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 용화여고 교장 선생님은 내용증명을 통해 `선처의 차원에서 학생의 퇴학을 철회하였다. 후속 처리 문제는 허성혜 및 학부모님의 희망 여하에 따라 선도처리 수위를 결정할 것이며 또한 허성혜 및 학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자퇴 또는 전학을 허용할 예정이다. 2월 21일까지 서면으로 응답을 주기 바라며 응답이 없을 시는 임의 처리할 것이다.` 라는 학교측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현재 학교측에서는 이 사건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학생에게 전가하려 있고, 구명운동과정에서 교감 선생님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교사 3명에 대해서는 `학생과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끝까지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범대위에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차례 교육청의 재진상조사단 파견을 요청하였으나, 묵묵부답일 뿐입니다.
이에 용화여고 사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진상 재조사조차 거부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을 응징하기로 연석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학생의 인권을 유린하는 반교육적 부패사학을 옹호하는 서울시교육청의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28일 3시에 용화여고 범대위 주최로 `용화여고 진실은폐 시민,교사,학생 서울시교육청 규탄대회`를 개최하고자 하오니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집회 일정]
<용화여고 진실은폐 시민,교사,학생 서울시교육청 규탄대회>
-일시 : 2월 28일(금) 늦은 3시
-장소 : 서울시 교육청 앞
-주최 : 용화여고 학생 부당 징계 철회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
-문화 공연 : 노동자 노래패 `꽃다지` 및 교사 풍물패
-오시는 길 :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적십자병원쪽으로, 삼성병원언덕으로 좌회전 약 3분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2월 18일 허성혜 학생이 다음 카페에 올린 글]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수많은 날들을 가슴 아파하며..
피눈물로 밤을 지새며 가슴에 멍이 들 때까지..
아파서 눈물이 날 때까지 가슴을 쳤습니다.
얼마나 못난 년이기에.. 부모를 학교에 빌러오게 하고..
얼마나 못난 년이기에.. 소중한 선생님들을 경찰서로 보내고..
얼마나 못난 년이기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 흘리게 만들고.. 가슴 아파하게 했는지...
참.. 한스럽고 원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2002년 6월.. 월드컵 응원.. 붉은 악마 그 함성 속에서
내 동생들, 미선이. 효순이가 탱크에 깔려 하늘로 가버렸고..
나는 6월의 그 함성 속에 교복을 입고 경찰서에 갔습니다.
2002년 12월...
끊임없는 괴롭힘의 결과는 빨간 글씨, 퇴학이었습니다.
퇴학을 당했다. 라는 한마디로..
집안 친척들은 모두들 차갑게 나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동정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엄마 없어도 동정 안 받았는데,
이런 일로 내가 동정의 대상이 되다니요. 그것도 가족들에게.
12월 14일.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박스에 접어 정리해놓고.
나는 계속 웃으면서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나오는 눈물은..
내 맘대로 멈추진 않았습니다..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신 선생님들께도,
감히 왜 나를 도와주지 않냐고 원망 섞인 투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얼마 전 다시 교복을 입었습니다.
어찌나 불편하던지요. 안 입던 사이에 왜 이렇게도 어색해졌는지..
그렇게 불편했던 사복이 더 편하고, 교복 마이가 불편했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은 다 그대로였는데..
나만 너무 커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미 아이들의 화제와는 동떨어진 나의 화제거리..
아이들이 강타, 신화, GOD를 따지고 남자친구 얘기를 할 때..
나는 앞으로의 법적 소송문제를 생각해야했습니다.
새로 공부를 해보려고 책을 폈지만 맘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머리에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내가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더 가슴아팠습니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요. 란 어리석은 원망도 함께..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내 곁에는 너무 좋은 선생님들, 선배들, 친구들, 후배들, 가족들.
그리고 수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그래도 눈물이 흐르는 건 왜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