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앤 피플: 시각장애인 첫 대학 총장 이재서 총신대 교수
“나와 같은 어려움 가진 이들이 편견 깨고 희망 이뤄내길”
푸른 꿈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글쓰기를 좋아해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에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오늘도 내일도, 해와 달이 뜨고 별도 비추건만, 그의 눈은 어떤 것도 담지 못했다. 푸르던 꿈도 어둡게 빛바래져 갔다. 그럼에도 소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지 않았다. 그리고 50여 년이 지난 지금, 1급 시각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대학 총장이 되었다. 이재서 총신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20년 넘게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지난 2월 정년퇴임했다. 이제는 대학 총장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이 명예교수를 만났다.
Q.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A. 감사합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총장 공모에 나설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기 힘들었습니다. 반복적으로 제안을 받다 보니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달 정도 기도를 했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Q. 총신대는 어떤 학교인가요?
A. 300여 명의 교직원과 4,000여 명의 학생으로 이뤄진 총신대는 규모는 작지만 100여 년의 역사를 보유한 학교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의 인력이 총신대를 통해 충원되기 때문에 학교 규모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신대 총장은 학교를 경영하는 것을 넘어 총회와의 관계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자리입니다. 총장이 되고 나서는 하루를 거의 30분 단위로 쪼개가며 많은 분들을 만나 의논하고 조정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서로 합심해 노력한다면 좋은 결실을 이루리라 확신합니다.
Q. 십 대 때 시력을 잃으셨습니다.
A. 어릴 적 호되게 열병을 앓았는데, 그 후유증 때문이었죠. 워낙 어릴 때의 일이라 기억이 희미합니다. 하지만 열다섯 살에 앞을 못 보게 된 기억은 선연합니다. 서울맹학교에서 저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하며 장애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애썼지만 마음까지 붙이기는 쉽지 않았죠. 맹학교 고등부 재학 시절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전도 집회에 우연히 참석하게 됐는데, 그때 설교의 한 부분을 듣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개미는 큰 동상 위를 아무리 열심히 기어 다녀도 동상의 전체 모습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대목을 들으며, ‘내가 처하게 된 이 상황에도 뭔가 큰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날을 계기로 신학을 공부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Q. 총신대 입학부터 졸업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A. 신학과에 지원했으나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를 당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데다, 학업을 따라가기도 힘들 거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시각장애 학생에게 특수 교재나 보조기기 등이 지원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복지가 지금보다 한참 부족했으니까요. 7시간가량을 시위하듯 기다렸고, ‘장애 때문에 학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 끝에 가까스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꿈을 다시 한번 상기한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해 ‘나처럼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었죠. 점자 교재가 따로 없어 친구들이 책을 낭독하면 그 내용을 최대한 암기하며 공부했습니다. 꿈이 있었기에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죠. 1979년 대학 3학년 때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아 교회 청년들과 함께 창립한 ‘한국밀알선교단’도 그 꿈의 연장선이었습니다.
Q. 미국에서 사회복지학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A. 하나씩 하나씩 목표를 이루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장애인을 지원하고 돕기 위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죠. 또 사회복지를 제대로 배우려면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필라델피아성서대 3학년으로 편입해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차례로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과 현지 교회 신도들이 모아준 후원금, 아내의 조력을 받으며 10여 년 동안 정말 이를 악물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인내의 시간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어 저를 총신대 총장까지 이끌어줬습니다. 저 혼자 해낸 성과가 아니라, 모두의 도움으로 이뤄낸 결실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Q. 어려움이 컸던 만큼 가슴 벅찬 순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A. 정년퇴임 때 학생들이 마련해 준 축하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듣기로는 총신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던 행사라고 하더군요. 또한 1~4차에 걸친 총장 선출 과정에서 계속 우수한 평가를 받고 11명의 지원자 가운데 제가 만장일치로 총장에 선출되던 순간도 생각납니다. 다들 드라마틱하다고 했는데, 사실 저조차도 믿기지 않는 결과였어요. 제가 지나온 자리가, 노력하며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되새기며 앞으로의 여정도 최선을 다해야겠죠.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제가 이뤄낸 결실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에 모두에게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맡은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열심히 활동할 계획입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만연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깨지길 바라봅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8월 손끝으로 읽는 국정 142호 - 피플 앤 피플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