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화장도 안 했어 세수만 해도 얼굴이 햇볕에 반짝였지 남자들이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
지금은 아무리 화장해도 누가 쳐다보질 않아 나이 든 사람이 싸구려 화장한다고 구박만 하고 그래
그래도 요즘 애들 보면 자꾸 웃음이 나와 옛날 얼굴이 내 앞에서 예쁘게 꽃 피어 지나가니 말이야
l해설l 저는 꽃이 활짝 피어있을 때보다 꽃봉오리 모습 때가 더 예쁘게 보입니다. 그 속에 어떤 예쁜 꽃이 숨어 있을지 서랍 속에 감춘 일기장 같은 비밀의 신비로움과 소녀의 어린 젖 봉오리 같은 순결을 상상하며 알 수 없는 희망을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동백꽃이나 무궁화처럼 꽃 모가지 채로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달린 채 말라가거나 시든 꽃잎을 보면 추함을 넘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 지하철 경로석에 앉은 60대 후반에서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주 새빨간 립스틱에 까만 레깅스 위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앉아서 연신 스마트폰을 긁고 계셨는데, 요즘 젊은 아가씨 패션으로 입었지만 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추하게 보였습니다. 나이에 맞게 산다는 것,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인데 말이죠. 립스틱으로 주름을 감출 수도 없고 레깅스로 굽은 허리를 감쌀 수도 없는데 박동환 시인의 [노인과 젊은이]라는 시를 읽으며 얼마전 지하철 안 추한 풍경이 떠올라 한 줄 놓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