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는 불기 2558년 12월 6일(음력 10월 15일) 갑오년 동안거(冬安居) 결제일(結制日)을 맞아 전국의 수행납자(修行衲子)들을 분발토록 격려하는 법어를 내렸다.
진제법원 대종사께서는 동안거 입재일을 맞아 ‘육조문하의 가풍’을 이르며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서 한 점의 허점도 보이지 않도록 마음자세를 잘 가다듬고 정진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진제법원 대종사는 “육조문하의 법맥이 참으로 소중하고 더없이 귀중한 법이라,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힘들고 스승 없이 혼자서 향상의 안목을 갖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 이라며 “모든 결제대중은 이 대오견성법을 천추만대에 끊어짐 없이 바르게 널리 선양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정진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진제법원 대종사는 결제에 임하는 사부대중에게 “향상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일 뿐이니, 정진대중은 먼저 향상의 진리를 터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동안거는 결제 하루 전날인 5일(금) 저녁 결제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각자의 소임을 정하는 용상방(龍象榜)을 작성하고, 6일(토) 결제 당일 오전 10시경에는 사찰별로 방장스님 등 큰스님을 모시고 결제법어를 청한 후 3개월간의 참선정진에 들어간다.
조계종에서는 매년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200여 명의 수좌스님(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이 방부(안거에 참가하겠다는 신청 절차)를 들여 수행에 매진하고 있으며, 일반사찰 스님과 신도들도 하안거 기간 동안에는 함께 정진한다.
안거(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 (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전념하는 것으로, 출가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하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불기 2558년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의 갑오년 동안거 결제 법어 전문이다.
육조문하의 가풍(六祖門下의 家風)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大衆)에게 보이신 후,]
頓悟見性者<돈오견성자>는
爲頓除妄念<위돈제망념>이며
永絶人我<영절인아>하여
畢竟空寂<필경공적>이라
卽與佛齊等<즉여불제등>하여
無有異依也<무유이의야>로다.
심성을 몰록 깨달은 이는
중생의 망념이 몰록 제거되며
모든 인아상이 끊어지고 없어져서
필경에는 텅텅 비어서 고요함이라.
곧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동등하여
다르고 차이가 있지 아니함이로다.
심성(心性) 가운데 모든 진리(眞理)의 도(道)가 있음이니, 누구든지 도(道)를 닦아 심성(心性)을 보면 이러한 경지를 억만년토록 수용하는 법이로다.
금일(今日)은 갑오년 동안거 결제일(甲午年 冬安居 結制日)이라, 뭇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서 한 점의 허점도 보이지 않도록 마음자세를 잘 가다듬고 정진에 임할지어다.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공양을 하나 산책을 하나 운력을 하나 오매불망 간절히 하루에도 천번 만번 의심해 나갈지어다.
참나 가운데 진리가 다 있음이니 ‘어떤 것이 참나던고?’하고 화두의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다보면 간절한 화두의심 한 생각이 계곡의 흐르는 물처럼 끊어짐 없이 흘러가다가 문득 사물을 봐도 본 줄을 모르고 소리를 들어도 들은 줄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림이로다. 그렇게 한 달이고 일년이고 십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자기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됨이니,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진리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면 어떠한 법문을 물어도 막힘이 없어 천칠백 공안을 한 꼬챙이에 꿰어버림이니, 역대의 모든 부처님 조사스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어 억만년이 다하도록 진리(眞理)의 약(樂)을 수용하여 천상세계(天上世界)와 인간세계(人間世界)의 진리(眞理)의 스승이 됨이로다.
옛 도인(道人)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빈한(貧寒)하게 사는 것은 지혜(智慧)가 짧기 때문이다”하셨으니, 모든 불자님들이 출세(出世)하고 나고 날 적마다 만인이 우러러보는 자리를 누리고자 할진대, 이 밝은 지혜를 갖추어야 함이로다.
일상생활 속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농사를 하나 사업을 하나 산책을 하나 일념(一念)이 지속되게끔 혼신의 수양에 몰두해주시기를 바람이로다.
석일(昔日)에 육조 혜능 선사(六祖 慧能 禪師)의 법(法)을 이은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 禪師)가 계셨는데 청원행사 선사(靑原行思 禪師)와 함께 양대선맥(兩大禪脈)을 이룬 대선지식(大善知識)이었다.
회양 선사(懷讓 禪師)께서 태어나실 때 여섯 가닥의 서기(瑞氣)가 하늘로 뻗쳤는데, 당시에 이러한 상서(祥瑞)를 본 자사 섬견(刺史 贍見)이 왕(王)께 아뢰니 고종황제(高宗皇帝)가 물었다.
“이 상서(祥瑞)는 무슨 서기(瑞氣)인가?”
자사(刺史)가 대답했다.
“나라의 법보(法寶)가 세속(俗世)에 있지 않고 안강(安康)의 금주지방(金州地方)에 있다는 뜻입니다.”
“스님네 상서(祥瑞)이니 더욱 경사스러운 일이다. 신(臣)은 직접 가서 어루만져 양육(養育)하고 각별히 위로해 드리도록 하라.”
이렇게 상서(祥瑞)를 나타내며 탄생한 지 다섯 살이 되자, 생김새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게 다르고 마음에는 은혜(恩惠)와 겸양(謙讓)을 품어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부모는 일찍이 회양(懷讓)이라 이름지었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황제의 각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은 회양(懷讓)은 오직 불경(佛經)만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삼장 현정(三藏 玄靜)스님이 회양(懷讓)을 보고는 부모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는 출가(出家)하여 최상승(最上乘)의 법을 얻어 지극히 미묘(微妙)한 경지에 이를 것이며, 불법(佛法)의 이치를 터득할 것입니다.”하였다.
예언대로 회양(懷讓)이 15세가 되자 문득 부모(父母)님께 하직하고 출가(出家)하니, 속명 그대로 회양(懷讓)이라 법명을 받고 율장(律藏)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이제 계(戒)를 받고 다섯 해를 지나는 동안 위의(威儀)를 널리 배워 겉모양이 점잖게 되었는데, 진리(眞理)를 배우려 해도 깨달을 길이 없구나!”
또 말하였다.
“출가(出家)한 이는 무위(無爲)의 법(法)을 얻어야 하늘과 인간에서 견줄 이가 없으리라.”
이때 도반(道伴)이었던 탄연(坦然)이라는 스님이 회양(懷讓)스님이 한탄하는 것을 보고, 여러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뵙자고 하여 함께 행각(行脚)을 떠나 숭산(崇山)의 혜안 선사(慧安 禪師)께로 갔다.
혜안 선사(慧安 禪師)를 참방한 자리에서 회양(懷讓)스님이 여쭈었다.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혜안 선사(慧安 禪師)께서 대답하셨다.
“자기 자신의 의지(意志)는 묻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지(意志)는 물어서 무엇 하려는가?”
이에 탄연(坦然)스님이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탄연(坦然)의 의지(意志)입니까?”
“너에게 반드시 스스로 비밀한 작용이 있느니라.”
이번에는 회양(懷讓)스님이 다시 묻기를,
“엎드려 청하오니, 무엇이 비밀한 작용인지 가르쳐 주십시오.”하니, 혜안 선사(慧安 禪師)께서 주장자를 들어 보이셨다. 여기에서 회양(懷讓)스님과 탄연(坦然)스님은 문득 진리의 눈이 8부가 열리게 되었다.
그 후로 탄연(坦然)스님은 혜안 선사(慧安 禪師)을 섬겨 모시고 살았으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였던 회양(懷讓)스님은 혜안 선사(慧安 禪師)의 지시대로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로 가서 육조 혜능 선사(六祖 慧能 禪師)를 참방하였다.
혜능 선사(慧能 禪師)를 친견(親見)하니 선사(禪師)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숭산(崇山)에서 일부러 선사(禪師)님께 예배하러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회양(懷讓)스님이 여기에 꽉 막혀 아무런 말도 못하고 8년 동안 산송장이 되어 정진하다가 마침내 8년 만에 대오견성(大悟見性)으로 해결해내고는 곧장 혜능 선사(慧能 禪師)를 친견(親見)하여 말씀드렸다.
“선사(禪師)님,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회양(懷讓)스님이 8년 만에 척 바른 답을 하니 곧장 물으시기를,
“그럼 그것을 닦아 증득(證得)할 수 있겠는가?”
“닦아 증득(證得)하는 일은 없지 아니하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그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부처님들께서 염려하여 호념(護念)하시는 바이니, 그대도 그렇고 나도 그러하니라. 서천(西天)의 27조(祖) 반야다라(般若多羅)께서 170여 년 전에 그대에 관해 예언하셨는데 불법(佛法)이 그대로부터 크게 흥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뒤엔 한 망아지가 나와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리라.”
그러고는 남악회양(南嶽懷讓)스님에게 심인법(心印法)을 전하셨다.
心地含諸種<심지함제종>하니
普雨悉皆生<보우실개생>이라.
頓悟花情已<돈오화정이>하면
菩提果自成<보리과자성>이로다.
마음 땅에 모든 종자를 머금으니
널리 비가 내림에 모두 싹이 돋아남이라.
꽃의 정을 문득 깨달음에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어짐이로다.
이렇게 육조 혜능 선사(六祖 慧能 禪師)께서 회양(懷讓)스님의 깨달음을 인가(印可)하여 심인법(心印法)을 부촉하심으로 인해 그 법맥(法脈)이 지금까지 남아 우리나라에 내려오고 있는 것이며, 근세에 경허-혜월-운봉-향곡(鏡虛-慧月-雲峰-香谷) 그리고 산승으로 내려오는 법맥(法脈)이 회양 선사(懷讓 禪師) 이후로 1300여 년 동안 끊어짐 없이 내려온 유일한 상수법맥(上首法脈)이로다. 참으로 소중하고 더없이 귀중한 법이라,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힘들고 스승없이 혼자서 향상(向上)의 안목(眼目)을 갖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니, 모든 결제대중은 이 대오견성법(大悟見性法)을 천추만대에 끊어짐 없이 바르게 널리 선양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정진해주기를 바람이로다.
당시 혜능(慧能 禪師)의 여러 제자 가운데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 禪師)와 청원행사 선사(靑原行思 禪師)는 상수제자(上首弟子)들로써 그 법(法)이 쌍벽을 이루어 형과 아우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안목(眼目)을 갖춘 분들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두 분 선사(禪師)의 법맥(法派)를 좇아서 선종(禪宗)의 5졷(五宗)이 벌어졌는데, 회양 선사 문하(懷讓 禪師 門下)에서는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潙仰宗)이, 행사 선사(行思 禪師)의 문하(門下)에서는 조동종·법안종·운문종(曹洞宗․法眼宗․雲門宗)이 벌어져 중국 천하(中國 天下)를 풍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회양 선사(懷讓 禪師) 밑으로는 마조·백장·황벽·임제 선사(馬祖․百丈․黃檗․臨濟 禪師)로 이어져 내려왔고, 행사 선사(行思 禪師) 밑으로는 석두·도오·용담·덕산 선사(石頭․道悟․龍潭․德山 禪師)로 쭉 이어져 내려왔으니, 임제(臨濟)의 할(喝)과 덕산(德山)의 방(棒)은 육조문하(六祖門下)의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家風)인 것이다.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 禪師)께서는 향하(向下)의 대용(大用)의 법(法)을 전하셨고, 청원행사 선사(靑原行思 禪師)께서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리의 최성(體性)을 전하셨는데, 이 진리 자체에는 체(體)와 용(用)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체(體)가 용(用)이 되기도 하고 용(用)이 체(體)가 되기도 하여 둘은 항상 하나로다.
그래서 구경법(究竟法)을 깨달아 향상(向上)의 진리(眞理)를 알게 되면 향하(向下)의 진리(眞理)도 알게 되고, 향하(向下)의 진리(眞理)를 알면 향상(向上)의 진리(眞理)도 알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므로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일 뿐이니, 정진대중은 먼저 향상(向上)의 진리(眞理)를 터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정진에 임해야 함이로다.
이 같은 이치를 잘 밝히는 법문이 있으니,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 회양 선사(懷讓 禪師)께 석두(石頭)스님을 심부름 보내어 법(法)을 전하게 되는 기연이로다.
한 때, 회양 선사(懷讓 禪師)와 행사 선사(行思 禪師)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고준(高峻)한 법(法)을 널리 펴시는데, 때가 되니 행사 선사 문중(行思 禪師 門中)에 제자를 봉(封)해 분가(分家)시켜야 할 인연이 도래하였다.
하루는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 제자 석두(弟子 石頭)스님을 시켜 회양 선사(懷讓 禪師)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르셨다.
<네가 회양 선사(懷讓 禪師)께 가서 이 편지를 전해 드리고 돌아오면, 무딘 도끼〔鈯斧子〕를 주어 분가(分家)시켜서 다른 산에 주(住)하게 하겠다.>
석두(石頭)스님이 여러 달을 걸어서 회양 선사(懷讓 禪師) 처소에 이르러 인사를 올리고는, 전하라는 편지는 올리지 않고 대뜸 여쭈었다.
"모든 성인(聖人)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할 때 어떠합니까?"
이렇게 고준(高峻)한 일문(一問)을 던지니, 회양 선사(懷讓 禪師)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향상(向上)의 진리만 묻고 향하(向下)의 진리는 묻지 않는고?"하시었다.
그러자 석두(石頭)스님은,
"억만년토록 생사(生死)의 바다에 잠길지언정 모든 부처님과 성인(聖人)의 해탈법(解脫法)은 구하지 않겠습니다."하고 자기의 소견(所見)만을 고집하였다.
이 말 끝에 회양 선사(懷讓 禪師)께서는 돌아앉아 버리시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으셨다. 양변(兩邊)을 다 들어야 하는데 일변(一邊)으로만 나가니 대화의 상대가 안 된다고 돌아앉아 버리신 것이다.
석두(石頭)스님이 그 길로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 돌아가니, 선사(禪師)께서 물으셨다.
"편지는 잘 전했느냐?"
"편지도 전하지 못하고 신(信)도 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석두(石頭)스님이 회양 선사(懷讓 禪師) 처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씀 드리고는,
"편지를 전하고 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 분가(分家)시켜 주신다고 하셨으니 도끼를 주십시오."하였다. 그러자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 아무 말 없이 일족(一足)을 들어 보이시니, 거기서 석두(石頭)스님은 큰 절을 하였다.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는 여기에서 석두(石頭)스님에게 법을 전하여 악악산(南嶽山)에 주(住)하게 하셨으니, 고인(古人)들께서는 제자(弟子)에게 법을 전하실 때, 이렇게 세밀하게 다루어 보고 마음에 흡족해야 법(法)을 부촉(付囑)하신 것이로다.
이 법(法)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을 것 같으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고 불조(佛祖)의 정안(正眼)을 그르치게 되므로, 고인(古人)들께서 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세밀하고 세밀하게 지도하신 것이로다.
그러면 시회대중(時會大衆)은,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 분가(分家)하기 위해 심부름 보냈던 석두(石頭)스님이 돌아와서는 무딘 도끼를 달라고 하는데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 한 발을 들어 보이신 뜻을 아시겠습니까?
또,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 발을 들어 보이는데 석두(石頭)스님이 일어나서 큰 절을 한 뜻을 아시겠습니까?
이 대목은 천고(千古)에 알기 어려운 법문이로다. 여기에 무진법문(無盡法門)이 다 들어 있음이로다.
[ 양구운(良久云)하시되, ]
了知向上句<요지향상구>하면
豈不知向下事<기부지향하사>리오.
향상의 진리를 요달해 안다면
어찌 향하의 진리를 알지 못하리오.
이렇게 행사 선사(行思 禪師)께서는 석두희천(石頭希遷)이라는 제자(弟子)를 얻어 법을 전하셨고, 회양 선사(懷讓 禪師)께서는 훗날 마조도일(馬祖道一)이라는 걸출한 제자(弟子)를 얻어 법을 전하셨는데, 마조 선사(馬祖 禪師)는 84인(人)의 도인제자(道人弟子)를 두어 그 법이 천하(天下)를 덮었던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이셨다.
한 때 어떤 납자(衲子)가 회양 선사(懷讓 禪師)께 물었다.
“거울로 상(像)을 주조하여, 상(像)이 이루어지면 거울의 밝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선사(禪師)께서 대답하시기를
“마치 대덕(大德)이 출가(出家)하기 전(前)의 모습과도 같으니, 그것이 어디로 갔겠느냐?”하시니, 납자가 다시 묻기를,
“상(像)이 이루어진 뒤에는 어찌하여 비추지 못합니까?”
“비추지는 않으나 한 점도 속일 수는 없느니라.”하시며 이미 다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셨다.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 禪師)께서 이렇게 뚜렷이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이루어 크게 법(法)을 선양하시다가 열(涅槃)에 드심이로다.
그러면 필경(畢竟)에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 禪師)를 아시겠습니까?
向上向下自在用<향상향하자재용>하니
天上人間無等侶<천상인간무등려>로다.
향상의 진리와 향하의 진리를 자재하게 쓰니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짝할 자가 없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