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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시인 초청 문학강연을 듣고서
오렌지 글사랑 모임에서 황동규시인 초청강연을 개최했다. 특히 황동규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나온 동문이라 더욱 친근감을 갖고 이 강연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나와 나이가 동갑이고 대학 졸업도 나와 같은해에 했고 유명한 시인이라 직접 뵙기가 쉬운일이 아니어서 동생이 South Bay 수필토방 회장으로 같은날 처음 오프닝이 있으니 자기한테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뿌리치고 기회를 놓칠수 없어서 동생한테는 미안하지만 황동규시인 강연에 다녀왔다.
처음 뵈온 인상은 몸이 매우 연약해 보였다. 많은 병을 앓으셨지만 그만큼이라도 건강을 되 찾은것이 퍽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나도 병약한 몸으로 많은 병을 앓아서인지 동병상련의 연민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더 잘 이해할수가 있었다.
그의 강연 주제는 ‘인간의 아픔’에 대한 것이었다. 여러 질병을 통하여 느꼈던 고통을 채로 걸러내어 정화시켜 진주알 같은 진실을 토해내는 아름다운 글로 승화 시켰다.
그는 인간의 아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그냥 병이 없는것 보다는 병을 앓고 병이 낫는 곳에서 병을 이기는 곳에서 인간의맛을 보는일, 그것이 병이 없는 무병의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삶입니다’
‘그 아픔이후 아픔과 아픔의 극복을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종교나 철학적인 차원의 해결이 아니라 아픔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시키는 예술의 장에서 만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세익스피어의 비극,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작, 엘리엇의 후기시, 그리고 규모야 어떻든 내 후기시의 한 특징이라고 생각한 것은 지금부터 오륙 년 전부터입니다. 다시 말해 아픔을 통해 인간을 새로이 만나고 사물을 새로 깊이 보며 또 그 아픔의 나음을 통해 삶의 맛을 보는 상황을 노래하는 작품을그때 부터 의식을 갖고 쓰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듯 많은 질병을 겪고 지난 3월에 상재한 시집[겨울밤 0시5분]으로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한바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 시집의 많은 작품들이 인간들이 병을 이겨내는 고통과 환희에 관한 것들입니다. 무병보다는 앓다가 낫는 맛이 삶의 맛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인간을 그 무엇보다도 앓을수 있는 존재로 보기 시작한 것도 이 시집입니다, 표제작 [겨울밤 0시 5분]이 전형적인 예일것입니다.’
그의 시한편을 소개한다.
어떤 나무
다시는 세상에 출몰하지 않으려고
배에 돌을 달고 물속에 뛰어든 사람
그 중엔 밧줄 풀어져
막 풀어진 눈으로
세상구경 다시 한사람도 있다.
안부 궁금하다
한 오백년 살며
몇차례 큰 수술하고
사람 머리보다 더 큰 돌덩이 여럿 배에 넣고
넉넉하게 서 있던 나무
제주 애월에선가 만난 팽나무
그 몸으로 어디 뛰어들어도
되 떠올라 어리둥절할 일 없으리.
어느 날 돌덩이들만 땅에 내려
어리둥절하리.
그는 병을 앓는 고통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 늙어 가면서 일어나는 몸의 여러 변화에 대해서도 시를 쓰고 그 아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까지 자기 것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기가 그저 글을 써야지 하고 글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노력해서 쓰는 글은 훌륭한 글이될수 없다고 했고 인간의 어떤 고통을 통해서 발견한 어떤 진실을 쓰기 싫어도 세상에 알려야 하겠기에 쓰지 않고는 못 베기는 그 진실이 글로 표출되었을때 훌륭한 글이 된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작품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돌아온 후 쓰여졌는데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기점으로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
조프의 형제’들이 그의 후기 대표작품이다. 그리고 엘리엇의 시는 ‘황무지’를 중심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인 ‘4개의 사중주’는 제 2차 대전중에 썼다. 인간의 위기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의 재생에 관한 명상을 표현힌 것으로 신앙으로의 길과 은총에 대한 자각을 중심 테마로 삼은 종교시이다.
또한 좋은 예로 미켈란제로에 대해 언급하셨다. 미켈란 제로가 1508년 교황 유리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 성당’ 의 천정 벽화를 그리다가 관절염과 근육 경련병을 얻어4년 동안 발판위에 누워서 작업을 했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 안료로 인해 눈병도 생겨서 평생 연약한 몸으로 살았지만 그 고통을 통하여 불휴의 명작 ‘최후의 심판’을 완성할수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좋은 작품은 문학이든 미술이든 조각이든 큰 고통을 통하여 이루어 질수가 있기 때문에 인간에 있어서 고통은 불행이 아니라 그 고통을 선용할때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황동규시인의 강연을 통해 너무나 공감되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 나도 많은 병을 앓았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을 통해 삶의 진수가 글로 표출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 시인의 고백처럼 쓰지않고는 못 견디는 보이지 않는 큰 힘이 내속에서 솟아 오를때 나는영감을 받아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늦다고 생각지 않고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글을 쓰리라.
황동규시인 동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황순원 문학촌 건립으로 매우 다망한 가운데도 초청에 응하시고 좋은 말씀으로 문학 지망생들께 용기와 격려를 주심에 심심한 사의 를 재삼 표합니다.
도니제티의 <연대의 아가씨> 중에서 토니오의 아리아
'친구여, 오늘은 즐거운 날'
Gaetano Donizetti (1797 - 1848) / 'Ah! mes amis... Pour mon ame'
from La fille du regiment
‘
첫댓글 김수영 선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황교수님께 영미비평문학론과 현대영미시 등을 들었었는데, 언제나 호기심과 열의가 가득찬 눈으로 황무지를 열강하시던 그 쟁쟁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 하군요.
동문님의 스승이셨군요. 저는 영국에서 온 교환교수님에게 황무지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시 가운데 '군중속에 고독'이란 시 구절이 생각나네요.
제가 서울에서 중학교 다닐 적에는 영어를 가르치셨는데,,무척 많이 맞았습니다,,,
교수님이 중학교 교사도 하셨나 보죠. 대학 졸업하시자 마자 교편을 잡으신것 같군요. 영어공부를 잘 못하셔서 매맞으신것 아닌가요? ㅎ ㅎ ㅎ
인식아, 반갑다. 여기서 니 이름보니깐 더욱 반갑네 그란데 니 중학교 서울서 나왔나? 난 니가 부산에서 중학교 다닌걸로 여태것 알고 있았다 아이가.
서울에서 중학교 다녔다,매를 주로 맞은 것은 시집을 사서 읽고 숙제를 해야 하는데..거기에 반기를 주로 들었던 탓입니다,비슷한 사례로 황금찬 시인님께서 국어를 가르치셨는데,,그때도 시를 외우고 하는 문제로 두꺼비 같은 손에 따귀를 맞으면 하루종일 얼얼했습니다,,,
동문님은 시를 별로 안 좋아 하셨나요? 그렇게 생각이 안되는데요. 시도 자기가 좋아하는 시가 따로 있긴 합니다만.....훌륭한 두분의 스승을 모셨군요. 훌륭한 스승에 훌륭한 제자 - 어울리는 데요.
중학생이 교과서 나오는 문학작품 이해해서 시험치는 것도 벅찬데,어려운 시집을 그것도 구입해서 읽고 숙제하는 것이 어렵지요,, 그래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그 당시 시집을 산다는 것이 금액면애서도 쉽지 않았고요,,,1960년대말 이야기입니다,, 시를 좋아하고 안 하고의 차원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