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천삼백리를 걷다. 네 번째 영월기행
어라연을 걷다. 5월 25일
거운리에서 내려 어라연을 향해 강변길을 따라갔다. 지난 번 기행때는 물이 풍성했는데 지금은 물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비가 내린지 오래되었다. 강변길은 먼지가 푸석거렸고 강물은 탁했다. 강물이 고여 있는 곳에는 부유물이 떠다니고 있다. 한번 큰 비가 내려서 씻겨주면 좋겠다. 초목들도 더욱 무성해질 것이다.
전산옥의 주막터를 지난다. 동강의 떼군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주막이었다. 주모였던 전산옥은 소리를 잘했을 뿐 아니라 미모 또한 뛰어났다. 뭇 떼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 것이다. 1970년대 초까지 여기에서 주막을 운영했다는 데 지금은 팻말만이 그 옛날의 전설을 말해주고 있다.
너덜길을 따라 어라연이 보이는 강변에 도착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던 참에 더 위로 올라가자고 종용을 했다. 강가에 앉아 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돌아서기에는 너무 서운했다. 몇 년 전에 와본 기억이 있다. 여기서 보는 어라연은 동강의 비경인 어라연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경사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원성의 소리가 높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능선 길에 올라섰다. 땀을 닦고 발아래 펼쳐지는 비경에 수고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경치도 경치지만, 바람 좋고 그늘 시원한 숲길이 땡볕아래 가는 강변의 너덜길보다 훨씬 좋았다. 다음에 온다면 지난번 기행이 끝났던 문산교에서 정성산을 거쳐서 올 것이라 마음을 먹었다. 오전 기행으로는 꽉찬일정이었다.
어라연 사진은 관광 안내판에 있는 사진을 옮겼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경관을 담을 수는 없었다.
오후에 두시반에 거운리 다리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산그늘이 있고 강바람이 시원해 걸을만했다. 강변을 따라 호밀밭이 펼쳐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밀은 호밀에 비해 키가 작고 가시랭이가 있다. 그래서 밀밭에서 놀아보지는 않았다. 호밀은 키를 넘어 컸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사람이 크고 착하면 밀대 같다고 했다. 호밀밭에서 숨바꼭질도하고 뭉치기도 하면서 놀았다. 호밀밭은 어릴 적 정겨운 추억이 담겨있다. 물론 밀밭 주인에게 혼도 났지만, 호밀밭 주인은 다 심성이 고운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처음 만났던 호밀밭은 그 아래로 강변길 따라 계속 이어졌다.
강건너 시스타 리조트가 있고, 그 너머에 동강 시스타 골프장이 있다. 욕심이 나는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둥굴바위이다. 떼꾼들이 막혀있던 바위(노란색으로 칠한 부분)를 뚫어서 지금과 같이 물길을 냈다. 정선 조양강에서 시작되었던 남한강의 물길에는 어디 가나 떼꾼들의 이야기가 흔적 없는 전설로 들려왔다. 그 중 둥글바위는 생생하게 남아 있는 떼꾼들의 자취였다.
골프장 들어가는 삼옥교에서 아이스케키 파티를 했다. 비비빅, 쵸코바, 보석바, 쮸쮸바. 신정일 샘이 그리스 여행 기념으로 쏜 것이다. 감사, 감사
다시 길을 나섰다. 강변길 좌우에는 펜션, 오토캠핑장, 민박집이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니 벌써 피서 철의 북새통인가. 유흥객들의 확성기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강바람 시원한 가로수 그늘을 따라 걷고 있다.
동강터널 입구에서 폐쇄된 2차로 강변길을 따라간다. 자연의 복원력은 놀랍다. 초목이 길을 덮어가고 있다. 아카시아는 꽃잎을 다 떨어뜨렸고 풀 향기가 코끝에 스친다. 가파른 언덕길이다. 영월읍내가 멀지 않았다.
영월읍내에 들어서면서 강변으로 내려섰다. 강건너 벼랑 위 숲 사이로 정자가 보인다. 금강정이다.
단종이 죽자 단종을 모셨던 하인들과 시녀들이 금강정의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얽혀져 있는 정자이다. 정자 옆 비문에는 그때 투신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하고 단종을 노산군이라 격하시켰다. 유배를 보냈고 그것도 안심이 안 되었던지 사약을 내렸다. 용서 받을 수 없는 패륜이었다. 수양대군 곁에 빌붙어 기생했던 어용대신들은 “어리고 나약한 군주 대신 연부역강한 숙부가 왕이 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숙명적인 선택이었다.”고 했다.하지만 역사는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의 추악한 정권욕이 저지른 골육상잔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의 역사를 반추해 본다면, 하극상과 광주학살을 자행하고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일당과 다를 바 없다. 다행인 것은 전두환은 살아서 법정에 섰고, 치죄를 당했다는 것이다.
강변을 따라간다. 유채꽃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 달 전에는 여기 강변 고수부지에 노란 유채꽃이 만개했을 것이다. 유채는 대궁이 시들었고 씨를 땅에 떨어 뜨렸다. 그 사이로 갈대가 새잎을 키우며 자라고 있다. 섶다리를 건너서 강 건너 편으로 넘어갔다. 여기에서 동강과 서강이 만나고, 그 다음부터는 남한강이 된다.
여기서부터 남한강
그
날
밤
바람이 소슬해서 강변으로 나갔습니다.
강위엔 쪽배
멀리서 소쩍새 우는 소리
밤 강 들풀 향기는 고혹했습니다.
낚시꾼들의 어화가 검은 강물과
수근거렸고
다리 난간의 네온 불에 밤은 깊어갔습니다.
5월 26일
어제 걸었던 남한강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걸었다. 잠시 걸어가 영월화력발전소를 지났다. 정조의 태실에 올랐다. 정조의 태를 묻었다는 장소가 이번 기행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물이 굽이쳐흐르는 것을 감상했다.
오늘도 폐쇄된 길을 따라간다. 작년 8월에 차량통행이 금지된 도로였다. 도로 중간 중간에 낙석이 떨어져 있었다. 한 곳은 산의 일부가 무너져내려 강변의 가드레일을 덮쳐 무너뜨리고 강가에 낙석이 내려가 있었다. 만약 차량이 운행되었다면 어마어마한 산사태였을 것이다. 폐쇄된 도로를 한 시간여 걸어서 4차선 도로에 올랐다. 땡볕 아래를 걸어가야 했다. 차들은 굉음을 내며 쉬지않고 지나갔고, 힘든 길이었다.
물레방아 쉼터에서 이십분여 쉬었다. 느티나무 그늘이 좋았다.
다시 길을 나서서 2차선 고씨 동굴가는 길로 내려섰다. 이제 땡볕 길은 면했다. 고씨 동굴들어가는 다리아래서 짐을 풀고 쉬었다. 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길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아직 여정이 남아 있었다.
고씨 동굴이 있는 진별리를 나서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어젯밤에 나와 보았던 강변하고 경치가 같은 것이었다. 이틀이나 묵었던 데를 몰랐고, 지나치면서 그 마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지리에는 꽤나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먹통일 수가 있단 말인가. 스스로 쓴웃음을 지었다.
열한 시쯤 김삿갓면에 들어섰다. 원래 서동면이었는데 김삿갓면으로 바뀌었다. 김삿갓 김병연은 이곳 영월에서 태어나 평생을 떠돌다가 전라도 화순에서 죽었다. 그의 시신은 고향으로 모셔와 이곳에 묻혔다.
4차선 제천가는 길과 갈라서 드디어 각동교를 넘었다. 2차선 한가한 길이었다. 강물은 마을 앞 암벽에 부딪쳐 휘돌아나가고 양지바른 퇴적층에 주거지를 잡은 각동리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을로 보였다. 이런 산골 마을에 소문을 듣고 오는 손님이 있었던지 카페도 있었다. 연주와 연화네집. 펜션과 민박집등이 경치좋은 곳에 있다. 마을 뒷산은 명당자리로 소문이 나서 무덤이 난립하여 공동묘지화 되었다고, 마을입구에는 묘 쓰는 것을 허가 없이는 엄금한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오후에는 서강에 있는 명승지를 돌아보았다.
청령포는 단종이 폐위되어 유배왔던 곳이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 있어 지금도 배를 타고 건너야한다. 단종은 불과 2개월 머물다 사약을 받았다.
한반도 지형
우리나라와 같은 노년기 하천에서 많이 볼수 있는 지형이다. 이런 비슷한 지형은 몇군데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낙동강에서도 보았고, 이번 한강기행에서도 두번(어라연, 뱅뱅이재)을 봤고, 금강을 걸으면서도 이런 지형을 봤던 기억이 있다. 영월군에서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면 이름을 서면에서 한반도 면으로 바꾼 것이다. 한반도 지형에서 이번 기행을 마쳤다.
첫댓글 한강 천삼백리, 네 번째 영월기행 "어라연을 걷다"는 단종의 청령포,금강정 정자 등 아픈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곳이네. 바우 덕분에 앉아서 한강 천삼백리 기행하는 호강을 누리네. 고마워
영월은 단종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지난 달 기행에는 단종축제 행렬을 구경했어요. 제 느낌은 그랬어요. 이제는 오랜 왕조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버리고 미래로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바우의 끝나지 않는길을 따라 오늘은 김삿갓의 고향을 돌았네.강원도 산은 험하고 가파른데 이곳은 좀 완만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지.나의 본관이 寧越 辛가이지.태어난곳은 상동이란 곳이고.글 잘읽었네.
상동이란 곳은 영월읍이던가. 자네의 탯자리이구먼. 언제 같이 한번 가는 것도 괜찮겠어. 그나저나 내가 하도 먼곳에 살아서 사람구실을 하고 살기가 쉽지 않네.
OCS중앙회 산악회에서도 한번 갔었던 기억이 새롭네.
추억을 더듬게 해 줘서 고마우이, 이바우.
나도 그때의 기억이 있어 이번 어라연 기행에 내가 길잡이가 되었지. 그때 65차 가 참석인원이 가장 많았었고,
이영근, 김지문, 김원숙 여사 송철호도 왔었고 기억이 나는 얼굴들. 권명옥여사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