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교회(敎會)라는 곳에서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3)
명색이 교회(敎會)라는 곳에서“불법”(마7:23)이 판을 치고 있다니?
무슨 소리일까? 그렇다! 분명히 하나님께선 천지창조시에 “7일 일주일”제도를 만드시고(cf 출20:11)
그 기준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때문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들 말하기를
그 명령은 유대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함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대단히 무식(無識)한 소리이다.
즉, 그 명령하신 이유가 천지창조이기 때문에.(cf 출20:11)
어느 특정 민족만을 염두에 둔 명령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이해할 내용이지만
이를 이해 못하는 평신도들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전 세계적으로 수만명의 목사들도 이해 못하기는 매 마찬가지다.
두뇌회전이 아주 멈춰서일까? 예수님의 부활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요일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7일 일주일”제도에 매주(每週)마다 몸담고 있으면서도
이 제도의 생성과정(cf 창1:1-31; 2:1-3)을 직시하고, 그 운행 지침(cf 출20:8, 11)에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注口長槍) 한다는 소리로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함으로 일요일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는 “7일 일주일”제도에 매주(每週)마다 불가피하게 반응하고 있으면서도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처럼 무식(無識)함의 소치일 뿐이다.
이를 예수께선 심판의 날에 내 치실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마7:23)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7:21)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선 천지창조의 결과로
“7일 일주일”제도(cf 출20:11)를 만드시고 그 제도의 기준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cf 출20:8)
그러나 이를 시기(猜忌)한 사탄은 서기 132-135년 경에
자신의 하수인(카톨릭)을 시켜 “7일 일주일”제도의 원형에 변형을 입히고 말았다. 즉, 그 제도의 기준일에
일요일을 등극시키는데 성공하여 카톨릭으로 하여금 중세기를 장악케하고 심지어는 개신교에까지 오염시켜 버림으로써
오늘날 까지도 명색이 교회(敎會)라는 곳에서“불법”(마7:23)이 판을 치고 있는 참람된 짓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생각처럼 화려하지 못하다.(cf 겔22:26; 마7:23; 15:9; 막7:6-9)
- 김종성 -
첫댓글 몇 번을 말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분의 탄생이나 십자가의 희생과 마찬가지로
“구속의 경륜”이시다. 천지창조에 따른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에 등극할 사안이 도무지
아니라는 얘기이다.
카톨릭의 전신(前身)들이라 할 수 있는 세력들이 로마에 의해 유대에게 닥친 위험들 즉, 어기면
사형(死刑)이라는 토라 금지와 할례 금지, 그리고 안식일 준수금지를 등을 피해볼 요량으로 마련한
임시방편으로서의 성격이 짙은 날인 일요일이 사태를 진정시킬 대안(代案)으로 떠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사태의 진정 후, 성경에 따른 본래의 모습대로 원위치 시켜야 도리이겠으나 그 세력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 사건은 서기 132-135년 경에 일어 났는데, 명백한 “불법”(마7:23)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안식일은 짓밟혔고, 명색이 교회(敎會) 안에서 “불법”(마7:23)이 판을 치고 말았다.
8월 15일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사람들이 그 필요에 의해 제정한 기념일들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제정한
기념일들도 절대 변경 불가이거늘 하물며 그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기리고,
뭇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마련하신 날인 안식일을 일요일로 교체한다?
당시 예수님도 승천하시고 사도들도 다 죽고 없는 어수선한 틈을 이용 불의한 방법에 의해 안식일이
그 기준이 된 “7일 일주일”제도의 원형은 사탄의 사주를 받은 세력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일요일로
변형이 되고 말았다. 하늘의 방식을 하찮은 인간들이 그런 짓을 하다니? 그것도 좀 배웠다는 수많은
신부들과 목사들이 그런 짓을 지지하고 있다니? 정말 기(氣)가 막힐 노릇이다. 주(主)님께서도 인용한
이사야의 예언이 실감나고 남음이 있다.(cf 사29: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