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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백성호
관심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여기는 우리에게 “삶은 자유의 바다”라고 역설하는 붓다의 생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붓다뎐’을 연재합니다. ‘종교’가 아니라 ‘인간’을 다룹니다. 그래서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지지고 볶는 일상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붓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돼라”고 말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돼라”고 합니다. 어떡하면 사자가 될 수 있을까. ‘붓다뎐’은 그 길을 담고자 합니다.
20년 가까이 종교 분야를 파고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예수를 만나다』『결국, 잘 흘러갈 겁니다』등 10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3년에 걸쳐 ‘백성호의 예수뎐’을 연재한 바도 있습니다. 붓다는 왜 마음의 혁명가일까, 그 이유를 만나보시죠.
② 아기 붓다, 왜 하필 옆구리로 태어났나
# 붓다가 태어난 땅, 룸비니
나는 인도의 룸비니로 갔다. 붓다가 나고 자란 땅이다. 히말라야 산맥 아래 북인도였다. 지금은 네팔 영토다. 그래서 인도와 네팔은 종종 다툰다. “붓다는 인도 사람”이라는 인도 측 주장과 “붓다는 네팔 사람”이라는 네팔 측 주장이 맞선다. 그런데 인도냐, 네팔이냐 따지는 건 지금의 기준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런 국경도 없었다. 붓다는 그저 카필라 왕국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코살라국·마가다국·밤사국·말라국 등 인도에 16개 왕국이 있었다. 그중 하나인 카필라 왕국은 아주 작고 약한 나라였다.
버스는 룸비니를 향해 달렸다. 창 밖의 풍경은 무척 낯설었다. 1950년대나 60년대 한국의 거리 풍경이 저랬을까. 가난한 나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붓다의 유적은 유피주와 비하르주에 유독 많다. 인도에서도 북부의 유피주와 비하르주는 궁핍한 오지가 많다. 그래서일까.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내 가난의 풍경과 마주쳐야 했다.
붓다가 탄생한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서 만난 사두. 맨발로 세상을 유행하는 수행자인 사두는 머리를 깎지 않고 계속 기른다. 백성호 기자
룸비니로 가려면 인도와 네팔의 국경을 통과해야 했다. 버스는 국경 앞에서 멈추었다. 말이 국경이지 경계선은 허름했다. 작은 검문소와 낡은 바리케이드가 있을 뿐이었다. 총을 든 군인도 보였다. 예전에는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절차가 무척 간소했다. 지금은 달랐다.
인도 측 출입국사무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 하루 전날 인도에서 네팔로 갔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간다는 한국인 순례객을 만났다. 그는 “어제는 오후 3시에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해 8시간 동안 줄을 섰다. 밤 11시가 돼서야 절차가 끝나 네팔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네팔의 등산객과 불교 성지 순례객 등 방문객은 많은데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네팔로 넘어가자 경치가 달라졌다. 뭐랄까, 좀 더 정돈되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버스는 룸비니에 도착했다.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이다.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걸음을 재촉했다. 보고 싶었다. 붓다가 태어났다는 장소.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장소. 그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읊었다는 장소. 그 전승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차준홍 기자
룸비니 동산은 깔끔했다. 푸른 나무와 갖가지 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했다. 동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검문검색을 했다. 순례객은 모두 신발을 벗어야 했다. 남방 불교의 전통이다. 예전에 스리랑카의 불교 사원에 들어설 때도 맨발이어야 했다. 나는 양말까지 벗었다. 룸비니 동산 안으로 들어서자 햇볕에 데워진 돌바닥이 따끈따끈했다.
# 왜 흰 코끼리 태몽이었을까
2500년 전 사카족은 인도 북부에 살았다. 저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이 보이는 땅이었다. 왕의 이름은 슛도다나, 성(姓)은 고타마(Gautama)였다. 왕비의 이름은 마야데비(Mayadevi)였다. 우리는 흔히 ‘마야 부인’이라 부른다. 팔리어 경전에는 왕비 마야가 ‘대지처럼 의젓하고,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기록돼 있다. 아마도 포용력이 있는 넉넉한 품성에 미모를 갖춘 여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마야 왕비의 태몽은 각별했다.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요즘도 우리는 아이를 낳기 전에 꾸는 태몽을 중시한다. 붓다 당시의 인도도 그랬다. 하루는 왕비가 꿈을 꾸었다. 흰 코끼리가 왕비의 몸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왕비의 태몽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무척 기뻐했다. 왜 그랬을까. 흰 코끼리는 고대 인도에서 무엇을 뜻했을까.
룸비니 동산에 있는 아소카 석주와 마야 데비 사원. 불교 순례객들이 그 앞에 앉아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붓다 당시는 고대 브라만교 사회였다. 브라만교에는 숱한 신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왕이 있었다. 신들의 신, 신들의 왕. 그가 바로 인드라 신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자연을 두려워했다. 특히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무서워했다. 인드라는 번개를 부리는 신이다. 그는 말 대신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아이라바타(Airavata)’라고 부르는 흰 코끼리다.
그런데 마야 왕비의 태몽에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왔다. 신들의 왕이 타고 다니는 흰 코끼리가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큰 길몽이었을까. 한국으로 치자면 용이나 봉황이 날아와 품에 안기는 꿈 정도나 되지 않았을까.
요즘도 불교에서는 흰 코끼리가 상서로운 동물이다.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는 나라의 수호신을 흰 코끼리로 삼을 정도다. 또 불교는 인드라 신을 불법(佛法)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인드라 신을 ‘제석천(帝釋天)’이라 부른다.
나는 마야데비 사원의 입구로 갔다. 왕비 마야가 아들을 낳았다는 장소다. 사원 건물의 지붕에는 황금빛의 작은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그림이 있었다. 사람 얼굴이었다. 두 눈 사이에 점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나는 네팔 사람에게 물었다. “저 점이 뭐죠?” 그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저건 왼쪽 눈도, 오른쪽 눈도 아닌 제3의 눈이다. 우리는 그걸 ‘마음의 눈’이라 부른다. 깨달음이란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다.”
마야 데비 사원의 지붕 꼭대기에 있는 조각. 두 눈의 중간에 빨간 점이 찍혀져 있다. 왼쪽 눈도, 오른쪽 눈도 아닌 제3의 눈이다. 현지인들은 그걸 "마음의 눈"이라고 불렀다. 백성호 기자
룸비니 동산은 오랜 세월 흙과 나무에 덮여 있었다. 독일의 고고학자가 룸비니 동산에 있는 아소카 석주를 발견하고서야 붓다의 탄생지가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백성호 기자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제3의 눈이 있다. 왼쪽 눈도 아니고 오른쪽 눈도 아닌, 마음의 눈이다. 그런데 정신없이 살다가, 온갖 좌충우돌을 겪은 뒤에야 깨닫는다. 세 번째 눈이 감기어져 있음을 말이다. 그동안 그 눈을 감은 채 살아왔음을 말이다.
그걸 깨달은 사람들은 뒤늦게 눈을 감는다. 명상이다. 눈을 뜨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 참선이다. 육신의 눈을 감은 뒤 내려앉는 고요 속에서 마음의 눈을 뜨려는 이들이다. 깨달음이다. 머리를 깎았든 깎지 않았든, 우리는 그들을 ‘수도자’라 부른다.
#아기 붓다는 왜 옆구리로 태어났을까
인도 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꽤 넓었다. 땅바닥에는 유적을 발굴 중이었고, 그 위로 다리처럼 나무판을 깔아 걸을 수 있게 했다. 바닥에는 세계 각국의 동전과 지폐가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기도가 담긴 동전들이었다.
붓다의 탄생 일화에는 수수께끼의 코드가 박혀 있다. 다름 아닌 옆구리 출생이다. 왕비 마야는 붓다를 옆구리로 낳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당시 제왕절개를 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붓다 탄생지 둘레를 걸으면서 생각했다. ‘실제 왕자가 옆구리로 태어났을 리는 없다. 그럼 이건 하나의 상징이자 은유이다. 옆구리 탄생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긴 걸까.’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드라신이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중앙포토
마야 부인의 태몽에서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모습을 그린 조각상. 룸비니 동산에 세워져 있다. 백성호 기자
사실 인도에서는 옆구리 탄생에 대한 해석이 간결하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는 네 계급이 있다. 성직자인 브라만 계급과 왕족이나 무사인 크샤트리아, 그리고 상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바이샤. 마지막으로 육체노동을 하는 수드라 계급이다. 이들 계급은 모두 푸루샤라는 신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갈랐을 때 나왔다. 브라만은 신의 머리에서, 크샤트리아는 양팔에서, 바이샤는 배에서, 수드라는 두 발에서 나왔다.
아기 붓다는 왕족이었다. 크샤트리아 계급이다. 그러니 푸루샤의 양팔에서 나왔다. 그래서 태어날 때 어머니의 옆구리로 태어났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나는 인도에서 여러 인도인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싯다르타 왕자가 크샤트리아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옆구리 탄생은 아기 붓다가 고대 인도에서 어떠한 사회적 계급으로 태어났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다일까. 아기 붓다의 옆구리 출생 일화가 단지 사회적 계급을 가리키는 것일까. 인도 사람들은 푸루샤의 옆구리에서 크샤트리아 계급이 태어났듯이, 아기 붓다도 마야 왕비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서로 다른 두 광경을 그려보았다. 옆구리에서 태어나는 아기. 분명, 겹치는 풍경이 있기는 했다.
룸비니 동산에는 마야 데비 사원을 중심으로 벽돌로 된 유적이 펼쳐져 있다. 룸비니는 전체적으로 아주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백성호 기자
그래도 순순히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불교는 ‘싯다르타 왕자의 옆구리 출생’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기 붓다의 옆구리 출생이 상징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거기에 담긴 비밀 코드는 과연 무엇일까.
짧은 생각
붓다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려면
인도의 고대 종교에 대해
알아두면 좋습니다.
왜냐고요?
거기에는
고대 인도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싯다르타 왕자가 자랐던 카필라 왕국의 왕궁터. 지금은 벽돌로 된 유적이 남아 있다. 백성호 기자
2500년 전,
인도 사람들은
브라만교를
믿었습니다.
힌두교의 뿌리에
해당하는 종교입니다.
브라만교에는
‘베다’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리그베다,
아주르베다,
사마베다
그리고
아타르바베다 등입니다.
주로
신들에 대한 찬송과
제례 의식,
복을 기원하는 주술문이나
기도문 등입니다.
그런데
고대 종교의 경전이라고
얕잡아봤다가는
큰코다치기 쉽습니다.
왜냐고요?
베다 경전에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이
곳곳에
녹아 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단연코
최고로 꼽는 게
‘리그베다’입니다.
분량도 방대합니다.
신들에 대한 찬송
1028개가
열 권의 책에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 ‘리그베다’에
카스트 제도의 기원에
해당하는
내용이 수록돼 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태초에
우주의 근원인
푸루샤가 있었습니다.
푸루샤는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적이 없는
스스로 있는 자였습니다.
푸루샤는 또한
이 우주 전체에
두루 편재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푸루샤 자체가
이 우주 전체였습니다.
푸루샤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 누구에 의해서 창조된 적도 없고, 소멸된 적도 없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존재다. 이 우주에 두루 편재하며, 이 우주 자체이기도 하다. 중앙포토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였습니다.
푸루샤의 외모는
특이했습니다.
천 개의 머리와
천 개의 눈,
천 개의 발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뭔가 떠오르는
모습이 있지 않나요?
맞습니다.
불교의 천수관음상과
무척 닮았습니다.
천수관음보살도
천 개의 손마다
눈이 하나씩,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눈으로
세상을 구석구석,
두루 보면서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줍니다.
푸루샤는
자신의 몸을
네 토막으로
잘랐습니다.
그러자
세 토막에서는
신(神)들이 나오고,
나머지
한 토막에서는
또 하나의
푸루샤가 나왔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 두 번째 푸루샤를
최초의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원초의 인간,
원형의 인간입니다.
기독교 창세기에 등장하는
첫 인간은
아담이지만,
브라만교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첫 인간은
푸루샤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두 번째 푸루샤를
“원인(原人)”이라고 부릅니다.
인도의 창조 신화에서 최초의 인간은 푸루샤였다. 우주의 근원에서, 그 근원과 같은 이름을 가진 첫 인간이 생겨난 것이다. 백성호 기자
두 번째 푸루샤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스스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랬더니
푸루샤의
입에서는
브라만이 나오고,
양팔에서는
크샤트리아가 나오고,
두 다리에서는
바이샤가 나오고,
맨 아래 양발에서는
수드라가 나왔습니다.
이것이
인도 카스트 제도의
종교적 기원입니다.
지금도
4000년에 걸쳐서
인도 사회에
내려오고 있는
차별적 계급 제도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이 불합리한 제도를
하층 계급 사람들은
왜 그냥
받아들이고
사느냐고 말입니다.
고대 인도는
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브라만교는
너의 계급은
신이 정했다고
말합니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신으로부터 생겨난
몸의 부위가
달랐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자기 계급에 대한
부정은
곧
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고대 인도에서
카스트 계급 제도는
강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카스트 제도를 향해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
석가모니 붓다였습니다.
인도의 불교 성지 쉬라바스티에서 동자승들이 합장한 채 경전을 외우고 있다. 백성호 기자
그는
모든 인간은
본래 평등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실제
붓다의 승단 안에서는
출신 계급과 상관없이
출가한 법랍으로
연장자를 정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파격이었습니다.
차별에 대한 전복이자,
존재론적 혁명이었습니다.
인도 중부의 산치에 있는 불상. 조각이 무척 섬세하다. 아소카 대왕 시대에 조성된 불상이다. 백성호 기자
어찌 보면
붓다야말로
진정한
혁명가입니다.
에디터
관심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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