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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코스]
무산사~(15km)~악양생태공원~(19km)~주씨고가~(14km)~고려동 유적지~(5km)
~아라가야 왕궁지~(12km)~서산서원~(100m)~채미정
1.무산사(武山祠 :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길 75)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조선시대 유학자인 주세붕(周世鵬 : 1495~1554)의 초상과 유품을 모신 사당이자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지은 집
으로 우리나라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주세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숙종24년(1698)
건립했고 1919년 사당옆에 무산서당이 세워졌지만 6.25전쟁때 불탔고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건립된 것
으로, 앞면 5칸,옆면 2칸의 일자형 평면건물로 지붕은 옆모습이 열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중앙 2칸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각각 2칸과 1칸의 방을 꾸며 전형적인 서당의 공간구성을 보여줍니다.
무산사의 광풍각에는 주세붕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 주세붕의 시문집인 '무릉잡고 목판', 주세붕의
고손자인 주맹헌의 시문집인 '수구집 목판', 주세붕의 아들 주박의 시문집인 '귀봉집 목판'352매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무산사의 무산서당은 서당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상주주씨 집성촌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고 상주주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1)무산사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武陵洞天 文華之鄕'(무릉동천 문화지향)
"신선이 살만큼 경이롭고 아름다운 무릉도원이요 학문과 예술이 찬란하게 꽃피어 높은 문화를 자랑하는 고을"
2)무산서당 입구에 세워진 비문들
*문민공 주세붕선생의 숭덕비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삼의 종주국으로 한국이면 곧 인삼을 연상케 하나 산삼에만 의존하던 중 조선 중종때
문민공 신재 주세붕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중(1541~1545) 당시 백성의 징삼의무를 덜어주기 위해 삼재배법을
개발하여 보급한 것이며 그 기원으로서 현재는 국내수요외에도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어 농작물중 적은 면적으로
가장 많은 외화획득을 하고 있는 천혜의 자원으로 생약재에서 없어서는 안될 보약재로 인류보건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중략) 옛날에 교역하던 산삼은 보화와 같았으나 백성에게는 귀하고 생산량도 거의 없었기에 의무적으로
매년 많은 양을 공납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했으나 이 고충을 해소하고 재배법을 보화로 돌려주신 인삼재배의
원조 문민공 주세붕선생에게 감사하며 천하에 선생의 빛난 업적을 밝히고 길이 찬송하며 삼의 본고장에 지역민의
성(誠)을 모아 이 비를 세우며 다시 새겨 선생의 높은 뜻은 온누리에 배움의 길을 열어놓았고 선생이 끼친 업적은
온겨레의 삶을 도왔도다! 소백산 두솔봉의 외외한 모습, 선생의 덕과 혜를 우러러 상징하여라! 백약의 영초 이제
삼막에 의이하니 선생의 넋이 오늘도 어려계신듯 여기 이 비에 뭇사람의 정성을 담아 길이 공덕을 추모하노라!"
*주세붕선생 본가지(本家址)
*도동곡 9장(道東曲 九章)
조선 중종때의 학자 주세붕선생이 지은 경기체가 형식의 한글가사로 유교의 내력과 학자 회헌 안향의 덕을 찬양
하면서 읊었는데 주세붕의 시문집인 '무릉잡고'에 실려 전합니다.
*오륜가(五倫歌)
조선 명종때 주세붕선생이 지은 연시조(6장으로 구성)로 '무릉속집'에 전해지는데, 해주에 수양서원을 세우고
백성에게 오륜의 규범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창작했으며 추상적인 설명보다 일상적인 삶을 비유하여 표현하고
순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한 점이 특징입니다.
3)무산서당(武山書堂)
4)청덕각(淸德閣)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1999.10 함안군 문화원에서 건립 : 청덕각 건립기적비)
*무릉잡고(武陵雜稿),수구집(守口集),귀봉집(龜蜂集) 목판 보관장소
*'무릉잡고'에서 무릉은 칠원의 옛이름으로 이 문집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한글가사인데, '도동곡' '육현가'
'엄연곡' '태평곡'등이 모두 경기체가 형식으로 쓰여져 있어 당시의 가곡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입니다.
주세붕과 그의 아들, 고손자에 걸친 문집의 목판이 남아있다는 것은 흔치않은 사례이므로 그 의미가 크고 특히
주세붕은 유학의 보급에 힘쓴 대학자이며 우리나라최초로 서원을 세운 인물로 그의 문집은 당시의 정치와 사회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며 이들은 함안지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문집의 내용은 함안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악양생태공원으로 접어드는 진입로에 세워진 처녀뱃사공 노래비
1953년9월 유랑극단단장인 故 윤부길(가수 윤복희,윤항기의 부친)씨가 6,25 피난시절을 끝내고 서울로 가면서
함안군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던 중 이곳 대산면 악양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당시 이곳 나루터
에는 군에 입대한 후 소식이 끊긴 박기준(6.25전쟁중 전사)씨를 대신해 여동생 2명이 교대로 나룻배의 노를 저어
길손을 건너게 해주고 있었고 오빠의 소식을 기다리며 나룻배의 노를 젓고 있다는 애절한 사연을 전해 들은
윤부길씨가 "낙동강 강바람이..."라고 시작하는 노랫말을 만들었고 한복남 작곡가가 곡을 붙여 1959년 가수
황정자의 목소리로 '처녀뱃사공'이 발표되어 온 국민이 즐겨부르는 애창곡이 되었으며 이에 그 사연을 담아서
이 노래비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두 다리로 걷는 함안의 아름다운 11길 안내
*호수강변길(1~4길)
(1길)여항산호수길(함안면 : 2.9km) : 봉성저수지 둘레길
(2길)입곡단풍길(산인면 : 4km) : 입곡저수지 둘레길
(3길)용화산 합강길(칠서면 : 2.7km) : 용화산 둘레길(낙동강 바람소리길)
(4길)칠서 강나루길(칠서면 : 3.7km) : 강나루생태공원 둘레길 B코스(강변로~청보리밭)
*생태꽃길(5~6길)
(5길)가야왕궁 연꽃길(가야읍 : 2.7km) : 연꽃테마공원 탐방로
(6길)처녀뱃사공 노을길(대산면+법수면 : 8.3km) : 악양생태공원길(2.9km)+악양둑방길(5.4km)
*역사탐방길(7~9길)
(7길)성산산성 하늘길(가야읍 : 2.5km) : 성산산성 둘레길
(8길)말이산 아라가야 탐방길(가야읍 : 2.6km) : 말이산고분군 탐방로
(9길)고려동과 퇴계선생길(산인면 : 2.9km) : 고려동~경도단~대나무숲길
*숲속둘레길(10~11길)
(10길)팔자가 펴이는 백이산 솔숲길(군북면 : 7.9km) : 백이산~숙제봉 둘레길
(11길)검암산 이음길(가야읍 : 6.5km) : 검암산 아라길
2.악양생태공원(岳陽生態公園 : 경남 함안군 대산면 하기2길 208-49) : 2017년 조성(면적 : 265,307m2)
[악양생태공원 개요]
*남강와 함안천이 만나는 수변생태공원
수변지역의 자연환경을 활용해 조성된 곳으로 하천과 습지,초지,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생태공원입니다.
*자연을 보전한 친환경 휴식공간
자연생태자원을 훼손치않고 보전하면서 주민과 여행객이 함께 휴식할수 있는 친환경 문화공간으로 조성되었고
넓은 잔디광장과 다양한 꽃,나무,생태연못이 어우러져 4계절 자연변화를 가까이서 느낄수 있습니다.
*국민애창곡 "처녀뱃사공"의 무대, 악양나루터
악양나루터가 있던 역사적 장소에서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지역의 역사이야기를 함께 만날수 있습니다.
*누구나 편안한 산책로
비교적 평탄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도 제약없이 이용할수 있고 가족과 함께 걷거나 여유
롭게 자연감상하기 좋은 무장애산책로가 마련되어있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따뜻한 휴식공간입니다.
[공원현황]
남강의 수려한 자연환경과 함께 전국최장길이의 둑방과 주변 수변 및 습지와 연계하여 자연친화적인 문화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주요시설로는 어린이놀이시설,야외공연장,생태연못,잔디마당,전망대2곳,방문자센터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또한 다양한 야생화와 핑크뮬리(분홍억새)식재로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연속 힐링을 원하는 나들이
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특히 악양데크길 전망대1에서 전망대2로 가는 도중에 절벽기슭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이
나오는데 위로 올라가면 악양루가 있으며 함안천주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수 있습니다.
악양생태공원길은 '처녀뱃사공노을길'의 1코스(2.9km)로 '함안의 아름다운 11길중 6길에 속하며 공원입구에서
전망대1까지는 흙길로 되어있고 전망대1에서 전망대2까지는 데크길로 조성되어 있는데 오르락 내리락하는 데크
계단이 계속되고 가는 중간 악양루로 올라가는 데크계단길이 나옵니다^*^
공원입구에서 악양생태공원길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핑크뮬리,샤스타 데이지 등 다양한 야생화원과 어린이 놀이
시설들이 조성되어있고 오른편 전망대1까지는 남강변 둑길산책로와 남강둑방 포토존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 상시개방 / 쉬는 날 : 연중무휴 / 주차시설 : 가능 / 입장료 : 무료
1)공원안내도
저는 악양생태공원길 왼편은 핑크뮬리원 주변만 잠시 구경하고 주로 오른편 남강둑방길을 따라 포토존들과 전망대1을
지나 악양루까지 탐방하고 왔는데 함안천과 남강주변 풍경들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2)악양생태공원길과 생태공원 전경
3)포토존 조형물
*처녀뱃사공이 타던 분홍색 나룻배
*기다림의 종
"기다림의 종" 조형물인근에 또다른 조형물인 초승달벤치 포토존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4)청주정씨 선영(淸州鄭氏 先瑩) 이전기념비(전체 사진분량 제한으로 기념비사진은 찍지않았읍)
"맑은 물과 풍광좋은 산의 정기가 모인 이 곳은 조선중기 명재상인 약포 정탁(鄭琢)선생과 한강 정구(鄭逑)선생
의 후손인 청주정씨 설헌공파 두호문중 선영(先瑩 : 조상의 묘역)을 모신 곳으로 악양근린공원사업으로 인하여
의령 두호종중 선산으로 이전하게 되었으며 영령들이 국난을 당했을때 발휘한 애국심과 불의에 항거한 정의감,
후진을 지성으로 양성한 덕행은 청사에 길이 빛나며 특히 한강선생이 창녕군수, 함안군수로 재임시 베푼 선정은
역사에 길이 전해져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니 이 곳 악양은 정녕 충효 선비정신의 발현지라 할수 있으니
본 사업을 위해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적극 협조해 주신 청주정씨 후손들에게 감사의 뜻과 선현의 얼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함안군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2017년6월 함안군수"
5)나무들을 활용한 그늘막 전망시설
6)악양노을정(전망대1)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전망대로 법수면의 제방과 넓은 들판, 남강이 내려다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악양루 데크로드가 시작되는데 악양루를 거쳐 전망대2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7)악양노을정 진입로에 조성된 처녀뱃사공 노래비
8)악양루로 이어지는 악양루 데크로드 풍경
9)악양루(岳陽樓)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조선 철종5년(1857) 건립되었으나 소실된 후 6.25전쟁후 복원되었다가 1963년 고쳐지었습니다.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악양마을 절벽에 위치해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며 명칭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에서
따 왔는데 중국 악양의 경치와 견줄만 하다고 하여 악양루라 했고 예전에 정자북쪽에 '의두헌(倚斗軒)'이라고
새겨진 현판이 있었는데 "북두칠성에 의지하는 곳"이란 뜻이며 지금의 현판은 청남 오재봉선생의 글씨입니다.
정자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로 옆에서 볼때 팔(八)자모양의 팔작지붕입니다.
*악양루 전경
*악양루에서 바라본 풍경(바로 앞의 함안천과 멀리 남강, 법수면의 제방과 넓은 들판이 보입니다)
3.주씨고가(周氏古家 : 경남 함안군 칠원읍 무기1길 33) :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
조선 영조4년(1728)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로가 있었던 주재성의 생가이자 주씨의 종가로 일상생활공간
과 휴식공간이 함께 조성되어 있는데 일상생활공간은 대문,남성들의 사랑채로 쓰인 감은재(感恩齋),안채,손님이
머물렀던 영빈사(迎賓舍),사당인 부조묘(不祧廟)가 있고 휴식공간으로 무기연당(無沂蓮塘)이 있는데 대문에는
의병을 일으켜 반란을 진압했던 주재성의 충절과 그의 큰아들 주도복의 효행을 널리 알리는 글이 걸려 있고 남성
들의 생활공간이었던 감은재는 주도복이 "부모의 은덕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름지었던 3칸
의 사랑채이며 감은재 뒤편에는 여성의 생활공간이었던 5칸으로 된 안채가 있고 부조묘는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
에게 '영원히 한곳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왕명으로 세운 사당이며 고가의 동쪽에는 무기연당이라는 정원이 있어
국담(菊潭)이라는 연못,하환정(何換亭)이라는 정자,풍욕루(風浴樓)라는 누각이 있고 연못 남쪽에는 주씨집안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효사(忠孝祠)가 있는데 주씨고가는 조선후기 영남지역 양반들의 주거문화를 살필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할수 있습니다.
1)주씨고가 대문
#주재성 국담문집 목판(周宰成 菊潭文集 木板)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국담 주재성(1681~1743)의 글을 모아 1908년 간행한 '국담문집'을 새긴 책판으로, 주재성은 함안출신의 유학자
이자 의병장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다고 전해지며 영조4년(1728)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세웠고 말년에는 하환정을 지어 자연속에서 학문과 수양에 힘쓰며 여생을 보냈으며 지역의 유림이 주재성을
추모하기 위해 영조37년(1761) 기양서원을 건립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국담문집'은 목판의 양면에 글을 새긴 총 56매로 시서,논문 등이 새겨진 원집 2권과 부록 2권이 전하고 첫머리에
칠곡 국채보상회 회장이자 독립운동가인 장석영의 서문이 실려 있고 부록1에는 주재성의 죽음을 애도하고 생애를
서술한 글들이 있으며 부록2에는 주재성이 이인좌의 난에 의병을 일으킨 사적과 관련된 기록들이 모아져 있고
끝부분이 간행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1908년5월 하환정에서 판각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고 책판을 통해 조선후기
함안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들의 문학을 이해할수 있는데 현재 함안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감은재(感恩齋)
3)무기연당(無沂蓮塘) : 국가민속문화유산
주씨고가의 일부로 만들어진 연못정원으로 주재성을 위헤 건립되었는데, '무기'라는 이름은 '논어'의 "(봄날에)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쐰다"라고 했던 증점의 말에서 유래하며 연당과 고가는 고가의 사랑채인
감은재와 한서문(寒棲門)을 경계로 나누어지고 연못에는 가장자리에 직사각형으로 2층의 자연석을 쌓고 그 속
에 둥근 인공섬을 만들었으며 연못이름은 주재성의 호를 따 국담이라 했고 연못모양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나다"라는 유교적 우주관을 형상화한 것으로 연못 곳곳에는 '어진 마음을 기르는 곳(양심대)' '영원토록 맑은 바람
이 부는 곳(백세청풍)' '갓끈을 씻는 곳(탁영석)'으로 이름을 지어 선비들의 기상과 풍류를 나타냈습니다.
연못주위에는 하환정,풍욕루,충효사가 있는데 하환정은 반란을 평정한 공로가 있는 주재성에게 조정에서 벼슬을
내리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어찌 벼슬과 바꾸겠는가?'라고 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내부에는 그의 충절
을 노래했던 여러 사람들의 시와 이 정자를 새로 고칠때마다 그 사실을 기록한 글이 걸려 있으며 높은 기단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풍욕루는 '바람에 몸을 씻는다'라는 의미로 선비의 기상과 고상함을 표현하고 있고 내부에 걸려
있는 '공경할 경(敬)'이란 글자는 선비의 올바른 몸가짐과 학문목표를 말해주고 있는 바 무기연당은 조선후기 영남
지역 양반가의 정원문화, 선비들의 기상과 풍류를 반영하고 있어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한서문(寒棲門) : 주씨고가에서 무기연당으로 들어가는 통문
*무기연당(無沂蓮塘) 전경
*하환정(何換亭)과 내부풍경
*풍욕루(風浴樓)
*충효사(忠孝祠)
*영정각(影幀閣)
4.고려동유적지(高麗洞 遺蹟地 :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2길 53) :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
1)고려동유적지 안내도
2)고려동과 퇴계선생길(함안의 아름다운 11길중 제9길) 안내도
#두문동서원 위패 봉안문
#이오선생과 자미화(紫薇花)
#주련(柱聯) 해설 : 이오선생의 시(詩) 두수(二首) : '함안의 주련해석집'
"밤마다 넓고 큰 바다에서 떠오르는 외로운 달을 맞이하며
해마다 작은 밭을 개간해 구기자를 길러보네
머리를 돌려 되돌아 보아도태평성세는 만날수 없으니
초동 나무꾼과 동무됨을 사양치 않고 마음달게 여기네"
"높은 나무 있기만 하면 꽃피울수 있는데
이른 봄이 해저문 산가에 이르는데
슬픈 노래 읊조리며 서로 따르는 이 자리
서울로 가서 다시 벼슬아치 옷입음을 부끄럽게 여기려네"
3)종택(宗宅)
고려말 선비 모은 이오(茅隱 李午)가 지은 집으로 주거공간,사당,휴식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거공간은 안채,계모당,행랑채,복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물인 복정에는 모은 자손의 효행전설이 전하며 사당은
안채우측뒤로 배치하고 담장을 둘러 영역 구분했으며 휴식공간인 자미정은 순조33년(1833) 창건하고 고종15년
(1878) 중건했으나 6.25전쟁때 불타버리고 주추만 남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계모당(繼慕堂)
재령이씨 종택의 안사랑채로 바깥사랑채와 담으로 구분했으며 외부손님을 맞이하고 책을 가까이하던 공간
*율간정(栗澗亭)
남성들이 이용하던 바깥사랑채로 이오의 후손들이 고려에 대한 충절을 기림
*자미정(紫薇亭) : '자미'란 이름은 백일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에서 비롯됨
바깥사랑채로 삼합문을 통한 정자안팎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이어 보이도록 설계됨.
*안채
부녀자들의 가족생활 중심공간으로 부엌과 방사이에 문을 두어 이동동선을 확보한 생활편의를 고려함.
*복정(福井)
모은 이오선생이 고려동에 거처를 정하면서 집을 짓고 담안에 판 우물로 종택 안채옆에 위치합니다.
모은선생의 현손인 이경성은 현감을 지냈고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는데, 남명 조식선생이 "어찌해 더 벼슬을 하지
않는가?"라고 했더니 "노모를 봉양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해 남명선생이 그를 '양지지효'라고 칭찬했다고 하며
그 정부인인 여주이씨도 역시 시모를 섬겨 효성이 지극했다고 하는데, 시모가 노환에 전복을 먹고 싶다고 했으나
산골이라 구할 길이 없었는데 백방으로 구하러 다닌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우물에서 전복이 나왔고 시모는
며느리 이씨에게도 함께 먹기를 권했으나 이씨는 먹을줄 모른다고 대답했고 이씨는 그 후 시모를 봉양하기 위한
한때의 거짓일지라도 시모를 속인 죄책으로 한평생 번민했다고 합니다.
이 복정은 지금까지 아무리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 아라의 얼과 향기 --
여주이씨는 박천군수 이학의 딸로 시모를 극진히 모시고 맜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드렸는데 하루는 복어(鰒魚,
전복)를 드리니 시모가 며느리에게 같이 먹자고 하니 며느리가 하는 말이 "평생 복어는 먹지 못한다"고 사양했고
그 뒤 며느리가 병으로 죽을 즈음에 "내가 시모를 모실 적에 잘못이 없는데 다만 한가지 복어를 먹지 못한다고
속인 것 뿐이다"하면서 후회했고 시모가 이 말을 듣고 "복어를 먹지 못한다고 한 것은 나를 봉양하기 위함이다"
하면서 자손에게 훈계헤 "후일 너희가 시부모를 모실때 너희 어머니와 같이 하라"고 했답니다. -- 함주지1권 --
4)보호수(2020.9.8 지정)
*소재지 :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79-1
*수종 : 배롱나무 / 높이 : 8.0m / 둘레 : 1.3m
*특징 : 고려동유적지에 있는 배롱나무는 연륜에 비해 수관이 발달하고 수형이 아름다워 자미나무라고도 합니다.
이 나무에서 피는 자미화는 고려말 모은 이오선생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상징하는 꽃이라 전해집니다.
5)자미단 사적비(紫薇壇 事蹟碑) : 1997년 조성
고려동의 배롱나무 언덕인 자미단에 세워진 비로 고려말 성균관 진사 이오선생의 은거와 충절을 기리고 있는데
비문에는 시냇물 범람으로 무너진 언덕과 기울어진 배롱나무를 후손이 다시 고쳐 쌓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5.아라가야추정 왕궁지(阿羅伽耶 王宮址 :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 : 사적 제554호
함안 가야리유적은 해발 45~54m 구릉부 경사면을 활용해 흙으로 성곽을 쌓고 내부에는 고상건물과 망루 등을
세운 가야시대의 유적으로 옛부터 아라가야 중심지(왕궁지)로 추정되는 곳이며 16세기 조선시대 기록인 '함주지'
17세기 '동국여지지' 등 고문헌과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에도 아라가야 중심지로 추정되어 왔습니다.
2013년 5차례의 지표조사로 대략적인 유적의 범위를 확인했고, 2018년5월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대규모
판축토성과 내부의 목책(울타리)시설,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고 유물로는 쇠화살촉,작은 칼,쇠도끼,비늘갑옷 등이
나와 군사적 성격을 가진 대규모 성곽임을 알수 있었으며 유적의 시기는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6세기입니다.
유적주변에는 말이산 고분군,남문외 고분군,당산유적 등 아라가야의 핵심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이 곳이 아라가야
의 중심역할을 해 왔음을 알수 있는데, 가야문화권에서 처음으로 판축토성을 축조하기 위한 구조물 등이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어 우리나라 고대토성의 축조수법을 규명할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1)가야리유적 및 조사구역 전경
2)가야리유적지 전경 및 공공기준점 표지석
6.서산서원(西山書院 : 경남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 : 생육신 조려유적지(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숙종29년(1703) 경상도 유학 곽원령 등이 창건했으며 1713년 나라에서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고 고종5년
(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으나 1984년 지역유림과 조려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우,강당,원장
문,조려선생 사적비,생육신 사적비 등을 등을 갖추어 복원했고 해마다 음력3월1일과 9월9일에 생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제사를 지냅니다.
[서원의 시설현황]
*숭의당 : 서원의 중심건물인 강당으로 동재와 서재를 지나 사당아래 중심위치에 배치(유생들의 학문강론공간)
*충의사 : 생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강당뒤에 배치되어 전학후묘(前學後墓)의 배치방식을 보이는데 서원
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위계가 제일 높고 단청은 매와 용무늬의 12색 특수단청임.
*양정당 : 서원의 동재로 현관의 숙소로 사용
*상의재 : 서원의 서재로 유생들의 숙소로 사용
*전사청 : 제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제기와 제수를 보관
*소청각 : 생육신의 유물을 안치해 보관하는 곳으로 전사청과 마주보고 우치
*숭의문 : 서원의 초입에 세워져 있는 주진입 외삼문
*경앙문 : 사당으로 통하는 내삼문으로 숭의당 배면에 단을 높여 위치
1)서원안내도
#충절의 상징 생육신(生六臣)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해 세조로 즉위하자 세상에 뜻이 없어 벼슬을 버리고 절개
를 지킨 여섯명의 사람을 일컫는 말로써 절의파,청담파로 불리기도 하는데, 사육신의 대칭으로 생육신이라 하며
김시습,성담수,원호,이맹전,조려,남효온으로 남효온 대신 권절을 넣기도 합니다.
사육신이 절개로 생명을 바친데 대하여 이들은 살아 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체 또는 방성통곡하거나 두문
불출하여 단종을 추모하였습니다.
#어계 조려(漁溪 趙旅 : 1420~1489)
증사복시정 안(安)의 아들로 자는 주옹이며 어려서 부터 몸가짐이 올바르고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가 총명했고
의리를 중히 여겼는데 단종원년(1453)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있을 때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비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절의를 지키기 위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이 곳 함안으로 물러나
죽을때까지 낚시와 소요로 은거하며 단종을 연모하였으며 다른 생육신들도 다 그러했지만 특히 어계는 낙향후
철저히 은거함으로써 세상과 다시는 인연을 맺지 않았고 이러한 어계의 삶을 함안사람들은 중국 주나라때 불사
이군의 충신인 백이와 숙제에 비유하면서 원북리 뒷산인 서산을 백이산이라 불렀습니다.
숙종15년(1689) 단종이 복위되면서 어계 또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숙종29년(1703) 경상도 유생 곽억령이
성삼문,박팽녀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의 사당을 세웠으며 숙종39년(1713) 손경장 등의
상소에 의하여 서산서원이란 사액을 받았습니다.
**블로그의 전체사진수량 제한때문에 서산서원의 전체 건물사진은 찍지 못하고 일부 건물사진만 올렸습니다.
2)숭의문(崇義門)
서산서원 초입에 세워져 있는 외삼문으로 주진입문이며 홍살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 서원을 향해 정면에 위치
3)상의재(尙義齋)
서원의 서재이며 유생들의 숙소로 사용
4)서산서원(西山書院)
5)함안조씨 십삼충 공적비(咸安趙氏 十三忠 功蹟碑) : 서산서원의 앞쪽 왼편에 위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국난에 맞서 싸우다 순절하거나 충절을 지킨 함안조씨 선조 열세분의 공적을 기린 비
(조수천,조붕,조탄,조방,조종도,조준남,조신도,조민도,조응도,조형도,조익도,조선도,조덕도)
같은 17대에 해당하는 인물이 여럿 포함되어 있고 무과급제자는 총 6명으로 단순한 학문적 업적보다는 전쟁터
에서의 전투와 순절, 왕의 피난 호위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공적비 뒤편에 열세분 각각의 공적사항이 기록된 비문이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7.채미정(采薇亭 : 경남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16)
유림들이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1735년 서산서원 강당동쪽 담장밖에 지은
정자로 1703년에 세운 서산서원만으로는 조려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을 다 표현할수 없다고 여겨 경치가 수려한
곳에 선생을 기리는 정자를 지었고 채미정이라 이름한 것은 선생께서 일찌기 읊은 구일등고시가 백이의 서산
채미가에 견줄만하다고 여겨 선생을 사모하는 정을 표현하고자 그 이름을 인용한 것으로 보며 채미정의 동쪽에
있는 쌍봉을 예전에는 쌍안산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충절을 지킨 어계 조려선생을 기리는 마음으로 북쪽을 백이봉
남쪽을 숙제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채미정 북쪽에 있는 언덕은 청풍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1)입구에서 바라본 채미정 전경
2)채미정
3)채미정 기문관련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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