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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했던 cbs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한 내용입니다.
지금보니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네요.
차의세계님께서 우리차 문화를 알릴 소재 기대하신다고 하셔서...^^; 뭐 소재가 갑자기 어디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늘상 생각을 머금어 보아야 하겠지만, 어떤 이슈들이나 시대상황에 기대거나 사람에 기대거나 등등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차 질문지를 다시 찾아본 이유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차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2006년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 추사의 일화가 머리속을 맴돌고 있던 차에 그 때의 그 일이 생각나서 추사의 일화와 오버랩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느낀 것이 있어서 이리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추사가 제주도 유배가는 길에 대둔사에 들러 초의선사에게 이광사의 글씨는 글씨도 아니라고 떼어버리라고 했다가, 유배가 풀려 돌아오는 길에 떼어버리라고 했던 현판을 다시 걸라고 한 일화 ' 말입니다.
저에게도 이 때의 일은 기억속에 그렇게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응답하라 2006 ' 인것도 같구요.^^; 전반적인 것이 다 포함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이 일에 대해서만을 얘기 해 보자면, 이 인터뷰를 하고나서 인터넷 기사가 나간 것에 대해 제목과 일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기사 내용에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는 것은 그때 인터넷 기사들 전반에 관한 문제였었지요. 제목은 그렇다쳐도 내용의 일부가 제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라서 전달이 잘못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었지요. 그리고 생각이 차맛어때 내부가 아니고 차맛어때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에 생각해보니 너무 부끄럽기만 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낀 이유는 그 뒤로 이러한 일들이 저에게 트라우마를 갇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가 되었다라는 것을 알게되니 부끄러움이 이는 것이지요. 그 일이 있는 뒤로 오해가 생기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럴 여지를 남기고 싶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 손을 벗어난 것들에 대하여 그것을 수습하기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사전에 판단하고 차단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구요.
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오해의 소지가 생기는 것들에 대하여 그것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는데, 그것을 반복하고 있었구나. 하는 패턴을 발견한 것이지요. 잘못된 반복은 과감하게 잘라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도 오해의 소지가 생길 것들에 대해서 반응할때 화를 낼 수도 있고 안낼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기질이나 성격은 쉽사리 바뀌는 것이 아니라서 개성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지금에 와서 이 때의 일이 부끄러운 이유는 화를 내고 스트레스 받고 그것이 다시 트라우마가 되고,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 나도 모르게 시달려 왔다는 것 때문입니다. 어떠한 문제나 사안이 내 손을 떠났을 때 문제가 저절로 굴러가서 터질 때 방향이 잘못되면 그것을 고스라니 사람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것을 느낀 것이지요. 물론 그 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잘 안나지만, 그때 그런 위험성에 대해서는 감지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시대 상황이 그랬던 것이지 그 기사 내용이 그런 것을 품고 있었다고 보기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무리가 있다라는 것이니, 그 당시에는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저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추사가 유배가 풀리고 다시 현판을 달아 놓으라고 한 이유도 관계에서 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추사가 화를 내고 모진말을 던지고 나중에 다시 그 말을 스스로 뒤엎어 버린 것은 부끄럽기 때문이고, 또한 관계를 그렇게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부끄러움은 자신의 행위도 포함되지만 마음자리가 갖는 것일거라고 봅니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말 것인가? 는 처음에 결정을 해야 하지만, 이미 관계를 맺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서로가 공유하는 토대에서 어떤 방식을 갖을 것인가? 고민을 해야 겠지만, 그리고 대처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라는 것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모르면 계속 자신이 자신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자신을 괴롭히면 주변도 괴로워지는 것일테구요. 관계도 매끄럽지 못하게 되고, 결국 상처를 받는 것은 스스로가 된다는 것이겠지요. 화를 어떤 대상에게 내었지만, 그 화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라는 것...' 부끄러움으로 되돌아 온다. ' 라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시 그런 일이 있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지적이나 정정을 요구할 것이고, 일부러 화를 낼 수도 있고 일부러 안 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대응방식을 최대한 매끄럽게 풀어가는 방향을 선택하려는 의지를 내보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기억도 안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기사를 쓰신 피디분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싶어집니다. 나쁜 의도도 아니고, 주목받게 기사를 써서 더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을 뿐인데, 그리고 자기의 일이었는데, 내안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 마음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상대가 나쁜 의도가 아니었어도, 서로 오해가 생기고 생겼던 것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내안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서 화를 내고 스트레스 받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스스로를 힘들어한 나에게 미안해집니다. 그러니 제가 부끄러움을 느낀 이유는 어쩌면 그것으로 나를 괴롭혔다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런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트라우마가 형성되어 스스로를 힘들어 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얘기일 수도 있구요..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060721142115381<기사 내용 입니다.^^;>
아래는 질문지 작성한 내용인데, 예전에 우리가 토론했던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다시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때와는 지금의 세상은 조금은 변했고, 시대적인 것도 변했는데, 차의 관한 담론은 한발자국도 앞으로 못 나간 느낌도 듭니다. 그럼 이런 담론이야말로 탁상공론일까요? 그때 현장에 뛰어들어 뭔가 성과를 내고 모델을 퍼트렸어야 했을까요? 실제 장사를 하는 분들과 매니아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의 괴리가 커서일까요?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보게됩니다.
창의는 탁상에서의 창의와 현장에서의 창의 방식은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탁상에서의 창의는 그야말로 전체적이고 원론적인 것을 다룬다면 현장에서의 창의는 전체를 보되 그 부분에 맞는 맞춤방식ㅇ 병행되어야 한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차맛어때는 카페를 기반으로 모이는 곳이기에 카페 위주의 얘기가 주가 되기도 하고, 차문화의 원론적인 것이 주가 될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차문화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얘기하므로, 이 둘이 때로는 모순이 되기도 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차문화를 통하여 실질적인 수익성 사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실질적으로 수익성 사업을 하는 사람들 간에는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 둘을 모두 차맛어때는 아울러서 가다보니 더 이상 담론의 진전은 없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매니아들은 차공부해서 자신의 차생활을 하면 되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적합모델을 계속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직접 부딪혀 알맞은 모델을 창의하는 방향도 병행이 되었어야 하는데, 매니아들은 모임이 주고, 그러다보니 비상업성이라서 그 틀안에 너무 갇혔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현장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차맛어때는 유지 되었을까? 엄청난 공격을 그 당시에 받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당시 차맛어때는 커져가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심이 단단하게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고 보이니까요. 분열의 소지가 있어서 모두 비상업적 방향을 선호했던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차맛어때가 갈 방향은 그 방향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지금의 차문화 현실을 보자면 만약에 실질적인 현장과 병행을 했다면 한국차가 지금보다는 번성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는 불필요하고, 지금의 길이 최선이었다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어떤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그때 이 공간에 저도 있었고 모두가 이 공간에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부분은 차맛어때라는 공간에서 제가 느끼는 단상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염두에 두어 주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길재의 시를 한편 올립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아래 질문지와 토론을 보며 드는 생각은 커피문화에 대한 환경은 많이 변했고, 여전히 성업중이며, 저도 커피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했고, 하지만 이때 제가 써놓은 글과 의견에서 차문화에 대한 생각의 골격과 방향은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시대적인 것과 환경적인 것은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차문화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답보 상태라고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커피의 수요가 크고 커피전문점들이나 카페들이 생겨나기에 커피문화가 번성하는 것이고, 이는 기업뿐 아니라 민간자본들이 커피시장에 침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차문화도 수요가 커지고 찻집들과 차카페들이나 차문화복한공간들이 생겨나고, 민간자본들이 침투해야 된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그런데 언제나 걸리는 것은 차문화 수요의 크기를 늘리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네요. 다람쥐 체바퀴 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보이지 않게 변화되는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래 댓글 토론 내용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 길재의 시를 패러디 해 보았습니다.
10여년 인터넷 차맛 공간을 바람처럼 돌아드니
차맛어때는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어즈버 차맛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인터뷰 질문지 작성 내용과 댓글 -
질문1 :
- ‘차맛 어때’, 언제 생긴 전통차 동호회? 회원이 얼마나? 주로 어디서 번개?
----차맛어때 카페는 2001년에 후박나무님이 개설하셨고,스님이시고,올해로 5년5개월 됐다.
회원은 7000명이고,다회는 전국적으로 지역 소모임에서 행해지고 있구요,
서울은 주로 인사동과 회원들 다실에서 합니다.
질문2 :
-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캔 음료 시장에서
녹차가 커피를 앞지르지 않았나.
또 녹차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전통차도 계속 출시되고 있는데,
캔 음료 시장과는 반대로, 찻집은 커피전문점이 압도적!
왜 이렇다고 보시나?
----커피전문점은 거대자본과 기업이 관여를 하고,시장조사와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하고 나서
체인점 형식으로 늘려가는데 비해서,우리나라 찻집은 개인이 소자본이나 취미로 합니다.그러다보니 지속성이 떨어지고
경쟁에서 많이 도태된다고 봅니다.
질문3:
- 전통차는 가공된 캔 음료로 편의점에서 사 마시고,
커피는 비싼 돈 내고 S 커피전문점을 찾아서 분위기를 낸다,
이거 좀 전통차 애호가 입장에서 속 안 상하시나? 어떤 생각이 드시나?
-----기분이 조금은 애매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소비가 늘어나면 공급이 따라 주어야 하는데,캔음료로서의 공급은 계속 증가하는데,
찻집의 증가는 따라 주지를 못하고...특히나 서울만해도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마시는 문화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차는 여러가지 다양하게 판매가 되나...정작 차문화가 고루 퍼져 있지를 않아서 오는 역반응 이라고 생각 합니다.
조금은 불편하나 여유를 갖고 다구를 가지고 차를 마시는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차를 집에서 다실을 꾸며 마시는 분들은 증가하고 있다고 봅니다.
질문4
-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의 차 문화에 끼친 영향을 좋게 평가?
-----반반이라고 생각 합니다.누구나 사회활동을 할수 있는 요즘에 사람이 만나는 장소는 꼭 필요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면에서는 성공했다고 봅니다.경영과 방법적인 것에 있어서는 배워야 될것도 많다고 봅니다.
스타벅스는 이시대의 트랜드라고 보면 될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스타벅스가 지나고 나면 또다른 대안이
등장 하겠지요.그러나,우리의 문화를 져버리고서는 다른것에서 대안을 찾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
솔직이 그 시점에서 우리의 차문화가 그자리를 메꾸어 주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스타벅스는 문화와 유행에 편승해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또한 한시대의 문화였다고 보아야 되겠지요...
그러나..차 문화는 한시대만이 아니고 과거에서 앞으로도 세세로 이어져야 될 문화라고 봅니다.
스타벅스가 가지고 있는 보여지는 문화,과시하는 문화,트랜드의 문화,동적인 문화에서
정적이지만,아주 강력한 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차문화로의 이동은 내면의 공허함을 채울수 있는 문화,
과시되지 않지만 가득찬 문화,소통과 어울림의 남녀노소를 막론하는 대화의 문화,넘쳐 흐르는 지식과 정보들의
대해서 자신의 주관을 가질수 있고 가장 중요한것은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질문5
- 지금 S 커피전문점을 찾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커피맛도 맛이겠지만,
그보다 “문화와 이미지”를 즐기러 가는 게 사실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전통차 문화는 이렇게 다가설 수 없는 걸까?
---충분히 전통차 문화에 다가설수 있구요..먼저 차를 접했던 분들이 그러한 배려를 해주어야 겠지요.
차문화 자체가 개인의 수양도 중요하지만 어울림과 소통의 문화라고 생각하기에
젊은세대들이 관심을 가지고 차를 마시려 노력 한다면 문화와 이미지를 충분히 느낄수 있다는 생각이 들구요.
차를 그저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느끼면서 마시는 차는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데도 영향을 많이 준다고 생각 합니다.
질문6
- 요즘 전통차를 즐기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젊은 세대에서 많이 늘고 있다고 느끼시나?
------네,젊은 세대에서 우리차의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관심만큼 충족을 채워주는것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아마도 차문화의 접근 방식이나 장소가 부족 하다는것도 한몫 하는것으로 보여 집니다.
질문7
-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시나? 어떤 매력?
----일단은 또래집단 보다는 다양한 연령대와 대화가 가능하고,차를 마시다 보면 알게 모르게
배워지는게 많다고 봅니다.차의 푹빠진 20~30대 의외로 많습니다.
차는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넓고 깊어지게 만들어 주기에 한번 길을 잘 찾아 들면
차가 주는 멋스러움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질문8
-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 전통찻집도 뭔가 다른 전략이 필요한 거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우리 전통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막상 전통찻집은 인사동에 몰려 있는 소담한 전통찻집 말고는
딱 생각나는 전통찻집이 별로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리 자본이 없더라도, 전통찻집이 이렇게만 가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스타벅스는 꾸준이 시대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경영해 왔으나
우리의 차문화는 아직 그런 준비 단계가 부족합니다.
역량은 충분하다고 보나 시설적인 것이나,차문화에 대한 홍보적 수준이나,
그 차를 알리는 단체나,기관이나 모든 면에서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차문화가 퍼져나갈 잠재된 것은 이제 꿈툴거리기 시작했으나...
현실적으로는 부족한것들이 많다고 봅니다.
현제로서는 우리의 차문화가 퍼져가지 못하는 한계점이 분명이 있다고 봅니다.
좀더 친숙하고 쉽고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일단은 찻집들이 더 많이 보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가정에서 접할수 있게 집안으로 차문화를 끌어 들이려는 노력도 필요 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것은 차문화의 정착 입니다.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차문화의 거부감이 없을때가 완전한 차문화의 정착 이겠지요...
그래서 차맛어때에서는 전국 각 소모임에서 다회를 주관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역에 차문화를 정착 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합니다.
각 지역에 차문화가 정착이 되어야 그것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우리의 차문화다라고 할수 있겠지요.
일부 지역에 국한되는것은 지역의 문화로만 인식될 우려가 있고 하니,
우리의 문화라고 내세우는데는 조금 한계가 있겠지요.
스타벅스가 세계속에서 한 시대의 문화가 되었듯이...
우리의 차문화도 세계속의 문화가 되기를 바라고 한시대가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로 남기를 바랍니다.
문화란 자본과 소비와 공급 그리고, 그나라의 정신과의 결합이라고 생각 합니다.
말로만 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하구요...
올바른 차문화 정착에 많은 분들이 참여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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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란도님 말씀대로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란 여러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진보된 생활양식과 다양한 문화로 재창출 되어야 차가 발전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두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는, 대중성을 위해 차 도구의 혁신이 필요하고
둘은, 차와 더불어 지켜 온 정신사상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생활속에서 보편화되기엔 지금의 다기는 한계가 있고, 보다 간편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커피문화와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차의 가치를 저버리고 대중화로만 간다면 이는 슬픈일입니다. 따라서 차가 정신사상에 스며들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에서 고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물흐르듯님 말씀대로 차도구의 혁신은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기의 형태는 시대를 흘러오면서 조금씩은 변했다고 보입니다. 용량적인 면에서도 그렇구요. 미와 실용성을 갖춘 방향이 포기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여겨지구요. 심미적인 차도구와 자신이 주로 쓰는 차도구들을 살펴보면 그 용도가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보입니다. 만족을 위해서와 사용하기 편한 것은 일상에서도 구분되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 둘을 모두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 이겠지요.
차도구를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경향은 찻집이나 차카페에서도 발견된다고 보입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차를 접한지 얼마 안된분들은 누군가의 조언 없이는 대체적으로 화려한 다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때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판매를 권하는 분들도 그렇게 유도하는 경향도 있다고 보이구요.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 실용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자신의 차생활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차도구를 선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거구요.
찻집 같은 경우를 예를 든다 하여도, 차를 접한지 얼마 안되거나 혹은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잘 알지 못하신 분들은 대체로 대용차, 화차, 공예차, 허브차, 가향차를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종류들이 오히려 차카페로서 더 입지를 먼저 자리잡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요인은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들이 하나의 메뉴판을 구성하기에는 부족했던 시기들이 있었고, 그러한 시대에 이러한 차들이 그런 자리를 먼저 메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접근성이 편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차들은 대체로 시각적 만족과 후각적 만족과 웰빙에 기대고 있었다고도 보입니다. 그리고 요즘 화차, 가향차, 허브차, 공예차 위주로 차카페를 하는 곳들은 시각적 효과로 소비자를 끌어 들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서 차로 만들기도 하고, 시각적 효과와 건강을 주 테마로 삼고 있다고도 보입니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들은 모두 대용차의 영역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차이점은 일반인은 차를 시각적. 웰빙, 분위기로 접근하는 경향이 크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차 그 자체로 접근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래서 차라리 차를 그다지 몰라도 전자입장에서 접근하면 오히려 수월하게 차카페를 할 수도 있습니다.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는 부분이니까요. 그러나 후자의 입장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찻집이나 차카페를 하면 고민이 커집니다. 대체로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주로 마시는 사람들은 대용차를 크게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여겨집니다. 화차도 가끔씩이지요. 매일 마시지는 않는다고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가향차나 여러가지 섞어진 재료로 만든 차를 마시지 않으면서 소비자에게 자신이 마시지 않는 차를 팔기란 큰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떠나서라도 사람은 자신이 자신있는 것을 하고 싶어하지 자신없고, 관심없는 부분을 다루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섞지 않고 순수하게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만을 즐기는 사람들은 섞은 차맛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시음할 때라도 같은 차나무 찻잎을 병배한 것이 아니라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선호하는 사람이 찻집이나 차카페를 한다고 할 때 소비자를 끌어오려고 미끼상픔으로 시각적 만족의 차를 판다고 했을 때, 고민은 깊어질 수 있다고 보입니다. 솔직히 그렇게 권하고 싶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일반인의 생각은 다릅니다. 일반인들도 자신들의 생각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차를 알 때까지는, 관점의 차이가 대두되어 오히려 대립이 되는 경우들도 생깁니다. 이것은 설득과 그저 한번의 말로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모두 알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부분 역시 딜레마일 수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니 찻집이든 차카페든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거부반응 없이 전파 시킬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차의 종류와 그 영역의 구분과, 차나무 잎차와 일반적 다양한 식물로 만든 차에 관하여 전반적인 구분을 먼저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편한 방법은 방송사에서 차의관한 구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서 퍼트려 주는 것이겠지요.ㅋㅋ^^..제 희망사항이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를 얘기한다면, 차맛어때를 예로 들겠습니다. 차맛어때 카페에 가입하라는 말을 언제 부턴가 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면 뭐하나요? 차를 제대로 얘기하고 접하게 해줄 장소와 시간이 어려운데..., 그저 카페에서 질문하고 자료 스스로 찾아보고 하시라는 것 외에는 달리 해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찾아오는 분들 중에서 전부다는 아닐지라도 일부의 사람들일지라도 차를 배우거나 얘기하고 같이 마시고자 찾아 오시는 것일텐데, 다회를 통한 시간 외에는 딱히 뭔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실적인 면들이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시간을 전부 내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차를 같이 마시고 대화하고, 알려주고 ...이러한 행위를 할 장소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찻집의 활성화를 위해 주로 찻집을 활용했으나 그 역시 우리의 뜻과 상대의 뜻과 어긋나는 부분들도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일시적이고 모여서 차만을 얘기한다는 것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차만을 얘기하기 위해 오시기도 하고, 차만을 배우기 위해 오시는 분들도 계시나 친목적인 의미도 있으므로, 이 모두를 한정된 시간에 다 해결하기란 사실 어렵습니다. 그리고 차 공부만을 위해서 모일 수도 없고, 친목적인 것만을 강조하면 정작 차를 알고 대화하고 배우고자 하는 분들은 또 소외됩니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문제점들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비상업성 취지와 찻집들의 활성화에 기여하자 라는 취지에서 특정 장소에 대한 것은 접어 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개인의 다실들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갔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전반적인 것들은 모두 우리의 인식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인식을 바꿈으로서 또 새로운 세상과 길이 열리기도 하지요. 멈추어 있을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수요가 공급보다 먼저이지만, 이것을 깨는 방식은 수요를 창의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수요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겠지요. 세상에서 창의한 모든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소비하게 만든 것이라고 여깁니다.
즉 자신의 아이디어로 시장을 만들고 수요를 창출한 것이겠지요. 그동안 없던 수요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수요는 늘 있다고 보입니다. 단지 그 수요를 발견하는 것이 겠지요. 예를 들자면 예전에도 전화가는 있었고, 핸드폰은 그랬으면 좋겠다 였는데 현실화 되었고, 잡스는 그 부분인 IT 부분을 창의해서 스마트폰 시장을 만들어서 수요를 발견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경우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등시해는 노차에 관한 책을 써서 수요를 발견했으니 ..이것도 창의라면 창의라고 보입니다.
창의는 수요를 발견해서 시장을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것을 어떤 생각을 소비하는가에 따라서 문화의 양상은 달라지겠지요. 차시장과 차문화도 그런 수요를 창의하는 방향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혹여 고민이 있으신 분들은 이러한 부분을 참고 하셔도 좋지 않을까 해서 써 보았습니다. 그리고 위의 글에 댓글은 자신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이므로 자신의 생각을 그저 써 보는 방식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