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란드 헬싱키에서 수오메린나 요새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 뒤에 헬싱키 도심이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열네번째 강연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한국에서는 추석날 아침이기도 하네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성준 한인회장님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5시에 현지 교민 분인 김미미씨 부부가 새벽부터 정성껏 차려준 추석날의 아침 식사를 하고, 5시30분에 기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김미미씨 부부는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듣고 삶이 많이 행복해졌다며 스님께 식사 대접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 추석날 아침 식사를 정성껏 차려주신 김미미씨 부부
새벽부터 노성준 한인회장님이 마지막까지 직접 차를 운전하여 안전하게 기차역까지 태워주셨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전 6시 40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하여 오전 9시 16분에 핀란드 헬싱키역에 도착했습니다. 시차가 1시간 있으니까 실제 이동 시간은 3시간 36분 걸렸습니다. 헬싱키역에는 핀란드에서 한인 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솔 씨와 핀란드에서 한국관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최문기 거사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 핀란드 헬싱키역에 도착
오늘은 최문기 거사님 댁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해서, 우선 거사님 댁에 짐을 옮겨 놓고, 거사님이 운영하는 헬싱키 유일의 한국 식당인 한국관(Korea House)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거사님 부부도 평소에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보고 많은 도움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꼭 식사 대접을 해드리고 싶으셨다며 정성껏 음식을 차려 주셨습니다. 스텝진 일행은 음식이 맛있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핀란드를 알 수 있는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 스님 일행의 점심, 저녁 식사와 숙소 제공까지 정성껏 챙겨주신 최문기씨네 가족.
헬싱키는 도시가 작아서 하루 종일 걷기로 하였습니다. 유적지 안내는 핀란드 한인 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솔 학생이 해주었습니다. 백솔 학생은 헬싱키의 라우레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4학년 학생입니다.
우선,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인 성당 두 곳에 가보았습니다. 1868년에 지어졌고 양파 모양의 돔 외관을 가진 우스펜스킨 성당과 도심 한복판의 넓게 자리한 세나띤또리 광장에 우뚝 솟은 투오미오키르코 성당을 가보았는데, 두 성당은 서로 다른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 우스펜스킨 성당
특히 투오미오키르코 대성당은 내부로 들어가보니 실내 장식이 거의 없이 아주 심플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유럽의 많은 성당들이 화려한 장식을 갖추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성당은 아주 심플하고 단순해서, 스님께서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 투오미오키르코 성당 외부
▲ 투오미오키르코 성당 내부
스님께서는 “성당이나 교회가 세속과 결탁하면 화려한 장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많고, 종교의 순수성이 잘 유지되면 심플하고 단순한 경향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하시면서 심플한 핀란드의 투오미오키르코 대성당을 더욱 관심 있게 보셨습니다.
성당을 나와 걸어서 카우파토리의 여객항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장날처럼 천막을 치고 각종 음식과 과일, 물건들을 판매하는 시장이 열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 여객항에 늘어서 있는 마켓들. 오른쪽에 보이는 친구가 스님 일행을 안내해준 헬싱키 라우레아 대학에 다니는 백솔씨입니다.
블루베리와 몇가지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사서 먹고는 여객항에서 배를 타고 ‘수오메린나’로 불리우는 핀란드의 천연 요새를 가 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20분을 가니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 보였습니다. ‘핀란드의 요새’로 널리 알려진 이 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곳입니다. 마침 날씨가 맑아서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 수오메린나 요새
이 섬 요새는 1748년 러시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당시 핀란드를 지배하고 있던 스웨덴에서 지은 요새입니다. 한때는 이 요새에 헬싱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1808년 오랜 전투 끝에 결국 러시아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 수오메린나 요새의 성벽 중에서 왕이 출입하였다는 King's Gate
안내 유인물에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니 King's Gate 라는 요새의 성문이 나타났는데, 이곳은 왕이 배를 타고 정박해 이 성문으로 들어왔다는 곳이었습니다. 자세히 둘러보니 성벽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중중 첩첩으로 성벽이 쌓여 있었습니다. 성벽마다 대포를 쏠 수 있게 구멍이 나 있고, 당시 사용했던 대포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성벽은 한겹 내지 두겹만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겹겹이 성벽이 설치된 것에 스님께서도 무척 신기해 하셨습니다. 그만큼 적으로부터의 침입에 대한 두려움이 컸으리라 짐작이 되었습니다.
핀란드는 강대국 사이에서 고통을 겪어왔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스위덴으로부터 500년간 지배를 받아왔고, 또 러시아가 급부상 하면서는 수오멘린나 섬에 큰 요새까지 지었지만 러시아를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러시아의 지배를 100년간 받게 되었답니다.
수오메린나 요새를 모두 둘러보고 다시 카우파토리의 여객항으로 돌아왔습니다. 2시간 정도를 계속 걸었더니 스님께서도 조금 피곤하셨는지 배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여객항에 내려 헬싱키의 중심가인 에스프라나드 공원을 걸은 후 강연을 준비할 시간이 다 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핀란드 헬싱키 강연은 Aalto 대학 Design Factory 강당에서 한인 학생회 분들이 주축이 되어 준비해 주었습니다. 한인 학생회는 헬싱키에 있는 라우레아 대학, 메트로폴리아 대학, 알토 대학, 헬싱키 대학 4개 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의 모임입니다. 영상 상영, 사진 촬영, 강당 시설 사용 등이 학생들의 봉사 덕분에 매끄럽게 잘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 준비를 위해 수고한 한인 학생회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 헬싱키 강연이 열린 Aalto대 Design Factory 강당. 사진 촬영은 핀란드에서 포토그래피로 활동하고 있는 박재승씨가 재능기부로 담당해 주셨습니다.
강연은 총 60명이 참석하여 진행되었고, 대부분 유학생들이 절반 정도를 이뤘고, 그 외 개인사업이나 여행 차 오신 분들도 보였습니다. 특히 헬싱키에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핀란드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먼저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핀란드 하면 첫째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이라는 점이 떠오릅니다. 두번째는 헬싱키 프로세스가 떠오릅니다. 유럽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유럽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유럽이 대립과 갈등을 겪었는데, 이곳 헬싱키에서 1975년 동서 유럽 35개국의 나라가 모여서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첫째, 상호 불가침에 대한 약속을 하는 안보 협력을 하기로 했고, 둘째, 서로 경제협력구조가 달랐는데 상호 경제협력을 하기로 했고요. 셋째, 인권협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세 가지 협력을 하기로 한 것이 헬싱키 프로세스입니다.
헬싱키 의정서가 맺어지고 동서 간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고 그것이 결국 동유럽의 붕괴, 소비에트의 해체, 독일의 통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갔기 때문에 한반도에 있어서도 헬싱키 프로세스가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느냐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북과 주변국까지 해서 우선 안보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6자회담으로 볼 수 있고요. 두 번째는 남북간의 경제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 북한 인권 문제가 중요한 사항으로 들어가야 함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상호 협력하면서 공존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헬싱키 프로세스가 동유럽의 해체를 가져왔기 때문에 결국 북한의 붕괴도 가져올 것이라는 의도로 오해되어 북한에서는 여기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헬싱키 프로세스로 인해 결과적으로 동유럽이 붕괴된 것이지, 붕괴 시키려고 헬싱키 의정서를 맺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서 헬싱키 프로세스는 한반도 통일문제와 외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 번째,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전체적으로 복지 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잘 갖춰져 있다는 것으로 우리사회에 알려져 있습니다.”
헬싱키 프로세스의 의미에 대해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통일의 희망을 가슴에 새겨 봅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총 9명이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아직도 분단 국가로 남아있는 원인을 묻는 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 어떻게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지 묻는 분, 극단주의자가 주위에 있어서 피곤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강박관념이 심하고 나쁜 기억이 순간적으로 올라와서 저를 괴롭혀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정토행자의 서원에서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분,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너무 빠져서 걱정인 분,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인과응보의 원리를 항상 들어왔는데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는 불행한 사람은 늘 불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분, 종교나 정치라는 것이 현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한국과 핀란드의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에 대해 묻는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핀란드에 온지 3년 되었고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가치관과 핀란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 서로 다른데 그 안에서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결혼은 몇 살에 해야 하고, 성공하려면 돈은 얼마를 벌어야 하고, 학벌을 중시한다든지 여러 가지 기준들이 있는데, 핀란드는 그런 기준이 없거든요.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식이 한국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외국 사람과 결혼하면 반대하겠죠. 만약에 백인도 아니고 흑인이라면 어떨까요? 그것도 장애인이라면 어떨까요? 더더욱 반대하겠죠. 두 가지 문제입니다. 부모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가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요즘 많은 이들이 계약 결혼을 해서 살잖아요. 이것을 한국 부모가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죠. 동성이 같이 산다는 것도 부모가 받아들이기 어렵겠죠. 부모는 잘못되었고 부모는 아직 미개해서 그런 게 아니라 부모님이 살아온 삶의 가치관과 사고에서는 이것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하자는 대로 내가 하면 부모의 노예만 되지 내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노예로 살고 싶다면 부모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되고요. 그러나, 스무살이 넘어서 한 사람의 성인이라면 부모님의 뜻이 그런 것은 이해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거냐 안 살거냐 하는 것은 내 선택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어렵다 하더라도 ‘인종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볼 때 옳지가 않다',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인데 단지 피부가 검다는 한 가지 이유로 안 된다는 것은 옳지가 않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살면 됩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런 것 같습니다.”
“방금 부모의 예를 들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학벌을 갖고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했는데 내가 핀란드에 와보니 ‘그래, 학벌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한국은 너무 학벌을 갖고 형식주의에 치우쳐있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부모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나는 거기에 대해 구애받지 않고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학벌이 중요하지’ 생각한다면 학벌을 중요시하면 되고요.
만약 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결혼식에 부모가 안 온다던지 해서 가족과 갈등이 생기겠죠.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한테서 외면당하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을 이해는 하되 나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잖아요. 나의 길을 가야지요. 대신에 불이익을 감수해야죠. 질문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불이익은 안 받겠다고 하는데서 생기는 고민입니다. 그런 걸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선택이에요. 내가 결혼할 때 부모가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떠냐? 부모가 결혼을 반대한다고 부모를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동안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며 자식에 대한 우려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기 체면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에요. 사위가 누구냐 물으면 자기 친구들에게 말하기가 도저히 어렵단 말입니다. 자신의 체면 문제가 하나 있고, 진짜 자식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인생을 오래 산 부모님의 입장을 들어봐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의 얘기를 듣고 내가 깨닫고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뜻은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한다면 ‘저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그럴 때 부모는 자식의 결혼식에 참여 안한다던지 결혼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던지 그럴 수 있죠. 그것은 부모의 권리이니까요. 가족 간의 지지를 다 받으면 좋지만, 그럴 때는 부모의 지원을 포기해야 합니다. 나는 내 하고 싶은 결혼도 하고, 또 가족의 지지도 다 받고 싶다 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겁니다. 지지를 받고 싶으면 가족의 비위를 맞추어서 내 요구를 좀 포기해야 하고, 내 옳다는 생각대로 가려면 지지도 포기하고 후원도 포기를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열심히 키워주셨는데 부모님 말을 안 들으면 불효가 아닐까요?”
"불효가 아니에요. 그러나, 부모님은 불효라고 그러겠지요. 반대하는 것은 부모님의 생각이고 나는 나의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어릴 때부터 낳아서 열심히 키웠더니 이제 부모 말도 안 듣고 이렇게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그것은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가 부모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 갈 길을 가면 되는데, 후원도 받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도 하는 이것은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반대해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대는 부모님의 의견이니까 인정은 하되, 지금까지 지원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 인사를 해야지요.
부모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곳 핀란드에 와서 이것이 좋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그 좋은 것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 시스템이 한국보다 참 좋다고 한다면, 그럴 때 내가 만약 정치를 한다면 한국 사회가 그것을 수용을 하도록 노력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한국 사회가 이것을 잘 안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5년, 10년, 20년 동안 지난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공할 수도 있고 성공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공 안했다고 실패했냐? 그건 아닙니다. 3.1운동도 그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역사적으로 길게 보면 성공한 것입니다. 헌법에도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라고 되어 있잖아요. 반면 5.16은 어때요? 그 당시에는 성공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헌법에 “5.16 군사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란 문구는 없잖아요. 역사적으로 헌정 질서를 문란 시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면 앞으로 누구든지 헌법을 무시하고 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그러니까 당장 성공했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고, 당장 실패했다고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꾸준히 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사회가 지나친 학벌사회라고 한다면, 여기 와서 견문을 넓혀보니 ‘이 학벌주의는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되고, 개인의 행복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세상 사람들이야 학벌주의를 하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 안 쓰면 됩니다. 불이익을 주면 불이익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꾸준히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지 ‘여기는 이렇고 저기는 저런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정말 혼란스럽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다른 종교인들을 만나서 자꾸 대화를 나누니까 ‘내 신앙이 흔들립니다’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믿는구나’, ‘저 사람들은 저 문제를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면 되지 내 생각과 다르다고 갈등을 일으킬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
다름은 갈등의 요인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들을 우리가 인정하고 이해하면 오히려 다양성의 조화가 일어납니다. 풍요로워집니다. 반찬이 딱 한 가지만 있는 게 좋아요? 열 가지 있는 게 좋아요? 열 가지가 있으면 밥상이 풍요로워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획일적인 사고를 합니다. 이런 문화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저런 문화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류문화사를 연구하면 ‘어떤 문제마다 사람들은 여러 생각들을 하는 구나’ 이렇게 볼 수가 있죠. 생물학적으로 다양한 종을 모두 존중하듯이 인류학적으로 볼 때는 다양한 문화를 다 존중해야 합니다. 인류가 수 천년을 거쳐 오면서 나름대로 발전시켜 온 문화이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는 자꾸 획일화되어 갑니다. 그런 것을 극복해 가는 것이 발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여기 와 공부하면서 좋다 싶었던 것들은 다 배워 와서 한국에서 저항을 받아가며 관철을 시켜 보세요. ‘이렇게 저항까지 받아가면서 해봐야 무슨 소용 있나’ 한다면 그냥 한국식으로 살면 되고요. 그건 자기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헷갈릴 일은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힘들다 한다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다는 뜻입니다."
“불효를 할까봐 걱정됩니다.”
“성인이 되면 선택은 자기의 문제입니다. 성년은 각자 자기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더 이상 지원해줘야 할 아무런 책임이 없고, 자식은 부모에게 어떤 명령도 들어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어요. 각자가 독립된 인간입니다. 부모 자식이란 것이 있지만 성년이 되면 일대일의 독립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자연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는 보통 스무살이 넘어도 독립을 하지 않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부모도 자식을 독립시켜주지 않지만, 자식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안 하고 있습니다. 울타리 안에서 오래 키우던 짐승을 산에 가져다 놓으면 못살고 다시 울타리로 돌아오듯이 자식을 너무 과잉보호 하면 독립을 못합니다. 한국 문화가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집의 문화가 그런 것이겠죠. 그런 집이 좀 많아서 한국 문화라고 그러는 것이지요. 서양은 그런 집이 없느냐? 그건 아닙니다. 서양은 독립시키는 것이 다수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국 사람은 다 그렇다”, “서양 사람은 다 안 그렇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식을 독립시키는 문제는 서양 문화와 한국 문화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됩니다. 항상 모든 것의 그 근본인 자연의 원리에 준해서 자연스럽냐 그렇지 않느냐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어떤 문제를 보는 것이 옳습니다. 한국에서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자연의 원리에 어긋나면 고쳐야 하고, 서양이 아무리 우리보다 앞서가고 잘산다 하더라도 자연의 원리에 어긋나면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서양 것은 옳고 우리 것은 틀렸다 라든지 서양 것은 틀렸고 우리 것은 옳다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혼란스럽다고 했던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습니다. 성년이 되면 부모와 자식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명쾌하게 정리해 주셔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한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고한 한인 학생회 친구들과 간단히 소감 나누기를 함께 한 후, 한인 학생회 친구들에게 단주 하나씩을 선물하며 모두에게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해 주셨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느라 다들 저녁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강연을 마치고 난 후 다시 최문기 거사님이 운영하는 한국관(Korea House)으로 돌아와 사모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식사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습니다. 숙소인 최문기 거사님 댁에 들어오니 밤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럽 강연을 출발한 이후 계속 쉬지 못하고 강행군을 하셔서 그런지 다소 피곤한 기색이 많으셨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드시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갑니다. 스웨덴에서 계속 소식 전하겠습니다.