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花 鬪 ♣
명절이면 팔도 사람들은 판을 깔고 둘러앉아 패를 돌린다.
한가위 달밤에 공산명월하는 것도 잊었다.
술이 한두 순배 돌 무렵이면 "삼팔광땡이요, 삼팔돛대가보요, 운칠기삼이요,
섰다벗었다안경가보요, 일장통곡하는구나"로 달구경을 대신한다.
성묘는 송학으로, 조상님 전에는 국화가 절로 익어 술을 갖다 바친다.
화투짝을 앞에 놓고서야 친목도, 동기간 안부도, 조카딸이 대학 들어간 일도
제대로 말이 척척 들어맞는다.
화투짝이 잘 달라붙는 것으로야 오래도록 미제 군용담요가 최고다.
가솔들은 저마다 제 분수를 알아 역할을 나누었다.
큰아버지는 물주가 되고, 조카는 대라가 되고, 시집 안 간 고모는 개평을 뜯다
이윽고 구실을 바꾸어 놀러 나간다.
나중에는 치매예방에 좋다고 어른까지 끌어들이고 만다.
평소에도 십리만 나가 놀 것 같으면 기계가 따라붙는다.
손이 심심하면 못 쓰는 양, 산과 들로 쏘다닐 적에도 계곡 밑에서도 끗발이 오
르고, 내리는 판은 부처님전 절간 아래라고 마다하지 않는다.
화투는 16세기 일본 규슈 다네마시마에 표착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일본에 건넨
카르타(carta)에 기원을 두고 있다. 카르타는 왜색화하면서 하나후타(花札) 또
는 하나 카르타가 되었다.
17세기 중엽 조선통신사가 전한 수투(數鬪)도 일정하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화투 그림은 붓으로 그린 게 아니라 에도(江戶)시대에 널리 유행한
우키요에(浮世繪) 판화로 찍어낸 것이다.
화투의 12달은 일본의 4계를 초목 문양을 중심으로 반영하고 있다.
1월 송학과 2월 매조는 따뜻한 일본 날씨에 피는 매화와 텃새 꾀꼬리를,
3월 사쿠라(벚꽃)는 더 설명할 것도 없다.
4월은 흑싸리라고 부르나 정작 등나무이고,
5월 난초는 붓꽃, 6월 모란에는 나비가 날고 있다. 한국에서는 선덕여왕 고사
에서 알수 있듯이 향기 없는 꽃 모란에 나비를 그리지 않는다.
7월 홍싸리에 멧돼지는 일본에서 사냥철을 뜻하고,
8월 공산명월은 일본 명절 월견자(月見子)를,
9월 국화는 서리에도 지지 않는 기상이 아니라 무병장수를 기려 국화술을 담가
먹는 풍습을 담고 있다.
10월 단풍은 '낮 홍엽, 밤 홍등' 풍습에 사슴 사냥철을 알리고,
11월 오동은 본디 일본에서 12월로 덴노의 도포 문양이고,
12월 비에 나오는 갓 쓴 이는 10세기 일본 서예가 오노도후와 설화(개구리가
버드나무에 뛰어오르는 걸 보고 힘써 사는 이치를 깨달았다는)를 담고 있다.
놀이와 놀음과 노름은 한 끗 차이다.
놀이는 말 그대로 노는 일이고, 놀음은 연희를, 노름은 도박을 이른다.
끗이란 말이 바로 노름에서 나왔다.
인심은 다르지 않아서 서양에서도 게임(game)이나 갬블(gamble)이 같은 뿌리에
있다. 벌어진 판이 노름이 되는 건 간명하다.
돈이나 물건이나 사람을 걸고 내기를 하면 도박이 되는 것이다.
노름이 발화작용이 더 큰 까닭은 놀이와 놀음을 아우르고 있는 데다 불확실한
결과나 우연이 가져다주는 위험과 도전과 모험이 더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불확실성이 불확실한 사회에 사는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매료시켰다.
격동하는 현실은 생존을 위해 실력 말고도 놀라운 예지력, 곧 감을 요구했고,
이를 일상에서 예행연습 하도록 화투판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를 통해 상대의
실력을 간파하고, 감과 겨루고, 막판이라도 요행과 운수로 뒤집을 기회를 노리
고, 과단성 있는 판세 주도로 마침내 이를 종합하여 승리를 거머쥐는 훈련을
해온 격이다.
오호, 통재라!
우리세대는 어릴 때에 민화투, 나이롱뻥이 화투의 전부인줄 알았으며, '삼단삼약'
'삼단삼시마' 따위로 부르던 민화투는 1960년대 중반 급격하게 변화한다.
'민'이란 다른 화투방식이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밋밋해서 붙은 이름으로 보고
있다. 60년대 한국사회는 5·16쿠데타 세력이 장악한 정권이 일정하게 안정성을
획득하면서 사회경제적 변화가 크게 일어난다. 한·일회담을 통해 일본과 다시
교류를 하게 된 것도 화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 시기에 민화투는 노름
세계에서 밀려나고 육백과 나이롱뽕이 주류를 형성한다.
화투 한 모는 12개월 또는 12가문이 저마다 광, 열, 띠, 피로 구성되어 있다.
민화투가 가문끼리 그림과 짝을 맞추는 직렬적·평면적 방식인 데 반해, 육백과
나이롱뽕은 예측하기 힘든 반전이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는 입체성을 띠고 있다.
나이롱뽕은 조금 앞선 시기에 나온 화학섬유 이름이 정치판을 비롯한 시세에 이
미 풍자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가 화투에 반영된 경우다. 우리말에서 뽕이란 세속
화된 여러 뜻을 담고 있다.
육백이 600점이 나면 한 판이 된다는 점에서 투기성에 상징적 제한과 절제를 두
고 있다면, 나이롱뽕은 참여자를 네댓 사람으로 확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둘이 만나면 육백을 치다 나이롱뽕으로 판을 바꾸는 형식이 일반적이었다.
고도리는 70년대부터 유행했다. 이는 일본의 고이고이(오라오라)에 하치하치
(팔팔)를 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는 일본말로 '5', '도리'는 '새'란 뜻이다.
어릴 때에 구슬치기나 짤짤이에서 '이찌 니 쌈'이라 하는 것이나 '가위바위보'
를 '장깸보'라고 하였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고도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0년대에 일본에서 건너와 70년대에 자리
를 잡고, 80년대에 '전두환 고도리'를 기점으로 국민 두뇌체조 또는 두뇌스포
츠로 널리 확장되어 생활로 굳어졌다.
육백에서 '오광'과 '칠띠'로 판을 끝내는 규칙을, '스톱'과 '바가지'는 나이롱
뽕에서 검증된 권력행사 방식을 가져와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게 고도리다.
고스톱이란, 뜻은 무관하지만 기본적으로 고도리의 '고'가 판을 이어나간다는
것을, '스톱'은 판을 끝낸다는 것을 영어 단어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서 영어의 지배력을 자연스럽게 표출·상징하고 있다.
쇼당, 나가리, 기리 등 화투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거의 일본말인 데다 노
름방식 이름은 영어라는 점에서 한국 노름사회의 정체성을 질문해볼 만하다.
가장 창조적인 영어는 '따블'을 넘어선 '따따블'이다.
쓰리고에 피박이나 판쓸이, 설사 등과 전두환 고스톱은 잘 어울린다.
'전고'는 상대 패에서 아무 거나 한 장씩 빼앗아 판을 쓸어버릴 수 있는 엽기적
인 방식이다. 정치상황이나 정치인 이름을 빗댄 풍자고스톱 전성기가 80년대다.
최규하 고도리,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3김 고도리, 하물며 이순자 고도리
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피가 중요해졌다.
이름 없고 힘없는 대중도 모이기만 하면 판을 뒤엎거나 어찌해볼 수 있다는 것
을 은연중 담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광박과 멍박, 폭탄이 새로운 규칙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고스톱 방식은 앞으로도 끝없는 변천을 거듭할 게 틀림없다.
*서해성(소설가)씨가 쓴 내용을 편집한 것임
석대 화훼단지에 핀 꽃(란타나)이 너무너무 아름다워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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