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성 표지판을 보러 헤맨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날 정도다.
덕분에 산성의 위치가 우렁이 굴속 같음을 확인한 셈이 되는 수확을 얻는다.>
<증산성 표지판 :
여기의 이 표지판 이외는 산성 안 어디에도 찾을 수 가 없다.
사적 제56호로 지정될 정도로 중요하게 인정한 산성임에도>
<(청양군) 장평쪽에서 본 (부여)증산성 모습: 주민의 말로는 봉우리 우측으로 나무가 잘라진 틈이 보이는 곳이 산성이란다.>
이른 아침 왕진교를 지나 청남면, 장평면을 거쳐 부여 은산면에서 산성 앞자락까지 갔지만 진입로를 못찾아서 다시 되돌아 나와 (청양) 장평면에서 또 묻기 시작한다. AI소독수를 뒤집어쓰기를 몇차례 하면서 들판 건너편 산을 가리키면서 먹고개 정상 못미쳐서 왼쪽으로 틀어 들어가란다.
지천교를 지나 부여 은산면 소재지 먹고개 정상 못 미쳐 회곡리가 있고, 그곳에 성운산 산신암 굿당 표시가 된 안내판을 따라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들어간다.
동네에다 차를 주차하고 비탈진 밤농장길을 올라가면 산신암에 이른다. 산신각 뒤로 난 길을 따라 찾아간다.
하산로임을 알리는 표지를 만나고 왼쪽으로 계속 올라간다.
성곽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와 함께 곧 이어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벽의 성벽을 만난다.
서문지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 남벽쪽으로 돌아간다.
남벽 쪽의 남문지로 생각되는 위 성안에는 민가가 한 채 있고,
남벽 기초 부분에 성돌이 빠져 나간 부분
왼쪽은 성벽 안쪽: 협축식으로 쌓았을 동쪽 성벽의 바깥 성돌은 무너져 성돌 너덜겅이 되었다.
문지 임이 확실한데, 동벽이 북벽과 맞닿은 곳에 있는 문지라 동문지로 추정했는데 나중에 산성 안내판에는 북문지로 적혀 있다.
북문지 안쪽으로 굽돌아 쌓은 성벽 모습
성의 남쪽으로 본 모습
왼쪽 바로 아래로는 대전-서천 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건너쪽의 터널을 지나면 은산면 소재지가 나타난다.
북문지에서 서쪽 방향으로 보면 북벽의 성돌 잔해가 성벽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큼직큼직한 성돌, 유나히도 하얀 차돌박이 성돌이 이렇듯 많게도 육중하게 쌓았음을 보여준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벽을 일주해본다.
북벽임을 보여주듯 이끼낀 성돌 사이로 성벽의 원형을 들여다 본다.
납작한 성돌로 돌탑을 쌓은 동쪽으로 눈덮인 계룡산 줄기가 보인다. 연천봉- 상봉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북벽쪽에서 꺾어져 서쪽 역시 돌무더기 천지다. 어마어마한 돌 무더기.
청양 칠갑산 쪽 모습 ; 높은 봉우리에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서벽쪽에 남아있는 원형 성벽 앞에서
성돌 크기와 결구 상태를 본다.
커다란 성돌위에서 자라고 있는 산초나무의 생명력
성운산 정상에 있는 차돌로 된 바위 . 치성드리는 바위이다.
뜻밖에도 이런 멋진 옛우물을 발견한다.
옛날 우물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나중 들은 이야기로는 명주실 한타래가 다 들어가는 깊이라는 전설을 가진 우물
증산성 안은 물이 귀한 곳이다.
지금은 물이 말라버린 우물 속 : 축조 방식이 이채롭다.
증산성 전체가 이 집 주인 소유라고 자랑한다.
함께 산성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주고... 할머니(88세)는 특이한 민속 신앙을 믿고 있었다. 산신각에 절하라고 하면서.
(성운사가 이 집인지?) 독특한 믿음의 표지인 비석
점심 후에 산성 안내판을 확인하러 다시 찾은 증산성을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찾아가는 길이 참으로 어려웠다.고속도로 터널 위로 난 산길은 참으로 초보 운전자가 접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증산성 남쪽 밤나무 단지는 예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밭이었다는 데. 지금은 볼 품이 없다.
고린장터도 많고, 화살촉이며 그릇 조각도 나왔다는 데 무심한 세월이 다 앗아가버리고 없다.
서천 부여 가는 고속도로 터널 위로 아슬아슬한 산길이 나 있고.
(*신성리 마을 회관 앞으로 지천교를 지나 청양군 장평면 들판 길로 헤매이면서 나온다.
낮으막한 산성 하나가 접근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험지에 요지에 자리한 증산성은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었다.
공주대학교 서정석 교수는 사비부여 왕도를 수호하는 5방성의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동서남북의 중요 석성들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