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이 "고결한 마음, 인내"인 매화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 중국 산동 지방에 '용래'라는 청년의 약혼녀가 약혼식 3일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약혼녀 무덤에서 울던 용래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나무가 한 그루 돋아난다. 용래는 그 나무를 집에 옮겨 심고 약혼녀의 넋으로 여긴 그 나무를 바라보다 일생을 마친다.
그리고 용래가 늙어 죽어서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그 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후세에 사람들은 용래의 약혼녀 무덤에서 핀 나무를 '매화나무'라 하였고, 그 매화나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곁에 가까이 있던 새를 '휘파람새'라 불렀다.
낮 12시 4분 온통 매화꽃으로 뒤덮인 청매실 농원과 쫓비산 자락에서 벗어나 수많은 차량,인파, 그리고 음식점들이 즐비한 도로변으로 다시 내려왔다. 이곳 섬진강 주변의 특산물인 벚굴을 손질하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일본인들이 벚꽃이 피는 시기에 먹는 굴이라해서, 또는 벚굴은 서너 개가 한 데 모여 자라는데 그 모습이 꼭 물속에 핀 벚꽃 같다고 해서 벚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굴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 강물 속 바위에 붙어 자란다.
이날 이곳에서의 벚굴 시세는 위 사진의 한 접시 가격이 3만원이다. 지난 2011년에는 2만원~2만5천원 정도였는데,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는 금년 시세를 보니 유명세를 타며 수요가 크게 늘어난듯 싶다.
어쨌든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손질 중인 굴 한접시 옆에 담배갑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보통 이 굴 한개의 무게는 껍질 포함하여 600~700g. 엄청난 크기이다. 맛 또한 일품이며 입춘 무렵부터 4월까지만 맛 볼 수 있는 진미 중 하나이다.
청매실농원과 그 주변 축제장을 벗어나 섬진강 강변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쪽빛 물빛과 고운 모래로 잘 알려진 이곳 섬진강은 옛부터 모래가 고와 다사강(多沙江), 대사강(帶沙강), 사천(沙川) 등으로 불리었으나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를 내쫓았다하여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을 써서 섬진강이 되었다 한다.
낮 12시33분 2시간 이상 머물렀던 매화마을을 뒤로하고 부교를 이용해 섬진강을 건너간다. 이제 이곳 전남 광양에서 저 부교를 건너 가면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 박경리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자 제주도,전남 보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녹차 산지인 경상남도 하동 땅이 된다.
한국, 중국이 원산지인 산수유나무는 특히 토심이 깊고 비옥한 곳에서 잘 성장하고 햇볕을 좋아하나 음지에서도 개화 결실하며 각종 공해에는 약한 편이나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이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지역인 이천시 백사면에서도 재배하지만 주로 남부의 산지에서 자생한다. 우리 나라 산수유(열매) 생산량의 60%가 이 부근인 전남 구례군에서 생산된다.
산수유가 이곳 구례군 산동면의 지방특산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년 전쯤이었다고 한다. 지리산 험한 준봉에 둘러싸여 있어 논이 적고 밭이 척박하였기에 산수유 나무를 곳곳에 심어 생계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그 덕분에 요즈음은 산수유 꽃 하나만으로 전국 각지의 행락객들을 불러모으는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이다.
공해에 약하지만 내한성 강하고 이식력이 좋아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보다 먼저 개화하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은 시원한 느낌을 주는 수형과 아름다운 열매로 조경수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 20~30개의 작은 꽃들이 뭉쳐 퍼지며 핀다.
등산을 자주하는 이들은 매년 3월이면 산행 중 노란색 꽃을 만나면 산수유로 착각한다. 그러나 산속에서 피어나는 노란 꽃은 산수유와 흡사하지만 대부분 생강나무 꽃이다. 생강나무의 줄기,가지는 매끈하고 깨끗하지만 산수유나무 줄기와 가지는 껍질이 벗겨지는 등 지저분한 모습으로 구분된다. 또한 산수유꽃은 수술이 길게 뻗어나와 불꽃놀이 하듯 피어나는 특징이 있다.
* 위 사진에서 보듯 산수유나무 줄기는 껍질이 제멋대로 벗겨진 지저분한 모습이다.
위 사진은 생강나무다. 사진에서 보듯 줄기가 벗겨진 곳이 거의 없이 무척 깨끗하다. 요즈음 산수유나무는 대부분 민가 근처에서 자라므로 3월달에 산속에서 노란꽃을 만난다면 아마도 대부분 암수 딴그루인 생강나무일게다. 줄기,잎,꽃에서 우리가 식용하는 생강 냄새가 나는 연유로 그 이름을 얻었다.
매년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에 걸쳐 우리 나라에서 산수유 꽃 축제를 개최하는 곳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경북 의성군 사곡면 등이 있으나 올해로 제15회 째를 맞는 이곳 구례 산동면의 산수유 꽃 축제에 비하면 다른 지역의 경우 역사나 그 규모가 이곳에 미치지 못한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북쪽 2km 남짓 거리의 상위 마을에 들러 그곳의 산유정이라는 이름의 정자에 올라 샛노랗게 물든 아담한 산수유마을과 지리산 만복대에서 부터 뻗어 내린 산 자락에 터를 잡은 다랭이논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그 옆으로 나란히 선 대숲 등이 뒤엉킨 한 폭의 산수화를 보고자 했으나, 시간 제약으로 그러지 못하는 대신 이곳 반곡마을 물가에서 봄을 즐긴다.
산수유 그늘 아래 큰 암반 사이를 흐르는 얼음 녹은 물. 아직은 뼈가 시릴 정도로 차디찬 물이지만 조그맣게 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물에 샛노란 산수유꽃이 비친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축제장 부근 대로변에서 10분 이상 걸어 올라온 이곳 반곡마을. 그 덕분에 인적이 얼마 없는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햇빛 잘 드는 큰 암반 위에 편하게 앉아 봄을 즐긴다. 지금 이 순간만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이 없다.
지리산 만복대 남동쪽의 위안리 비리바위골 부근에서 시작되어 흐르는 작은 물줄기는 상위마을에서 시작된 또 다른 물줄기와 합쳐 서시천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 계속 남서쪽으로 흘러내린다. 그리고 머잖아 구례읍을 지나면서 섬진강 품속으로 스며든다.
샛노란 산수유꽃에서는 벌을 구경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나, 노란색에 가까운 벌 고유의 색깔 때문이 아닐까 싶다. 꽃말이 지속[持續], 불변[不變] 등인 산수유꽃도 자세히 살펴 보면 많은 벌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농촌 일손 부족 현상 때문인지 수확을 못하고 해를 넘겨 말라 버린 산수유 열매가 안쓰럽다. 산수유 열매는 8월부터 녹색의 핵과가 형성되어 10월이면 진한 붉은색으로 익은 아름다운 산수유 열매를 볼 수 있다. 10월 중순의 상강(霜降) 이후 서리가 내린 다음에 수확하는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또한 산수유 씨에는 렉틴(Lectins)이 들어 있어 인체에 유해하므로 반드시 씨를 제거토록 해야 한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과 함께 비교적 일반에게 잘 알려진 한약 중 하나인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에 산수유를 비롯한 여섯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오후 4시18분 반곡마을을 떠나 큰 도로변에 위치한 원좌마을 산우슈문화관 뒤편 동산에 오른다. 산수유사랑공원이란 이름이 붙은 자그마한 공원. 노란색 산수유 조형물 뒤로 멀리 보이는 마을이 조금 전 다녀온 아름다운 반곡마을이다.
산수유사랑공원내 가장 높은 지점에 만들어 놓은 정자에 오른 많은 관광객들은 사방으로 눈을 돌려도 온통 샛노란 산수유로 뒤덮인 황홀경에 취해 자리를 뜰줄 모른다.
산수유사랑공원이 위치한 녹색농촌체험마을로도 알려진 원좌마을은 온통 노란 산수유로 뒤덮여 있다. 원좌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마을 생김새가 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하여 '좌새'라 하였다가 그 후 지대가 높은 위치라는 이유로 '원좌'로 불리웠다고도 하고, 또는 서쪽 산동면 소재지 부근 원촌마을 아낙네들이 이곳 원좌마을 뒷산으로 약초를 캐러왔다가 이곳 마을 청년들과 사랑이 움트면서 같은 원촌 사람들이 다수 살게되고 후에 마을 이름까지 '원좌'로 바뀌었다는 다소 로맨틱한 유래까지 전해지는 곳이다.
귀가 시 자나가야 할 지리산온천랜드 부근 축제장 중심부를 거쳐 산동면 소재지를 거쳐 산동교차로까지 이어지는 4차선 도로는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주차장을 방불케한다. 1년에 한 번 시기를 맞춰야 가능한 꽃 구경이니 잠시 동안의 교통 체증쯤은 머릿 속에 담지 않는 그런 마음가짐도 봄철 꽃나들이를 떠나는 이들은 잊지 말아야 할 덕목 중 하나이다.
첫댓글 매화 산수유 봄소식에 험뻑 젖어봅니다.
하루 이틀사이에 아파트앞 벚꽃도 만발 했어요.
반팔이 제격으로 따뜻한 일요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