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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봉화산 정토원(烽火山 淨土苑)을 찾아서 ③
-호미 든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다-
정상에 오릅니다.
관세음보살님께 예를 올립니다.
장인ㆍ장모님께서 예를 올리고 나서 우리도 예를 올렸습니다.
관음개발성상(觀音開發聖像)
호미를 들고 계시니 거서관세음보살(擧鋤觀世音菩薩)님이신데 관음개발성상이라 명명했 네요. 경북 봉화에 가면 농선도량 관음사라고 있는데 야외에 석조로 농부관음(農夫觀音) 을 주불로 하여 좌우에 괭이로 밭을 매는 여전관음(黎田觀音)과 소를 끄는 견우관음(牽牛 觀音)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힌트를 얻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호미 든 관세음보살님
왼손에 감로수가 든 보병을 들으시고 오른손에 호미를 들고 계십니다. 이제야 뵙습니다. 호미 든 관세음보살님이 봉화산에 모셔졌다는 것을 접한 것은 이십수 년 전입니다. 늦은 감은 있으나 인연이 이루어져 감개무량했습니다.
호미 든 관음개발성상(觀音開發聖像) 호미 든 관음개발성상(觀音開發聖像)
호미 든 관음성상은 6.25의 민족동란이 갓 지난 1959년 4월 5일 봉안 되었습니다. 국토는 황폐화되고, 사회는 혼란, 정치는 자유당의 독재, 경제는 보리고개를 넘지 못하는 가난의 슬픔 속에 이를 보살펴야 할 불교계는 비구ㆍ대처의 피나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을 때였습 니다. 수난의 역사마다 불교는 민중을 선도하고 일깨워 주는 사명감이 투철했기에 이 어려운 때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답하고자 당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중심으로 한 젊은 학 도 31명의 추진위원과 기원학사 학생 실무단이 하나되어 용감히 일어선 것입니다. 그들은 4대개발(심신개발, 사회개발, 경제개발, 사상개발)을 상징하는 우리 얼이 깃든 호미를 든 관음성상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소재 봉화산 정상에 모시고 민족 생존의 방향을 제 시하는 정신적 횃불을 올렸던 것입니다. 40여 년이 지나면서 그때의 원형인 보살상의 재료가 인조석이라 풍화작용으로 마멸됨으 로 인하여 다시 FRP자재로 크게 조성하였으나, 여러 차례 태풍으로 넘어지는 아픔을 당 하게 되었습니다. 최초 31명의 대표 중 한 사람인 불자가 이 소식을 듣고 앞장서서 불기 2543년(1999)에 석재로 기단 포함 24척 크기로 다시 조성하여 모셔 놓게 되었습니다. 50년이란 긴 세월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파란만장한 사회변화 속에서 묵묵히 세파를 지켜 주고 새로움을 선도하고 있는 호미 든 관세음보살상입니다. 여기에 세워졌던 FRP자재로 조성한 호미 든 관세음보살 성상은 수광전 아래 모셔져 있습 니다. 당시 추진위원명단 이봉구 김지견 이현종 신병구 황연갑 김해동 박경호 김백만 김광영 이종복 김정애 김기업 손영익 김주태 조재진 김남식 박완일 김인덕 이천호 김두성 최충열 이재옥 박동기 강창순 안영근 박광도 최병주 김학순 김영기 배종일 선진규 당시 실무위원 명단 이용성 배한진 정극섭 나동영 심주종 지해식 이기용 김응조 김문길 한치훈 김기권 김삼현 주선웅 김종민 박종대 최병식 호미 든 관음개발성상(觀音開發聖像)의 변(辯) 이 글은 관음성상 뒷편에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데 무슨 내용인지 옮겨 봅니다. 『檀紀 四二九二年 乙亥 四月五日, 荒廢(황폐)되고 闇鈍(암둔)한 사회에서 젊은 佛敎學徒 (불교학도)들에 의하여 이 烽火山(봉화산) 頂上(정상)에 十二尺(십이척)의 몸으로 호미를 들 고 나타나, 四○년 동안 온갖 風霜(풍상)속에 開發(개발)을 先導(선도)하다 몸이 흐트러져 다시 二十四尺(이십사척)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이렇게 굳건히 섰노라. 우리 다함께 온갖 雜草(잡초)를 뽑아내고 가다듬은 땅 위에 統一(통일)의 마음과 眞理(진리)의 菩提心(보리심) 을 심어 이 국토에 정토(淨土)를 이룩고자 함이노라. 檀紀 四三三二年 己卯年 十月 三十日』 여기도 보면 단기 4292년 을해(乙亥)라 했으니 오류를 범했습니다. 기해(己亥)가 올바른 표기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乙자와 己자가 비슷하여 혼동했나요? 관음성상 옆모습 공덕비(功德碑) 『재가불자(在家佛子)들이 오십 년간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탐진치(貪瞋痴) 삼독심 (三毒心)을 뽑고 보리심(菩提心)을 심어 진리(眞理)를 캐고자 하는 뜻을 지닌 호미를 든 관 음 성상을 두 번에 걸쳐 모시고 이 도량(道場)을 가꾸어 온 그분들의 공덕을 기리고자 하여 이 기념비를 세웁니다. 불기 2544년 음 4월 8일 공덕비 건립 위원회』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아 예배를 드리고 소원을 비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청춘 남녀가 이곳을 찾아 둘러보다 이 공덕비 앞에서 비문을 읽어 보고 있었는데 고개를 갸웃갸웃하기 에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탐진치, 삼독심이 무슨 뜻이며 보리심이 무슨 뜻인지 몰라 그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용어 설명을 해드렸더니 고맙다며 '아멘'을 하네요. 그 러면서 자기들은 기독교를 믿지만 오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고 하더군요. 여기는 종교를 초월해서 오는 성지임을 알겠습니다. 전망대 모습 전망대에서 전망하는 어르신 봉하마을을 바라보시는 장모님 전망대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대통령은 고향에 내려온 후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오리농법으로 벼 농사를 짓도록 했습니다. 80Ha 논에서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논에 물을 채워 놓아 철새가 날아오게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인 공이 없지만 그 유지를 받들어 친환경 농사를 지으리 생각됩니다. 정토원도 보입니다. 멀리 낙동강 줄기가 보입니다.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3 번째로 긴 강으로 길이는 약 513.5km입니다. 강원도 태백시 화 전동 천의봉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북 봉화군ㆍ안동시ㆍ예천군ㆍ상주시ㆍ구미시ㆍ칠 곡군ㆍ고령군 그리고 경남 밀양시ㆍ김해시 등을 지납니다. 무척산(無隻山) 『무척산(無隻山)은 신어산(神魚山), 불모산(佛母山)과 더불어 김해의 3대 명산으로 꼽힌 다. 그다지 높지 않고 산줄기가 시원스럽지도 않지만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뜻의 생림동천(生林洞天)이란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기묘한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어 그 멋스러움이 더욱 특출나 보인다. 특히 낙동강과 이어져 있어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조망이 탁월하며 산허리 부분에 괴상하게 생긴 암봉이 많아 경치가 수려 하다. 무척산은 산 이름도 다양하다. 무척산 외에도 무착산, 무쌍산, 식산으로도 불린다. 식산 은 북풍을 막아 주고 낙동강 물줄기를 끌어들여 들을 기름지게 해 김해 고을을 먹여 살리 는 산이라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또 산의 형세가 밥상을 받는 모양과 같다고 해 식산, 식 산 대신 밥상이라고도 부른다. 다양하게 불려지는 이름뿐만 아니라 무척산은 많은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이 산의 정상 바로 밑에 천지못이 있는데, 이 연못은 김수로 왕릉의 물줄기를 잡기 위해 설치됐다 는 전설을 갖고 있다. 또한 고찰 모은암은 김수로왕이 어머니의 은혜를 갚기 위해 지었다 고 전해진다. 가락국의 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해 창건되었다는 백운암도 유명하다.』 저 봉우리는 사자바위쪽입니다. 대통령의 길. 편백나무 숲길. 이 길이 대통령의 길, 편백나무 숲길입니다. 이상 호미 든 관음개발 성상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모습 은 무척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대통령의 길을 따라 한없이 걷고 싶지만 여기서 아쉬운 발 걸음을 돌립니다. 여기 이 관음개발 성상이 세워질 때 고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노대통령은 어린 시절 늘 정토원을 찾았고 거기에서 고시준비도 하는 등 정토원 원장인 선진규 법사와는 깊은 인연을 맺었으니 앞으로도 그 아름다운 인연으로 해서 정토원은 대통령 생가와 묘소를 찾는 이에게는 성지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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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다음편이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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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차차 준비해서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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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원과 고 노무현 대통령과는 아주 오래전부터 깊은 인연이 있네요. 순례길를 돌아보면서 고 노무현대통령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어르신들께서 힘든 걸음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고향이 같으니 인연이 깊지요. 노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선진규 법사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구경 한 번 시켜드렸네요. 힘들지만 문제 없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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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히 잘 보고갑니다..^^
만만디님, 다녀가셨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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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은 나즈막한 산인데도, 사방으로 멀리까지 내려다 보여, 경치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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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즉막한 산이 천하의 명산이 되었네요. 인물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명산에 명찰이 있게 마련인데 정토원도 명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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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든 관음개발성상과 봉화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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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생각으로 개발관음을 탄생시켰습니다. 호미 든 개발관음(開發觀音)은 기해생으로 돼지띠이니 동갑입니다.

저기 저 오자로 음각한 글을 어찌 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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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하다는데 낙동강 줄기까지 보이고 ..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_()_
불과 해발 140m인데도 전망이 참 좋았습니다. 이 산은 노무현 대통령 생각와 묘소를 찾으면 필수코스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 호미 든 개발관음 이제 전국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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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장모님>허리가 굽으셨내요,사위 백우님 볼때 부끄러워 하시지 않던가요.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에게 형 같고
이웃 같지요_()_
허리가 굽은 것을 반듯하게 펴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천 리를 격해 있어 자주 찾지 못해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장모님이 저를 보시고
러워 할 일이 있나요


노무현 생각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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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히 잘 친견하였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