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이 ADHD라고?
박형규
경북 영양 산골에서 우리손농촌유학센터를 꾸리면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망치샘’으로 불린다. ysnbak@hanmail.net
마른 번개가 몇 차례 치더니 빗줄기가 세차게 내린다.
“야, 비 온다. 빨리 가서 염소 집에 넣어야 돼. 염소는 물에 약해서 비 맞으면 안돼.”
아이들이 후다닥 뛰어 나가더니 비에 흠뻑 젖어 들어와서는 금세 다시 낄낄거린다.
올 4월부터 아이들이 흑염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세 마리를 들여왔는데 지난달에 새끼를 낳아 지금은 다섯 마리가 되었다.
“망치샘, 어미가 자기 뱃속에서 나온 덩어리를 먹어요. 그리고 새끼가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금세 막 걸어요. 우와! 정말 신기해요.”
에미 염소가 태반을 먹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본다. 새끼 낳는 광경을 제 눈으로 직접 본 이 신비한 경험은 아이들의 삶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현실일 것이다.
범준이, 동규, 진섭, 형민이… 이 아이들은 다 도시에서 시골로 유학 온 농촌유학 동무들이다. 나름대로 다 이유들이 있지만, 학교와 병원에서는 이 아이들을 ‘ADHD 아동’이라고 부른다. 대개 처음엔 신경정신과 약을 한보따리씩 갖고 와서는 시간에 맞춰 먹어야 한다고 당부를 한다. 유감스럽게도 약은 그 날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간혹 약을 먹어야 한다고 불안해하는 아이가 있기는 하다. 그럴 땐 그렇게 찔끔찔끔 먹지 말고 더 강력한 걸로 한 방에 먹자 하고는 빨간색 종합 비타민을 하루 한 알씩 준다. 한 열흘 지나면 그것도 잊어버리고 만다. 약이 아무런 효력이 없음이 여실히 증명된다.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처방과 약이다.
나는 아이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아니, 구분이 안 된다. 농촌유학생으로 온 아이들과 우리 집 아이들 넷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뒹구는 모습을 보면 그냥 보통 아이들일 뿐이다. 흔히 말하는 ADHD 증상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성장기의 어떤 아이들에게도 다 있는 현상이다. 수능 1등급 받아 대학 내내 임용고시 준비해서 선생이 된 범생이 교사들과 의사들이 내린 판정이 과연 정확할까? 아니, 삶에서 그리 정확한 무엇이 딱히 있기는 한가? 피가 들끓는 아이들은 머저리처럼 앞만 바라보고 가만 앉아 있으라니… 앉아 있는 아이가 오히려 비정상이지 않을까? 놀아야 한다. 아이들은 그냥, 막 뛰 놀아야지 제대로 큰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아이들이 꽤 많다. 그때마다 만나는 형태와 방식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시종일관 내가 할 수 있고 해온 유일한 한 가지는 나와 ‘눈을 마주한 이 아이’를 믿는 것뿐이다. 그 녀석이 아무리 내 앞에서 꼴 같지 않은 모습을 연출할지라도 이 아이는 하늘의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이다. 단지 아이들은 우리를 “거쳐왔을 뿐”, 결코 나만의 자식이 아니다. 믿음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지금도 아이들과 집짓기 캠프를 하는 중이지만, 평소에 우리는 그냥 한 덩어리가 되어 사는 생활이 전부다. 감자를 캐면서 이런 말들이 오간다.
“망치샘, 배추 모종 부어야지요?”
“응, 그래야지. 며칠 있다 날 잡아서 하자.”
진섭은 16살, 2년째 여기서 살고 있다. 이 아이는 이제 농사의 흐름을 안다.
올 해는 300평의 밭을 아이들에게 맡겼다. 15살부터 18살 청소년들이다. 고추 농사는 다른 농사보다 손이 많이 간다. 모종을 심고 빨간 고추를 딸 때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세상이 흔히 말하는 ADHD이다. 주의력 결핍이라고? 천만에! 상당한 인내력과 집중도를 요하는 땅과의 진한 교감을 훌륭히 해내는 아이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염소가 새끼를 낳아 염소장이 좁아서 염소장을 하우스 파이프로 새로 지었다. 족히 15평은 될 거다. 처음 파이프 박을 때만 내가 좀 거들고 거의 모든 작업을 저희들끼리 훌륭하게 해냈다. 이런 건 누구나 직접 한두 번 해보면 다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렇게 땀 흘리는 생활을 함께 하다보면 서로를 향한 ‘믿음’이 샘솟는다. 마치 바위 밑의 옹달샘처럼.
자주 걷는다, 우리는. 가끔 장날, 짜장면 먹으러 영양읍으로 걸어서 간다. 읍까지는 18km 정도다. 영양은 임도가 많아서 걸을 만한 곳이 꽤 있다. 사계절을 따라 한 번씩 걸어보면 산이 변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또 일 년에 두 번씩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도보여행을 한다. 물론 아이들이 다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다. 처음 할 때는 무척 힘들어하지만 일 년 정도 생활한 아이들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수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무엇보다도 여기에는 ‘망치샘’의 강한 의도가 숨어 있다. 무엇보다도 걸으면 자기를 보게 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다중 틱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몸이 무거워 계단조차 오르기 싫어하던 아이가 악산으로 유명한 치악산을 죽을 고생 끝에 오르고 나서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2년 동안 있다가 올 봄에 집에 돌아가서 학교를 다니다 방학을 맞아 지금 집짓기 캠프를 같이 하고 있다. 내게 자주 카톡을 한다.
“망치샘, 지금 뭐 해요? 일하고 있겠네요. 수고하세요.^^”
거의 예외 없이 일 년 정도 지나면 아이들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다. 부모들이 “얘가 내 아들이 맞는가?” 할 정도다. 내가 봐도 신기할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달라지게 할까?
그 동안의 경험들로 미루어 볼 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다. 하나는 ‘몸으로 함께하는 생활의 일깨움’이고, 두번째 요인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믿음’일 것이다.
직접 몸으로 구체적인 생활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의 꼬라지를 낱낱이 보게 된다.
편식하는 나, 비리비리한 나, 참을성 없는 나, 도망가는 나… 그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생활이 몸에 익어가는 나, 힘들어도 걸어가는 나, 칼바람을 뚫고 한라산 백록담에 서 있는 나, 내가 땀흘려 농사를 지은 걸 먹고 있는 나, 집을 짓고 있는 나, 엄마, 아빠를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나…
이렇게 아이들이 자기자신을 정면으로 만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찐하게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땅과 교감하고, 산과 들, 냇가와 함께 살면서, 내 몸에 흐르는 땀의 나날의 과정을 통해서 나도 모르게 나는 나를 믿고, 동무를 믿고, 엄마와 아빠를 믿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존재감’과 ‘자존감’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이가 변해간다는 의미가 못되고, 싹이 노란 놈이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된다는 의미로 알면 곤란하다. 그건 내 안에 있는 무엇을 보게 되고,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내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조금만 기다리고 지켜 봐 주면 제 스스로 그렇게 방향 잡아 꿈틀거리고 움직여 가는 모습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18살 범준이는 거의 2년이 되어 간다. 양쪽 부모님이 맹인이시기에 여느 아이들과는 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 아이는 상습적인 도벽과 게임 중독이 좀 심한 상태에서 처음 만났다. 일반 중학교를 1년 다니다가 모 대안학교를 거쳐서 이곳에 왔다. 어머니, 아버지의 딱 한가지 간절한 바램은 그냥 보통 아이처럼 생활하는 거 였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이놈은 지극히 상식적인 성장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어디 부모 마음이 그런가?
범준이 하고만 보내는 시간을 몇 개월 가지면서 이 녀석의 근원적인 욕구불만의 뿌리를 알게 되었다. 이놈은 그냥 보통의 부모들에게 받는 사랑을 원했다는 거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지 않는가?
부모님이 가진 삶의 정황 자체가 이 아이에게는 과도한 무게의 짐이었던 거다. 눈물을 찔끔 거리며 내게 토로하는 과정을 통해서 거의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동안 몸에 붙어 있던 습성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내는 거다. 새로운 몸의 습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따로 톨스토이를 읽게 했다. 느낌을 쓰고, 망치샘와 토론하고, 자기의 상황에 대입도 시켜보고 하면서 1년 정도가 지났다.
서서히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행위를 돌아 본다.
염소를 관리하고, 집 짓는 현장에서는 제법 일머리를 가늠한다. 그리고 수비 고등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한다. 이제는 잘 할 수 있겠다고 한다.
요즘 이놈과 나는 일대일로 대체의학을 공부한다. 그렇게 18살 범준이는 이미 제 길을 가고 있다.
아침마다 아이들과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함께 읽고 있다.
인디언 글들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느낄까?
나는 다만 아이들에게 이거 하나 느끼기를 바란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는 저마다 길잡이 늑대의 인도를 받아
자기만의 길을 걸어 생을 여행하고 있음을..."
( 이 글은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2013년 88권에 기고한 글입니다.)
첫댓글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제 자리를 찾을 것인데 부모님들은 너무 조급해 하시는것 같아요 그 조급함 속에서 산골유학을 하는 저희는 가끔 너무 힘이들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