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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쌍방울 레이더스
1990시즌 사상 최초로 300만 관중시대를 열어젖힌 프로야구는 91년부터 8개구단 체제로 운영하게 됨에 따라 경기수도 증가하면서 관중 증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현행 월요일 휴식, 화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팀당 6연전을 치르는 경기체제가 91시즌부터 정착된다. 7개 구단으로 치러지던 체제에서는 각 팀마다 3일의 휴식기를 얻을 수 있어 마운드 운용에 있어 특정 투수에 의존하는 변칙적인 방법 가능했다. 그러나 8개 구단 체제에서는 모든 팀이 똑같은 일정하에 시즌을 치르게 되면서 각 팀의 투수력, 특히 원활한 선발 로테이션을 운영하느냐에 대한 여부가 전력을 가늠하는 큰 관건이 되었다.
1991시즌의 지배자는 당대 최강의 팀 해태 타이거즈였다. 1990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충격의 3연패로 물러나며 리그 5연패가 좌절된 타이거즈는 오프 시즌 동안 절치 부심한 듯, 시즌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올라서며 다른 팀들이 넘볼 여유를 주지 않으며 독주한다.
선동열(19승), 이강철(15승), 신동수(14승), 송유석(11승), 조계현(9승) 등이 주축이 된 투수진은 리그에서 가장 두터운 전력을 과시하였다. 투수진의 신데렐라는 연습생 출신의 송유석이었다. 투창선수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는 6년여의 무명생활 끝에 91시즌에서 마침내 야구인생의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마치 투창을 던지는 듯한 독특한 투구폼의 소유자인 그는 선발,중간,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등판하며 타이거즈 마운드의 마당쇠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공격진에서는 김성한(홈런 23개), 한대화(홈런 22개), 이호성(홈런 21개), 이순철(홈런 17개), 장채근(홈런 17개), 박철우(홈런 14개) 등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무려 6명에 이르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과시하며 타팀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한다. 무엇보다도 타이거즈 공격진의 최대의 강점은 장타력과 기동력을 겸비한 호타준족들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이순철(도루 56개), 이호성(도루 25개), 윤재호(도루 18개), 백인호(도루 18개), 김성한(도루 16개) 등이 상대 배터리의 혼을 빼놓았다. 특히 입단 2년차였던 이호성은 20-20클럽에 가입하며 절정의 기량을 선보인다.
타이거즈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처럼 거침없는 질주를 지속한 끝에 당시로선 시즌 최다승인 79승의 기록을 수립하며 여유있게 한국시리즈에 직행한다. 모든 팀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보이는데, 특히 전년도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의 굴욕을 안겨준 라이온즈를 상대로 14승 4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확실하게 되갚음을 한다.
그나마 타이거즈의 대항마로 자리했던 팀은 80년대 후반부터 신흥강호로 떠오른 빙그레 이글스였다. 공격진에선 35개의 홈런으로 시즌 최다 기록을 수립한 장종훈, 타격 1위에 오른 막강 1번타자 이정훈 외에 황대연(홈런 16개), 강정길(홈런 13개), 강석천(홈런 11개), 이강돈(홈런 11개), 전대영(홈런 11개) 등이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축하였다. 투수진에선 '이닝이터' 한용덕(17승)을 필두로 선발과 마무리에서 종횡무진한 '송골매' 송진우(11승 11세이브),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장정순(10승) 등이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었고, '잠수함 3인방' 김대중, 김인권, 한희민 등이 나란히 8승을 올리며 뒷받침한다.
전년도 준우승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동진 감독을 해임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김성근 감독을 새로 영입한 라이온즈는 공격진에선 강기웅, 이종두 등이 부상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투수진에선 지난 시즌 에이스로서 활약을 펼친 김상엽이 부진하며 시즌 내내 완벽한 전력을 꾸리지 못한 채 고전한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며 영입한 베어스 시절의 옛 제자들인 최일언(9승), 신경식(타율 0.309) 등이 모처럼 회춘활약을 펼치며 팀 전력의 구멍을 메운다. 김성근 감독은 이들 외에도 조범현,윤석환,이광길 등 자신의 예전 수제자들을 대거 영입하지만 최일언, 신경식을 제외하곤 팀 전력에 크게 보탬을 주지 못한다. 특히 재일교포 출신의 잠수함 김성길은 16승에 18세이브를 거두며 한국에 온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라이온즈 투수진을 이끈다.
84년 우승 당시 감독이었던 강병철 감독을 다시 영입한 롯데 자이언츠는 전준호,박정태,김태형 등 신인들이 주전을 꿰차며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한다. 투수진에서는 윤학길(17승), 박동희(14승), 김태형(11승), 김청수(10승) 등이 두 자리수 승수를 기록하며 타이거즈 투수진 다음으로 안정된 선발전력을 과시한다. 공격진에선 대한민국 최고의 교타자 장효조가 모처럼 자신의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며 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합을 다투는 (타율 0.347)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자갈치' 김민호는 3할 타율(0.303)에 20홈런을 기록하며 믿음직한 4번타자로 자리한다. 또한 '호랑나비' 김응국(9홈런, 타율 0.300), '악바리' 박정태(14홈런, 타율 0.285) 등이 좋은 활약을 펼친다. 84년 이후 무려 7년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사직구장은 연일 만원관중으로 넘쳐났다. 전년도 LG 트윈스가 최초로 홈구장 70만 관중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둔 지 1년만에 자이언츠는 사상 최초로 홈구장 100만 관중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이룩한다. (1,001,920명)
반면에 전년도 우승팀 LG트윈스는 김용수,김기범,정삼흠 등이 나란히 12승을 거두면서 제몫을 했으나, 공격진에선 노찬엽(타율 0.317), 최훈재(홈런 10개) 등을 제외하곤 나머지 주력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면서 전년도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특히 주전 포수 김동수가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며 타율 0.196라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린 것이 뼈아팠다. 시즌 중반까지는 롯데와 4강 다툼을 벌였으나 구단 프런트와 마찰을 빚은 백인천 감독이 팀 운영에 대한 열의가 식으면서 급격히 추락하며 6위에 머무른다.
91시즌 포스트시즌은 3위 삼성라이온즈와 4위 롯데 자이언츠와의 준플레이오프로 막이 오른다. 삼성의 우위가 점쳐졌지만 박동희,윤학길 이라는 강력한 원투펀치를 보유한 롯데의 반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준플레이오프 사상 처음으로 4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라이온즈가 플레이오프 티켓을 어렵게 획득한다. 시즌 홈런 5개에 불과했던 류중일은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김성길과 더불어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다. 자이언츠와의 혈전을 치르며 에이스 김성길을 소모한 라이온즈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초반 투수력 싸움에서 밀리며 어려운 경기를 펼친다. 시즌 내내 부진했던 김상엽이 모처럼 컨디션을 회복하며 90시즌을 연상케 하는 구위를 선보인터라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 초반 1,2차전에 김성길을 투입하지 못한 점은 가장 큰 아쉬운 부분이었다. 결국 1승 3패로 물러나며 또 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꿈을 접게 된다.
페넌트 레이스와 포스트 시즌에서 연달아 혹사를 거듭하던 당시 35세의 노장 김성길은 91시즌 이후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으며 결국 92시즌을 끝으로 쌍방울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2년만에 다시 재회한 해태 타이거즈와 빙그레 이글스의 91시즌 한국시리즈는 여러모로 많은 화제거리를 낳았다. 특히 대전구장에서 벌어진 3차전의 그 유명한 송진우의 퍼펙트 경기 일보직전 상황은 지금도 많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이다. 8회초 2사까지 퍼펙트 행진을 펼치며 대기록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가고 있던 상황에서 대타 정회열의 파울타구를 놓친 것이 결국 크나큰 재앙의 전주곡이 되고 만다. 송진우의 퍼펙트 행진이 깨진 것 뿐만 아니라 승부에서도 4-1로 역전패를 당하며 이글스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하지만 이글스는 4차전에서도 끈질긴 승부를 펼치며 잠실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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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O 한국 야구 20년사
2-3으로 뒤지던 8회말 공격에서 강석천이 선동열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 투런홈런을 쳐낼 때만 하더라도 한국시리즈는 5차전까지 갈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역대 최강의 전력과 집중력을 자랑하던 타이거즈의 공격진은 구원 등판한 한희민을 상대로 기어이 역전에 성공하며 91 한국시리즈를 4차전으로 마감한다. 9회초 타이거즈 공격에서 껄끄러운 상대였던 장채근을 상대로 한희민에게 정면승부를 지시한 이글스 코칭스태프의 판단은 최악의 惡手 가 되고 말았다. 2년만에 왕좌에 복귀한 타이거즈는 투,타에서 빈틈없는 최강의 전력을 유감없이 과시하며 시즌 내내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던 이글스마저 4연승으로 제압한다.
91시즌이 끝나고 야구팬들은 일본 프로야구의 슈퍼스타들을 모처럼 안방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일 양국의 올스타들이 실력 대결을 펼치는 슈퍼게임이 개최된 것이다. 과연 일본 프로야구와 국내 프로야구의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개막을 앞두고 많은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 사이에 큰 관심이 모아진다.
동갑내기 라이벌 박동희와 구와타의 선발 맞대결로 도쿄돔에서 펼쳐진 1차전은 4회까지 2-3으로 1점차의 접전을 벌이지만 5회에 구원등판한 조규제를 상대로 일본을 대표하는 강타자인 아키야마(세이부)와 오치아이(주니치)가 백투백 홈런을 터뜨리며 점수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김성한이 이라부(롯데)를 상대로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도쿄돔 홈런을 터뜨린 것에 위안을 삼아야만 했다
현란한 포크볼과 정교한 제구력에 국내타자들은 좀처럼 적응을 못하였고 외야수들의 강한 어깨와 안정된 수비는 확실히 한 수위의 기량임을 입증하였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국내 안방에 처음으로 중계된 도쿄돔의 웅장한 시설이었다. 아직도 돔구장을 갖고 있지 못할 뿐더러 여전히 50-60년대에 지어진 전근대적인 낙후된 시설의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단들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은 국내 야구계가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로 남아있다.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내리 3연패를 당한 한국은 4차전부터 비록 지역선발이지만 일본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선전을 펼친다. 특히 4차전까지 한 번도 등판하지 않아 부상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냈던 선동열은 5차전 선발로 등판하여 3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국내 최고 투수의 위력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가장 내용면에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던 경기는 마지막 경기였던 6차전이다. 8회까지 1-1로 팽팽한 투수전이 펼쳐지던 상황에서 호투를 펼치던 김용수의 몸쪽 낮은 공을 기술적으로 걷어올린 노무라(히로시마)의 홈런이 결승점으로 이어지며 6차전은 마무리된다
사상 처음으로 펼쳐진 한일 슈퍼게임에서 2승 4패를 기록하며 나름대로 선전을 펼친다. 이후 4년간격으로 열린 한일 슈퍼게임은 99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한일 슈퍼게임을 통해 일본야구의 높은 수준을 직접 경험한 국내 야구는 이후 일본야구와의 기술 격차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좁혀나간다. 결국 2006년 WBC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연달아 일본을 격파하며 이제는 오히려 힘에서는 일본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국내 야구는 일취월장 하게 된다. 선진야구를 직접 몸소 접하며 두려움을 없앰과 동시에 국내 야구계에 기술적인 부분이나 지도 스타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일 슈퍼게임은 국내 프로야구에 전환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직구장 100만 관중 돌파를 기록한 롯데의 선전에 힘입어 91년 프로야구는 3,825,409 명의 총관중을 기록하며 지속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한다.
91년 극장가는 90년 연말부터 이어진 '사랑과 영혼'의 관중몰이가 계속된다. < 사랑과 영혼 > 의 주제곡 'Unchained meldoy'는 당시 현장 인기 챠트라 할 수 있는 길거리 리어카에서 마치 돌림노래 처럼 틀어지면서 영화 못지 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다. < 사랑과 영혼 > 은 서울극장에서도 간판이 걸리는데, 이는 본격적으로 직배영화가 서울 시내 메인 상영관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첫 번째 신호탄이 된다. 많은 여성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신 이 영화는 서울에서만 무려 1,683,265 명을 동원하며 개봉영화 사상 최다관객 동원 기록을 수립한다. 이 기록은 1997년 < 타이타닉 > 에 의해 깨어지기 전까지 최다기록으로 자리한다.
연초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킨 영화로는 이명세 감독의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국민 여동생' 최진실과 KBS FM < 박중훈의 인기가요 > 를 진행하며 재치있는 입담으로 점점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던 박중훈이 함께 공연했는데 이명세 감독 특유의 동화같은 파스텔 톤의 영상과 최진실,박중훈의 절묘한 연기조화가 어우러지며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91년 여름 극장가에는 7년만에 선을 보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 아놀드 슈왈츠네거 주연의 < 터미네이터2 > 의 열풍이 휘몰아쳤다. 특히 SF영화 특수효과의 수준을 진일보시킨 T-1000 액체로봇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상충격을 전달하였다. 이 외에 < 나홀로 집에 > , 케빈 코스트너의 < 로빈후드 > 등이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특히 케빈 코스트너는 < 늑대와 춤을 > 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휩쓸더니 이어 < 로빈후드 > 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다. 그러나 94년 < 와이어트 어프 >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95년 무려 2억불의 제작비를 투입한 < 워터월드 > 가 흥행에서 제대로 물을 들이 마시면서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드라마에선 91년 10월 첫 방송을 탄 MBC 창사 30주년 드라마 < 여명의 눈동자 > (송지나 극본, 김종학 연출)의 신드롬이 휘몰아친다. 사상 처음으로 일제시대 정신대를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주연을 맡은 채시라, 박상원, 최재성을 스타덤에 올려 놓는다. 당시 드라마로선 보기 드문 해외 로케이션 촬영 등 커다란 스케일에 주연배우들의 열연, 송지나-김종학 콤비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연출 등의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또한 피아노 연주곡의 메인 테마 음악과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한 오프닝 음악 등 국내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메인 OST 음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OST의 비중 및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91년 하반기는 가히 MBC 드라마의 전성시대라 할만큼 MBC 드라마의 강세가 두드러지는데 '미다스의 손' 김수현이 집필한 주말 연속극 < 사랑이 뭐길래 > 또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다. '대발이 아버지'로 등장한 이순재는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코믹스러운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하며 큰 인기를 모은다. 이 때의 여세를 모아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의정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대발이' 최민수는 그 동안의 터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거품을 뺀 코믹한 연기로 자신의 연기영역을 확장한다. 이외에 신애라, 이재룡, 박정수 등이 새로이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가요 부문에선 < 미소속에 비친 그대 > 의 신승훈, <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 의 심신,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다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한 < 이별의 그늘 > 의 윤상 등이 흐름을 주도한다. 심신은 댄스곡 < 오직 하나뿐인 그대 > 에서 선보인 삿대질 춤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으며 인기 절정에 다다른다.
하반기에는 < 이별아닌 이별 > 의 이범학이 세련된 외모와 풍부한 가창력으로 큰 인기를 모은다. 무엇보다도 그의 인지도를 단숨에 올려놓은 것은 주병진 이후 최수종으로 MC가 바뀌면서 개편한 <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의 간판코너 <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 에 등장했을 때였다. 당시 인기프로였던 < 퀴즈 아카데미 > 에서 문제 출제자로 출연한 상황에서 황당 무계한 질문을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출제하던 모습에서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이 글을 읽는동안 잠시나마 그 때의 추억에 젖어들기를 기원하며 91년의 시간탐험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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