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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마을 마음공부
어제 1월 22일 법문입니다
1042 18.1.22
공부하는 목적
우리는 공부하는 목적을 잘 알아야한다.
어느 공부 간에 공부하는 목적이 뚜렷해야한다.
삶은 늘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
잘못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경기를 보면 체조선수들이 목적을 위해 열심히 실력을 겨룬다.
마루운동을 보게 되면 선수가 실수를 하여도 다시 일어나 실행을 한다.
실수한 채로 누워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실수했다고 보따리 싸고 갈수는 없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실행을 한다.
마음공부도 마찬가지다
마음공부도 부처님께서 경계의 실상을 끊임없이 알려 주신다
눈에 보이는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런데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럴 수 있지요 누구나 가르침을 한번 들음에 다 된다면 누구나 금메달을 다 따게 된다.
그런데 실수할 때가 있다 시행착오를 할 때가 있다
그때에 어떤 마음인가 실수를 하면 그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즉 걸음마를 배우다가 넘어졌어도 걸음마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부처님께서 많은 생을 말씀하시는 것은 그런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한번 넘어짐에 포기하는 사람 때문에 많은 생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생에 못하면 다음 생에 다음 생에 못하면 다다음생에
얼마나 애처로왔으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줄까요
나 이제 실수했으니 보따리 싸고 가겠다는 거야 금메달도 필요 없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럴수록 좀 더 마음에 서원을 굳게 해가지고 믿음을 지극하게 일으켜야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경계에 참을 세우지 못함에 대해서 좌절하지 말자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조금 더 진실하게 받아들이자
사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많은 수고를 해야 되요.
그런데 첫 단추를 잘 끼우잖아요? 그러면은 단박에 할 수가 있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는가 라는 거예요.
분명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원상은 눈을 쓸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일원상이다
본래모습이 볼 때와 안 볼 때가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보였단 말이죠.
내가 볼 때와 안 볼 때가 한결같음으로 보기를 원하는 것이 일원상서원인데
그렇게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 믿음을 내가지고 그렇게 봤단 말이에요. 단박에 잘 안 보여 졌단 말이죠. 분명히 보기전과 다르지 않게 봐야 되는 것이 내 서원인데
그렇게 안 보여 졌단 말이에요. 안 보여 졌을 때는 마땅히 인정을 해야 되요.
괴로워해야 할 것이 아니에요 여기에 합당한 말이 무엇일까요?
“잘못했습니다”라는 거에요 “잘못했습니다” 바르게 보지 못함을 “참회합니다 ”
“용서하십시오” 당신이 본래 부천데 내가 당신을 부처로 보지 못함을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다음에는 보기전과 다르지 않게 보겠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선택은 아니에요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것은 한눈팔아서 그러잖아요?
그러니 한눈팔고 가지말자는 것이잖아요
왼쪽으로 치우치던 오른쪽으로 치우치던 유에 치우치던 무에 치우치던 유상에 치우치던 무상에 치우치던 한쪽에 치우쳤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실수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곤란할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명백하잖아요.
그 명백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자는 거예요.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받아들이자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원이니까 실행하자는 거예요.
실행했을 때에 안 되는 수가 있다는 말이예요.
그때 잘못했다고 그러잔 말이에요.
내가 잘못 본 줄 알아야 될 것이 아니에요.
잘못한줄 인정을 해야 다음에 다르지 않게 보는 것을 실행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공부를 하다가 보면 여러 가지 잘못된 견해가 있을 수가 있어요
늘 내가 하는 게 맞는 것인가 ?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스스로 자기도 몰라요 . 그렇게 하면 안되요 .
가르침을 실행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가 실행되는데
이렇게 하면 맞는 것이야? 그렇게 되면은 자세하게 안봤다는 이야기잖아요
부처님 법문을 자세하게 듣지 못했다는 것이잖아요
분명히 눈을 감았을 때와 떴을 때가 한결같음이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러면 한결같음인 것을 몰라서 그럴까요?
내 동생을 볼 때나 남의 동생을 볼 때가 한결같은지 모를까요?
철저하게 알게 되어있다 구별을 하게 되어 있잖아요.
부처와 중생을 철저하게 나누어 볼 줄을 알잖아요.
이렇게 나누어 볼 줄을 알아야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것을 드러낼 수가 있잖아요.
이것이 눈을 감은 것이야 (실제로 눈을 감아보세요)
이것이 눈을 뜬것이야( 실제로 감은 눈을 뜨세요)
이것을 모를까요?
이렇게 애매하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냐하면
잘못한 것을 모르는 것이에요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다시는 그렇게 보지 않기를 맹세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너와 나를 둘로 보이는 것이 잘못 본 것인데
잘못 본 것에 대해서 “잘못했습니다”를 못하는 것이에요
맞는지 틀리는지 구별이 안되니까.
농구선수가 농구공을 가지고 던졌는데 농구 동그런 꼴대에 쏙 들어갔단 말이에요. 링에 그럼 들어간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들어갔어요. 그걸 구별 못할까요? 이게 훈련이 되야 된다는 거지요 염불을 해도 마찬가지에요. 염불을 할 때와 안할 때가 한결같음이 완연해야 되잖아요. 그래야 올바르게 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 내가 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것은 애매한 공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거는 애매하지가 않다는 거지요. 이거는 확실하다는 거지요. 유와 무를 구별을 못할까요? 사랑과 미움을 구별을 못할까요? 하늘과 땅이 구별이 안돼요? 해와 달이 구별이 안 됩니까? 눈 뜬 거와 눈 감은 것이 구별이 안돼요?
목적의식이 확실해야 되요
서원이 확실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믿음이 절대성을 갖게 되는 거예요.
내가 경계 경계 대상을 어떻게 봐야지 정확한 것인가?
지금 부처의 지견을 다 드러내고 있는가? 라는 거잖아요.
자기가 요란해진 줄은 아는 데 요란하지 않은 건 모른다 그럴 순 없잖아요.
화난 것은 아는데 화 안 나는 것은 모른다 그럴 순 없잖아요?
눈 감은 건 아는데 눈 뜬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할 순 없잖아요.
이렇게 정확하게 무엇인질 깨달아야
혹시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에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에요.
용서해주십쇼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실행이 될 때
감사합니다가 되는 거예요 “참 감사합니다”
그 둘 아닌 자리가 세워졌을 때 “참 은혜스럽습니다”
오랫동안 언어도단의 입정처 이 한 법문을 마음에 세우지 못했다는 것
이 죽비소리에 인연해서 언어도단의 입정처가 마음가운데 뚜렷하게 드러나야 되잖아요.
드러내면은 스스로 보니까 어떻게 되요 고개를 끄떡끄떡하게 되잖아요.
이것을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그러는구나!
언어도단의 입정처는 우주만유의 본원이잖아요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에요
내가 무엇인지 만유의 실상이 무엇인지 그걸 깨달을라 그러는 거거든요.
그 자리는 생사가 없으니까요, 그 자리는 지혜로우니까,그자리는 인과에 어리석지 않으니까,그걸 깨달을라 그런다 말이에요. 그것이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언어도단의 입정처가 아직 확인이 안됐다면 빨리 확인을 하셔야 되요.
그래서 제가 자꾸 죽비를 쳐드리잖아요 스스로 긍정하시라고 바로 이거구나 유무초월의
생사문이 아직 확인이 안됐다면 들을 때와 안들을 때 한결같음을 자꾸만 드러내야 된단 말이에요. 이 자리는 알려고 하면은 알 수가 있는 자리에요 그래서 신분의성을 내주셨거든요 이것이 무엇이꼬?~ 언어도단의 입정처 “딱” 이렇게 하면 알 수가 있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 이 무엇인고? 이 무슨 뜻인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지극하게 가지고가면 누구든지 알 수가 있어요
이 의심은 모르는 걸 알아내는 원동력이라 이렇게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차분하게 공부하시면 되는 거에요. 그래 내가 잘 알지 못하고 하는 건 아닌가? 염불을 하던 눈을 사용하던 귀를 사용하던 마음을 사용하던 내 뭔가 잘 알지 못하고 하는 건 아닌가? 법문을 다시한번 들어보자! 분명히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그랬는데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라 그랬는데 그럼 우주만유의 본원이 언어도단의 입정처다 이런 말씀이잖아요 그럼 나도 스스로 자기도 우주만유니까 나의 본원도 일원상이잖아요 너의 본원도 일원상이고 자 이제 그럼 나의본원을 드러내야 되잖아요 드러내서 자각이 되야 너의 본원을 볼 수 있는 눈을 뜰 거 아니여. 그렇죠. 내입에 사탕을 물어봐야 저 입에 사탕 맛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나의 입정을 드러내야 되잖아요. 나의 실상을 확인해야 되잖아요. 그럼 언어도단의 입정처라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했더니 “딱” 드러나더라는 거에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자리가 , 이 소리를 들을 때와 안 들을 때가 한결같은 언어도단이 “딱”드러나니까 그 자리가 유무초월이야 들을 때와 안들을때 한결같음 야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 하고 스스로 확인이 딱 되가지고 이제 천지부모 동포법률이라는 경계 속에 육근의 경계 속에 우리가 늘 그 자리를 드러내야 되잖아요. 천지를 당해서도 천지를 볼 때와 안볼 때 한결같음, 부모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잖아요이렇게천지부모동포볍률이라는 우주만유의 인연을 통해가지고 드러내야 되잖아요. 모르면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내가 진짜 언어도단을 완전히 드러낼 줄을 아는가? 그렇게 하면은 자기가 스스로 한번 죽비를 한번 쳐 보는 거에요 철저하게 이렇게 드러나고 있구나. 언어도단의 입정처, 유무초월의 생사문, 이 침묵이 드러난다.. 스스로 생각을 해도 대견해 아! 이 자리가 나의 본래모습이로구나! 우주만유의 본원이구나! 내가 기필코 육근을 사용할 때 이 자리를 근본해서 사용한다! 요렇게 되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째 잘 안 보일 때가 있단 말이에요. 어떤 때는 잘 되는데 어떤 때는 잘 안돼. 삿된 견해가 뿌리가 깊으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랬으면은 이제 그렇게 못 봤을 때 “참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내가 스스로에게 스스로에게 내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다음부터 꼭 그렇게 보겠습니다. 그렇게 보여질 때 자기스스로에게 “감사합니다 은혜합니다 ” 이렇게 우리가 진실을 드러낸다면은 그 얼마나 삶이 행복하겠어요? 그런데 내가 잘 하고있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에요 확실하셔야되요. 이렇게 손가락이 볼에 닿인것과 안닿인 것이 확실하잖아요. 이건 닿인 거고 이건 안 닿인 거야 그럼 닿였을 때나 안 닿였을 때나 그 사람은 그 사람이지요. 한결같음이 근본이란 말이에요. 이럴 때와 이럴 때가 한결같음이 근본이란 말이에요 그래 자꾸 해 보는 거야. 이럴 때도 그 물건이요 이럴 때도 침묵이고 이럴 때도 침묵이야 (얼굴에 손가락을 닿였다가 떼었다가하면서)눈을 떠도 침묵이요 감아도 침묵이요, 생각 있어도 침묵이요 생각 없어도 침묵이야 , 자꾸만 세워보는 거여. 염불로서 일심을 해보고, 화두로서 또 지극해 보고. 그렇게 하니까 자연히 그래! 이렇게 된거구나!.그래서 이 법이 누구든지 되야 되요. 어떤 사람은 되고 어떤 사람은 안되고가 아니고 누구든지 다 되야 되는 거여. 깨닫기는 다 깨닫고 그것을 증득하는 시간이 더디고 빠를 수는 있다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더디고 빠름은 있다. 그렇지만 아는 것은 확실해야지요. 언어도단의 입정처, 유무초월의 생사문 이건 확실해야 될 거 아니에요? 어떻게요 이제 완전함을 드러내셔야 되잖아요. 우리가 어떤 생명이냐 하면 저 허공을 알고 저 허공을 따다가 사용할 줄 아는 그런 생명이에요 우리가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각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어디를 물건을 찾으러가는 데 거기 그 물건이 없잖아요 그러면 그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그러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쓸 수 있다는 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단 말이에요. 그 각성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 빈 것을 사용할 줄 알게 된단 말이잖아요 이 기가 막힌 물건을 가지고 있어요. 이 사람 몸 받아가지고 각성을 갖고 있을 때에 부처를 자각해야 되요. 부처라는 것은 딴게 아니고 여래라 그러잖아요 볼 때와 안볼 때가 한결 같음이구나 안보는 것이 인연되든 보는 것이 인연되든 들리는 것이 인연되든 안 들리는 것이 인연되든 생각 있음이 인연되든 생각없음이 인연되든 이 거래에 한결같음이여.
이렇게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가 다 부처님이 되자는 것이잖아요 지금 이것은 영리하고 우둔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남녀노소 선악귀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거는
이건 누구든지 알고자 하면은 알게 되는 것이고 하고자 하면은 하게 되있는 거에요.
그래도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넉넉하게 시간을 줬잖아요. 실수할 수 있다 .
안된다고 그랬으면 큰일 나잖아요. 이게 실수할 수 있다 두발로 걷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 벌떡 일어나서 다시 걷자 그러면 든든한 두 다리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애매하게 공부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긍정하자.
내가 하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법문을 자세하게 듣자는 거 에요. 부처님 법문을 우리가 정확하게 자세하게 들으면 의심이 없이 드러날 수가 있어요. 바로 이것이야! 여러분 사탕을 여러분들 입에다 넣어 주면은 이게 사탕인가? 하고 애매합니까? 초코렛을 입에다가 넣어 주면은 이게 초코렛인가? 하고 애매합니까? 아니잖아요. 이것은 사탕이야 이것은 초콜렛이야, 이것은 김치맛이야, 이것은 뜨거운 것이야, 이것은 차가운 것이야 이렇게 정확하잖아요. 부처의 경계도 그와 같단 말이에요. 만유의 실상도 그와 같단 말이에요. 죽비를 “딱” 언어도단의 입정처 틀림이 없어 유무초월의 생사문, 틀림이 없어. 위력을 얻은 자리요 체성에 합한 자리 틀림이 없구나. 사람으로 태어나가지고 생사의 고통에 들어가서 가지가지 고통을 달게 받다가 다행히 부처님과 인연이 있어 가지고 부처님을 만났을진대 부처님한테 배워야 될 것은 생사가 둘이 아닌 자리다 이 말이에요 나의 참생명이요 우주의 실상이란 말이죠, 인과에 어리석지 않음이란 말이에요. 영원한 수행의 길을 갖추고 이때를 당해가지고 그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지 안는다면은 또 어느때를 당하냔 말이에요 어느 때를 기다리냔 말이에요. 그러니 이 때를 당해서 확실하게 하자는 거야 언어도단의 입정처 애매하게하지 말자는 거야. 이게 길이라는 것을 유무초월의 생사문 우리가 애매하지 말자는 거잖아. 이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몸 받는 게 어려워요 그리고 사람몸 받았다 하더라도 그 몸을 받았을 때 부처님 만난다는 건 더 어려워요.
우주의 나이로 보면은 짧은 순간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 지금 엄청난 기회다 이 말이요.
그래서 우리가 애매하게 하지말자! 아셨죠? 저도 여러분에게 어떻게든가 법을 전해줄려고 부처님법을 여러분들에게 전해줄라고 시간을 쪼개가지고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은
같이가자 ! 그런 심정으로 여러분들하고 이렇게 지내는 거에요 아셨죠? 이상입니다
멋지게 한번 해봐요 진짜 우리가 부처님 만난 좋은 기회야
일원상진리는 만고의 표본이기 때문에 애매하지가 않아요
반야심경이 나온지가 꽤 오래됐어요 천년이천년 됐을거요.
아마 색즉시공 공즉시색 오온이 공하다 색자체가 찰라라는 것 공자체가 찰라라는 것
이 엄청난 경전이 나왔는데도 인류는 아직까지 깨달음이 드물다 말이예요.
이렇게하면 안되요. 멋진 경전이여 그 경전이
금강경에 모든 상이 상 아닌 줄을 알면 즉견여래라 공도 상이고 색도 상이다
그것이 하나가 되면 상 아닌 줄 안다는 거에요. 그러면 끝난 거에요. 생각도 모양이 없고
생각없음도 모양이 없고 형상도 모양이 없고 형상 없음도 모양이 없다
그냥 실행하면은 되는 거예요 부처님 그렇게 자세하게 가르쳐주셨는데 그 법문을 듣고 나서 여기 와서 좌선을 하고 있어 내가 해보겠다는 거야 그렇게하면 안된다는 거야
실행이야 그냥 경전은 요렇게 눈의 원리를 말하고 있어요 눈을 어떻게 쓰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야 어떤 경전에는 원각을 환을 말하는 원각이든 꿈을 얘기하는 화엄이든 물거품을 얘기하는 열반경이든 전부 요거하나 어떻게 쓰라고 하는 거잖아요.
내 눈에 보이는 대상이 도대체 무어냐? 실체가 무엇이냐? 실체가 무엇이냐?
나는 보였다 안 보였다한다 말이예요 당신이 당신 자체는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물건이여? 꿈 속에 있는 물건이 진짜 물건이냐 말이예요 공적 영지의 광명을 따라 나타났잖아요
사이버 공간이다 이말이예요 이 세상이 사이버 공간 마음이라는 사이버 공간이다 이말이예요 가상으로 존재하는 물건들이다 이말이예요 그런데 인간들이 하는 행동은 무엇이여
맛있는 것 먹어야 하는데 맛있는 것 먹어야 하는데 좋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우리는
바른 명상을 해야 돼요 24시간이 명상이야 올바른 명상 꿈 없이 잠자는 모습과 꿈과
또 꿈에서 깨어난 모습이 왜 같은가? 둘로 보일 때 하나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둘로 보인다는 것은 하나를 안다는 거잖아요 누구든지 되니까 멋지게 도전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