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연말이라 매우 바쁘실 텐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방금 소개받은 천진기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릴 주제는 12간지로 흔히 '띠'라고 부르는 12마리의 동물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을 연관짓는 전통적인 관념은 그 범위가 매우 넓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띠와 관련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며, 이 땅에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띠 개념이 어떤 양식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동물상징들을 알아봅시다. 여러분들께서 익히 알고 계시는 솟대는 긴 장대 위에 오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지요. 마을입구에서 마을을 지켜주고 주민들의 안녕을 빌어주며 인간의 뜻을 하늘에 소통하는 역할을 하는 솟대에 왜 하필이면 오리가 쓰였는지 궁금하실 줄 압니다. 쉽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데, 인간은 육지에서만 살 수 있는 반면, 오리는 하늘과 땅, 물위를 넘나드는 능력을 갖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과 하늘 세계를 왕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오리는 솟대 위에 올라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보는 거미는 '복(福)거미'라 하여 모두 살려주는 반면, 해가 지고 난 뒤의 거미는 '근심거미'라 하여 보는 족족 죽여버리지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슴을 두고도 재미있는 현상이 있는데 장사하는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고 하여 사슴고기를 먹지도 않을뿐더러 사슴을 보는 일도 꺼립니다.
저는 이처럼 같은 동물을 두고 사람과 시간, 장소 등에 따라 다른 관념과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고 어떤 형태로든 이런 관념과 이미지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동물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띠 동물에 따른 사람팔자, 그 판단근거는 나에게 있다>
한국의 동물상징은 크게 12띠 동물, 십장생, 사신(四神) 등으로 나누어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중에서 띠 동물에 관한 공부는 13년 전부터 시작하였고 매년 한가지씩 띠 동물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한국인은 띠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만 그 점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띠 동물과 그 띠에 해당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온전히 '믿거나 말거나'한 부분입니다. 제가 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서두에 꼭 해두는 이야기도 바로 '믿거나 말거나' 모두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관련하여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박물관에 50대 초반의 여선생님이 계시는데 어느 날 점을 보러 갔답니다. 그랬더니 점쟁이가 보자마자 "당신 올해 죽을 팔자구만"하면서 자기가 써 준 부적을 불에 태워 물에 타 공복에 마시면 운명을 피해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태워 마시지는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해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가족수당 문제 때문에 동사무소에 갔더니 어머님 대신 본인이 사망신고가 되어 있더랍니다. 실제로 죽지는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상당기간 죽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날부터 점쟁이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길 가다가도 무슨 일을 당할 까봐 무섭고 집에 와서도 문을 걸어 잠그게 되더랍니다. 그래서 결국 부적을 태워서 마시고는 마음을 진정시켰다는 얘깁니다.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이 일이 나에게 있었던 사건이라 한다면 결코 재미있는 얘기일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 일화가 아닌가 합니다.
이에 반해 웃자고 하는 얘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옛날에 삼대독자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점을 보니 점쟁이 왈 '모월 모일 모시에 물에 빠져 죽을 팔자이니 온 가족이 나서서 아이를 지켜라' 하였습니다. 모두들 걱정에 휩싸여서 모월 모일 아이를 방에 가두고 지켰는데 모시가 지나고 한숨을 쉬며 문을 열어보니 아이가 달력의 물(水)자에 코를 박고 죽어있더랍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띠 동물과 자기 운명과의 관계는 예로 든 두 가지 이야기 중 전자일수도 있고 후자일 수도 있습니다. 띠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연관시켜 이야기함에 있어서 과학적인 증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얘기를 진행하면 아시겠지만, 우리사고 안에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띠 동물과의 연관성은 엄연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남아 있는 사실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판단에 달렸다 할 것입니다.
<연말연시에 등장하는 12간지 이야기>
이제부터는 띠 동물과 그 해에 태어난 사람들과의 연관성을 이야기 해 봅시다. 아이가 쥐해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할머님들이 탯줄을 자르면서 한 마디 하십니다. "얘는 평생 먹을 걱정은 없겠다."고 말이지요. 이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운명이 띠 동물과 연관되어 지는 것입니다. 성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잔나비 띠는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으니 엔지니어 쪽으로 일해 보라' 한다든지 닭띠로 태어나면 '무엇인가 파헤쳐야 먹을 것이 생기는 운수이니 돈을 써야 모을 수 있겠다'든지 하는 얘기들 말이지요.
한국이라는 상황 속에서 살려면 자연히 띠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띠 동물의 행태(行態)나 운명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관념이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요소란 사실에 주목해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단지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생에 몇 번 12간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첫번째로는 연말연시를 들 수 있겠습니다. 2000년 1월 9시 뉴스의 첫 멘트가 "드디어 경진년 용띠 해 새해가 밝았습니다. 용의 해는 용처럼 활동적이고 변화가 심한 한해가 될 것으로 예견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용이란 동물이 갖는 상징성에 의거한 멘트인데 표현대로 용은 변화무쌍한 동물입니다. 번데기처럼 작게 변할 수 있고 천하를 덮을 정도로 크게 변화할 수도 있는 동물이 용이며 12간지 중 유일하게 관념의 동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용은 큰 변화를 가져오는 동물이면서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로 받아들여 희망을 품기도 합니다. 실제로 신라가 통일된 688년, 88올림픽, 등 역사상 용띠 해에 상서로운 일이 일어난 기록이 많기도 합니다. 올해만 해도 50년만에 통일로 가는 물꼬를 텄으니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얘기가 틀리지 않은 셈입니다.
그런가하면 고집이 센 짐승이긴 하지만 양띠 해에는 평화를 말하고 아무리 못된 시어머니라도 양띠 해에는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꾸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듯 한 해의 행운을 그 해의 동물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나름대로 정리해 보는 일은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일입니다. '아침국수, 낮 이야기' 라는 말도 있듯이 말입니다.
<띠 동물과 나의 운명>
띠 동물 이야기를 하게 되는 두 번째 경우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태어난 아이의 운명을 그 띠 동물의 속성과 연관시켜 결정짓는 것이지요. 범띠 사내아이가 정월 섣달 밤에 태어났다고 칩시다. 할머니는 삼을 가르면서 "이 바람기를 어찌 잠재울꼬" 합니다. 범은 일년에 한번 정월에 짝짓기를 하는데 이때가 되면 정력이 가장 왕성해 집니다. 그래서인지 고려사를 보면 임금님이 호랑이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호랑이는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살며 야행성 동물이기에 밤에 더욱 활동적이지요. 그러니 정월달 밤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면 호랑이의 정력이 모두 아이에게 전이되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점잖은 말로 한다면 '갓을 두 방에 걸겠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아이가 태어날 때 어르신들은 아이와 띠 동물의 운명을 연결시켜 버립니다.
저는 신축생 소띠로 4월 17일 오전 9시 생입니다. 어머님은 지금도 '그 일복을 다 어쩌냐'고 걱정하시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복하나는 정말 많습니다. 음력 4월의 소라면 새벽에 일어나 여물도 못 먹고 밭에 나가야 하고 9시면 한창 일을 할 때입니다. 그러니 제가 평생 일복이 많을 수 밖 에요. 저도 모르게 '왜 내가 소띠로 태어났나, 소띠로 태어났어도 밤에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나도 모르게 띠 동물과 나의 운명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여성의 띠로서 3가지를 꺼리는데 범띠, 용띠, 말띠가 그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전통적인 여성관, 그러니까 여성은 다소곳하고, 착하고,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과 연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정적이어야 할 여성이 범처럼 사납고 말처럼 와일드하며 용처럼 크다면 안될 일이지요. 특히 호랑이는 사납기도 하지만, 새끼를 잘 키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범띠해 여성은 자식복이 적다고들 하지요. 말띠여성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생각인 듯 합니다. 기록에 보면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둘째 손녀딸이 말띠였는데 어찌나 거센지 시집을 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말띠 여자는 천황의 부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왕비 중에는 말띠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말띠 여성을 꺼리는 일은 일제의 잔재라 할 것입니다.
토끼띠는 또 어떻습니까? 토끼는 육지동물 중 가장 나약한 동물에 속합니다. 잠도 편히 잘 수 없어 눈도 항상 빨갛다고 하지요. 그러므로 토끼해에 태어난 사람은 심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꾀가 많고 영리하다고 합니다. 또한 토끼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한데 달속의 토끼가 찧고 있는 것은 떡방아가 아니라 불노장생(不老長生)의 영약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토끼는 약하지만 영리하고 그 영특함으로 인해 지혜롭게 오래 살 수 있는 인간형을 뜻합니다.
2001년은 뱀띠해지요. 12간지 중에 뱀처럼 그 평가가 극단을 달리는 동물도 없습니다. 희랍신화에서 뱀은 재생과 치료의 신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 쪽 약국을 보면 뱀 두 마리가 합쳐진 모습의 문장을 달고 있지요. 뱀은 '허물을 벗는 동물'이며 '동면을 하는 동물'이므로 생명의 탄생, 다시 살아나는 영생의 동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덤 속에 뱀모양의 토우를 만들어 넣거나 벽화로 그려 넣는 경우가 흔한 것입니다. 뱀에 관한 관념이 이렇다고 할 때 2001년은 무엇인가 변화를 꾀하는 한 해, 한 획을 긋는 한해로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이며 이를 뱀띠 해에 태어난 사람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원숭이띠는 재주와 정이 많고 토끼처럼 장수한다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단장(斷腸)의 슬픔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죠? 여기서 단장이란 창자가 끊어질 만큼의 슬픔이란 뜻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옛날 한 선원이 새끼 원숭이를 배에 태웠는데 다음 항구에 도착해 보니 바싹 마른 원숭이 한 마리가 달려와 새끼를 안아보고는 죽었다고 합니다. 하도 이상하여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말라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새끼를 잃은 어미가 먼길을 먹지도 않고 물길을 따라 달려와 자식을 만난 것이지요. 이렇듯 원숭이는 정이 많은 동물, 그 울음소리가 무척이나 슬픈 동물로 상징됩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이나 조각 등을 보면 새끼를 안은 모습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또한 원숭이가 장수의 상징인 것은 천도복숭아를 따먹고 있는 그림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3,000년만에 열리고 300년이 지나야 익는다는 천도 복숭아를 누가 따먹습니까? 바로 원숭이지요. 그림을 통해 원숭이가 오래 사는 동물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닭띠를 살펴봅시다. 그림 등을 보면 닭은 새끼를 많이 거느리고 있습니다. 닭은 이처럼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인데 자식 많이 낳는 것을 복으로 생각했던 옛날에는 과연 좋은 띠 동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닭은 벼슬을 지닌 동물로 선비들에게는 높은 벼슬을 받고자 하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의 방에는 닭 그림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띠 동물과 궁합>
그 다음에 12간지를 이야기할 때는 결혼을 앞둔 시점입니다. 결혼할 사람과 내가 서로 맞는지를 알아보는 일에 띠 궁합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원진과 삼합이라 하여 좋지 않은 띠와 좋은 띠를 구분하지요.
꿈 중에서 최고로 좋은 것을 용꿈과 돼지꿈이라 하는데 98년 조선일보 경제면에 재미있는 기사가 났었습니다. 1억이상 당첨자에게 어떤 꿈을 꾸고 복권을 구입했냐고 물었는데 50% 이상이 동물꿈을 꾸었다고 했고 그 중에서 1위가 용꿈, 2위가 돼지꿈이었습니다. 조상이 나타나는 꿈, 똥꿈도 좋은 꿈으로 꼽혔습니다. 이렇듯 동물 중에서 용이나 돼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인식되어 있는 것입니다.
강릉 오죽헌의 몽룡실은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 이이를 낳았다는 일화를 보여주고 있고 홍길동의 홍판서도 청룡이 달려드는 꿈을 꾸고 야합을 하여 홍길동을 낳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등용문이라 하여 벼슬을 꿈꾸는 선비들은 용그림을 즐겨 소유하였고 갓 결혼한 신랑 신부의 방에도 용처럼 훌륭한 자식을 낳으라는 뜻으로 용 그림을 장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골 이발소 같은 곳에 걸린 돼지 그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젖을 빠는 아기돼지들이 나오는 그런 그림은 행운과 복, 돈을 상징하는 부적인 것입니다. 기록을 보면 고려의 국내성이나 왕건의 송악도 돼지가 점지해 줍니다. 그만큼 돼지나 용은 길상의 존재로 상징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용과 돼지는 무척 잘 맞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맞지 않는 궁합에 속합니다. 돼지띠(亥) 엄마가 용띠(辰) 아이를 낳으면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용은 사슴의 뿔, 토끼의 눈, 낙타의 얼굴, 호랑이의 발등, 독수리의 발톱, 잉어의 비늘, 등등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끌어 모아 형상을 만들었는데 돼지 들창코 때문에 모습을 영 망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이 돼지를 보면 잡아먹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우제를 지낼 때 돼지 피를 뿌리거나 용소(龍沼)에 돼지머리를 집어넣는데 돼지를 본 용이 일어나 구름을 만들면 비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좀 우스운 얘기이긴 하지만, 이런 이유로 용과 돼지띠는 서로 맞지 않습니다.
원진의 관계로는 범띠(寅)와 닭(酉)띠도 들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호랑이는 배가 고파야 사냥을 하는데 배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를 들으면 고픈 배를 움켜잡고 다시 숨어야 하기 때문에 호랑이가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닭이라고 합니다.
말(午)띠와 소(丑)띠도 좋지 못하다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잘 맞을 듯도 한데 이상하지요. 그런데 사육사의 말에 의하면 소와 말은 생물학적으로 서로 시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우리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합니다.
또 잘 안맞는 띠 중에 원숭이(申)와 토끼(卯)가 있는데 그 풀이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하는 말 잇기 놀이가 있죠. 그런데 토끼의 눈이 어떻습니까? 역시 빨간 색이지요. 그래서 같은 색을 가진 원숭이와 토끼는 맞지 않습니다. 음양에 따라서 같은 것은 물리치고 다른 것은 합친다고 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 분포도를 보아도 토끼가 사는 곳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고 원숭이가 사는 곳에는 토끼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뱀(巳)과 개(戌)도 맞지 않습니다. 뱀은 감각기관이 없어 혀와 진동으로 적과 먹이를 구분하는데 허물을 벗을 때 개짓는 쇠소리를 들으면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뱀과 개띠는 서로 맞지 않겠지요.
서로 잘 맞는 띠는 삼합이라 하여 그 특징이 비슷한 것끼리 묶어 놓았습니다. 쥐(子)=용(辰)=원숭이(申)는 빠른 움직임과 영리함이 닮았다는 면에서 삼합이고, 소(丑)=뱀(巳)=닭(酉)도 삼합인데 이유를 보면, 소는 뱀의 독을 무서워하지 않고 어린 뱀의 독은 소의 혈청을 왕성히 하여 체력을 돋우며 소가 닭 울음소리에 맞추어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범(寅)=말(午)=개(戌)는 호랑이의 포효와 개의 쇳소리, 말의 울음소리가 서로 화합하기 때문에 삼합이며 토끼(卯)=양(未)=돼지(亥)경우, 토끼는 돼지의 분비물 냄새와 힘을 부러워하고 양의 초연한 태도를 취하려 하고 토끼의 코는 양과 돼지의 코를 닮았으며 성격면에서도 돼지의 우묵함과 양의 자존심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삼합이라고 얘기 합니다.
<12간지의 순서와 그에 얽힌 이야기>
12간지의 순서는 어떻게, 왜, 언제 정해졌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부터는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모두 알고 계시듯이 12간지는 자(子·쥐), 축(丑·소), 인(寅·호랑이),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申·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순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이에 관한 설화가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하늘의 임금님이 정월초하루에 인사를 하러 오는 동물들의 순서대로 벼슬을 내리겠노라 하자, 많은 동물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쥐가 곰곰 생각을 해보니 도저히 승산이 없어 가장 열심히 운동하는 동물의 덕을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소가 제일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한 쥐가 마굿간으로 잠입해 소꼬리를 붙잡고 초하룻날이 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일 소가 하늘 문을 넘으려 할 때 앞으로 뛰어나가 쥐란 놈이 일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왕 쥐 얘기가 나왔으니 쥐에 관한 일화를 하나 말해 보죠.
옛날에 미륵이 세상을 만들고 물과 불의 근원을 알지 못해 생식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보니 쥐는 알 것이라고 했지요. 과연 쥐에게 물으니 답은 알고 있으되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미륵이 말하길 "이 세상 뒤주가 모두 너의 차지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미륵은 불과 물의 근원을 알게되어 생식을 면하였고 이때부터 쥐는 세상의 뒤주를 독차지했다는 얘기입니다. 과연 쥐란 동물은 영리하고 정보에 강한 동물로 상징되는 바,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최고로 각광받는 캐릭터가 쥐라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 내는 옛날 이야기에도 가짜 주인공으로 변신한 쥐가 등장하지요. 이처럼 쥐는 식복과 정보의 화신으로 쥐띠에 태어난 사람은 역시 식복이 좋다고들 합니다.
12간지 순서에 관한 또 하나의 설화는 부처님의 열반에 관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물이 있었는데 이 때 찾아온 순서대로 12간지를 정하였다는 것이지요. 설화 이외에 음양오행으로 설명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 세상 동물 중 한 몸에 다른 발가락 수를 갖고 있는 동물은 쥐밖에 없다고 합니다. 쥐의 앞발은 4개로 음의 수이고 뒷발은 5개로 양의 수이기 때문에 음과 양이 변하는 순간에 놓일 수 있는 동물로 쥐를 택했고 그 다음에 음양이 순서대로 오도록 동물을 배치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설명은 중국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본 12간지입니다. 과거 중국인들은 시간과 방위에 동물을 배치시키기 위해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했다고 하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子·쥐) : 23∼01時 / 쥐가 제일 열심히 뛰어 다니는 때
** 축(丑·소) : 01∼03時 / 소가 낮에 먹은 여물을 되새김질을 하며 아침 밭갈이를 준비하는 때
** 인(寅·호랑이) : 03∼05時 / 하루 중 호랑이가 가장 흉악할 때
** 묘(卯·토끼) : 05∼07時 / 해뜨기 직전 토끼가 편히 잘 수 있고 달이 아직 중천에 걸려 있어 그 속에 옥토끼가 보이는 때
** 진(辰·용) : 07∼09時 / 용들이 날면서 강우를 준비 하는 때
** 사(巳·뱀) : 09∼11時 / 뱀이 자고 있을 시간이어서 전혀 해가 없는 때
** 오(午·말) : 11∼13時 / 고조에 달했던 양기가 점점 기세를 낮추고 음기가 머리를 들기 시작하는 때. '음'인 땅위를 달리는 말이 가장 힘을 얻는 때
** 미(未·양) : 13∼15時 / 이때 양이 풀을 뜯어먹어야 해가 없이 다시 풀이 돋는다.
** 신(申·원숭이) : 15∼17時 / 원숭이가 가장 활발히 움직일 때
** 유(酉·닭) : 17∼19時 / 하루 종일 모이를 쫓던 닭들이 둥지에 들어가는 때
** 술(戌·개) : 19∼21時 / 날이 어두워져 개들이 집을 지키기 시작할 때
** 해(亥·돼지) : 21∼23時 / 돼지가 가장 단잠을 잘 때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부 해당되는 시간에 가장 활동이 활발하거나 움직이기에 유리한 동물을 찾아 배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이러한 12간지가 동일하지만, 인도, 중앙아시아 멕시코 등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즉, 인도에서는 호랑이 대신 사자, 닭 대신에 공작이 나오고 베트남의 경우에는 쥐 대신 고양이가 나옵니다. 서양에서는 비슷한 개념으로서 별자리가 있지요. 이렇듯 12간지는 지역의 풍토와 관련된 동물들의 결합이 조금씩 다르지만 동물들로 하여금 방위와 시간을 나타내도록 하는 점은 세계공통의 현상입니다.
중국의 경우 12간지가 처음 나타나는 시점은 BC 105년에 쓰여진 갑골문자를 통해서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경주에 가면 볼 수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묘라든지 괘릉 등에는 원형의 무덤 주위로 판석에 부조한 12지신이 방위에 맞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나침반을 놓고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무덤에 12지신이 등장하는 것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당나라 때는 흙으로 조각하여 무덤 안에 넣기도 했습니다. 무덤에 나타난 12지신은 그 후로 석탑이나 석등과 같은 불교상징물들로, 또 우리의 생활 속으로 점점 깊게 파고들어 앞에서 보았던 방위나 시간의 개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의미들은 모두 축소되고 현재는 띠의 개념으로만 살아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12간지의 상징성은 문화적 특징>
지금까지 12간지 동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서로의 관계는 어떠하며 띠 동물과 그 해에 태어난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아보았습니다. 동물 하나 하나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할 수 있겠지만, 시간상 생략하고 대신 동물을 분석하는 방법에 관해 간단히 말해보고자 합니다. 하나의 동물을 분석함에 있어서 세계공통의 사실은 과학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공기를 빨아들여 적과 먹이를 구분하기 위한 공통의 현상이지만 이를 민속모형으로 분석하면 나라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사탄, 유혹, 이간질, 수다장이 등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요. 이렇듯 동물들의 고유한 생물학적 특징을 두고 내리는 해석이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으로써 이를 연구하면 각 나라의 고유한 사고체제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고 띠 동물과 관련된 팔자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얘기를 드렸던 주된 이유는 바로 문자 이전의 동물상징이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동물을 바라보는 민족의 태도와 관념은 어떠한가 하는 점이 하나의 문화코드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념은 알게 모르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말은 매우 남성적이며 활동적인 동물의 상징입니다. 지금은 주변에서 쉽게 말을 볼 수 없지만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담배선전이나 남성화장품 광고에 말의 이미지를 활용한 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띠 동물과 나와의 운명을 한데 연결시키는 관념, 12간지의 동물이미지를 활용한 다양한 예,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이 모여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 등은 12간지에 관한 관념들이 그저 웃어넘길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생활방식, 관념 등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여도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가 됩니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 문화창달은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고 상대성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것을 철저히 알고 타문화를 이해할 때 경제도, 국력도 커지게 됩니다. 이것이 21세기 전통문화의 역할이고 우리가 문화를 알아야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12간지와 나와의 관계, 그 무수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통해서 우리 관념의 세계를 폭넓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