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당”을 보면서....
추석 연휴에 발맞추어 개봉한 “영화명당”을 가족과 함께 잘 보았습니다.
역학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더 알려진 “영화 명당”은 화장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주는 측면에서는
볼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발복할 길지를 찾아서 오늘날에도 조상의 산소를 이장하거나,
부모의 상을 치루는 분들도 분명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풍수지리 사상은 옛 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역학 3부작 시리즈의 제작사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영화기획자의 의도는
절반은 성공하지 않았을까를 영화를 보고 난 후 개인적으로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역학시리즈 3부작을 통하여 관상이나 궁합 그리고 명당을 전면에 내세우며
무가치하거나 무속의 유물이 아닌, 현실 속에서 일리 있는 주제들임을
어느 정도 일반인들에게 각인되도록 희화화 시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영화 명당”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몇 가지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땅의 기운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장면입니다.
조선 후기 실존했던 지관 박재상이 당대 발복 받을 수 있는 명당의 기세가 있는 집터라며
복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것 같았습니다.
인상 깊은 두 번째 장면은 권력과 재력을 앞세워 상권을 독점하려는 세력들에게
삶의 터전을 내 줄 수 밖에 없는 시장 상인들이 박재상을 찾아가 무너진 상권을 회복하려는
비법을 묻는 장면입니다.
그러한 상인들에게 박재상 지관이 처방하는 비법은 의외로 상식적인 진단과 처방입니다.
장터를 찾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바라보고, 소비자의 심리를 최대한 활용하여
장터에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갖도록 해주는 대목입니다.
세 번째로 인상적인 장면은 두 명의 왕이 배출될 천하 명당의 길지의 주인은
파묘된 조상이 아닌, 새로운 주검으로 안장해야 한다는 당대 최고 지관의 말에
매혹된 김좌근의 아들이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입니다.
아버지의 충복이 아닌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다는 헛된 야망이
임금과 부모는 동일하다는 조선의 가치 이념을 통치 철학으로 삼는 나라에서
욕망 때문에 부친을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르는 인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김병기의 모습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 성경 말씀이 자연스럽게 반추(反芻)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권좌에 앉히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흥선군이 조선 최고의
명당자리에 선친을 이장 시키며 길지를 잡아준 정 지관과 주고받는 대사입니다.
“나리께서는 이제 이 대에 천자를 얻게 되셨소.
석자보다도 더 깊게 회반죽을 부어 묫자릴 두르고 덮었으니
아무도 이곳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요.
“수고 많았네!”“별 말씀을요. 이제 제가 나리의 와룡봉추 아닙니까?”
“그런데 자네에게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자네 할애비와 애비의 묘는 어떠한가? 그 자리도 후손에게 발 복을 내릴 용한 터인가?
“갑자기 그건 왜? ”내 생각에는 그런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이 말을 끝으로 정 지관은 흥선의 부하에 의하여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스치듯 지나가는 구약성경 전도서의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한 가지 비참한 일을 보았다.
아끼던 재산이, 그 임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14.어떤 사람은 재난을 만나서, 재산을 다 잃는다.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 줄 것이 없다.
15.어머니 태에서 맨몸으로 나와서, 돌아갈 때에도 맨몸으로 간다.
수고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전도서 5장13-15절, 새번역 성경)
조선 제일의 지관으로 자부하며 부와 명성을 쌓았음에도 자신의 죽음은
예견하지 못했던 정 지관의 모습은 어쩌면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를 중요시 하는
현대인들에게 “인생은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바른 방향”임을 일깨워주는 평범한 교훈입니다.
“영화 명당”을 보면서, 죄성을 지닌 인간이 헛된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은 창조주 여호와를 기억할 때 만임을 깊이 생각하게 해줍니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도서 3:14-15)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