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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사자의 서 1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계의 창'의 신윤주(아나운서)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상하게도 우리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쉽게 잊고 삽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이 문득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오게 됐을 때 무척 놀라게 되죠? 네, 그렇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과연 죽으면 모든 것이 일순간 끝나버리는 걸까요? 그리고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으십니까?
불교의 나라 티베트인들은 오래전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환생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창’ 오늘과 다음 주 이 시간에는 티베트 사람들이 생각하는 윤회사상과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기까지 그 영혼이 떠도는 과정, 그리고 티베트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를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자, 오늘은 그 1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영혼을 인도하는 위대한 경전에 관한 애기입니다. 함께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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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라다크 지방은 해발 3,700m 고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가깝기 때문에 1974년까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었습니다. 그 결과 이곳 라다크엔 아직도 티베트 불교문화가 남아 있어서 서방의 티베트라고 불립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라디크 사람들은 순례여행을 떠납니다. 사람들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계속 절을 합니다. ‘오체투지’라고 하는 이 절은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하는 기도입니다. 불교의 기본 태도는 ‘윤회는 곧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생ㆍ노ㆍ병ㆍ사.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은 늘 늙어가며 병들고 결국 죽음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도 결국 해탈을 얻지 못하는 한, 중생은 또다시 고통과 고난 속에서 윤회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교리에 의하면, ‘삶과 죽음이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곧 ‘모든 번뇌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을 초월한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 곧 해탈입니다. 이 사람들은 해탈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고 금욕과 자비를 행합니다.
티베트의 불교에는 숨겨진 보물이라고 알려진 신비한 경전들이 있다고 합니다. 산 속 동굴에 숨겼다고 하는 이 경전들은 필요한 때가 되면 세상에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티베트의 경전 ‘사자의 서’에서도 이 숨겨진 보물 중 하나입니다. 이 경전들을 쓴 사람은 8세기말 인도에서 티베트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바바’입니다.
그러나 이 경전들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가 15세기에야 다시 발견됐습니다. 티베트에서는 ‘사자의 서’를 ‘바르도 토트롤’이라고 합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죽는 순간, 인간은 빛을 만나고 황홀경에 빠지게 됩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생명의 진정한 본질은 생각이며 그 생각은 순수한 빛으로 구성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이 생각이 육체를 떠날 때,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1993년 1월 1일, 이 마을에서 노인 한 명이 숨졌습니다. 이 노인은 ‘파루’라는 농촌마을에서 85세까지 살았는데 인더스 강의 발원지에 자리하고 있는 이 마을에는 60여 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누가 죽으면 여자들은 부엌을 벗어나지 않고 49일 동안 제를 지냅니다. 이들은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이 라다크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방법입니다.
“아버지께서 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었네.
이제 아버지를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으니
이보다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체링 파르단’는 85세에 뇌출혈로 죽었습니다. 권촉초자(?)는 경전 한 권을 들고 매일같이 파르단 집으로 갑니다. 초자는 정식으로 출가한 적은 없지만 시골출신의 밀교 고행자입니다. 티베트 불교문화에는 ‘야파’라고 하는 이 고행자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타루 마을에서 이들은 승려인 동시에 의사의 역할도 합니다.
체링 파르단의 시신은 그가 숨을 거둔 방에 모셔져 있습니다. 가족은 이 방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체링 파르단이 죽은 지 나흘이 됐습니다. 오늘도 초자는 죽은 파르단에게 ‘바르도 토트롤’을 읽어줍니다. 이 특별한 ‘바르도 토트롤’은 지난 200년 동안 파루 마을의 사자들을 안내해 왔습니다.
초자는 파르단이 숨을 거두기 직전부터 ‘바르도 토트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자가 다시 몸을 받아 환생하는 49일 동안 쉬지 않고 경전을 읽습니다. ‘바르도 토트롤’의 ‘바르도’는 티베트어로 사람이 죽는 순간부터 환생할 때까지 머무르는 그 죽음의 세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이 중음계(中陰界)로 들어간다고 믿습니다. 유형의 육체는 망가지더라도 죽은 자의 의식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죽은 자가 안전하게 죽음을 거쳐 나오게 도와주기 위해서 죽은 자의 영혼에게 이 책을 계속해서 읽어주는 것입니다.
‘사자의 서’에 따르면, 사후 죽음에서는 강렬한 빛과 여러 가지 마(魔)가 보인다고 합니다. 생전에 비법을 전수받으면 이 빛을 알아보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됩니다.
“체링 파르단은 똑똑히 들으라. 4일째가 되면 아미탈의 붉은 빛이 나타날 것이다. 이 빛은 투명하고 밝으며 너무 밝아서 똑바로 볼 수 없다. 이 지혜의 불을 따라서 아귀들의 연노랑 빛이 보일 것이다. 그 연노랑 빛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그 빛에 이끌리면 아귀의 세계에 빠져서 곧 영원히 참을 수 없는 굶주림과 갈증을 느낄 것이다. 붉은 빛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과 열망을 갖고 다가가야 한다. 그 광채가 본래 자신의 면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해탈을 얻을 것이다.”
초자는 오래된 점성술 달력을 싸서 파르단의 화장 일자를 잡습니다. 파르단의 사주와 사망일시에 근거해서 축일을 택합니다. 그리하여 파르단의 화장 일시는 1월 10일, 사망 열흘 후로 잡혔습니다.
“파르단은 전생에 멧돼지였고 내생에서는 새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자의 서’에 씌여진 안내를 제대로 따르면 다시 사람으로 환생할 것입니다.”
사자의 의식이 ‘중음계’를 행한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섣달 그믐날 밤에 ‘메토 불꽃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횃불을 흔듭니다. 섣달 그믐날 밤부터 정월 초하루까지 라다크 지방 마을들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믿었던 민간 신앙에서 유래된 독특한 생사를 벌입니다.
새해 첫 날 결전의 글귀를 적은 ‘타르초’라는 오색 깃발들이 지붕 위에 걸립니다. 라다크에서는 집집마다 지붕 위에 ‘초칸’이라는 불단을 차려둡니다. 이 집의 어른인 ‘스탕진’이 새해를 맞아 자기 집을 지켜줄 불상 앞에 춧불을 켭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혜와 지식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96세의 스탕진은 자기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어서 죽는 것입니다. 스탕진은 매일 백배을 올립니다.
“옴 마니 반메 홈”
‘만이륜’을 돌리면서 수탕진은 ‘옴 마니 반메 홈’이라는 조문을 암송합니다. ‘옴 마니 반메 홈’은 관세음보살의 명호로 티베트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동안 입에서 놓지 않은 조문입니다.
스탕진은 곰파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북쪽으로 산봉우리 하나만 넘으면 중국령의 티베트입니다. 덕망 높은 스님의 설법을 듣는 것으로 새해가 시작됩니다. 추운 겨울은 티베트 사람들이 죽음을 가장 가깝게 느끼게 되는 종교적 계절입니다. 올해는 ‘덕담 링코체’가 곰파마을을 찾았습니다. 라다크에서 ‘링코체’는 ‘살아있는 부처’란 뜻으로 환생한 고위급 승려에게 붙이는 존칭입니다.
오늘 덕담 링코체의 설법은 ‘포와’에 대한 것입니다. ‘포와’는 티베트 불교에만 있는 명상법으로 유형의 육체에서 영혼을 풀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포와의 목적은 살아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자의 서’에 있는 가르침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을 최고 고령자인 스탕진도 포와에 대한 설법을 듣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먼저 머리 위에 아미타불의 모습을 상상하십시오. 의식을 배에서부터 가슴 쪽으로 올린 다음 머리로 나가게 하십시오. 포와(Powa)를 익히면, 중음계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링포체는 사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어야 사후 세계를 잘 헤져나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체링 파르단이 죽은 지 엿새가 지났습니다. 오늘 덕담 링코체가 포와 의식을 치르기 위해 이곳을 왔습니다. 라다크에는 포와 의식을 주관할 수 있는 승려가 두 사람 있습니다. 덕담 링코체가 그 중 하나죠.
이것은 죽은 자의 의식이 아미타불 정토에서 환생할 수 있게 해주는 명상예식입니다. 이 예식에서 버터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머리는 의식을 육체로부터 가져가기 위해 아미타불이 들어오는 자리입니다.
“체링 파르단, 당신은 죽었습니다. 이 세계의 빛은 사라졌지만 다음 세계의 빛은 아직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육신은 모든 감각을 상실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은 자의 머리에서 어떤 변화가 보이면 예식은 성공한 것이 됩니다. 30분 후 포와예식이 끝났습니다. 링코체는 아미타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방에 보리를 던집니다. 링포체가 방에서 나가자 구경꾼들은 포와가 성공했는지 살펴봅니다.
“코에서 피가 나는군. 포와가 아주 잘 됐어.”
포와가 끝나자 부정한 것을 정화하기 위해 향을 피우고 체링 파르단에게 음식을 바칩니다.
“체링 파르단, 우리가 바치는 음식을 드시게나.”
육신을 떠난 채링 파르단의 의식은 이제 집 주위를 떠돌게 됩니다.
티베트에서는 인간의 환생에 대한 믿음 때문에 독특한 제도가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투크’ 즉 바로 ‘환생자에 대한 관습’입니다. 티베트 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도 바로 이 환생의 제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달라이라마가 서거하게 되면 그 환생자를 찾아서 다음 달라이라마로 추대하게 됩니다.
13대 달라이라마가 죽었을 때, 그의 환생을 찾아 티베트 전역을 돌아다닐 조사단이 결성되었습니다. 이 조사단은 13대 달라이라마가 평소에 사용했던 물건들을 알아보는 어린 소년을 찾아냈는데 이 소년은 13대 달라이라마만이 알았던 여러 가지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5살짜리 소년은 13대 달라이라마의 환생이라는 것을 정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나중에 이 어린 소년은 14대 달라이라마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50년 15살의 어린 나이에 그는 모든 권력을 부여받았습니다.
달라이라마
“우리가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삶은 또 다른 삶으로 계속 이어지고, 따라서 죽음은 하나의 기회일 뿐입니다. 삶이란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근사한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낡은 육신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으면 힘이 넘치는 새로운 육신으로 바꾸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며 깊은 내면의 경험을 실험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체링 파르단이 죽은 지 9일이 지났습니다. 내일이 화장일입니다. ‘사자의 서’에 의하면 8일 후엔 죽은 자의 의식 앞에 격노한 신 ‘마하칼리’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체링 파르단은 똑똑히 들으라. 이제 피를 마시는 격노한 신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의 몸은 짙은 붉은 색과 파란색이며 머리가 3개에 팔은 여섯 개, 그리고 네 개의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그들은 9개의 눈으로 격노한 표정을 지으며 당신을 노려본다. 그들은 피로 물든 사람의 해골을 걸고 크게 소리 지른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당황하지도 말라. 그들이 당신 마음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이 곧 깨침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것을 깨달으면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파르단의 화장일에는 눈이 그쳤습니다. 25명의 승려들이 이른 아침부터 경전을 외우고 있습니다. 이제 관을 내어갈 시간입니다. 승려들은 모두 정식으로 가사와 장성을 수하였습니다. 머리에 쓰는 관은 화장예식 때만 쓰는데, 죽은 자가 중음계을 방황하는 동안 만나는 5부처를 뜻합니다. 장례 행렬에 여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남자들만 화장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부엌에 틀어박혀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울고 있습니다. ‘사자의 서’에 의하면, 죽은 자도 자기의 장례식을 보며 슬퍼한다고 합니다.
“채링 파르단을 똑똑히 들으라. 당신의 친척들이 모두 슬퍼하며 울고 있다. 당신은 저들을 볼 수 있어도 저들은 당신을 못 본다. 당신은 저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저들은 당신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듣는다. 그래서 당신은 의기소침해지고 낙심하게 될 것이다. 또 당신은 장례식이 천천히 태만하게 거행되는 것을 보고 당신을 기만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매우 슬프고 절망하여 무심한 경지에서 멀어지게 되고, 그러면 믿는 마을을 잃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 믿음이 약하거나 불신감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이 불경하게 거행되더라도 순수한 마음에서 멀어지지 말아라. 믿음이 약해지는 것은 아주 위험해서 당신을 지옥같은 하계로 떨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을 순수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라다크에서는 밀교의 교리에 따라 향을 피우고 기도하며 화장을 진행합니다. 제단 위에 나무를 태워 하늘의 도움을 빌고 제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불 속에 던지며 악기를 연주하며 기도문을 외웁니다. 사자의 의식에서 순수하지 못한 것을 걸러내고 해탈의 길을 열어주는 이 의식은 아주 엄격한 종교적 예식입니다.
화장이 끝나면 경매가 열립니다. 환생을 믿는 라다크 사람들은 죽은 자가 남긴 모든 유품을 없앰으로서 죽은 친지와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립니다. 채링 파르단의 유품들은 절에 기증되고 그 자리에서 승려들은 마을사람들을 상대로 경매에 붙입니다. 거기서 나온 돈은 절에 기부됩니다.
화장한 지 사흘 후, 가족 한 사람이 파르단의 유해를 버리려고 산에 올라갑니다. 라다크에서는 죽은 자의 시신을 마치 낡은 옷 버리듯이 버립니다. 죽은 자의 유해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도 없습니다. ‘사자의 서’에 따르면 죽은 자의 의식은 49일이 되면 중음계를 벗어나 반드시 환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다크엔 매장식 무덤이 없습니다.
화장예식이 끝나고 유해를 내다 버리고 나서도 ‘사자의 서’를 계속 읽어줍니다. 죽은 지 21일이 지나면 사자는 환상을 위하는 새로운 중음계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채링 파르단은 똑똑히 들으라. 전생에 받은 육신은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대신 내생에 받을 육신이 서서히 뚜렷이 다가올 것이다. 그것을 깨달으면 슬퍼질 것이다. 내생에 어떻게 될 지보다도 하루빨리 환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당신 앞에 나타난 형상으로 기꺼이 다가가라. 그려면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가 매혹적인 빛으로 당신 앞에 나타난다.”
윤회를 믿는 라다크 사람들이지만 환생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의식은 소멸되지 않지만 인간의 의식이 그대로 다른 인간의 육신으로 환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아주 드문 경우에는 이미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환생하는 일이 생깁니다.
탈춤 축제는 매년 1월 말에 열립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이 축제에서 어린 소년 하나가 어떤 승려의 환생이라는 것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종단에 의해 환생을 정식으로 인정받았고 그 소식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라다크 전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우리는 이 소년이 그의 환생임을 확인했습니다. 라타크 전역이 이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환생한 사람은 7년 전에 사고로 죽은 미킨(?) 사원의 승려입니다. 53세 때, 인도에서 노동자 지위향상을 위한 시위에 참가했던 ‘소크라파’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라다크에 계엄령이 선포됐지만 소크라파의 장례식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2,000명이 참석했습니다. 나중에 인도 정부는 지위향상 요구를 받아들였고 소크라파는 라다크의 영웅이 됐습니다.
“그는 라다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더욱이 뚝똑한 소년으로 환생했으니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소트라파는 자기 마을에서 환생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농부의 막내 아들인 ‘조파’가 그의 환생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의 옆구리에 멍이 들어 있었죠. 자기가 총에 맞아 아프다고 하더군요. 그 멍은 소크라파가 총상을 입은 바로 그 부위예요.”
소트라파가 살았던 집입니다. 조파는 2살이 되자 이모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이모란 소크라파를 키우고 소크라파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던 소크라파의 이모였습니다. 조파른 소크라파 방에 들어가서 그가 평소에 사용했던 물건을 모두 알아봤습니다.
“어느 날 조파에게 차를 권했습니다. 찻잔 두 개를 내놓고 어떤 걸로 마실래 했더니 조카 소크라파가 늘 쓰던 그 잔을 고르더군요.”
8살이 되자 조파는 세라 사원에서 수행을 쌓기 위해 인도 남부 지방의 ‘미소’에 갔습니다. 세라 사원은 한 때 2만명의 학생이 수행했던 곳으로 티베트 불교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사원으로 손꼽혔습니다. 그러나 이 사원은 중국과의 교전으로 파괴됐고 결국 티베트 난민들은 이곳 미소에 사원을 재건했습니다. 이제는 약 2천명의 승려가 수련하고 있죠.
라다크 사람들은 조파가 위대한 선지식 즉 ‘예세(?)’가 돼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파가 세라 사원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냈습니다.
“전생에 누구였습니까?”
“소크라파였어요.”
“전생의 일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시위에 참가했었고 불교 유적지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았어요.”
사람들은 한창 혈기왕성할 때 총탄에 쓰러진 소크라파가 불교의 교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환생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체링 파르단이 죽은지 49일이 지났습니다. 눈도 녹고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가족들은 다시 일상생활로 되돌아왔습니다. ‘사자의 서’를 읽은 지도 49일이 됐습니다. ‘사자의 서’는 마지막에서 해탈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사자의 영혼에게 악계에 빠지지 않는 법을 가르칩니다. 채링 파르단이 악계에서 환생하지 않게 해달라고 온 가족이 모여 기도합니다.
“채링 파르단을 똑똑히 들으라. 삼보를 염소(?)하고 그 가피력(?)에 의지하라. 머리를 높이들고 날아가라. 남겨둔 사람들에 대한 애착을 모두 버려라. 이제 인간의 푸른빛으로 들어가라.”
파르단이 죽기 직전부터 계속 읽어줬던 경전은 죽은 자에게 용기를 주는 내용으로 끝납니다. 죽은 자를 안내하는 ‘사자의 서’의 임무는 이제 끝났습니다.
달라이라마
“가끔 죽음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난 매일 기도를 통해 죽음과 중음의 과정, 내 생을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고 내개 그 순간에 정말 이 과정을 완전히 이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흥분됩니다.”
3월입니다. 다른 집안으로 시집 간 히탄진의 증손녀 풍계산모가 다니려 왔습니다. 증손녀는 지난 1월에 낳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고손자를 데려왔어요.”
히탄진은 일어나서는 ‘까닥’이라는 흰 천을 준비했습니다. 보통은 성직자들이 내려주는 것이죠. 이 사내아이는 히탄진의 첫째 고손자입니다. 곰파 마을에서 고손자가 있는 집은 이 집뿐입니다. 자랑스런 고조 할아버지인 히탄진은 더 이상 행복할 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히탄진의 96번째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은 자을 위해서만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한 책입니다. 이 경전은 우리 현생의 모든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는 죽음에 대한 묵상과 준비를 설명해 줌으로써 삶과 죽음 이면에 있는 비밀을 알려줍니다.
“똑똑히 들으라. 죽음은 모든 사물에게 일어난다. 당신만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아무 애착도 갖고 있지 말라. 혹시 그런 애착이 남아 있으면, 이 세상에 계속 머물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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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주(아나운서)
불교 문화권이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윤회사상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만은 티베트에서는 앞서 보신 바와 마찬가지로 윤회와 환생에 대한 믿음이 그들의 삶에 깊게 뿌리내린 하나의 생활 관습이자 철학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을 비우고 겸허한 자세로 돌아간다고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소위 ‘임종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서도 종교계와 의학계를 중심으로 일부 시작되고 있습니다. 티벳의 위대한 경전 ‘바르도 토트돌’은 죽음의 준비가 돼어 있지 않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지혜로운 임종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사후세계에 대해서 알아보는 제2부 죽음과 환생의 49일간의 여행편을 방송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