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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4050사랑하는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세상여행
친한 분들로부터 다시 손에 책을 들게 되어 고맙다는 편지를 몇 통 받고나서 왠
지 민망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책을 많이 읽는사람으로 오해 하신듯 합니다.
하지만 메일 보내신 분의 독서량을 듣고 보니 ‘참 부지런도 하시구나.’ 어떻게
그렇게 많은책을 읽으셨는지 도리어 제가 무척이나 놀라게 됩니다 .
책을 열심히 읽으시는 분들은 한 해에 몇 권 정도의 책을 읽고 계실까.
가끔 뒤적이는 백화점 카탈로그나 신문, 잡지 외에는 최근 몇 달 동안 독서의 기억이 없
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런분도 계십니다 .
어느분께서는 작년 200권 정도의 책을 읽으셨다 하니 한해 책값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Spillover 효과도 커서 그의 사모님 말에 따르면, 책을 읽고 난후 한 번 읽어보라고 옆에 던져 놓고 가는 책을 마지못해 읽은 분량만 100권정도가 되더라고 합니다. 외교통상부의 아시는 국장
님은 아무리 바빠도 퇴근 후 100페이지의 책을 읽고 자는 습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에 어떤분도 일주일이면 책상에 내어 놓는 책이 10권정도 된더란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 살인적인 일정을 감안하면 이것은 발췌해서 골라 읽는
독서법이 아니면 불가능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주변에 생각
보다 문자중독에 가까운 독서열을 자랑하시는분들이 많습니다 .
한때 책을 열심히 읽어 보리라 굳게 마음 먹은적이 있었습니다 .
“앞으로 10년 동안 딱 1,000권의 책을 읽어보리라.” 결심을 했더랍니다.
1,000권의 책을 읽고 나면 세상에 뭐 두려울 게 있으랴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해 동안 독서계획을 짜고, 한 해 동안 읽을 독서목록을 작성하고, 책을 읽을
때 인상에 남는 문구들은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 두었다가 독서노트에 옮
겨 적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트에 옮겨 적는 작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좋은 책 한 권 만나면 옮겨 적을 분량이 너무 많아 책 읽는 시간보다 적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고, 펜으로 옮겨 적는 데도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타이핑을 해서 정리해 보는 방법도 시도해 봤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결국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요새 나왔다는 갤럭시 노트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바로 바로 메모를 해 두었다 찾아도
보고 맘에 드는 페이지를 사진으로 저장해서 스크랩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
그래도 어느때는 한 해 100권의 독서목표는 얼추 비슷하게 달성한것
같습니다. 맹점이 있다면 12월이 다 되어 가는 데 80권 정도 밖에 못 읽었다면
페이지가 얇은 책 20권을 골라 목표량 100권을 채워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목표랍시고 달성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나 봅니다 .
읽을 책을 고르는 스타일은 그때 그때 낱권으로 사서 읽는 스타일이 아니라 3개
월 단위로 수십 권을 한꺼번에 사서 책상에 꽂아두고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아무
책이나 꺼내 읽었습니다. 바쁜 중에 별도로 시간을 내서 서점을 들려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지면 그때 그때 불같이 일어났던 책 읽고 싶었던 흥미가 일순간
사라져 버리기도해서 말입니다 .
3년 정도 그런 과정을 거치다 한 해 100권의 독서목표에 집착하지 말아야겠다
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습니다. 연말에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의 목록을
보고 ‘읽은 책 중에 과연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
줄 만 한 책 이 읽 을 까 ’ 생 각 해 보 니 100권 중 5권이 채 못되었습니다 .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듯이 좋은 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
이 아무리 기억에 남았던 책일지라도 몇 달만 지나도 가물가물해지다가 마침내
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어느 날은 열심히 책을 읽었는 데, 마지막 페이지가 다 되어갔을 때
이상한 생각해 확인해 보니 몇 해전 읽었던 책이라서 혼자서 실소하던 일도 있었
습니다 .
그러면 목표한 독서량에 필요한 절대 독서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관건
이 됩니다 .
작년에만 200권을 읽었다는 어느분의말에 따르면, 주말이면 집안에 틀어
박혀 종일 책만 읽으신다고 약간 불평 섞인 말을 하셨습니다. 또 어느분은 아무리 술 먹는 자리가 있어도 10시가 되면 자리를 박차고 집에 돌아와 하루
2~3시간의 독서시간을 확보하다고 하니 저 같은 사람은 도무지 따라갈 엄두
조차나지 않습니다 .하기야 놀 것 다 놀고 즐기고 다 즐기면서 어떻게 이러한 방대한 독서량을 채우겠습니까. 보통 책을 읽는 사람은 시간이 많다고 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는 사람들입니다. 시간이 많아지면 책도 많이
읽게 될 것 같지만 마음 또한 나태해져서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한해 100권의 책만 읽는다고 마음먹어도 도무지 TV 쳐다볼 시간은 나지 않습니
다. 그러고 보면 1만 시간 성공의 법칙은 산술적으로 비교적 정확한 계산법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3시간 이면, 일년 이면 1,095시간, 우스리 떼고 10년이
면 대충 1만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것도 집중하는 시간만 헤아려서 말입니
다 .
1년에 100권의 책을 읽어도 막상 남에게 권유할 만한 책이 몇 권 안 돼서 못내
아쉬워하던 때를 돌이켜 보면 책을 고르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책은 사람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번 책을 들면 읽을 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되는 책이 좋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쓰인 책은 열정적으로 읽힌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몰입도가 유지될 수 있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협소설이
나 삼류 연애소설, 아니 플레이보이 잡지도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
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드라마를 한 번 보게 되면 다음 편이 궁금해서 결국
은 매일 드라마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만남이 서로에게 정
말 유익이 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
사람도 그렇습니다. 한 번 만난 후 없으면 못 살 것 같이 죽자 살자 하며 꼭
붙어 다니며 애정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곳이 술집이든, 나이트클럽
이든, 아니면 도박장이든. 하지만 슈베르트와 프란츠 숀 쇼버의 격정적인 만남이
매독으로 슈베르트 인생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처럼 결국 서로를 파
괴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가슴 벅차는 환희로 만난 부부도 처음의 열정이 서서히 식어 가면 어느새 사랑이 일상으로 변하고 결국 둘은 헤어지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정채봉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꽃송이 같은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던져져 버리우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니까 .
그래서 정말로 좋은 책은 읽다가 자꾸만 책장을 덮게 되는 책일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괜히 시간과 물자를 낭비하게 만드는 버려야 할 쓰레기 책들도 적지 않습니다. 쓰레기 더미 중에서 활짝 핀 꽃과 같은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
니다. 책이라고 해서 다 책이 아니고 “이렇게 하면 부자된다” 나 “영어공부 3일
이면 끝난다” 라는 아주 아주 시간이 남아 돌거나 돈이 많고 남 좋은일 시키는걸
즐겨하는 착한 사람들이 찾는 책도 있다는 말입니다 .
좋은 책은 다음 내용이 궁금해 급한 마음으로 페이지 넘기기 바쁜 책이 갖지 못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좋은 책은 때론 전혀 모르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하거나 자신이 송두리째 깨지는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분 좋은 여운이 오래오래 남아있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꺼내 읽고
싶고 그런 책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만나는 순간 눈에 불꽃이 번쩍 튈 만큼 자극적인 첫 만남은 아니었지만 헤어질 때 자꾸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이랄까. 아니면 그 사람의 향기가 전해지면서 만남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픈 사람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득문득 그리움이 사무쳐 다시 한번 만나고픈 사람에 비유하면 될까요?
좋은 책이 좋은 책이 되는 이유는 읽는 사람을 향해 이런 질문을 계속 던져대기
때문입니다 .
━ 너는 누구냐?
━ 나는 왜 사느냐 ?
━ 너는 어디에서 있느냐 ?
━ 너는 어디로 가느냐?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잠시 읽던 것을 멈춰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만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생각의 방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며
얼마동안 걸을 수 밖에라도 없습니다. 답의 희미한 실마리라도 붙들기 위해.
제가 e-Book을 읽지 않는 이유는 스쳐지나가는 느낌만 남지 깊은 생각이 고일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글이라는 재료는 동일하지만 전달 매체의 특성상 터치스크린 위를 휙휙 날리는 습관이 체화되어 초반부가 조금 지루하다고 금방 다른
책을 찾거나 맘에 드는 부문만 골라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이 감추고
있는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좋은 책은 깊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만남도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일 것입니맨날 만나서 술 먹고 노래 부르고 희희닥 거리는데서 끝난다면
결코 생산적인 만남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즐겁고 유쾌한 시
간을 나누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생의 깨달음도 나누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
답게 사는 삶인지 함께 고민도 해 보는 만남의 단계로 까지 발전해야 진정 아름다운
만남이었다고 일컬을 수 있을것 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어떤시험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원 강의에 유독 열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름난 강사가 있다하면 빠짐없이 수강하는데 모의고사 볼때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참 많이 안다, 시험에 떨어 질래야 떨어지기가 힘들겠다’ 라는
생각마저 드는데 막상 시험에는 붙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책을
열심히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다 산책이나 하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뜻밖에 괜찮은 성적으로 합격한 사람도 있습니다 .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
학원 강의를 많이 듣던 사람은 ‘익숙한 것과 아는 것’을 혼동한 것입니다. 강사
가 말한 것을 자주 들어 귀에 익숙하다고 해서 그 것을 아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강사가 말하는 것을 피상적으로 입에 주워 담고 흉내 낸다고 해서 지식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모임에서 자주 보는 사람이 눈에 익숙
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아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초보적인 익숙함의 단계를
뛰어넘어 상대편은 요즘 어떤 일로 기쁘고 슬픈 지, 왜 힘든 지, 어떤 꿈을 안고
살아가는 지, 시시때때로 만나서 애기를 나누고 교류하며 그 사람의 겉과 속을 속을 속속들이 살 펴 볼때야 비로써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지도 않고 어슬렁 어슬렁 산책만 하던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요. 모르긴 몰라도 책과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엄청나게 머리가
아팠을 거라는 추측을 해 봅니다. 아무 생각없이 어슬렁 어슬렁 거렸다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유명강사의 강의나 책에 활자
화된 텍스트는 깊은 사유를 위한 재료였을 뿐 재료를 지지고 볶고 삶고 데치는
힘든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기 위해 머리 속은 아마 쥐가
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요점을 정리 해보자면 책이라는 것은 무미건조하게 텍스트를 읽어가는 데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사유와 반성의 소재로 책을 사용하는 것이 독서의
본래취지에 더 부합한다는 말입니다.
“리딩으로 리드하자”라는 책을 쓴 이지성 작가는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
한바 있습니다.
━ 깊은 사색은 창의력과 사고력으로 이어져 학습적 원리 이해를 돕습니다.
말이 어려워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위에 말한 요점에서 크게 벗어나
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물음이
독서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독서는 인생공부의 한가지일뿐 세상에는 하고 많은
공부방법이 있을것입니다.
고미숙이 쓴 “공부의달인 , 호모쿵푸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작가는 공부란 몸으로 하는 것이기에 쿵푸스 工夫 란 단어를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工夫는 당초 무슨 일이건 열심히 연마하는 것을 가르키는 말이였지만 중국
에서는 지금 쿵푸란 무술을 지칭하는 것만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수양의 뜻으로 정착된 것을 보면 조상님들께서 꽤나 공부를 좋아하셨던 모양입니다.
공부의 가장 초보단계가 바로 책, 즉 텍스트에 의존하는 독서라고 합니다. 공자
님은 三人行則 必有我師. 즉, 세명이 함께가면 그 중 한명에게는 반드시 배울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사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좋은 강연이나 주변 분들이 한 마디씩 해주는 충고도
인생공부에는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책과 강연이라고 해도
불과 1년, 아니 몇 달 만 지나도 ‘그때 뭘 보긴 보고, 뭘 듣긴 들은 것 같은데
내용은 뭐였더라.’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짜던 기억이 납니다.
저만의경험이길 바랍니다~
책과 강연이 쉽사리 잊혀지는 이유는 바로 몸으로 배우고 익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과 강연이 간접체험의 형태라면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은 직접체험의
형태로 생각과 지식을 키우는 데 간접보다 직접적인 방법이 좋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 온 몸을 내던져 사람들과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받고
희노애락을 겪으며 인생공부를 해 가는것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는 삶과 공부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됩니다. 사는 것이 곧
공부이고, 공부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책 많이 보는 독서만
유별나게 강조한다고 어찌 훌륭한 공부가 되겠습니까. 더욱이 수능 논설에 필요
하다고 추천하는 책이나 자기분야 전문서적만 읽는다면 더더구나 말입니다.
예수ㄴ나 부처ㄴ은 신의 위치에 있어서 그렇다 치고 지식의 양이나 이것이 계량화된
출판물의 숫자로만 따지면 현대사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그때.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가 있었고, 공맹과 노장과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사상가
사상가가 있었고 , 칸트는 물론 셰익스피어도 있었습니다 .
오늘날 인류는 이 분들이 고민했던 사고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
도 언저리를 맴돌뿐인데 이 분들이 독서를 많이 해서 이런 경지가 이르게 되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일입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경청’이라는 책에서 가문비 나무노인은 이런 말을 합니다.
━ 지혜는 자연이라는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것이다.
저물어가는 낙조, 바닷가로 밀려드는 파도소리, 비 온 후 푸르름을 더하고 쑥쑥
커져가는 나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 그리고 벌거벗은
나뭇가지와 돋아나는 새순처럼 끝과 새로운 시작. 자연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책이라는 말입니다 . 그것도 텍스트화 된 책에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그러니 어느누구의 명함아래에 새겨진 공자님의 말처럼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그 또한 기쁘지 않겠습니까. 죽은 지식이 무덤에 누워있는 것처럼 활자화 된 책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번쩍 한 번 눈을 크게 떠서 사방을 둘러보면 살면서 마주치고 부대끼는 이 모든 것이 그 어느 것도 공부의 대상이 아닌 것이 없다 말입니다.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 주는 끈이다 .
세상 많은 사람들과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투데이로 인해 하루 동안 비슷한
생각을 하고 함께 배우고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축복받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머슨은 또 이런말도 했습니다.
━ 책을읽는다는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것과 같은 의미다.
세상에 공부의 대상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역시 고전적인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 맨 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다면 그것은 망상에 다름 아니며 생각은 하지 않고 맨 날 책만
읽고 있다면 그것은 종이 잡아 먹는 노동에 다름 아닐것 입니다.
언젠가 한 번 초청해서 강의를 들었던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의 저자 이권우는
이런말로 강의를 정리 했습니다.
━ 평생 , 다양한분야의 책을 , 꾸준히 읽는게 좋은 독서습관 입니다.
저는 외람되게 이런말로 글을 정리 하고자 합니다.
━ 올해는 읽을 책을 반으로 줄이십시오. 대신 생각은 두 배로 늘리십시오.
책값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읽다가 문득문득 책장을 덮고 싶은 책을 자주 만나게 되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기를~
첫댓글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