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사 추석 제사 장면
축원하는 보선스님(가운데)
우리 민족은 농경사회를 이루고 조상 대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추석을 잘 모셨습니다. 추석은 중국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신라 유리왕 때 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왕의 명령에 의해 길쌈을하고 여러가지 경기를 했습니다. 7 월 보름부터 해서 8월 보름 까지 해서 1 등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음식을 받치고 이런 풍속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추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제향이 따릅니다. 제를 올리는 것입니다. 신을 믿는 모든 종교는 그 기원이 제사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것도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그 기원이 됩니다.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부모를 잘 모시고, 조상을 잘 모시는 민족이었고, 제향을 중시하였습니다. 정월 설에는 집에서만 제향을 모시고, 2 월에는 한식에는 묘에 가서 제향을 모시고, 8 월 보름일 에는 집에서 모시는 제향과 묘소에서 모시는 제향을 겸해서 두 가지로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때는 날씨가 좋고, 곡식과 과일이 많아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절이라 두 가지 모시는 이런 풍속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제향을 모실 때에는 차를 받친면서 제를 모셨기 때문에 차례, 다례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절에서는 차례를 하지만 고려시대를 혁파하고 시작한 이조시대에서는 주자의 가르침,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속가에서는 차 대신 술을 받치면서 제향을 모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가정에서는 술을 가지고 제향을 모시고 있지만 이름은 차례, 다례라고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유배와서 대흥사 출신 초의선사 등을 통해 처음으로 차를 배워서 차를 알고 호를 다산이라고 하고, 지금도 강진에서는 다신계를 조직하여 현재도 그 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글을 쓰기를‘술을 즐기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좋아하는 민족은 흥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요약하면 차를 모셔서 제향을 모신다하여 그것이 차례입니다.
옛부터 전해오는 말이 조상을 잘 모시면 꿈에서도 떡을 얻어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조상이기 때문에 부모,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제사를 집에서 모셨습니다. 어떤 때는 고조 할아버지 제사까지를 집에서 모셨습니다. 그외에는 상제라 하여 시제를 묘에 가서 전체 조상을 향해 제향을 모십니다. 가을에 한 번 합니다. 시제는 상달인 10 월에 문중에서 날짜를 잡아서 합니다. 이러한 제사 의례중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축제로 승화할 수 있는 행사가 8월 대보름 추석으로 집에서도 제사를 하고, 묘에 가서도 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승사 추석 제사 장면
옛날 시절에는 우리생활의 연료가 나무였기 때문에 정월 설날에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사람들이 있어 집에 없는 사람도 있지만 8월 보름에는 나무하러 가지 않고 모든 가족이 모여 제향을 모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추석은 이런 역사적인 유래가 있습니다. 이런 유래 때문에 우리 조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추석이 되면 고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교통체증이 심하지만고향을 갑니다. 하지만 미주에 사는 우리들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멀기 때문에 사찰에 모여서 고향이 있는 태평양 쪽을 향해 바라보고 절을 하면서 제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가 있는 것인데 요즘에는 왜 제사를 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알기위해서는 내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뿌리로 부터 나까지 내려온 내력을 알아야 합니다. 또 내 밑으로 번성하여가는 자손들이 나를 잊지 않고 자손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내가 오늘 조상에 대한 예를 다 해야 그것이 이어지면서 내 자손들이 대대로 뿌리를 알고, 일생을 바르고 안락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를 모시는 것이고 제향을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