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22. <국군의 날 행사 참가>
ROTC가 처음 생겨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느낌을 주던 시절, 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분열에 참가, 시민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의 대통령의 사열대는 광화문 근처, 동아 일보와 중부 소방서 사이에 있었다. 우리는 동숭동 옛 문리대 운동장에 모여 훈련을 하였다. 기초적인 제식 훈련과 야영 훈련은 받았지만, 그 수준으로 사열과 분열을 제대로 받을 정도는 되지 못하였다. 교관들이 애를 많이 먹으면서, 수고를 하였다. 당일, 최종 집결지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대문 근처에 있는 바로 남대문 국민(초등)학교였다. 오와 열을 맞추기 위해서, 대열의 꼬랑지 부분을 자르기로 하였다. 더러는 짤리는 것을 반갑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부는 불공평하다고 투덜 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모자는 각 대학의 교모, 복장은 흰색 상의, 검은 색 하의에다가, 내 생각에는 각반을 사용한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M1 소총을 메고, 남대문에서 출발, 시청, 광화문, 화신 앞, 종로를 거쳐 올라 갔다. 만족 할만한 수준은 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모두가 대학생들이고, 처음 있는 일이라, 시민들이 많은 박수를 보내주고, 격려를 하여 주었다.
처음있는 분열의 교육과 훈련은 600명의 정원을 배정 받은 <서울 대학교 101 ROTC>의 부단장으로 있던 전주식 중령이 맡아서, 연대장 후보를 서울 대학교 내에서 뽑으려고 하였는데, 지원자가 없어서, 차선책으로 250명의 정원을 배정 받은 <고려 대학교>로 넘어갔다.그래서, 고대의 박세환이가 연대장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는 이것을 계기로 장기 복무를 지원하여, 나중에 ROTC 최초로 별을 넷을 다는 행운을 맛보게 되었다. 분열이 끝난 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ROTC 분열 모습에 만족해 하시면서, 전주식 중령을 불러 크게 격려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