타조는 어쩌면 물건리 노인들과 무척 닮아 보인다.
확실히 연기만 30년 40년을 하면서 살아온 관록있는 배우들은 단 한 마디의 대사, 단 한 번의 눈짓만 해도 화면 전체에 중량감이 묻어난다. 주현, 송재호, 양택조, 김무생, 선우용녀 등 노장파는 물론 그보다 한 세대 아래인 박영규 진희경까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중장년층 배우들 중에서 연기파 배우들만 끌어 모아 캐스팅 한 [고독이 몸부림 칠 때]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경연장이다. 그러나 개인기를 뽐내며 작품의 균형과 조화를 흐트리지 않는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꼭 필요한 분량의 연기를 하고 있다.
60대 대배우들은 물론, 시트콤의 과장된 연기에서 벗어나 고독한 50대, 본인은 굳이 49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노총각 배중범역의 박영규 연기가 좋다. 또 능숙하게 눈웃음을 치며 감초 역할을 똑똑히 하는 선우용녀나, 캐릭터를 드러내는데 솜씨 있는 송재호, 김무생, 양택조, 주현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10대인 영희역의 아역배우들까지 [고독이 몸부림칠 때]에서 적어도 연기력 함량미달이라는 눈총을 받을 배우는 단 한 명도 없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화면의 질감이나 미장센이다. 씬이 바뀔 때 자주 등장하는 일종의 구축쇼트, 설정 쇼트인 롱샷으로 물건리 남해바다의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지만, 화면의 질감은 그 아름다운 자연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인물의 내면적 흐름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면서 관객들에게 정서적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롱테이크 롱쇼트와, 인물을 가까이에서 부각시키며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클로즈업 쇼트 사이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출의 특징적인 면을 찾아볼 수가 없다. 또 어떤 때는 행간의 여백이 단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가는 평범한 결말 처리는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전복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감독은 쉽게 현실과 화해하려고 한다. 배중달이 죽은 어머니의 혼을 통해, 현실적 갈등을 무화시키는 전략은 뛰어난 방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