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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스크랩 한희정의 봄꽃시편
김창집 추천 0 조회 32 16.03.01 21: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찔레꽃

 

사랑한다는 것은 속을 비워 내는 일

이맘때면 간다 하고

말만 하는 친구에게

수녀원 울담을 넘는

찔레향기 보냈다

 

얼마나 닦고 닦아야 하늘빛을 담을까

갓 마른 미사보 쓰고

묵상기도 드리는 동안

누군가 창밖을 지켜

오래오래 서 있다

   

 

♧ 매화꽃 아버지

 

1

끝내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야 마는

고고한 그 성품도 급하긴 했나 보네

퇴임식 며칠 앞두고 뒤뜰 활짝 밝히다

 

2

한 생각 쏟아 놓고 묵향으로 번지다가

메마른 혈관 속에 수혈하는 봄비처럼

옹이진 목청을 높여 환히 웃는 아버지 

 

 

♧ 자목련이 가는 길

 

봄철 산란기엔 대지도 아파온다

 

며칠째 배란통에

탱탱한 봉오리들

 

진보라 새틴스티치

손끝에서 아리다

 

눈 감고도 길을 찾는 엄마의 직감 따라

 

눈뜨면 잠옷차림

아이자랑 쏟아놓던

 

늦도록 아파트 공원에

그 친구가 서 있다

 

뜬금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뜨는 친구

 

목젖이 보이도록

호탕하게 웃는 저기,

 

미안해, 어깨 툭 치며

자목련이 지고 있다

 

 

♧ 절물 복수초

 

노보살 조반 같은

진눈깨비 내리던 날

돌에도 꽃을 피우는

중덕해안 발파소식에

 

화들짝

놀란 꽃망울

염주알을 굴린다

 

작은 키 더 낮추고

마음까지 땅에 대고

불길 솟듯 깃발 드는

산등성 나비 떼들

 

펼쳐라

장엄한 몸짓,

함성보다 더 크다  

 

 

♧ 서귀포 이야기 · 8

 

서귀포에 핀 꽃에선

꽃술마다 파도가 친다

 

여태껏 입술이 푸른

더 아파라, 해녀의 바다

 

어젯밤 눈물 다 씻고

달개비꽃 피었다.

   

 

♧ 봄날, 무등이왓

 

길 위를 헤매다가 걸어 찾은 발자국에

두리번거리는 내 눈빛에 댓잎들 수런수런

천진이 광대나물은 곁눈질만 하는데

 

파편처럼 새겨 놓은 마을표석 없더라도

화전민 아버지의 또 아버지가 살았음직

그 겨울 아픔이 인다 태워서 더 짙은 자리

 

발자국 감춰 주던 눈발도 핏빛이었을,

육십여 년 대숲에다 봄 햇살이 자맥질하면

대 이을 씨감자 같은 또 한 뼘의 발을 뻗고

 

헛묘 위 까마귀가 길놀이 펼치는 곳

살아서 못 부른 배 죽어서 원을 푸나

팽나무 움트는 소리도 빈 들길에 요동쳐……

 

 

♧ 어머니의 초파일

 

더딘 발걸음에

긴 겨울을 보내고서도

 

올 따라 먼 길 도는

봄기운이 차디차

 

칠순의 관절마디마디

꽃망울이 저리다

 

부처님 오신 날엔

꽃들도 등을 단다

 

연꽃등 팔각등

골 깊은 주름등까지

 

까칠한 찔레송이도

절 앞까지 내려와

 

엎드린 자리에서

엎드린 채 불을 켜며

 

올레길 전 구간에

한 올 한 올 떨치고 온

 

냉이꽃 하얀 족적이

말씀처럼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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