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사의『겁외가』중에서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라
세상 공부는 많이 배우고 기술을 익혀 학력을 인정받음으로서 안으로는 인격을 형성하고 밖으로는 생활의 도구를 장만하는 것이지만 불교공부는 마음을 깨달아 세상을 편안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 오히려 아는 것도 잊어버려야 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속에서는 필요 없는 중이라고 하여 세속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견성공부를 하는데는 문자 비문자가 필요가 없으나 중생을 제도하는데는 그들의 수준과 근기를 알아야 하므로 방편을 익히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화엄경』 10바라밀 가운데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다음은 원(願), 방편, 힘(力), 지(智)가 있나니 곧 중생을 위한 원이요, 방편이며, 중생을 위해 기르는 힘이고 지혜다. 10바라밀 중 제6지는 본성을 깨닫는 지혜이고 제10 지혜는 후득지로서 갖가지 기능을 익히는 지혜이다.
옛날 고산 지원법사가 『치문』의 「면학편」을 지었는데 ‘배움은 가히 게을리 하지 못할 것이고 도는 가히 여의지 못할 것이다. 도가 배움을 말미암아 밝아지기 때문이다.’ 하였다.
범부의 배움이 게으르지 아니하면 현인에 이르고 현인의 배움이 게으르지 아니하면 성현에 이른다. 남산에 대나무가 있어 베어 쓰면 곧으므로 화살로 쓸 수 있지만 만일 대를 베어 갉고 촉을 박고 깃을 달면 그 듦이 더욱 깊이 된다. 공자님의 제자 안연이 아주 머리가 좋았으나 출중하게 되지 못한 것은 게으른 탓이었다. 강한 것은 부드러운데서 배우고 부드러운 것은 강한데서 배운다. 따라서 남녀, 음양, 노소, 강약이 모두 상대적 개념 속에서 서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나니 그것이 곧 인류의 역사요, 사랑이요, 정치, 경제, 사회, 문학이다.
누구나 하루에 글자 한자를 배운다면 1년이면 365글자가 되고 착한 말 한마디씩을 배운다면 365마디가 될 것이다. 이렇게 10년 20년을 계속하면 마침내 만자(萬字) 천선(千善)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어느 것 하나 섭렵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될 것이고 선 또한 행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고소 경덕사 운법사는 공부하는 사람의 탁마 과정을 10가지로 적어 훈계하였는데 첫째, 계정혜 삼학을 익혀야 보리 즉 깨달음을 얻는다 하였고, 둘째 공부하고자 하는 자는 하심하여야 좋은 벗과 스승을 만나게 된다 하였으며, 셋째, 스승을 잘 선택하여야 바른 법을 익히고, 넷째 익히고 외워야 기억할 수 있다 하였고,
다섯째 부지런히 써서 전해야 공든 탑을 이룬다 하고, 여섯째 시(詩)를 알아야 말이 정미로워지고, 일곱째 널리 보아야 전거를 대고, 여덟째 일을 겪어야 확실성 있는 지식이 생기고, 아홉째 좋은 벗을 만나야 조사의 풍을 배우고, 열째 마음을 관해야 성불하게 된다 하였다.
옥이 있으나 닦지 아니하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이 있으나 배우지 아니하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으니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성현의 도를 이루기 바란다.
■ 고봉선사는?
고봉경욱(高峰景煜, 1890~1961) 선사는 어린 나이에 이미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1911년 9월 상주 남장사로 입산했다. 1915년 4월 팔공산 파계사 성전에서 자선을 하다가 홀연히 견성했다. 1922년 덕숭산 만공 스님에게 전법입실 건강 양산 내원사에서 혜월 스님과 선농생활을 하기도 했다. 1961년 서울 화계사에서 입적했으며 상좌로는 숭산행원 스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