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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見報恩人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은혜를 잘 갚는 사람으로 볼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於佛菩薩에 能知恩德하며
불보살(佛菩薩)에 대해서 능(能)히 은덕(恩德) 알기를 원(願)하라.
그렇습니다. 불보살의 은덕을 알아라. 우리가 『화엄경』 다 불보살을 통해서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고 거기서 마음이 열리고 정말 어떤 그 청정한 믿음을 거기서 얻고 그러잖아요. 그게 제일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알기를 원하라.
⑫ 見背恩人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배은인(背恩人) 배은한 사람, 배은망덕한 사람 많죠 또. 배은인을 볼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於有惡人에 不加其報하며
유악인(有惡人)에게, 악이 있는 사람에게 그 보(報)를 가(加)하지 않기를 그냥 ‘아 저 사람 악은 있지마는, 악한 사람이긴 하지마는 거기에 좀 그 악한 과보를 좀 그 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악한 과보가 없었으면 좋겠다.’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라 이 말입니다. 악하면은 악한 과보가 오게 돼있으니까. 당연히 악한 과보가 오게 돼있으니까.
내가 근래에 자주 말하는 인과관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성경』에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 또 불교에서는 뭐죠? 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 좋은 씨를 심으면은 틀림없이 곡식도 좋은 곡식이 나요. 그다음에 씨앗이 시원찮으면은 아주 시원찮은 그 곡식이 나듯이 우리 행동, 마음, 씀씀이, 말씨 특히 말씨 가는 말이 고와야 뭐? 오는 말이 곱다.
전~부 이 세상이 인과의 이치지. 그거 뭐 부처님이 만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만든 것도 아니고 공자가 만든 것도 아니고 소크라테스가 만든 것도 아니에요. 이 세상에 이미 있는 이치라.
그래서 악한 과보를 받죠. 불선한 사람은 악한 과보를 받게 돼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그 모습들 전~부 인과를 믿지 않고 열매만 생각하는 거여. 씨는 생각 안 하고 열매를 생각한 거야. 그게 인과를 믿지 않는 이치입니다.
⑬ 若見沙門인댄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만약 사문(沙門)을 볼 때는 마땅히 중생(衆生)이
調柔寂靜하야 畢竟第一하며
아주 조화롭고 부드럽고 고요해서 필경(畢竟)에 제일(第一)가는 모습이 되기를, 이기를 원(願)하라 그랬습니다.
사문은 뭔고 하니? 뒤에 이제 바라문(婆羅門) 이야기 때 할라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뭔 말인고 하면은?
인도에는요 사성계급(四姓階級)이 있잖아요. 제일 높은 계급 바라문이야. 그다음에 부처님은 왕족이고 군인계통인 이제 찰제리(刹帝利) 그다음이라 그래. 그다음에 이제 폐사(吠舍)라고 해가지고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세 번째 폐사라 그래. 그다음에 이제 농업이나 뭐 도살이나 이런 그 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이제 수타라(首陀羅)라 그래요. 그걸 이제 사성계급이라 하고 그래.
그 때문에 인도가 참 문제가 많습니다. 이게 오래됐어요. 벌써. 옛날부터 지금도 그렇게 있습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생겼는데, 인도에서 대접받지 못한 이유가 이 힌두교에서, 이 사성계급을 주장하는 힌두교에서는 사성계급을 자꾸 살려줘야 되는데 부처님은 부정했거든, 부정해 가지고 그 집에 배겨내겠어요? 부처님이 사성계급을 부정했으니까 니는 부정하면 딴 나라로 가라. 다른 나라로 가라. 이래서 딴 나라는 성한데, 인도에는 불교가 시원찮아.
그래서 부처님이나 그다음 그 출가해서 수행을 잘하는 사람을 다른 계급을 하나 만들었어. 그게 사문(沙門)이야. 그게 사문이라고, 그거는 어디에도 해당 안돼. 그런 사성계급하고는 관계없이 출가해서 수행한 사람을 뭐 어떤 종교에서 수행을 하던지 불교에서 수행하던지 관계없이 그 사람들을 사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고거는 이제 사성계급하고 관계없어요.
사문을 볼 때는, 사문은 조화롭고 부드럽고 적정(寂靜)하잖아요. 막 뛰어다니거나 그렇게 안 하지. 나부대거나.
⑭ 見婆羅門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바라문(婆羅門)을, 여기 바라문 나오네요. 제일 높은 계급입니다. 사문을 위에다 뒀죠? 사문을 위에다 둔 것이, 부처님은 이런 말씀하셨어요. 평소에, 바라문들이 왜 그 부처님보다 계급이 높거든요. 부처님은 왕족이고 이 바라문은 제사장 집전하고 하는 그런 그 종족이니까.
그런데 종족이 그래도 행동은 엉터리가 많잖아. 사실은. 부잣집 아들이라고 그 꼭 그 아들도 뭐 행동이 좋을 수는 없는 거죠. 선생 아들이라고 꼭 행동이 뭐 모범인 게 아니지. 부모가 선생일 뿐이지. 그래서 석가모니도 참다 참다못해서 “네가 종족이 바라문이면 진짜 바라문이냐? 행동이 바라문다와야 바라문이지.” 그런 말씀하셨어요. 아주 자주 했어. 그런 말씀을
바라문들이 아주 못된 바라문들이 많으니까. 저희 아버지, 저희 할아버지가 바라문족으로서 바라문 손자가 내놓으니까 나도 바라문이네 하고 뻐기고 다니는 거야. 그래 부처님이 그 꼴은 못 보는 거야. 못 봐서 “네가 너의 선조가 바라문이라고 네도 바라문인 줄 아느냐? 네 행동이 바라문다워야 바라문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야말로 진짜 바라문이다.” 그런 말씀까지 하셨어. 부처님도, “나야말로 진짜 바라문이다. 너희가 존경하는 그 바라문은 내가 진짜 바라문이다.” 이런 말씀까지 하셨어요. 그 당시 인도사회의 현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 바라문 나오네요. 바라문을 볼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永持梵行하야 離一切惡하며
영원히 범행(梵行) 청정한 행입니다. 그 바라문은 제일 아주 계급이 높은 사람이고, 이 사람들은 종교, 문학, 전례, 의식 이런 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주 행동이 아주 청정해요. 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이제 영원히 범행을 가져서 일체 나쁜 짓은 전혀 안 하니까. 이 사람들은, 일체악(一切惡) 떠나기를 원(願)하라.
아 저 바라문이 이렇게 사는데, 모든 중생들도 저 바라문처럼 일체악을 떠나고 범행을 가졌으면 얼마나 세상이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⑮ 見苦行人에 當願衆生이
고행(苦行)하는 사람을 볼 때 또 마땅히 중생(衆生)들이
依於苦行하야 至究竟處하며
고행(苦行)을 의지해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궁극의 곳에, 수준 높은 곳에 이르기를 원(願)하며.
⑯ 見操行人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조행(操行)인을 볼 때, 견조행(見操行) 조행은 이제 행동이 아주 그 조촐하고 아주 그 제대로 말하자면은 모범다운 모범의 그런 행을 하는 사람을 조행인(操行人)이라 그러죠. 그런 사람을 볼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堅持志行하야 不捨佛道하며
뜻과 행(行)을 굳게 가져서 불도(佛道) 버리지 않기를 원(願)하라.
그렇습니다. 뭐 꼭 불도를 믿어야 조행인이 되는 것은 아닌데, 아주 그 행동이 모범이고 아주 제대로 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때는 모든 중생이 좀 불도를 가지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⑰ 見着甲冑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이 군인들, 갑옷을 이제 입고 있는 사람을 볼 때 그때는 또 무슨 생각을 하는고 하니? 마땅히 중생(衆生)이
常服善鎧하고 趣無師法하며
개(鎧)자도 갑옷 개자입니다. 선(善)이라고 하는 갑옷을 항상 입고, 선의 갑옷을 항상 입고 스승의 없는 법(法)에 나아가라. 스승이 없어도 누가 안 가르쳐도 착한 갑옷을, 선의 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어디 가도 선한 행을 하는 거죠. 그래서 무사법(無師法)입니다. 무사법에 나아가기를 원(願)하라.
그러니까 뭐 그 유교에서는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있죠. 신독. 신기도장(愼其道藏?)이라. 그 혼자 있을 때 삼가한다. 신독제선생(愼獨齊先生)도 있고 그래요. 아주 그 유교에는 신독이라는 말을 참 높이 보는데, 혼자 있을 때 삼가한다.
이게 무사법이라는 게 그 말 아닙니까? 남이 뭐 본다고 해서 잘하고 남이 안 본다고 해서 함부로 하는 게 아니고 유교에 진짜 제대로 된 선비는 남이 없으나 남이 있느나 보나 안보나 다 아주 그 조행을 합니다. 아주 그 행동이 근엄하고 정말 흐트러진 모습 하나도 안 하고, 그런 항상 갓 쓰고 탁 앉아있잖아. 항상 갓 쓰고, 그 저 혼자 있을 때도 그렇게 하라 하는 그런 그 이치입니다.
불법에도 말하자면 갑옷입은 사람을 볼 때는 이제 그런 생각을 하라. 선의 갑옷, 착함의 갑옷을 입고 남이 없어도 항상 착한 일 하라.
뭐 새벽에 일찍이 이렇게 일어나고 가면 아무도 없죠. 아무도 없다고 빨간불도 삭삭 지나가버리지. 그거는 무사법이 아니야. 아무도 없어도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도 사람 하나 안 지나가도 딱 신호등 지켜가면서 가는 거 그 중요한 거죠. 참 그 어렵죠. 쉽지 않지. 이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거 하나는 지킬 줄 알아야 돼요. 우리 불자들은 그거 하나는 지킬 줄 알아야 돼.
⑱ 見無鎧仗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무개장(無鎧仗) 갑옷이나 그 어떤 병장기가 없는 사람을 볼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永離一切 不善之業하며
영원히 일체(一切) 선(善)하지 않는 업(業) 영원히 떠나기를 원(願)하라 그렇습니다.
뭐 꼭 그 병장기를, 칼이나 창을 들었거나 갑옷을 입었거나 하는 게 아니고 그것을 하나도 착용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선하지 아니한 그 업은 그 영원히 떠나야 된다 그런 의미겠죠.
⑲ 見論議人에 當願衆生이
논의하는 사람은 뭐 그 어떤 이치를 가지고 따지는 경우가 많죠. 논의하는 사람을 볼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於諸議論에 悉能摧伏하며
모든 다른 어떤 그 주장, 다른 주의 주장에 대해서 다 능(能)히 최복(催伏)하기를 원(願)하라.
그렇죠. 바르지 않은 이치, 이치에 맞지 않는 거 가지고 막 우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자기 그 관습 때문에 그렇거나 아니면 자기가 거기에 심혈을 기울였거나. 자기가 공을 많이 들여놓으면요 아 그게 진짜인 줄 아는 거라.
그러니까 불교에도 여러 가지 불교가 있는데, 특히 요즘 한국불교에는 남방에서 소승불교를 익혀온 사람들이 거기서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그 불교만 옳다고 하는 거여. 그 불교만 옳다고 하는 거라. 불교를 아주 깨놓고 탁 그냥 객관적으로 그렇게 볼라고 안하고 자기가 그만치 공을 들이고 거기에 애를 썼기 때문에 그것만 주장하는 거여. 그것이 참 문제라. 그래서 문제요.
그 그 내가 그전에 수도원 저 수사들이 사는 수도원, 왜관에 수사들이 사는 수도원이 있어요. 거기에 이제 수속을 밟아가지고 거기서 한 일주일씩 가 있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거기에 어떤 수사는 그때 불교성전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어. 불교성전을 구해가지고 명상을 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래 이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불교공부 해보니까, 거기서는 불교공부 하는 것도 다 허용해요. 해보니까 불교가 좋긴 좋은데, 우리 부모들부터 천주교를 믿어 왔다는 거야. 그 어려서부터 천주교가 몸에 배었어. 그 인연이 깊어. 불교가 좋긴 좋은데, 몸에 배고 인연이 깊었기 때문에 이것을 내가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주 솔직한 이야기야. 대개 그렇습니다.
학자들요. 기독교 공부한 학자들 요즘은 뭐 불교도 다 공부하고 그러기 때문에 불교가 우수하다는 것, 교리적으로 우수하다는 것 너무 잘 알아. 그런데 그쪽하고 인연을 깊이 맺었기 때문에 그 인연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거여. 솔직하게 이야기하니까.
그 불교에 대해서 뭐 남의 존재는 이야기할 거 없고, 불교 안에서 소승교리하고 대승교리하고 내가 자주 이야기하죠. 옛날 그 저기 유선전화하고 지금 스마트폰하고처럼 그렇게 근본불교하고 지금 대승불교하고는 그런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 옛날부터 그래 유선전화 써 와가지고 그래 유선전화에 애착이 간다 이거지.
그래 공을 그렇게 들이고 거기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걸 주장하는 거요. 그 우리나라에서 아주 편안하게 대승불교 공부하다가도 저기 태국이나 뭐 미얀마 가 가지고 고생고생하면서 소승불교를 익혀오니까 고생하면서 피땀 흘린 그 공 때문에 우리나라에 와서도 대승불교에 와서도 계속 그 불교만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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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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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見論議人에 當願衆生이 於諸議論에 悉能摧伏하며..
고맙습니다.._()()()_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 善人善果 惡人惡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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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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