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이라면 건강한 몸과 안전한 생활, 최고의 기술, 최선의 교육을 보여야 한다.
태권도 사범, 무연도(武硏道, 武然道, 無練道) 창안자 민기식
무술 사범에겐 언어는 부차적이다. 몸의 표현을 통해 기술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기술을 전하는 보조 도구에 불과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말 없이 시범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우선 사범은 건강해야 한다. 모든 병을 통제할 수 있는 경지라면 이상적이다. 이 경우도 의학적 지식은 부차적이다. 필요 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건강 상식을 지껄여도 사범이 감기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별소용 없지 않겠는가? 이런 면에서 무술의 제일 목적은 몸의 건강이며 구체적으로 장부의 건강이다. 건강 보다 궁극적인 무술성은 없다.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암에 걸려 쓰러지면 과연 무술성은 질병과 무관한 것인가? 장부의 건강을 모르고 몸의 폭력성을 키워서는 무술성의 주객이 전도된 경우라고 봐야 한다.
사범은 무술의 폭력성을 이용하면서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일상의 안전한 생활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태권도 수련자가 자전거 타고 가다 불행히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낙법을 하지 못해서 목숨을 잃는다거나, 계단을 헛디뎌 팔, 다리, 목, 허리 등에 상해를 입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어릴 때 일정 기간 낙법을 익히면 평생 일정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한 낙법은 내가 가르친 경험으로 일주일에 한번 1년간 꾸준히 수련하면 해소할 수 있다. 무연도 수업의 자랑이다.
사범은 최고의 퍼포먼스를 수련생에게 불러 일으켜야 한다. 수련생에게 감탄을 자아내는 기술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매번의 수업 시간에 사범의 최고의 기예로 가득하다면 수련자가 하지 않을래야 안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1990년대 미동초에서 지켜보았던 이규형 사범님의 교육과 기술은 최고였다. 내 머리 속에 완벽한 필름으로 남아 있으니 눈만 감으면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나 또한 사범님의 그런 모습을 지향한다. 문제는 연습량이다.
기량과 교육은 별개의 문제다. 기량이 부족하더라도 교육은 가능하다. 심지어 휠체어에 앉아서도 무술 교육은 가능하다. 거꾸로 국가대표를 지낸 태권도 선수가 초등학교 6학년 수련자보다 가르치는데 있어서 저질일 수 있다.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기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조직하고 메타교육을 추구하기 위해서 별도로 언어 사용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서 언어를 절차탁마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그렇다고 언어만으로는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수 없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기능에 불과하다. 눈빛, 제스쳐, 무엇보다 학생 각자의 능력에 적합한 무언가를 제시하여 학생들로부터 이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 영역에 들어가야만 전문적인 경계에 도달한다. 누구도 범접못할 권위를 확보한다. 나의 사범님, 이규형 사범님께서 그러했다. 사범님은 도장 수업에선 엄격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제자들에게도 겸손하셨고 다정다감,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표현하셨다. 20년이 넘도록 사범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지루한 적이 없었다. 나에겐 사범님은 태권도의 장인보다는 태권도 교육자로 강렬하다. 예전과 환경이 바뀌어 사범님 같은 거대한 인격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사범님께서 태권도와 태권도 시범, 교육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건만, 지금은 이런 인격을 허용되지 않는다. 나부터 태권도를 떠나 더 큰 무술의 세계로 나아가지 않았는가? 난 무연도를 창안했지만, 정체성 시비에서 갈등하면서 끊임없이 무형의 건축물을 쌓고자 기반 작업을 하고 있다. 1류 태권도 사범인 이규형의 제자, 민기식이라는 2류 태권도 사범으로부터 1류 무술 무연도가 묘곡초에서 탄생하고 있다. 우연적인 계기가 쌓이다 우연히 생기고 있다. 인생과 같다고 할 것이다.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 우연한 계기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우연한 계기에 무연도가 이어질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나는 무술 사범이다. 무술이라면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인 건강과 안전, 호신의 최고 기술과 교육을 전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무연도를 창안한 사범이다. 지식에 있어서 8체질의학과 교육본위론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무연도의 기술 체계는 탄탄하다. 걸림돌은 내가 이규형 사범님께 25년간 배운 태권도 기술이다. 무엇을 버리고 어느 부분을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데, 해체와 구성의 관점이 명확하게 나와야 한다. 한 10년 정도 부대끼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겠는가? 버티면 된다. 그 동안 나의 건강과 안전을 추구하면 된다. 그러니 학교에서라도 무연도를 꾸준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