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에서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전기가 백이열전입니다. 백이열전에서 백이와 숙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이라는 나라 군주의 첫째와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가 셋째인 숙제를 군주로 세우고자 하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셋째 아들인 숙제는 "큰아들이 있는데 군주가 될 수 없다"고 백이에게 군주 자리를 양보하니 백이는 "아버지가 셋째를 군주로 세우라고 명하신 것인데 내가 군주가 될 수 없다."고 도망을 갔다. 그러자 숙제도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를 거부하고 역시 도망갔다. 고죽국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둘째 아들을 군주로 세웠다.>
여기까지는 군주 자리를 서로 양보한 형제의 미담입니다. 둘 다 올곧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백이와 숙제를 두고 <공자는 "지난날의 미움에 개의치 않았으며 그런 까닭으로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이 거의 없었다.">고 칭찬합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함께 도망쳐서 돌아다니던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서백 창이 노인을 잘 모신다는 소문을 듣고 주나라를 찾아가니, 이미 서백 창은 죽고 아들 무왕이 아버지 서백 창을 문왕으로 추승하고,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나라의 주왕을 치러가고 있었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 효입니까? 신하된 자로 군주를 치러가는 것이 인(仁)입니까?."라고 말리니 무왕의 신하들이 이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강태공이 "이들은 의인이다."라고 말하면서 풀어주었다. 마침내 주 무왕은 은 주왕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자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생각해서 의롭지 않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었다.>
은나라의 주왕은 하나라의 걸과 더불어 폭군의 대명사인 걸주로 알려진 왕중의 한명입니다. 이런 폭군을 정벌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지만 백이와 숙제는 지나치게 고지식해서 폭력으로 폭력을 제거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비폭력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군주 자리를 양보할 때 이미 이런 고지식함의 싹이 보였습니다. "그럼 어떡하라고?"라는 반박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폭군의 치세를 그냥 견디라는 소리인지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이런 물음에 대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천하가 주나라에 돌아갔고, 따라서 모든 곡식은 주나라땅에서 산출되는 것이므로 의롭지 않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는 이 고집은 어이없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백이와 숙제는 조금의 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평화주의자이고 이상주의자라고 평가할만 하고, 그래서 공자를 비롯한 중국 사람들이 백이와 숙제를 존숭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백이와 숙제 보다 더 고지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거부하고 수양산의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었지만, 사육신 중의 한명인 성삼문은 백이와 숙제가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고 비난합니다. 성삼문이 지은 시조가 있습니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하노라
주려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는 것인가
비록애 푸새엣 것인듯 그 뉘땅에 났는가>
이제(夷齊)는 백이와 숙제를 말하는 것이고, 채미(採薇)는 고사리를 캔다는 뜻입니다. 시조의 내용은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원망한다. 굶어 죽을지언정 어떻게 고사리를 캔단 말인가? 비록 하찮은 푸성귀라도 역시 주나라땅에서 나오는 것이니 먹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주나라 곡식을 먹지 못하겠다면 주나라 고사리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백이와 숙제의 절개를 뛰어넘는 절개를 보인 사람이 성삼문이었습니다. 중국사람들이 백이와 숙제의 이상주의를 존숭하듯이 우리는 성삼문의 이상주의도 평가하고 존숭해야할 것입니다. 성삼문이 죽음을 앞두고 썼다는 절명시(絶命詩)가 있습니다.
격고최인명 (擊鼓催人命)
회두일욕사 (回頭日欲斜)
황천무객점 (黃泉無客店)
금야숙수가 (今夜宿誰家)
북소리가 이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지는 해는 서산을 넘어,
황천길에 주막도 없다든데
오늘 밤은 뉘 집 찾아 쉬어 갈거나.
성삼문의 마지막을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세상은 '안되는줄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발전하는 것입니다. 현실성없는 이상주의라고 함부로 매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이상주의를 등대삼아 역사는 조금씩 조금씩 전진합니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굶어 죽기전에 지었다는 노래를 소개합니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는데도,
그 잘못을 모르네.
신농이나 순임금, 하나라는 홀연 사라졌으니,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아! 죽음뿐이네,
이제 목숨도 다해가는구나.>
공자는 "백이와 숙제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마천은 위 노래로 볼 때 백이와 숙제도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이와 숙제같은 올곧은 사람이 굶어죽은 것이 안타까웠던 사마천은 <노자 제79장>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면서 과연 천도는 옳은지 그른지 묻고 있습니다.
<하늘의 도는 누구를 편들지 않지만 (天道無親)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하게 마련이다. (常與善人)>
백이와 숙제같은 착한 사람은 비참하게 굶어 죽었고, 공자의 제자 중에 학문을 좋아한다고 공자가 유일하게 칭찬했던 안회는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못해 젊은 나이에 죽었고, 반면에 도척이라는 도둑놈은 매일같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먹는등 흉포했지만, 천하를 활보하다가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니 도대체 이런 것이 천도라면 이런 천도가 옳은 것이냐고 사마천은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이열전에서 인용하는 노자의 제79장에 나오는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는 말은 제5장에 나오는 천지불인(天地不仁)과 같은 뜻의 말입니다. 김용옥 선생의 노자해설서인 '노자가 옳았다'에는 이렇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천지불인은, 천지의 운행이나 활동,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감이나 바램과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의 생성법칙과 조화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좀 야속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자연의 운행은 인간과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도무친(天道無親)도 하늘의 도는 인간이 착하다고 더 가까이 하지도 않고 악하다고 멀리 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니 선인이나 악인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덕적인 선(善)과 세속적인 복(福)이 꼭 일치하지 않은 것이 원래 세상의 법칙이고 그 법칙을 천도라고 한다면, 사마천이 그 천도가 옳으냐 그르냐 물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천도가 이렇게 무정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늘의 도는 우리가 뭐를 하든 상관하지 않으니 결국 인간들 각자가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마천은 공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길이 같지 않으면 같이 일하지않는다." "부귀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천한 일이라도 할테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추운 시기가 되어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늘 푸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
인격신이나 내세, 윤회의 개념이 없던 공자를 비롯한 중국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현세의 부귀를 누리지 못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산다면, 천도(天道)는 보상해주지 않아도 역사에 이름을 남겨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백이와 숙제는 어진 사람이고, 안회는 학문에 힘을 쏟았지만 공자가 칭송해서 더 이름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시골 사람이 품행을 닦고 이름을 널리 알리고자 하여도 학문과 덕망을 갖춘 선비가 거론하지 않으면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올곧은 품성을 갖추고 뛰어난 공적을 세운 사람들이 후세에 잊히지 않게 하기위해서 사마천 자신이 <사기>를 저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열전의 첫편인 백이열전에서 사기를 쓰는 목적과 이유를 서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