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의 역사] 1989.2.27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 세상을 떠나다

[동명스님]

2월 27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립 기념일

• 사건

  • 1593년 - 벽제관 전투 발발.
  • 1933년 -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 1955년 - 독일 연방하원의회는 사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연방의 나토 가입을 위한 파리조약 의결.
  • 1991년 - 걸프전이 끝나 쿠웨이트가 해방되다.
  • 2007년 - 한국에서의 요구르팅이 서비스가 종료되다.
  • 2010년 - 리히터 규모 8.8의 강진이 칠레 중부를 강타하여 500명 이상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하다. 지진은 그 직후 하와이를 강타 쓰나미를 촉발시켰다.
  • 2014년 -
    •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에서 불이 났으나 4시간 여만에 완전 진화되었다.
    • 잰 부르어 미국 아리조나 주지사가 동성애자 및 타종교인 대상 서비스 차별법안 승인을 거부하다.

  문화

  • 1900년 - 독일의 축구 클럽 FC 바이에른 뮌헨 창단.
  • 2004년 - 한국방송공사 어린이 드라마의 최장수 프로그램인 매직키드 마수리가 496회를 끝으로 종영되었다.

  탄생

  • 272년 - 고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 1807년 -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 1867년 -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
  • 1869년 - 대한민국의 신소설작가 이해조
  • 1873년 - 이탈리아의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
  • 1902년 -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
  • 1904년 - 대한민국의 화가 이응노.
  • 1913년 - 대한민국의 화가 김환기.
  • 1928년 - 이스라엘의 총리 아리엘 샤론.
  • 1929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승화.
  • 1932년 - 영국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 1961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이강돈.
  •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동환.
  • 1973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임지은.
  • 1973년 - 중국의 배우 리빙빙.
  • 1976년 - 일본의 성우 타무라 유카리.
  •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지성.
  • 1977년 -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 감독 제임스 완.
  • 1978년 - 조지아의 축구 선수 카하 칼라제.
  •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바이브의 윤민수
  • 1982년 -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작곡가, 편곡가 이현승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먼데이 키즈의 이진성.
  • 1985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서현진.
  • 198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구자철.
  • 1990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김단비.
  •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틴탑의 리키.

  사망

  • 1887년 -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
  • 1936년 -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
  • 1952년 - 이등박문의 양녀 배정자.
  • 1998년 - 에이즈 치료약인 AZT 개발에 선구적 역할을 한 공로로 88년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과학자 조지 H.히칭스.

  기념일

  • 도미니카 공화국 독립기념일

1989.2.27 회색 기러기 아빠 콘라트 로렌츠, 세상을 떠나다

비교행동학(동물들이 본능적으로 타고난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다소 낯선 학문의 창시자, 마법의 반지 없이 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 환경주의자, 노벨상 외 다수의 화려한 수상경력 등 로렌츠는 과학계뿐 아니라 20세기의 지성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지휘자 카라얀도 그의 저서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의사 아버지가 마련한 풍요로운 저택에서 새, 물고기, 원숭이 등 온갖 동물과 함께 자라다

로렌츠는 마법의 반지를 가진 솔로몬 왕처럼 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인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기러기나 개, 돼지와 같은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어서 뭘 어쩌자는 것이고, 경제도 어려운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로렌츠를 읽고 나면 결국 우리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이 자연과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렌츠는 만년에 구술한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동물학자이다. 그러니까 동물과 그들의 삶이 내 연구의 관심 분야이다. 언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동물들은 언제나 사람보다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사람들은 약간 특별한 동물로서 내 관심을 끌었다.”

어렸을때부터 함께 자라 연인으로 지내고 아내로 맞이한 크레들과 함께.사진출처<콘라트로렌츠>(사이언스 북스)

로렌츠가 동물과 친하게 된 것은 성공한 정형외과 의사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아버지 아돌프 로렌츠 덕분이기도 하다. 그가 동물들을 만나고 사귄 곳은 아버지가 지은 알텐베르크의 별장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천사들이 내려와 나팔을 부는 것 같은 축복 속에서 컸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평생 소원이었던 멋진 별장을 로렌츠가 태어나는 해에 완성했다. 로렌츠의 탄생 기념식수인 플라타너스 나무가 아직도 이 집 앞에 서 있다. 풍향기에 새겨진 1903년은 로렌츠가(家) 저택의 완성과 콘라트 로렌츠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다. 로렌츠는 그곳에서 동화 같은 유년시절을 보내고 1922년 7월 3일 빈의 쇼텐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대학에서 동물학과 고생물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굶어 죽고 싶지 않으면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의학부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이러한 결정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의 연인인 크레틀(애칭으로 본명은 마르가레테 게프하르트)과 떼어 놓기 위해서였는데, 로렌츠가 한 살, 그레틀이 세 살 때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내면서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다. 하지만 정원사의 딸이었던 그녀는 아버지 눈에 차지 않았고, 아버지는 로렌츠가 뉴욕에서 신분이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나기 바랬다. 그러나 영어 실력도 충분치 못했고, 알텐베르크 별장과 그레틀을 그리워한 로렌츠는 결국 돌아와 빈 대학교의 의학부에 다시 입학하게 된다. 로렌츠는 의학공부를 하면서도 동물관찰에 몰두해 자신이 본 것을 모조리 동물 일기장에 기록했다.

그의 알텐베르크 정원에는 오리와 두루미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우글거렸고, 앵무새와 카나리아, 피리새가 있는 큰 새장은 어린 시절 로렌츠의 놀이 집이었다. 집안에는 수족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긴꼬리 원숭이 같은 이국적 동물들도 많았다. 이 당시 <갈가마귀 관찰>이라는 제목의 첫 학술 논문이 1927년 10월 <조류학회>에 실렸는데, 사실 이 논문은 학술적인 목적을 두고 쓴 것이 아니었다. 그의 동물 일기장에 있는 글을 친구들이 타자기로 정리해서 학회에 몰래 보내 실린 것이다. 이 논문으로 인해 그는 평생 스승인 슈트레제만과 하인 로트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착한 아들인 로렌츠는 아버지의 뜻대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레틀과 결혼도 했다(그녀는 어린 시절의 친구이자, 마음을 사로잡은 애인, 아이들의 이상적인 어머니, 그리고 비판적이고 생산적인 동료였다. 80여 년을 같이 살다 남편보다 세 살이 많은 그녀가 남편보다 삼 년 먼저 198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동물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자연에서 동물 관찰아며, 당시 주류인 행동주의에 맞선 비교행동학 주장

그의 아름다운 저택에서 그가 반쯤 길들인 새들의 목록을 살펴보자. (비단)왜가리 15마리, (밤)왜가리 3마리, 뜸부기 6마리, 흰색과 검은색 황새들, 수많은 물오리, 길들인 터키오리, 신부오리 2마리, 회색기러기 2마리, 말똥가리 9마리, (말벌)말똥가리 1마리, 황새수리 1마리, 가마우지 7마리, 황조롱이 9마리, 금계 12마리, 큰갈매기 1마리, 제비갈매기 2마리, 큰노랑머리앵무새 2마리, 아마존앵무새 1마리, (수도사)앵무새 7마리, 도래까마귀 20마리, 뿔까마귀 4마리, 큰까마귀 1마리, 까치 7마리, 갈까마귀 100마리 이상, 어치 2마리, 알프스 까마귀 2마리, 잿빛밤꾀꼬리 2마리, 피리새 3마리 등이다.

이러한 목록 외에도 개, 고양이, 다람쥐, 수족관의 수많은 물고기가 알텐베르크에 있었다. 로렌츠는 이 새들을 관찰하여 뒷날 비교행동학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다. 4여 년 간 갈가마귀들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 두 번째 논문인 <사회생활을 하는 까마귀들의 비교행동학 연구>를 냈고, 이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비교행동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로렌츠의 동물 본능 연구는 처음에는 동물심리학으로 불렸고, 오늘날에는 비교행동학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당대 학계를 주도했던 학자들은 그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었다. 왓슨과 그의 제자 스키너 등 행동주의 대표자들은 비교행동학자들과 반대로 동물에게는 타고난 행동과 주관적인 체험이 없으며, 모든 것은 학습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로렌츠처럼 자연에서 동물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쥐와 비둘기로 관찰했다. 작은 상자에서 배가 고프거나 빛을 쬐면 단추를 누르거나 스위치를 돌리는 등의 동작을 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이른바 ‘스키너 상자’이다. 스키너의 시조는 러시아의 의사 파블로프이다. 파블로프의 유명한 실험, 음식을 줄 때 외부자극에 의해 개들이 침을 흘리는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학문적인 대세 속에서 자연 상태에서 동물을 관찰하는 것은 비학문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회색기러기 아빠로 일생을 동물과 함께 지낸 로렌츠 (1973년)

의대에서 해부학 조교 자리 박차고 본격적으로 동물학에 투신

그의 첫 번째 시련은 해부학 조교 시절에 찾아왔다. 담당교수가 해부학 조교 외에 모든 활동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조교 자리와 동물학 연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만약 해부학 조교를 그만 두게 되면 가장이기도 한 그가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달과 6펜스’는 모든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운명인가 보다).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스승인 슈트레제만으로부터 원래의 성향을 선택하라는 편지를 받았다. 즉 “동물심리학 분야에서 당신이 가진 재능은 대단히 탁월한 것이기에, 당신이 이런 상황에 기가 죽어 충동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것은 도마뱀의 꼬리가 잘려나가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다. 본능이 당신에게 그토록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본능에 따르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새끼 바다오리처럼 아무 걱정 말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시오. 그럼 헤엄칠 수 있게 될 겁니다.” 스승의 이러한 조언에 용기를 얻은 로렌츠는 1934년 해부학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학문인 동물학에 투신하게 된다.

알에서 갓 태어난 회색 기러기의 아빠가 되어 비교행동학의 기틀 마련

1937년 회색기러기를 키우면서 새로운 관찰이 시작됐고, 이는 비교행동학의 시초가 된다. 회색기러기를 선택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동안 기르던 거위보다 회색기러기를 걷어 먹이는 것이 더 싸게 먹혔기 때문. 회색기러기를 기른 지 3년 째 되던 해 알에서 부화한 새끼 기러기를 어미에게 줄 셈으로 이동시키려 했다. 이 순간, 새끼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를 살피더니 어미에게 넘겨주려는 순간 소리를 질러대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수염 난 과학자를 제 어미라고 ‘각인’해버린 것이다.

야생 거위와 기러기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통해 비교행동학의 결실을 얻은 로렌츠. 사진출처<콘라트로렌츠>(사이언스 북스)

야생기러기들은 상대가 어미가 아니더라도 알에서 깨자마자 처음 본 상대를 따라가는 ‘각인효과’를 발견한 것이다. 이 각인은 형성되고 나면 그 대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로렌츠는 새끼 회색기러기의 엄마가 됐다는 운명을 받아들여 마르티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잠시도 새끼 기러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이면 마르티나는 그의 침대에서 잠을 잤고 로렌츠는 자식 같은 마르티나를 관찰하면서 그 동안 거위들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관찰에 몰두했다. 이는 학자로서의 삶 전체를 요동치게 하는 만남이었고, 그 결과 비교행동학의 고전이 탄생하게 된다. 동료 연구가인 틴버겐과 함께 집필한 <회색기러기가 알을 굴리는 행동에 나타나는 본능동작과 자극에 의한 동작>이 바로 그것이다. 로렌츠는 이 때를 돌이켜 연구와 놀이가 그렇게 완전히 하나가 된 경우가 없었던, 완전히 연구에 몰입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나치의 국가사회주의에 동참, 2차 대전에 참전하고 러시아군 포로가 되다

로렌츠는 나치의 국가사회주의에 동참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미완성의 회고록에 나치 시절의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나치의 선전은 나치 이데올로기가 별로 해롭지 않고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다. 나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기치로 내걸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들었던 새 정권의 몇 가지 비행들과 잔인한 행동들을 나는 믿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믿을 마음이 없었다. 프로이트가 ‘억압’이라고 부른 과정이 인간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악마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는 나치군으로 참전했다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4년 가까이 13개의 러시아 포로수용소 의사로 일하면서 수 백 명의 포로를 보살폈다. 환자들에게 동물 이야기를 들려주어 인기 있는 의사 노릇을 하면서 향수병에 걸린 환자들의 마음까지 달래 주었다. 포로수용소를 나와 20년이 지난 뒤에도 당시를 기억하는 환자들에게서 편지가 오기도 한다. “그때 당신은 우리에게 회색기러기 마르티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즐겁습니다.”라는 구절은 로렌츠가 포로로서 어떻게 의사생활을 했는지 잘 보여준다. 포로수용소에서 환자를 돌보는 가운데서도 소련 간부들의 묵인 하에 훗날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 된 <거울의 뒷면>과 <비교행동학>의 토대가 되는 원고를 썼다. 그는 “원고를 쓰기 위해 필요한 물자들을 전부 손수 마련해야 했다. 기지의 양복쟁이가 간수하고 있던 다리미로 시멘트 자루를 매끈하게 다려서 그 위에 글을 썼다. 일부는 서재에서 슬쩍 해 온 잉크로 썼지만, 일부는 과망간산칼륨으로 썼는데, 즉시 빛이 바랬다”고 회상한다. 이 원고들은 로렌츠 사후 1992년에 딸 아그네스가 <인간에 관한 자연과학>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한편 나치 국가사회주의를 지지한 이력은 로렌츠 평생의 그림자이자 상처로 남았다.

동물심리학의 아인슈타인으로 유명 인사가 되다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니콜라스 틴버겐과 함께한 로렌츠(오른쪽)

전쟁터에서 귀향한 그는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동물연구에 몰두해 ‘동물심리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에세이 <솔로몬의 반지>와 오늘날 까지도 개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으로 꼽히는 <인간, 개를 만나다>로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가 과학적 진지함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반면에 비교행동학자로서 로렌츠를 입지를 확실하게 해주었다. 그에게 새로운 삶의 문을 열어 준 대중과학서 <공격성에 대하여>는 그가 예순이 되던 해 출간됐다. 1961년 겨울 플로리다에서 휴가를 보내던 로렌츠는 우연히 산호초 물고기가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내는 공격성을 관찰하게 된다. 이 관찰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공격적 행동에 대한 내용을 저술했고, 당시 전쟁과 냉전 등의 시류를 타면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문제작이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공격 충동의 방향을 어떻게 돌리는지에 대해 스포츠, 학문, 예술과 웃음 등으로 풀어 나갔다. 1960년대 이르러 대단한 유명인사가 된 로렌츠에 대해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당신은 살아서 이미 과학계의 전설이 된 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로렌츠는 1973년 카플 폰 프리슈, 니콜라스 틴버겐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때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한 표 차이로 노벨상에서 떨어진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그는 영국 왕립 협회, 미국의 국립 학술원,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 독일의 푸르 르 메르트 회원이었다. 그가 받은 수많은 명예박사 학위는 덤으로 두어도 될 만하다. 이후 <현대 문명의 여덟 가지 죄악>을 통해 지구 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죽는 날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동물들과 거리를 두지 않았다. 그의 삶은 동물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알텐베르크에 머물렀는데 그 마지막 날 밤에 회색기러기들이 그 집 위를 날아갔다고 한다. 알텐베르크 회색기러기들이 그의 영혼 반쯤을 물고 지나간 것은 아닐까?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솔로몬의 반지>(사이언스 북스)는 로렌츠를 소개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저서이다. 즉 ‘<솔로몬의 반지>의 저자 콘라트 로렌츠를 소개합니다.’라는 식이다. 이 책은 비교행동학이라는 낯선 과학 분야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길짐승, 날짐승, 물고기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로렌츠의 학문과 동물 사랑, 그리고 인간애가 녹아 있는 에세이다. 그는 학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문인이었다. 그는 동물들의 다양한 생활 습관과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것이 인간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는 지점까지 몰고 간다. 전문가들의 이러한 책들은 인간을 얼마나 인간답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더불어 <인간, 개를 만나다>(사이언스 북스) 역시 로렌츠가 쓴 개에 관한 탁월한 과학 에세이다. 회색기러기의 아버지로 알려진 로렌츠이지만, 늘 인간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동물 개에게도 애정이 깊었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개들이 어떻게 해서 인간의 삶에 들어오게 됐는지부터 개들의 외모나 성격, 사회성, 주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차이를 드러내는지 등을 일상 속의 이야기들로 들려준다.

콘라트 로렌츠의 평전인 <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 북스)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이다. 이 글의 모든 자료는 이 평전에서 인용했다. 크라우스 타슈버와 베네딕트 푀거가 같이 쓰고 번역가 안인희가 옮겼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평전으로서 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뒤 표지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동물에 대해, 그리고 우리 내면에 있는 동물에 대해 배웠다.’

글 원재훈 / 시인, 소설가

글을 쓴 원재훈 1988년 시 '공룡시대'로 등단했으며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하네>등의 시집과 <만남, 은어와 함께 보낸 하루>, <모닝커피>등의 소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등의 산문집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집필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작가이다.

이미지 TOPIC/corbis, <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