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0.火. 바람이 분다, 거칠게 달리는 회색 얼굴의 봄바람이 온다
03월18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장요리 제1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니 락화보살님과 무진주보살님을 태우고 지나가던 묘현궁보살님 차가 멈춰 섰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려니 이번에는 호당거사님 차가 달려오다가 우리를 보고는 차를 세웠습니다. 호당거사님과 무량수보살님과 손을 잡고 인사를 하고는 차를 몰아 호당거사님 뒤를 따라 절로 올라갔습니다. 돌계단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비탈길을 슬슬 걸어 올라갔습니다. 지난 화요일 상량식上梁式을 했다는 선원 공사장에서 뚝딱.. 뚝딱..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면 상량식을 꼭 하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마 미국이나 러시나, 프랑스 등지에서는 상량식이라는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옥을 지을 때 기둥 위에 보를 얹고 지붕틀을 꾸민 다음 마룻대(상량)를 올리면서 올리는 고사가 상량고사上梁告祀이고, 이것을 상량식上梁式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한옥 구조의 가옥이나 건물이 아닌 미국이나 프랑스 건축에 상량식은 있을 리 없을 터이고 아마 다른 형식의 기념식이나 기도회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제도나 관습은 문화文化의 차이 또는 풍속風俗이나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있거나, 없거나, 혹은 다르거나 등의 서로 간間의 다름이 정상正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런데 1969년 7월20일 하면 혹시 반짝! 하고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없나 모르겠습니다. 역시 오~ 그거 하면서 기억이 떠오르는 분도 있고,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변비처럼 떠오를 듯 말 듯 한 분도 있고, 엉 그날이 내 생일이던가 하는 조금 엉뚱한 분도 있고, 아우~ 그게 언제 적的 일인데 몰라.. 아 몰랑.. 하는 공주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물론 그게 정상입니다. 정신없이 힘이 센 미국사람 토날듯 트럼프 생일도 모르고 사는 판국에 50여 년 전 일까지 기억을 하고 있는 사람이 좀 이상해보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그날이 미국나라 우주선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했다고 하는 날입니다. 미국시간 기준으로 다음날인 1969.7.21.일자 <워싱턴 포스트> 헤드라인은 ‘이글은 착륙했다. 두 명의 남자가 달 표면을 걸었다. The Eagle Has Landed. Two Men Walk on the Moon.’ 였습니다.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시간이 미국시간 기준으로 1969.7.20일 20시17분이면 한국시간으로는 7.21일 오전일 테니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다음날인 7.22일자 신문에 사진과 함께 커다란 느낌표 붙인 표제와 대문기사가 일면一面에 실렸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중학교3학년이었는데, 내가 살고 있던 K시에는 중앙지인 조선일보는 조간朝刊으로, 동아일보는 석간夕刊으로 각 가정에 배달되고 있었다고 기억을 합니다. 그러니까 7월22일자 혹은 23일자 동아일보가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봅니다만 아폴로11호 우주인에 관한 상당히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세 명의 우주인인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세 사람의 사진이 크게 실린 아래쪽에 당시 유명하다는 어느 역술인의 세 우주인에 대한 관상품평觀相品評이 실려 있었습니다. 물론 다 좋고 바른 말만 쓰여 있었던 그 기사를 보면서 문화와 풍토와 섭식하는 음식과 주거환경과 기질氣質과 골격의 특성特性이 다른 서양 사람의 관상을 기존 한국식 관상법대로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바탕으로 풀어낸다는 작명법作名法에 의거해서 알파벳으로 만들어진 Neil Armstrong이나 Buzz Aldrin 이라는 이름을 풀어냄으로써 그 사람들에 대해 무언가 알아낼 수도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나라와 세 우주인에 대해 다소 과격하고 호의적인 감정으로 시도한 기사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국내 유수 중앙지의 파격적인 기사거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관상 말고도 수상, 족상, 골상이나 사주, 토정비결도 있는데, 왜 관상을 품평했을까 하고 혼자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관상법觀相法은 면상面相의 골격骨格과 색택色澤뿐만 아니라 신체거동과 함께 음성까지 따지는 법인데, 사진을 통해 본 평면적인 면상만가지고 얼마나 사람의 됨됨이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사족蛇足입니다만 예전에 한동안 청와대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전모 씨는 음성이 악惡했고, 김모 씨와 이모 씨는 음성이 쉰 듯 탁濁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제가 음력으로 초하루, 오늘이 초이틀이라고 해서 사시마지불공에 이어서 신중단 불공을 조금 길게 올린다는 주지스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평소 신중단불공에 비해 화엄정근을 더 하는 정도였으나 평소 우리들이 불단을 향해 자주 하는 관음정근觀音精勤이나 지장정근地藏精勤에 비해 화엄정근華嚴精勤은 정초불공이나 음력 초사흘 불공에만 하는 정근이라 무언가 새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시불공을 마치고 잠시 입정에 들었다가 주지스님께서 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선을 하는 목적과 화두를 들고 화두를 깨쳐가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옛날 스님들에 비해 활기 있고 젊은 스님이라 그러한지 이해하기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선禪이란 생각의 조복調伏을 받고 제어制御를 하는 방법인데, 그렇다면 생각이란 상념이나 감각을 통해 들어온 외부자극에 의한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반응이어서 결국은 마음 다스리기 혹은 마음공부라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간화선看話禪에 의거해서 화두를 들고 화두를 다 깨친다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생겨납니다. 부처님께서 출가를 하게 된 동기는 노·병·사老病死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출가를 하여 수행자가 되어 고행을 겪으면서 중도中道의 길을 깨달은 다음 선정에 들어 연기의 실상을 파악해가는 과정에서 생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늙음과 죽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진리를 온전히 꿰뚫어 사유한 후에 그것은 태어남生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런 사유를 일관되게 한 후에 마지막 단계인 ‘어리석음은 모든 것의 원인이 된다.’ 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진리를 거꾸로 관찰하였습니다. ‘어리석음에서 형성이 생긴다.’에서부터 사유의 끝까지 파고들자 마지막 단계인 ‘태어남生에서 늙고 죽음이 생긴다.’ 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것이 소멸消滅하는가를 관찰하셨습니다. ‘태어남이 없으면 늙음과 죽음이 없다.’ 로부터 시작하여 ‘어리석음이 없으면 형성이 없다.’ 그래서 ‘어리석음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 라고 연기의 실상을 관찰함으로써 생의 소멸에서부터 어리석음의 소멸을 파악하고는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첫댓글 허정스님이 가시고 난후 잊어 버릴만 했는데 수 년 전 이 맘 때쯤에 천장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기억이 살아나 카페에 들어와 보았습니다. 밸라거사님께서 여전히 천장사와 카페를 지키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문득 가벼운 찜싸서 내려가보던 금요일 오후인데 이제 낮선 곳처럼 느껴져 발 길이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불탄자리에 선방이 새로 지어지고 있군요. 다행입니다. 그 자리에서 차잎을 유념하고 대나무 통에 밀어 넣느라 하루를 다 보냈던 기억도 납니다. 진월거사... 지금은 어디게 계시나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