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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통도사에서 홍법스님을 은사로 사미계수지. 1971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74년 해인사 승가대 대교과 졸업. 1978년 월정사에서 화엄학 수학. 1983년 총무원 교무국장 역임. 1988년 조계종 9,10,11,12대 중앙종회 의원 역임. 1994년 총무원 총무부장,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의원 11대 중앙종회 총무분과위원장. 1998년 불교텔레비전 대표이사 사장 및 불교방송 이사 역임.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 역임. 통도사 주지 역임. 재단법인 아름다운 동행 이사. 홍법문화복지법인 이사장. 현재 제 3대 군종특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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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보다 무서운 건 ‘윤회’ 확실한 믿음 갖고 ‘문사수’해야 수행정진 없는 종교는 신앙일 뿐
비가 내렸다 무더위였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는데 가을은 이미 다가왔단다. 입추였던 8월 7일, 일산 여래사에서 열린 정우 스님의 담백한 법문을 들으러 많은 불자들이 모였다. 며칠간 내리 쏟아지던 비에 번거로웠던 마음도, 무더위에 지쳤던 몸도 스님의 넌덕에 스르르 풀렸다. ·
인간사 춘하추동 보내듯 해야
저는 불교를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법회를 한 곳에서 수없이 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궁무진한 팔만대장경 덕분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설교를 한 번씩 할라치면 몇 날 며칠을 준비한다는데, 불교는 열반경, 화엄경, 금강경 어디든 척 열면 그날 법문주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입 속에서 간질간질하게 맴도는 이야기, 아슬아슬하게 생각날 듯 말 듯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경전 어디에서든 척척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에 의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최근에 지인과 함께 수덕사에 다녀왔습니다.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위해 대중공양을 가던 길이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는데 그 비를 뚫고 갔다 왔죠. 그렇게 도착하니까 스님들이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헤치고 온 것을 걱정하시더군요. 그래서 “화두 들기 보다는 쉽더라”며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폭우를 헤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생각했습니다. 마치 우리네 현실, 사바를 보는 것 같다구요. 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든 걸어가야 하는게 우리 인생이니까요.
얼마 전만 해도 윗지방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일산에는 한 시간에 60mm 이상 비가 내렸다는데 굉장했죠. 그러나 아랫녘에는 지난 달 내내 비가 거의 안 왔다고 합니다. 땅 덩어리가 큰 건지 아니면 허공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무쌍한 이치가 그런 건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고기압이 만연하면 맑은 날이 계속돼 땅이 사막화되고, 저기압세력이 지속되면 비가 잦아 습지가 된다고 합니다. 사람의 정신 또한 고기압세력이 만연하면 짜증과 화와 신경질이 심해집니다. 기압이 뚝 떨어져 저기압이 되면 우울증이 되구요. 자연의 섭리를 봐도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듯 어느 한 쪽으로만 치닫는 건 결코 사람에게나 자연에게나 좋지 못한 일이죠.
그리고 요새 날씨가 무덥다고 불평하지만, 무더움 자체가 없으면 결실을 맺어야 되는 수많은 곡물들이 냉해를 입어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어느 분 말씀대로 더울 때는 더우니까 그러려니 하고 추울 때는 추우니까 그러려니 하면 만사가 편안하답니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의심을 깨트리다
열반경에 따르면 계정혜 삼학 가운데 우리가 계율을 닦는 건 몸이 고요해지기 위함입니다. 법대로만 살면 몸이 편안하다고 합니다. 또한 선정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기 위함이고, 지혜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트리기 위함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의심을 깨트리기 위해서 계정혜 삼학을 닦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은 불이(不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 물컵이 있는데 컵은 몸이고 물은 마음이죠. 물이 맑고 깨끗하면 사물이 비치겠죠. 물론 구정물이라고 안 비치는 건 아닙니다. 불순물이 가라앉으면 됩니다.
불교는 듣고 생각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문사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들음으로써, 생각함으로써, 수행함으로써 지혜를 이뤄야 하는 거죠. 수행정진이 없는 종교는 신앙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끝에 드러나는 것이 선정, 계율, 지혜입니다. 금강삼매론에서 보면 금강삼매는 선정이고 금강반야는 지혜라 하는데 어떤 이는 반야와 지혜를 하나로 보고 어떤 이는 다른 거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선정과 삼매를 하나 혹은 둘로 보기도 합니다. 다르다고 하면 다른 것이요, 같다고 하면 같은 것입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불일불이하다합니다. 결코 컵과 그 속에 담긴 물이, 내 몸과 내 마음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몸도 소중한 거에요. 다듬고 가꾸세요. 3대독자나 5대독자라고 막무가내로 위해주라는 게 아니라 몸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가꾸는 겁니다. 몸에 넉넉한 여유로움이 깃들 때 마음도 혼란스럽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금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종류가 수없이 있죠. 그러나 금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청년, 장년, 소년 등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 중요치 않습니다.
종파는 달라도 한 마음으로 부처님 찾는 것
32년 전에 혼자서 인도 순례에 나섰을 때 일본 스님이 주지로 계신 절에 하룻밤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대접을 잘 받고 다음날 예불에 참여했는데 보니까 남묘호렌게쿄더라구요. 동쪽을 향해 7년만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종교요. 이 종교는 불교의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때 인도의 일본 법당에서 제가 뭘 찾았는지 아십니까. 주지 스님은 북을 치며 2시간동안 예불을 집전하는데 저는 나무묘법연화경이라는 법화경 명호를 부르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다 하며 그 시간을 다양하게 보냈습니다. 예불에서 어떤 명호를 부르든 결국은 부처님 한 분을 찾는 겁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을 진언하고 우리는 육자대명왕진언을 설시해주신 관세음보살을 염송합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을 찾으나 그 말씀을 찾으나, 결국은 같은 것 아닌가요.
독일의 한 기자가 4년 동안 30여 종교를 접하고 드는 의문이 있었답니다. 죽은 다음에 자신이 섬기던 신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신을 만나면 어쩌나하고요. 저 또한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수없이 기도하면서 부처님의 다양한 명호를 부르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죽은 다음에 결정적으로 어떤 분을 만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오늘은 무슨 기도를 하셨습니까. 말은 지장 보살해도 속으로는 화엄성중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물컵과 물이 불이하다, 다르지 않다고 하는 부분과 연관해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다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법회에 모인 이유
우리가 도를 닦는 연유는 불성, 본성을 보기 위해서고 이는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죠. 다시 깨달음은 위없는 대열반, 무여열반, 완전한 열반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죽어야 열반하는 줄 아는데 결코 그게 아닙니다. 열반이나 극락이라는 건 별도로 떨어져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살아서 극락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죽어서 가는 게 좋겠습니까. 살아생전 극락처럼 살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사법을 “성불하세요” 대신 “극락가세요”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어서 죽으라는 말처럼 들리니 섣불리 못하죠.
얼마 전 큰 스님의 글을 보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시원찮은 사람에게 “저놈은 지옥도 못 갈 놈”이라고 꾸짖는 대목을 보고요. 험한 업을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데 그것도 못 간답니다. 그러면 대체 어딜 가는 걸까요. 하염없이 이 세상 저 세상 떠돌겠죠. 떠도는 인생은 지옥보다 더 무섭고 겁나고 두렵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떠도는 인생이 되면 안 되겠다하고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사십시오.
알면 의심 하지 않아요. 모르니까 의심하는 거죠. 밤에 산길을 걸어가면 자기 발소리에 놀랄 때가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시야가 제한된 상태에서 사물을 보고 고개를 돌렸을 때 뭐가 휙 지나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잘못 봤나 싶어 두 눈을 비비죠.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텐데요. 그건 눈이라는 인식기관이 감지한 잔상이죠. 순간적으로 아무리 빨리 고개를 돌렸다 할지라도 잔상이 남아있는데, 그걸 사물이 따라온 것처럼 여기면 정신이 산만해지고 시끄러워지고 복잡해집니다. 이처럼 안목이나 보는 시야가 좁으면 두렵고 무서운 일이 많이 생깁니다. 내 경계, 내 분상에서 비춰보면 아직도 이 나이 먹도록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실테죠. 우리는 이런 데 흔들림이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도 번뇌가 일어나지 아니하는 자리에 모든 생사와 온갖 번뇌, 경계를 끊기 위함이 아닙니까.
세상에서 희망을 이루려면 정직해야 하고 내면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합니다. 감언이설로 세상을 속일 수도, 기만할 수도, 우롱할 수도 있지만 불보살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십시오. 정직하게, 성실하게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도반으로서 함께 탁마해 나가는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았으면 합니다.
오늘 이렇게 법회에 참석하는 건 부처님의 가피를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당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가 격려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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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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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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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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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듣고, 생각하며,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은 쉬운데 실천이 어렵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_()_
일거수일투족에 마음을 살피며 산다면 정심정행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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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법문으로 마음 정화하고 하루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正心正行이 극락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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